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단장6(1)
    2023년 09월 03일 20시 41분 4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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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부터 8년이 흘렀다.

     이 숲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인 나무들,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이 분위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마왕은 물리쳤지만 여전히 마족은 많아서, 숲을 빠져나가는 길은 인적이 끊긴 채 황량하기만 하다.



     나는 희미한 기억을 의지해 아레스의 시체를 놓아둔 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땅을 파서 묻을 체력도 기력도 없었고, 시신을 감추기 위해 망토를 씌웠을 뿐이니, 설령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아레스? 이런 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빨리 왕도로 돌아가서 마왕 토벌 보고를 해야지. 아직 잔당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들었으니, 아직 우리의 힘이 더 필요해."



     길에서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간 나에게 레온이 말을 건넸다.

     그는 서둘러 돌아가고 있다. 차기 백작가의 당주로서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왕궁에 가서 자랑스럽게 보고하고 싶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마리아도 솔론도, 돌아가면 지위를 약속받았으니 말이다.



    "레온, 마리아, 솔론. 여기서 작별이다. 용사 아레스는 죽었다고 전해줘."



     내 말에, 3명은 눈을 부릅떴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아레스. 드디어 마왕을 물리쳤다고? 함께 돌아가자! 그래야 네가 공주와 결혼해서 왕이 되지! 네가 왕이 된다면 나는 너를 섬겨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레온은 말을 끊고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어갔다.



    "혹시 왕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용사라 해도 평민 출신이 왕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곁에 있으니까 괜찮아! 백작가가 전력을 다해 지원해 줄게. 누구도 불평하지 못하게 할 거야."



     처음 만났을 때 레온은 나를 평민이라느니 태생이 천하다느니 하며 매도하며, "용사가 되어 차기 왕이 될 사람은 나다!" '라고 호언장담하던 녀석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그는 많이 변했다. 아니,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레온은 언제나 사심 없이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고결한 귀족이자 기사였다.



    "그래요, 아레스. 왕이 되는 것도 용사로서의 시련이랍니다. 여기서 포기하는 건 당신답지 않아요."



     마리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 교회를 장악할 테니, 함께 권력을 잡아요."



     ...... 말하는 내용은 부드럽지 않았다.



    "아레스, 왜 그래? 이유를 말해."



     솔론은 애써 침착하게 질문했다.



    "미안, 나는 아레스가 아니야. 사실 나는 용사가 아니었어."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아레스가 아니라면 너는 누군데?"



     레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잭, 내 진짜 이름은 잭이라고 해. 지금까지 속여왔어. 미안해."



     레온은 3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잭? 왜 이름을 속였지?"



     솔론이 질문을 이어갔다.



    "아레스가 진짜 용사의 이름이니까."



     그후로, 나는 과거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고향 마을에 예언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아레스의 동행으로서 여행을 떠났던 일, 도중에 마족의 습격을 받아 아레스가 상처를 입었고 내가 편하게 해 주었던 일. 그리고 혼자서 왕도로 향하여, 학교에 입학한 일......





    "14살에 마족을 쓰러뜨렸다고!? 그런 남자가 있었다니 ......"



     레온은 아레스의 용맹함에 감탄했다.

     그래, 아레스는 대단해, 14살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 살아 있었다면, 더 빨리 마왕을 쓰러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레스의 이야기는 알겠어. 하지만 왜 네가 그 이름을 속일 필요가 있지?"



     솔론이 근처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아서였을까.



    "내가 용사를 죽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내가 용사를 이어받아야만 했어. 그 책임이 있었어."



     용사를 죽인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레스가 죽은 건 마족의 잘못이에요. 당신 때문이 아니잖아요?"



     마리아가 말했다.



    "...... 아니, 아레스가 죽은 것은 내 잘못이야. 내 손에는 아레스를 칼로 찔렀을 때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거든. 그리고 나는 잭으로서 마왕을 쓰러뜨린 게 아니야. 아레스로서 마왕을 쓰러뜨린 거야. 만약 내가 잭으로 남아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어."



    "이미 아레스는 죽었는데도?"



     솔론은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팔을 툭툭치고 있다. 짜증이 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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