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7. 내가 입어도 안 어울린다(2)
    2024년 05월 05일 23시 18분 1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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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요, 스승님."
    "...... 음? 아........"

     이름을 불렀을 때 문득 고개를 들자, 미안한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필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책 읽기에 너무 집중하느라 필리아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죄송해요. 모처럼의 즐거움에 물을 끼얹어 버렸네요 ......"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필리아는 항상 나를 위해 와주고 있으니까."
    "...... 에헤헤."
    "좋은 아침, 필리아."
    "네, 안녕하세요!"

     소리 높여 힘차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 필리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책갈피를 끼워서 책을 덮고 일어선다.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고 평소처럼 아침을 만들러 가려는데, 필리아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 스승님. 갈아입으실 옷은 ......"
    "음, 아아.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거든. 보시다시피 이미 옷을 갈아입었어. 항상 필리아를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 아뇨,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 그렇군요. 오늘은 이미 ...... 옷 갈아입는 걸 안 도와줘도 되는 건가요 ......"

     왠지 모르게 허탈한 표정을 짓는 필리아.
     혹시 도와주고 싶었던 걸까 .......

     하지만 몇 번이나 말했듯이, 솔직히 말해 매일 아침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몸을 밀착당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가까이 있는 필리아의 냄새가 계속 코를 자극하고, 풍만한 가슴도 바로 눈앞에 있고, 가끔씩 몸 어딘가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런데도 필리아는 내가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천진난만하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배덕감 같은 것이 항상 가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물론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일이 매일 반복되다 보면 불만이 쌓인다.
     해소하고 싶어도 항상 근처에 누군가가 있거나 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걸 할 시간이 전혀 없다.
     음마의 액체 약을 타려고 했을 때처럼, 폭주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리고 ...... 이건 사소한 거지만, 필리아가 고르는 내 옷은 항상 묘하게 귀여운 디자인이다.
     예전에 필리아의 옷을 주문 제작할 때 함께 만들었던 의상인데, 이게 또 쓸데없이 하늘하늘해서 ...... 그런 옷은 좀 안 좋아한다.

     애초에 내가 입어도 안 어울린다.
     시이나라면 내 옷도 사이즈가 맞을 것 같으니, 다음에 필리아의 허락을 받고 시이나에게 선물해 볼까.
     분명 잘 어울릴 거야.

    "...... 응?"
    "스승님? 무슨 일이세요?"

     필리아와 함께 방을 나와서 시이나를 깨우고, 지금은 아침밥을 만드는 중이다.
     불현듯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위화감에 요리하던 손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

    "...... 방범 기능의 마법이 발동한 건가?"

     방범 기능의 마법은 모두 나와 미약한 경로로 연결되도록 설정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느낀 것은 그중 하나가 끊어졌기 때문에 느껴지는 위화감인 것 같다.

    "오폭일까요?"
    "이렇게 심한 뇌우이니, 오폭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

     애초에 나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제 모든 방범 마법을 정비해 놓았다.
     일단 오폭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 뭔가 걸리는 게 있다.

    "미안, 필리아. 나는 잠깐 밖을 좀 살펴볼게."
    "괜찮으세요? 이런 날씨인데 ......"
    "그래. 물과 바람을 막아주는 마법이 있어. 혹시라도 큰일 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네. 아침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고마워, 필리아"

     부엌을 나와 현관으로 향한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필리아에게 말했던 물과 바람을 막아주는 마법을 반경 1미터 정도 범위에 펼치고서 현관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엄청난 폭우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다.
     하늘은 어둡고 마치 한밤중을 방불케 한다. 어린아이도 쉽게 날려버릴 것 같은 폭풍우,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는 바깥출입의 위험성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경고하고 있다.

     그런 뇌우 속으로 발을 내디뎌, 길이 끊긴 방범용 마법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저택 밖으로. 거기서부터 담장을 빙 돌아서.

    "이 근처일 텐데 ......"

     어두워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빛의 마술도 한 번 펼쳐보았지만, 많은 빗줄기가 방해해서 멀리까지 잘 비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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