- [ 연애(판타지)/약혼파기의 흑막 ]12024-01-18 23:09:50"에밀리. ......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너와의 약혼을 파기해 줄 수 있을까?" 겸연쩍은 듯 눈을 내리깔고 있는 터너를, 에밀리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짧지 않은 관계였지만, 끝날 때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어릴 적부터 가문끼리 약혼을 하여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터너에게,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터너 님, 잘 알겠습니다. 애초에 터너 님의 가문이 더 높으시니 제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는걸요....... 일단 사정을 여쭤봐도 될까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았어. 그녀는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지만, 똑 부러진 너와는 달리 약하고 섬세해서 내가 보호해 줘야만 해. 그렇게 강하게 느꼈어." 어딘지 모르게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는 터너를 향해, 에밀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
- [ 연애(판타지)/사후약방문 ]12024-01-18 22:06:23로렌조 님, 울면서 매달리면 무엇이든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확실히, 저는 지금까지 당신님을 언제나 용서해 왔어요. 당신의 뒷수습을 하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요구되는 대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어요. 좀 더 일찍 당신과 결별했어야 했어요. 자신이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항상 자신만 생각하는 당신을,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라며 그런 단점을 저에게 드러내는 것도, 제게 마음을 허락하여 어리광부리기 때문이라고, 저도 스스로에게 말하듯 오랫동안 괴로운 핑계를 대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라는 존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짓눌려 있던 무게가 드디어 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부적이 필요한 어린이의 나이도 아니니까요. 저라는 약혼녀가 있다는..
- [ 연애(판타지)/신부 탈주 계획 ]22024-01-18 13:18:12"단순히 가문을 거스르지 못했을 뿐이겠지. 더구나 아까 그와 또 싸워서 내가 뛰쳐나왔을 때, 그는 나를 쫓아오지도 않았어. 이젠 나, 이대로 도망치고 싶어 ......" "그럼 나랑 같이 도망가자." "뭐?"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여자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네가 내일 결혼식에서 무사히 도망친다면 나와 결혼해 줄래?...... 너는 누구와도 결혼해도 좋다고 했었잖아?" "어머, 참 재밌는 말이네? 후후....... 그래,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럼 이대로 나를 데려가 줄래?" "좋아. 나는 이 술집 밖에 말을 묶어 놓았으니, 함께 가도록 하자." "아주 즉흥적이고 엉성한 계획이지만, 정말 그렇게 해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건 괜찮아, 내가 장담..
- [ 연애(판타지)/신부 탈주 계획 ]12024-01-18 13:17:51"마스터, 한 잔 더 줄래......?" 번화가 외곽에 있는 술집 카운터에 홀로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은, 가게에 들어선 후 꽤나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서 지켜보던 점주도, 술에 취해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 이봐, 아가씨. 그렇게 많이 마셔서 괜찮겠어? 역시나, 이제 술은 그만 마시는 게 어때. 얼굴이 너무 빨갛다고." "아니, 괜찮아. ...... 후후, 나는 전혀 취하지 않았는걸."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있지만 눈빛은 이미 흐리멍덩한 여성을 보고, 가게 주인은 눈썹을 늘어뜨렸다. 점주가 이 여성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그녀는 평소 이런 곳에 올 것 같지 않은 고급스러운 차림새를 ..
- [ 연애(판타지)/위험한 미약 ]12024-01-18 11:34:28숲 속 깊숙한 곳에 조용히 자리한 작은 오두막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네, 누구세요?" 소박한 나무 문이 열리며 오두막집에서 나온 날씬하고 작은 체구의 여성에게, 방문한 청년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여기서 미약을 판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 "네, 맞습니다." 눈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여성을,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단정한 얼굴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청년은 가격 흥정을 하려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소박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미약은 이 여성이 취급하는 것 같다. 열린 문 너머에서는 확실히 약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그럼, 꼭 나에게 팔아줘.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다소 초췌한 모습의 청년은 다급한 목소리로 여성에게 부탁했다. 여인은 시야 가장자리로 ..
- [ 연애(판타지)/마법이 풀리게 되면 ]후편(2)2024-01-17 18:59:07"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보기에 너는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도 강한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그때는 아직 어렸던 너의 그릇을 넘어선 힘을 너무 많이 썼겠지. 거의 죽을 뻔한 나에게 힘을 줘서 이 세상으로 다시 불러냈으니까. 그 때문에 네 그릇이 상처를 입었을 거야. 미안해." "만약 그것으로 애슈턴 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면, 제가 힘을 잃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마법을 사용한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니까요....... 정말 기쁘게 생각해요." 미소 짓는 파비올라를 향해 팔에 힘을 주며, 애슈턴은 조금 젖은 눈으로 파비올라를 바라보았다. "너를 바로 찾았지만 좀처럼 찾지 못해서 말이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가문은 많지 않지만, 다른 나라에까지 손을..
- [ 연애(판타지)/마법이 풀리게 되면 ]후편(1)2024-01-17 18:58:48"파비올라 님, 웨딩드레스가 아주 잘 어울리세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애슈턴 님도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메레디스 저택에 도착한 다음날,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시녀의 화장을 받은 파비올라를 본 시종 라일은 흐뭇하게 웃었지만, 파비올라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그런지, 애슈턴 님과의 결혼에 불안해지셨나요? 저는 오랫동안 애슈턴 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애슈턴 님은 반드시 파비올라 님을 행복하게 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라일 님. 저는 ...... 애슈턴 님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잘 설명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 슬픈 듯이 눈물을 그렁거리는 파비올라에..
- [ 연애(판타지)/마법이 풀리게 되면 ]전편(2)2024-01-17 17:52:55"조금 갑작스럽겠지만, 내일이면 메레디스 가문의 애슈턴 님이 직접 이 집으로 너를 데리러 오실 거라고 해. 하지만 이제 너도 당당하게 메레디스 가문으로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유디리스는 턱을 들어서, 파비올라에게 방 안의 거울 방향을 가리켰다. 거울로 달려간 파비올라는 거울 안쪽에 비친 유디리스의 두 모습에 깜짝 놀라며, 거울을 통해 진짜 유디리스를 바라보았다. "......! 왜 이런 마법을 저에게?" "어머,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가 아내로 삼고 싶어 하는 건 분명 나야. 하지만 테살리아 왕국에서는 한 번 혼인을 맺으면 이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언젠가 내 마법이 풀리더라도, 그때까지 결혼한 상태라면 네 신분은 안전할 거야...... 별다른 혼담이 없는 너로서는 다시없는 기회가 아니겠니? 게다..
- [ 연애(판타지)/마법이 풀리게 되면 ]전편(1)2024-01-17 17:52:27"파비올라, 무슨 일이야?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파비올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럽게 눈썹을 모으는 애슈턴의 시선에 파비올라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 아뇨, 별일 아니에요. 마차가 흔들려서 조금 멀미한 것 같아서요." 애슈턴은 창백한 얼굴의 파비올라의 가냘픈 몸의 등을 쓸어 주었다. "그렇구나. 이제 곧 마차도 고개를 넘을 때야. 그러면 마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갈까?" "감사합니다, 애슈턴 님." 파비올라는 어색한 미소를 눈앞의 애슈턴에게 돌려주었다. 파비올라는 꿀처럼 밝은 금발에 자수정처럼 맑은 보라색 눈을 가진 애슈턴을 힐끗 쳐다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꽤나 여자를 홀릴 법한 얼굴이지만, 모양이 좋고 큰 눈동자에 담긴 성실해 보이는 ..
- [ 연애(판타지)/꿈의 끝에 ]42024-01-17 15:30:49저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임신 소식에 기드온 님은 기뻐했습니다. 저는 여러 이유를 들어, 기드온 님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두르 왕국의 침공을 미루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두르 왕국이 기드온 님의 공격을 받지 않은 채로, 저는 옥 같은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기드온 님은 아들을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들이 자라면서 귀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 날카로운 눈매 등이 클리포드 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했지만, 기드온 님은 그런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아들에게 철저하게 제왕학을 심어주었습니다. 아들도 기드온 님께 심취하며 훌륭하게 성장해 나갔지만, 그 와중에도 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두르 왕국을 전쟁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 후 기드..
- [ 연애(판타지)/꿈의 끝에 ]32024-01-17 15:30:31나는 기드온 님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끼워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 그것은 약혼 파기 장면뿐만 아니라, 그 전날 밤의 클리포드 님의 태도에서 계속 궁금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약혼 파기를 당하기 전날, 클리포드 님은 제가 빌린 왕궁의 한 방을 방문하였습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그가 심하게 취해 있었죠. 왜 축하 행사 전날에, 그동안 술에 취한 적이 없던 그가 이런 모습인지 저는 의아해했지만,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감싸며 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소파에 등을 대고 드러눕자,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눈을 감은 그의 긴 속눈썹이 그의 호흡에 맞춰 가볍게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랑스러움이 가..
- [ 연애(판타지)/꿈의 끝에 ]22024-01-17 15:29:44"아름다운 오베리아, 나의 데스티아 왕국으로 올래? 내가 그를 대신해 너를 아내로 맞이할게. 나의 정실로......" 데스티아 왕국. 그것은 두르 왕국의 이웃나라이자 대륙의 패권자라 불리는 강대국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제 손을 잡고 있는 이 사람이 데스티아 왕국의 황태자 기드온 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제 몸은 긴장감에 떨었습니다. 기드온 님의 말씀에, 우리를 감싸고 있던 웅성거림이 더욱 커지는 것과 동시에 클리포드 님이 저를 돌아보는 것은 동시였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클리포드 님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깊고 깊은 어둠을 비추는 듯한 색만 보일 뿐 제가 찾던 애정의 조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드온 님의 손에 이끌려, 저는 데스티아 왕국으로 건너가 그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 [ 연애(판타지)/꿈의 끝에 ]12024-01-17 15:28:47저, 왠지 기나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잠시 제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려도 될까요? 나, 오베리아 달스턴은 달스턴 후작가의 장녀로서 어린 나이에 두르 왕국 황태자의 약혼녀로 정해졌어요. 황태자 클리포드 님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 깔끔한 얼굴, 날카로운 눈동자에 영리함이 깃든 사려 깊은 분이셨어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8살, 제가 6살이었을 때였을까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게 손을 내밀어준 그를 보며 얼굴에 뜨거운 열이 올라오던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두르 왕국은 풍부한 해양자원을 가진 나라로, 인근 국가 중 최고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클리포드 님은 학업과 검술에서 모두 우수..
- [ 연애(판타지)/달콤한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42024-01-16 12:42:37나는 그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그의 얼굴이 훨씬 위에 있는 것 같고, 날씬해야 할 그의 몸도 탄탄해진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리리에 말이야? 사실, 내 동생인 에르네스트 가 예전부터 리리에를 좋아했었어. 그녀도 에르네스트를 좋아한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고, 똑똑하며 무슨 일을 시키든 잘하는 에르네스트가 왕위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왕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해도 입장상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정도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어." 가볍게 웃는 그였지만, 나는 가볍게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칼빈 님만 희생되어 폐적까지 되다니요. 제가 가정교사를 할 때에도 미래의 왕이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
- [ 연애(판타지)/달콤한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32024-01-16 12:42:19내가 아는 한, 내가 과외를 시작한 이후 칼빈 님의 성적은 학교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칼빈 님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그는 무엇이든 쉽게 해내는 왕자님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중압감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첫째 왕자라는 지위와 그에 대한 주변의 기대, 그리고 뛰어난 동생과 비교하는 사람들의 시선. 칼빈 님은 근본적으로 성실하며 잔소리하지 않아도 할 일을 해나갔기 때문에,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는 적어도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를 빌었다. "...... 만약 내가 왕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레스처럼 벌레 연구자가 되고 싶었어." 단 한 번,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유로운 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