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할지 정하지 못한 채, 돌아서서 눈을 마주치는 릴리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숨을 내뱉고 보자 적당한 말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 잘 지내야 한다? 힘들어지면 언제든 여기로 돌아와도 되니까."
후회, 속죄, 사랑, 동정, 사명감. 이기를 움직이게 한 그것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래도 진심을 담아 릴리아에게 말했다.
이를 들은 릴리아는, 어머니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와 같은 따스한 말에서 그리움을 느꼈다.
"...... 감사합니다, 아줌마."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서로 웃으며, 릴리아는 고향을 떠났다.
슬픈 상황을 극복했다고 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진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고, 매우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서 소중한 추억과 확실한 연결고리를 보았다.
"............"
"하아 ......"
마을 외곽의 숲에서 기다리던 미스트의 위에서 배를 드러내며 자고 있는 렐가를 보고 한숨을 쉰다. 금강벽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도, 도착한 곳에서도 자주 보았던 익숙한 모습이다.
아무리 무언가를 씌워줘도, 옷을 입혀도, 잠을 자다가도 재주 좋게 발로 걷어차고는 스스로 배를 내미는데, 어째서인지 한 번 툭 치면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다.
"...... 렐가, 돌아갈 테니 일어나."
"싫어......네가 대신해......"
"바보 같은 소리 마. 일어나는 건 렐가만 할 수 있어. 얼른 일어나."
그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두 사람. 그것이 없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었던 현재. 헤어지고 만나서, 지금이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도 아직 진행 중이다. 각자의 이야기는 아직 계속된다.
.........
......
...
돌아온 릴리아는 기분을 전환했다. 수녀복으로 갈아입고서 왕국의 승리를 기념하는 파티로 향했다.
행사장에 도착해 안내를 받는 도중, 앞을 보며 쭈그려 앉은 흑기사가 릴리아를 걱정한다.
"내가 상대할 테니 릴리아는 쉬고 있어도 괜찮은데? 잘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니 피곤하지 않겠어?"
"그럴 수는 없습니다. 흑기사교의 홍보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래?"
오히려 차분한 자신과는 달리, 쉬게 하고 싶은 것은 그쪽이라고 눈빛으로 호소했지만 전달된 것 같지 않았다.
"일찍 끝낼까. 세레스도 넌지시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뭔가 또 이상한 부탁을 할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고 ......"
"조심할게요."
연회장인 공작가 소유의 파티홀에 흑기사가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은 단숨에 그에게로 쏠렸다.
너도나도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눈빛을 바꾸고 있다. 특히 여자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동물 그 자체다.
하지만 우선은 방금 전까지 화제를 모았던 왕족에게로 향해야 할 것 같다. 흑기사는 소문의 검성(劍聖)을 데리고 레드 라이트 왕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왕국의 위기를 모면한 것과, 오랜 악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대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이트 왕국을 대표하여, 그리고 백성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네."
굳게 악수하는 왕과 흑기사를 향해 마음속으로 박수갈채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환청으로 들었을 것이다.
"이 용감한 검사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보답은 아끼지 않으마. 또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하자."
"감사합니다."
릴리아에게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입장을 존중한다면 흑기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에 있던 나도 감사를 표하마. 용이라는 위급한 상황에 잘도 달려와 주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이야.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 그런데 방해가 안 된다면, 어떻게 용을 쓰러뜨렸는지 물어봐도 될까? 우리도 그렇지만 백성들이 알고 싶어 하거든. 결론이 애매모호하면 지어낸 이야기라고 놀림받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