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베르타 마을 7
    2024년 02월 26일 00시 32분 0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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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의 피는 특별하여, 성수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성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붉은 동굴에서는 마력이 부족한 나도 자신의 피를 사용하여 저주를 풀었던 것이다.



    "몸에 넣음과 동시에 저 자신은 목숨을 잃더라도, 피의 힘으로 잠시 동안은 저주를 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몸에 흐르는 성녀의 피는 상상 이상으로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 저주는 저의 피와 몸에 섞이기 시작했고, 목숨을 잃지 않았어요"

    "그런 ......!"



     이사벨라의 비명과 비슷한 목소리가 영묘에 울려 퍼졌다.



    (저주가 성녀의 피와 섞여도 살아있을 수 있다니, 그게 가능해......!?)



     하지만 전례가 없을 뿐, 실제로 아우로라 님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무사히 저주는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지만,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어왔답니다."



     난처한 듯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 외의 다른 두 사람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붉은 동굴에서 저주를 풀 때, 나는 저주가 피와 섞이면서 생긴 고통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시간으로 따지면 수십 분 정도였다.



     하지만 아우로라 님은 15년이라는 시간을 고통받았음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만약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몸이 저주로 가득 차서 다시 만들어졌는지 통증도 고통도 사라졌어요. 그리고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게 되었고요."



     하지만 몸은 거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고 앉아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며, 그녀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팔찌를 통해 몸에 흐르는 마력이 팔찌를 통해 지금도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바깥의 상황은 모르지만 그가 쳐놓은 결계는 여전히 남아 있던 것이었어요. 제가 죽으면 저주가 다시 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저주가 풀리는 날을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우로라 님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찾아올 거라고 계속 믿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여러분이었고요."

    "............!"



     즉,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계속 혼자서 이 땅을 지켜온 것이다.



     그리고 마을을 덮고 있는 결계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납득이 갔다.



     베르타 마을이 붉은 동굴보다 마물이 적다는 것, 이 영묘 안에 마물이 없다는 것. 그것은 성녀인 그녀가 작은 상자를 넣어서 저주를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을 거야)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잃은 채 홀로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는 채로 저주가 풀릴 날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외로움과 고통, 슬픔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계속,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그녀가 안도하는 표정을 떠올리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흑."



     나뿐만이 아니라 이사벨라 역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고, 펠릭스의 표정도 슬픔에 젖어 있었다.



     펠릭스도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며, 이곳에 아직 사람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었나요?"

     눈물을 흘리며 묻는 이사벨라에게, 아우로라 님은 부드러운 밤색 눈을 가늘게 하며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그를 만나러 갈 때, 가슴을 펴며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녀는 "하찮은 이유죠?"라며 옅게 웃었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도 인간적이고 사랑스럽고 정직한 이유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우로라 님은 성녀라는 사실을 숨긴 자신을 탓하며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그녀만큼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눈앞에서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하얀 긴 원피스 소매에 가려져서 미처 몰랐지만, 저주의 영향인지 손이 까맣게 그을려서 체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말을 주고받을 때는 아우로라 님은 사랑스러운 평범한 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시 그녀의 몸은 변해버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랫동안 제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비로서, 성녀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뒤를 이어 펠릭스도 옆으로 다가와 정중하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아우로라 님의 눈에서도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런 평범한 말밖에 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뭔가 원하는 것은 있나?"

    "...... 무언가를 바랄 입장은 아니지만, 부디 저주가 풀린 후에 이 마을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 물론이지.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펠릭스의 말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는, 정말 착하고 마음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소중하여, 다시금 시야가 흐려진다.



    "티아나."

    "그래."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는 펠릭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일행이 있는 이상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마음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저주를 풀어도 될까요?"

    "네, 부탁해요."



     아우로라 님은 망설임 없이 수락해 주셨다.



    "하지만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주의 근원은 아우로라 님 안에 있는 거잖아요?"

    "그녀를 정화할 수밖에 없어요."



     이사벨라의 두 눈이 크게 뜨인다.



     몸에 저주가 완전히 퍼져 있는 이상, 정화된 아우로라 님이 어떻게 될지 이사벨라 역시 깨달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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