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8. 각오만은 해두자......(2)
    2024년 05월 06일 16시 39분 0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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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둘이서 친하게 놀고 있는 걸까?
     아니, 뭐. 별 상관없어. 어색한 것보다는 사이가 좋은 게 더 좋으니까.
     근데 뭐랄까...... 간병도 겸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나만 소외당하는 느낌이 ......
     아니, 나도 끼고 싶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음............ 뭐, 끼고 싶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 정말로 그 두 사람, 서로 찰싹 붙어있거나 하진 않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가 엄청나게 진전돼서 '사실은 이미 사귀고 있어요' 같은 보고를 받거나 하진 않겠지?

     아니 아니 아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아니, 하지만 나랑 사귀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어.......
     왜냐면 나는 하나만 바라보지 않고, 필리아와 시이나 둘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런 바람둥이 쓰레기 같은 녀석이니까.
     나와 그러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 끌리는 게 더 그럴듯하다.

     필리아는 항상 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다니고, 싫은 내색 없이 내 주변을 돌봐주는 헌신성이 있고,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나 열심히 할 것 같은 노력파다.
     내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아무런 근거 없이도 믿어줄 만큼 솔직하고 순진무구한 사람. 과거의 힘든 경험을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어 하는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
     필리아가 옆에서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매일이 선명하게 색이 바뀐다.

     시이나는 분명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아왔을 텐데, 그 고통과 아픔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평생을 혼자 살아왔다. 하지만 그 강인함은 어쩌면 약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힘든 과거 때문이겠지만, 시이나의 마음은 조금 병들어 있는 듯하다. '블러디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필요 이상으로 피를 튀기며 마물을 학살하는 모습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이나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 그리고 지금은 필리아도 그 대상일 것이다.
     그러한 서툰 부분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으으음....... ...... 생각하면 할수록, 역시 둘이 맺어지는 게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 .......
     오히려 나 필요 없을지도?

    "...... 각오만은 해두자 ......"

     언제 사귀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아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각오만은 .......
     가, 각오...... 각오, 만은.......

    "............ 조, 조금만 보러 갈까 ......"

     각오하는 것과 실제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별개다.
     각오가 헛수고가 된다면 제일이지만....... 그보다 헛수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몰래 필리아와 시이나의 상태를 보러 가기 위해, 나는 슬그머니 방문 앞까지 걸어갔다.
     지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맞는 말이지만 ...... 그거다. 예행연습 같은 느낌이다.
     딱히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이라고?

     문고리에 손을 대고서, 그것을 비틀었다.
     그 직후였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ㅡㅡㅡㅡ"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들려온 작은 신음소리 같은 목소리.
     필리아도 아니고, 시이나도 아니고, 물론 내 목소리도 아니다.
     애초에 이 방에는 나와 한 명밖에 없으니 대답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내가 예상한 대로 광경이 있었다.
     내 침대에 누워있던 그 소녀가 눈꺼풀을 살짝 뜨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일어났니?"

     나는 복도로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침대 쪽으로 돌아와서 말을 건넸다.
     처음에 소녀는 그저 소리에 반응한 것뿐이라는 듯 초점 없는 눈빛을 내게로 향했지만, 조금씩 이성의 빛이 비쳤다.
     그리고 몇 초 후, 그녀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

     벽을 등지고, 이불을 방패 삼아서 보기에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누구라는 질문은 내가 할 말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경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할로야. 할로 할로리 할로할로린네. 마법사야."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할로, 할로리, 할로할로 ...... 뭐야, 그 이상한 이름. 처음 들어봤어."
    "뭐, 그렇긴 해. 이상한 이름이라는 건 알고 있어. 뭐랄까, 이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님이 지어준 이름인데......"

     ㅡㅡ이름? 아~ 할로면 되지 않겠어? 부르기 쉬우니까.
     ㅡㅡ불만이야? 그럼 할로, 할로리, 할로할로린네로 하면 되겠네.
     ㅡㅡ중간 이름도 성도 있으니 불평 말아. 화려해서 좋잖아.

     돌이켜보면, 정말 대충 지었다 .......

    "......뭐 거의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그래도 소중한 이름이야."
    "............ 미안, 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응.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상한 이름인 건 사실인걸."
    "......"

     이불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조금 약하게 할 정도로 마음을 푸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요컨대,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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