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따스한 추억 3
    2024년 09월 29일 03시 25분 2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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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에 한 번, 파론 신전에서는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행사인 안헬리카의 축제가 있다.



     그때 친분이 있는 나라의 성녀를 초대하는 일은 있었지만,  쫓아내고서 죽이려 했던 나를 초대하다니 속셈이 없을 리가 없다.



    [티아나는 어떻게 하고 싶어?]

    [갈 거야. 설령 함정이라 해도 당당하게 신전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걸]

    [맞아,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펠릭스도 그것을 이해한 후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논의를 거듭한 결과, 호위대를 데리고 가되 우리 둘은 파론 왕국으로 향하고, 루피노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라를 지키는 역할로서 제국에 남아 있기로 했다.



    [어째서요?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이사벨라에게도 모든 것을 말했더니 그녀도 함께 파론 신전으로 가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이사벨라에게 말했으며, 그녀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애초부터 외국의 왕녀인 이사벨라가 여기까지 해준 것 자체가 기적인걸)



     가녀린 이사벨라를 안아주고 부드러운 금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이번엔 내가 데랄트 왕국에 갈 테니 기다려줘.”

    “...... 네.”

    “좋아해, 이사벨라.”

    “제, 제가 더 좋아해요.”



     펠릭스와 같은 말을 하는 그녀를 보니, 역시 두 사람은 닮았다는 생각에 미소가 터져 나온다.



     눈물을 흘리는 이사벨라의 등을 쓸어주면서, 나도 그녀가 사랑스럽고 헤어짐이 아쉬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펠릭스와 루피노와 함께 이사벨라를 배웅하러 왔다.



    “펠릭스 님, 너무 많은 선물을 주셨어요. 덕분에 마차가 터질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추후에 다시 사절단과 감사품을 데랄트 왕국에 보낼 생각이다. 그것들을 합쳐도 부족할 정도로 그대는 우리를 구해 주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네, 감사합니다.”



     펠릭스는 이사벨라에 대한 큰 고마움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펠릭스는 이전에 이사벨라의 성녀로서의 활동은 물론, 그녀가 반대를 무릅쓰고 이 나라에 온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서 이사벨라는 루피노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루피노 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야말로 고맙죠. 당신의 명랑함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정말이요? 사실은 제 첫사랑이 루피노 님이었어요.”

    “오, 그랬었군요.”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와 펠릭스의 '엥'하는 소리가 겹쳤다. 한편, 루피노만 평소처럼 웃으며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고백받는 일에 익숙한, 여유 있는 어른의 대응이었다.



    “후후, 부끄럽네요.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예, 당신도요.”



     그렇게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눈 후, 이사벨라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금발머리가 살짝 찬바람에 흔들렸다. 한동안 이사벨라는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방금 전의 미소가 사라지고,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저, 어엿한 성녀가 되었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모습에 17년 전의 모습이 겹친다.



     제국에 머물던 이사벨라가 데랄트 왕국으로 돌아갈 때도 그녀는 '어엿한 성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저는 어엿한 성녀가 될 거예요! 그러니 꼭 지켜봐 주세요]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그때의 선언대로,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한 성녀가 되었다. 나는 뺨을 타고 흐르는 이사벨라의 눈물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닦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응, 물론이지. 당신은 최고의 성녀야.”

    “............!”



     이사벨라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자 루피노가 손수건을 건넸다.



     이사벨라가 눈물을 닦는 동안, 나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리엘로부터 무언가를 받아 울음을 그친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

    “늦어서 미안해.”



     내 손에는 이사벨라를 위해 준비한 마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제가 어른이 되어 어엿한 성녀가 되면 엘세 님한테 마보석을 선물로 받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최고의 보석을 마련해 줄게]



     전생에 이루지 못한 약속을 현생에서 이루겠다는 생각에 소중히 시간을 들여 고른 것이다.



    “...... 아아 ...... 흑흑......”



     떨리는 손으로 마보석을 받자마자, 두 손으로 보물처럼 껴안은 이사벨라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몇 번이고 '고마워요', '기뻐요'를 반복하는 그녀를 껴안고 있자, 배웅할 때까지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도 울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국도 여러분도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준 이사벨라가 탄 마차를, 우리 세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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