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7. 내가 입어도 안 어울린다(1)
    2024년 05월 05일 23시 16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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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창밖에서 심한 뇌우가 굉음을 내며 울려 퍼지고 있다.
     평소에는 한 번 자고 나면 아침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편인데, 너무 시끄러워서 그만 깨어났다.

     필리아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잘 생각해 보면 나는 필리아보다 일찍 일어난 적이 없으니 그녀가 항상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이곳에 오는지 모른다.
     언제 올지 모른다면, 섣불리 다른 짓을 할 수 없다 .......
     아니, 딱히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

     그래서 지금은 혼자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모험가 일로 바빴지만, 틈틈이 독서에 몰두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늘어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오크와 여기사'. 순애물이다.

     ...... 야한 책이 아니라고?
     순애물이다.
     정말이다?

     뭐, 제목을 그대로 드러내며 읽으면 모양새가 안 좋으니, 위장용으로 환각의 마법을 걸었지만.
     필리아도 최근 들어 마법의 솜씨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나한테는 미치지 못해. 후후후.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크 소년이 어느 날 자신의 거처에 잡혀온 여기사에게 첫눈에 반해 여기사를 데리고 도망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여기사에게 미움을 받고, 동료들에게 배신자라고 쫓기면서도 필사적으로 여기사를 옛 동료들로부터 지키려 애쓴다.
     처음에는 소년을 싫어하던 여기사도 그런 오크 소년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허락하고 끌리게 되는 ...... 그런 느낌의, 비교적 정석적인 순애물이다.

     에로틱한 책일 줄 알고 샀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속았다 ......!' 라고 처음에 분개했던 일은 전혀 없다.
     어쩔 수 없이 읽어나가다 보니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빠져들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작품에 순애물로서 기대를 걸고 있었다고.

    [나는 분명 처음부터 잘못된 존재였어]

     책장을 넘기며 독서를 계속한다.
     이야기도 어느덧 후반부. 여기사가 살던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 오크 소년이 여기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인간은 항상 말해. '사랑'이 있으니 괜찮다고. '사랑'이 없는 너희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나는 그 '사랑'이라는 게 뭔지 계속 알고 싶었어. 그것은 정말로, 그런 심한 일을 당하고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하고......]
    [사랑 ......]
    [...... 너는 인간. 나는 인간의 적. 처음부터 양립할 수 없는 존재야. 하지만 나는 ......]

     여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고난이 있어서, 이미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있다.
     하지만 오크 소년의 말대로 그는 인류의 적이며, 인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해도 오크라는 점에서 인류는 소년의 존재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만약 여기사와 함께 도시로 간다면 경비병에게 즉시 사냥당할 것이다.

    [...... 너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 나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 갈 곳도 없어. 한때는 함께 웃었던 동료들도 이제 없고. 그래서 ...... 네게 마지막 부탁이 있어]
    [...... 말해봐라]
    [날, 죽여줬으면 해]

     여기서 여기사가 숨을 멈추는 듯한 묘사가 나온다.

    [나도 ...... 드디어 알았어.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스한 마음인지.......]
    [너는 ......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
    [...... 그래. 이제 충분해. 이 마음을 안고 죽을 수 있다면 후회는 없어. 네 손에 의해 죽는다면 더더욱]
    [...... 어째서지. 너라면 사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을 거다. 그 둥지에서 나를 데리고 도망치면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자신이 죽을 운명에 직면하게 될 것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그런데도 왜......]
    [그런 거, 간단해]

     오크 소년은 웃었다.

    [너를 사랑해 버렸기 때문에. 그게 다야]

    "흠......"

     과연...... 여기서 사랑을 말하다니...... 이것은 결국 오크 소년이 드디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뜻인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랑이 뭔지 몰라서 방황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사는 정말로 오크 군의 바람대로 그를 죽여버릴까 ...... 아니면 .......

     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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