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후편(1)
    2024년 01월 17일 18시 58분 4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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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비올라 님, 웨딩드레스가 아주 잘 어울리세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애슈턴 님도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메레디스 저택에 도착한 다음날,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시녀의 화장을 받은 파비올라를 본 시종 라일은 흐뭇하게 웃었지만, 파비올라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그런지, 애슈턴 님과의 결혼에 불안해지셨나요? 저는 오랫동안 애슈턴 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애슈턴 님은 반드시 파비올라 님을 행복하게 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라일 님. 저는 ...... 애슈턴 님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잘 설명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



    슬픈 듯이 눈물을 그렁거리는 파비올라에게 라일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파비올라의 얼굴 주변에 하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파비올라는 놀라서 숨을 헐떡였다.



    (이건 혹시......)



    파비올라가 떨리는 손끝으로 반쯤 올려 묶은 머리카락의, 어깨에 드리워진 부분을 잡아 들어 올리자, 원래 자신의 머리 색깔인 군청색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파비올라는 유디리스의 마법이 지금 이 순간 풀렸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창백해진 파비올라를 보고 당황한 라일의 눈동자가, 파비올라의 뒤쪽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더욱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뜬다. 그곳에는 파비올라의 언니인 유디리스의 모습이 있었다.



    유디리스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아까 여동생인 파비올라도 말씀드렸지만, 그녀는 애슈턴 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원래는 제가 애슈턴 님께 시집갈 사람이었는데, 여동생이 시집가고 싶었던 나머지 마법으로 제 모습으로 바꿔버린 것 같네요. 저것이 여동생의 본래 모습이랍니다. 가족의 수치를 드러내는 것도 죄송하지만, 결혼식 전에 도착한 것이 다행이네요."

    "언니 ......"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파비올라에게, 유디리스는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야. 정중하게 애슈턴 님께 사과만 하고 얼른 돌아가."

    "무슨 소란이야?"



    유디리스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온 검은 턱시도 차림의 미남 애슈턴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어머, 애슈턴 님. ...... 여동생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

    "...... 파비올라!!!"



    애슈턴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파비올라에게 다가가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파비올라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어......?)



    파비올라는 당황한 표정의 유디리스를 시야의 가장자리로 포착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애슈턴의 품에 안겨 잠시 멈춰 있다가 조심스럽게 애슈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애슈턴 님 ......? 어떻게 제가 파비올라라는 것을 아셨나요?"



    애슈턴은 기쁜 듯이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네가 파비올라라는 걸 알았어. 네게 걸었던 그 가증스러운 마법이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어, 어떻게?"



    애슈턴도 파비올라의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본다.



    "내 가문도 모두 마법을 쓸 수 있거든. 나름대로 고도의 마법을....... 너에게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어....... 아무래도 얕보인 모양이지만."



    그렇게 말하고서,  애슈턴은 안색이 새파래진 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유디리스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 왜 저를 아내로 삼으시려고 하셨나요? 마법의 힘도 약하고, 장점도 없는 저를........"



    파비올라가 무심코 속마음을 털어놓자,  애슈턴은 빙그레 웃으며 파비올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는데..."

    "엥 ......?"



    예상치 못한 애슈턴의 말에, 파비올라는 다시 한번 눈앞에 펼쳐진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내어 마침내 그와 같은 색조에 도달한다.



    "혹시 제가 이 나라에 왔을 때. 강에서, 익사할 뻔했던 ......"



    숙소를 빠져나온 파비올라가 홀로 강변을 걷고 있을 때, 바위와 바위 사이에 끼어 허우적거리는 소년을 발견하고서 급히 강가로 끌어올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그녀였다.



    "맞아요, 저게 나야. 기억하고 있었구나. 차가워지기 직전의 내 몸을 네가 필사적으로 뭍으로 끌어올리고 체온이 돌아올 때까지 내 손을 잡아주었잖아?"



    등을 두드려 물을 토해내게 한 후, 제발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았던 일,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가 열리자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을 파비올라는 아득한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그 강의 상류에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어. 그리고 네 마법에 의해 구원받았지."

    "제 마법이요? 제게는 강한 마법의 힘은 없는데요 ......."



    애슈턴은 파비올라의 말에 미안한 듯 눈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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