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6(1)2023-09-03 20:41:41그때부터 8년이 흘렀다. 이 숲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인 나무들,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이 분위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마왕은 물리쳤지만 여전히 마족은 많아서, 숲을 빠져나가는 길은 인적이 끊긴 채 황량하기만 하다. 나는 희미한 기억을 의지해 아레스의 시체를 놓아둔 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땅을 파서 묻을 체력도 기력도 없었고, 시신을 감추기 위해 망토를 씌웠을 뿐이니, 설령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아레스? 이런 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빨리 왕도로 돌아가서 마왕 토벌 보고를 해야지. 아직 잔당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들었으니, 아직 우리의 힘이 더 필요해." 길에서 벗..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5(2)2023-09-03 20:14:38주문으로만 알고 있는 불의 마법을 외치지만,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레스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상처가 썩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서, 상처를 덮고 있는 천을 벗겨내어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불의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아레스의 배에 난 상처를 태워 상처를 봉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짐 속에 부싯돌을 넣지 않았다. 아레스가 불의 마법을 쓸 수 있으니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불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싫든 좋든 깨닫게 된다. 별빛조차 닿지 않는 숲 속의 어둠은 심연이고, 근원적인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아레스는 고열을 내뿜고 있지만, 그것은 머리와 상처 주변 등 몸의 일부분일 뿐, 손끝은 생기가 느껴지지..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5(1)2023-09-03 20:13:28결과적으로 아레스는 어떻게든 살았다. 마족이 바로 죽어버린 덕분에 목의 상처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아서, 회복 주문으로 상처가 봉합되었다. 하지만 상처가 막혔다고 해서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아레스의 왼쪽 목 주변 일대가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끔찍한 상태였다. 게다가 아레스는 목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모든 마력을 다 써버렸고, 마력 고갈과 상처의 통증으로 혼자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복부에 입은 상처는 얕은 상처였지만, 상처가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을 감아 응급처치를 하고 있지만 천 표면에 피가 묻어있다. 초급 회복 마법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정도의 상처지만, 지금의 아레스에게는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다. (이대로는 아레스가 위험해) 목의 손상도 그렇고, 배의 상처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4(2)2023-09-03 19:57:39그것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같은 또래의 조카를 따라잡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항상 잘 되지 않았다. "나도 잘 못하는 일은 ......" 그렇게 말하려던 아레스는 멈칫했다. 나도 무슨 일인지 짐작하고는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너무 조용하다. 숲 속 동물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 눈치챘군. 역시 용사라는 말을 들을 만하구나." 슬그머니, 앞쪽의 큰 나무 그늘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사람 ...... 이지만 보라색 피부와 탄탄한 육체, 사람보다 두 배는 더 길어 보이는 귀, 그리고 새빨간 눈동자. "도망쳐! 마족이다!" 아레스가 외쳤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뒤쪽으로 달려갔다. 마족. 마왕의 권속인 그들은 사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힘도 마력도 사람보..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4(1)2023-09-03 19:55:46"잭이 함께 와줘서 살았어." 마을을 떠나 한참을 걸은 후 아레스가 불쑥 말했다. "하지만 정말 나로 충분해? 제대로 된 어른이 더 좋았잖아?"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14살 소년 둘이서 왕도로 향하는 것은 좀 무모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레스를 왕도로 보내면서, 마을에서 누군가 한 명씩 동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독신인 젊은 남자 마을 사람들이 몇 명 후보에 올랐지만, 아레스가 선택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어른이 오면 힘들어질 뿐이야. 게다가 나를 용사라고 칭송하며 마물과 싸우게 하려는 주제에, 정작 자신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뿐이잖아." 아레스가 평소에는 말하지 않던 마을 ..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4(3)2023-09-03 19:21:36"...... 그리고 그 아이도 죽었어요. 세상을 구했으니 기뻐해야 할 텐데, 저나 남편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어요. 왜 그 아이가 죽어야만 했을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뛰어난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그 아이였을까, ......" 셰라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시선을 돌려 방을 둘러보니, 검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하지만 마모가 심하다. ㅡㅡ저건? "그 아이의 검입니다. 검만 돌아왔어요. 저 검은 이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검이에요.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그 아이와 함께 싸웠어요. 분명 좋은 물건이었을 거예요. 그 검만이라도 돌아왔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입니다. 유품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ㅡㅡ용사의 동료가 그 검을 가져왔다? "아레스..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4(2)2023-09-03 19:20:34ㅡㅡ아레스는 어떤 아이였습니까? "의젓한 아이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리해서,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였어요.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도와줬고요. 정말 ...... 좋은 아이였어요." 셰라는 그를 추억하는 듯 천천히 말했다. ㅡㅡ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는 평판이 있었다만? "뭐든지 할 수 있다기보다는,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뛰어난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검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고, 작은 신의 기적도 일으키고, 마법도 쓸 줄 알았지만,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죠. 이 작은 마을이니까 눈에 띄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갔다면 '좀 별난 것을 할 줄 아는 우수한 아이' 정도로만 평가받았을 것 같아요." ㅡㅡ혹시, 당신은 이 마을 출신이 아닙니까? "네, ..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4(1)2023-09-03 19:18:58그 마을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골에 흔히 있는 마을 중 하나였다. 왕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말을 달려도 열흘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밭을 일구며 목가적으로 살고 있다. 탈리스 마을. 용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아레스를 아느냐고? 물론이지! 나는 그의 친구였어!" 아레스가 살아 있었다면 비슷할 나이의 사람을 찾아 아레스에 대해 물었다. "아레스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 힘도 있었고, 발도 빨랐고, 공부도 잘했어. 얼굴도 괜찮아서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지." 질문에 익숙해졌는지, 대답하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그 남자는 아레스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대단했지. 검을 들게 하면 순식간에 어른들보다 더 잘하게 되고, 교회..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3(2)2023-09-02 23:52:25──── 솔론이 향한 곳은 빈 교실이었다. "그럼 불의 주문을 시전해 봐." 시키는 대로 책에 적혀 있는 불의 주문을 시전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흠, 주문은 틀린 게 않았는데. 하지만 주문에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불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냐?" "그래, 책에 적혀있던 대로 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했어." "어떤 불인데?" "벽난로의 불." "이미지가 약해. 좀 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상상해 봐." 이런 식으로, 솔론은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며 책의 내용을 더 자세히 알려주었다. 성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지만, 솔론은 늘 진지했다. "재미있네, 꽤나 재미있어. 어쩌면 마법의 기본 원리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마법을 쓸만한 기미조차 보이지 않잖아." "..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3(1)2023-09-02 23:49:25스스로에게 부과한 검술 수련과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마리아의 시련에도 점차 익숙해진 나는,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바로 공격 마법의 습득이다. 고민 끝에 마법사반 선생님에게 물어봤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뭐, 이건 예상했던 일이다. 나는 이미 공격 마법을 가르쳐 줄 것 같은 학생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솔론 버클레이. 신동이라 불리는 미래의 대현자. 학교에 입학할 당시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교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인지, 제대로 수업에 나오지 않는 문제아이기도 하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학교에서의 그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만 하는 등 한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그날, 바로 말을 걸었다. "솔론 버클레이,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줘...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3(2)2023-09-02 23:12:51ㅡㅡ그래서 아레스와 파티를 짤 마음이 생겼나? "그때의 나는 오만했다. 파티를 결성하지 않아도 혼자서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자만했지. '레온이나 마리아와 함께라면 파티를 맺어도 괜찮다' 정도로 생각했다. 아마 레온이나 마리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둘은 성인군자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근본은 나처럼 오만하고 남을 무시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로즐로프 대삼림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 녀석과 함께 파티를 짠 거지. 그 녀석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신의 측근 같은 녀석들과 파티를 맺다가 일찌감치 뒈졌을 거야. 우리 각자는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녀석이 없었다면 뭉칠 수 없었다." ㅡㅡ아레스가 있었기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 글쎄. 다만 한 가지..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3(1)2023-09-02 23:11:44"그 녀석은 용사가 아니야. 그냥 바보다." 대현자라고 불리는 남자는 가증스럽게 말했다. 보라색 마술사 가운을 입은 그 남자는, 마른 체격에 표정이 험상궂어서 신경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투도 거칠고, 용무가 없으면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 않은 사람, 그것이 바로 솔론 버클레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팔름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사들보다 마법에 능숙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마법의 창조와 마법적 발견을 여러 차례 이뤄내어, 세상에 기여한 바가 크다. "애초에 용사란 뭐지? 힘에 뛰어난 자? 강력한 마력을 지닌 자? ㅡㅡ마왕을 쓰러뜨리는 사람이 아닐까? "마왕을 쓰러뜨리면 용사라고? 용사라서 마왕을 쓰러뜨리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2(2)2023-09-02 22:35:12혹시 배가 고파서 그냥 심부름을 보낸 거?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서 빵을 빼앗아 갔다. ──── 그리고 또다시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마리아가 불러서 강가로 나왔다. "자비로운 제가 당신을 위해 시련을 준비해 왔답니다." 이쯤에서, 나는 나쁜 예감만 들었다. "아니, 그, 그냥 평범한 방법으로 가르쳐 줘도 되는데?" "무슨 소리를, 당신은 어렸을 때 신부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잖아요? 보통의 방법으로 될 리가 없잖아요?" 마리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련한 어린양을 위해 제가 일부러 시련을 생각한 거잖아요? 설마 싫다고 말씀하실 셈인가요?" "그렇게 말하니, 싫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 ..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단장2(1)2023-09-02 22:33:13학교에서는 전사, 승려, 마법사 등 원하는 직업에 따라 반이 나뉘는데, 자기가 선택한 전문 분야만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완전히 나의 오산이었다. '용사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점에서 전사반에서도 어느 정도는 공격 마법이나 회복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근접전투와 마법을 동시에 가르치는 것의 비효율성과, 무엇보다도 마법은 타고난 소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히 분업화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용사는 공격 마법과 회복 마법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나 자신도 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회복 마법을 가르쳐 줄래?" 말을 건넨 사람은, 마리아 로렌이라는 승려반의 유명인이었다. 길고 아름다운 흑발에 투명한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 [ 판타지/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2(2)2023-09-02 21:53:05아무런 성과가 없었어도, 회복 마법의 습득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용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럴까요? 처음엔 저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아아, 역시 재능이 없는 인간에게는 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2년이 지나도 전혀 습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회복 마법을 계속 연습하고 있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몇 달 동안 성과가 없었다면 일찍이 포기했겠지요. 재능이나 신앙심 같은 기반이 있다면 계속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 어느 것도 없으니까요." ㅡㅡ어째서 아레스가 회복마법을 연습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나? "옛 전설의 용사가 회복 마법을 쓸 수 있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요. 그리고 10년 이상 전부터 지금까지 파티의 역할 분담이 명확해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