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베르타 마을 8
    2024년 02월 26일 01시 18분 3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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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사벨라의 마음도 뼈저리게 이해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결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원래 그녀의 생명은 이미 다한 지 오래다. 저주의 힘으로 '살아있을 뿐'이다. 늙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저주가 사라지는 순간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힘은 사라질 것이다.



    (...... 더 이상 구할 방도가 없어)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구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목숨을 끊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로서는 적어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주는 것밖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흑......"



     이사벨라의 두 눈에서 다시 한번 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또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울지 않고 아우로라 님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서 필사적으로 참았다.



    "친절한 성녀님,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그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 기쁘네요."



     아우로라 님이 이사벨라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자, 이사벨라는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손을 꼭 쥐고 미소를 지으며 아우로라 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제 해주를 시작할게요."

    "네."



     붉은 동굴과는 달리,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저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내 마력량이 그때보다 늘어난 데다, 아우로라 님의 힘으로 저주가 원래보다 훨씬 약해졌기 때문이다.



     검게 변한 손을 잡자, 저주의 영향으로 자신의 손이 닿은 부분의 피부와 살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치유 마법을 사용하면 통증은 느껴지지만 내 손은 치유되어 간다.



     원래는 저주를 풀기 위해 성수나 성유물을 매개로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성녀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아우로라 님 자신이 무엇보다도 강력한 매개체가 되어 주고 있다.



    "...... 티아나 님의 손은 정말 따뜻하네요."



     그 말에 또다시 시야가 흐려진다. 그러자, 따스한 하얀빛이 내 손을 감싸 안았다.



     이사벨라가 치유 마법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보니,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이 없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티아나 님은 저주를 푸는 데 집중해 주세요."

    "...... 감사해요."



     다시금 아우로라 님을 향해 마력을 흘려보냈다. 조금이라도 고통과 아픔을 느끼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그렇게 해주를 계속하여 거의 다 끝낼 즈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아우로라 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티아나 님은 내세라는 것을 믿으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놀랐지만, 나는 곧바로 "네, 믿어요."라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이번에는 아우로라 님이 놀란 것 같았다.



     제국에는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으며,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거죠?"

    "저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아우로라 님은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거 든든하네요."라며 웃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그녀는 내 말을 믿어준 것 같다.



    "이런 저라도 다시 한 번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을까요?"

    "네, 분명 그럴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요."

    "...... 감사합니다, 성녀님.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당신이어서 다행이네요."



     기쁘게 웃는 아우로라 님의 몸이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저주의 기운이 사라지는 가운데, 그녀는 마지막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빛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짙은 독기 또한 옅어졌다.



    (...... 이제 저주도 풀렸을 거야)



     빛이 사라진 후,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 위에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과 팔찌, 그리고 저주를 발산하지 않는 작은 상자만 남았다.



     팔찌를 손에 들어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15년 동안 홀로 이 땅을 지켜온 그녀의 외로움도, 고통도, 역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우로라 님은 마지막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훌륭한 성녀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나 같으면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분명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윽."



     다시 한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무리였다. 슬프고 괴롭고, 자신의 무력함이 억울해서 큰 소리로 울고 싶었다.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실비아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크고 따뜻한 손바닥이 살며시 감싸 안았다.



    "티아나."



     고개를 들자, 내 앞에 무릎을 꿇은 펠릭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의 빛깔이 떠올라 있다.



    "힘든 역할을 맡겨서 미안해."

    "아니, 괜찮아. 나야말로 미안해."



     그가 죄책감을 느끼나 싶어서,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하자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도 펠릭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녀는 국가적으로 장례를 치를 생각이야."

    "고마워. 나도 도울게."



     천천히 일어나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가볍게 털어낸다.



    "이제 마을에 남아있는 독기를 정화하면 루피노가 쳐놓은 결계를 풀어도 문제없을 거야."



     붉은 동굴과는 달리, 근처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기 때문에 우리 손으로 어느 정도 정화를 해야 할 것이다.



    (...... 그리고 마력도 절반 정도 회복되었어).



     역시 저주를 풀면서 그동안 잃었던 마력도 회복되고 있다.



     이대로 남은 두 곳의 저주를 풀면 대성녀였을 때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마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무작정 기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계속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어)



     나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우선은 정화를 하고, 아우로라 님과 이 마을 사람들을 애도하고 싶다.



    "...... 좋아."



     두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일어선 다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사벨라를 바라본 나는 숨을 멈췄다.



     이사벨라의 커다란 눈동자에서 다시 조용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님? 어디 아프세요?"



     다급히 다가가자, 이사벨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죄송, 해요......"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역시 이사벨라는 눈물을 흘리며 부정했다.



     나는 대뜸 아우로라 님의 정화를 내가 맡은 것에 대한 눈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죄송, 해요...... 엘세, 님......"

    "──어."



     불현듯 그렇게 불려서,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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