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4. 이렇게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어했었구나(4)
    2024년 04월 13일 18시 27분 3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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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분명, 힘을 부여해 줬던 인간들이 반역했을 때였던가.
     그때의 인간은 아직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요정은 인간에게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이에 편승한 멍청한 요정들은 인간들에게 마법의 힘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꼴이다.
     자연의 힘을 빌리는 요정과 달리,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마력을 직접적인 힘으로 변환할 수 있다.
     마법을 무력으로 행사하는 데 있어서는 요정들보다 인간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강했다.
     이를 알게 된 인간이 반란을 일으켜, 요정이 가진 지혜를 빼앗기 위해 유린했다.

     모두 죽었다. 나를 못생겼다고 경멸한 요정들도. 나를 동료가 아니라고 거부한 요정들도.
     그리고 나 또한 온몸이 불에 타서 그 일생을 마쳐야 했다.

    "...... 살아, 있어 ......?"

     모든 것이 새까맣게 타버린 마을 변두리에서, 나는 다시 깨어났다.
     목이 타서 호흡이 곤란해져 기절했어야 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이 숨을 쉴 수 있었다.
     오히려 불에 탄 피부도, 살도, 날개도, 다쳤어야 할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가 불사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 말고도 살아남은 요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 는......"

     ......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이것도 내가 스스로 잊어버리기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기억 따위는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왜냐하면 싫은 기억만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억이 있었다 해도, 결국은 고통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모든 것을 받았다. 즐거움을. 행복을. 따뜻함을.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나는 알게 되었다.
     잃는다는 것의 고통과 아픔을. 그리고 그것은 이제 끝없이 나를 잠식해 간다.

     마치 저주 같다고 생각했다.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고통이 커진다.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는 괴로움에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진다.
     좋아했던 사람의 미소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조이는 슬픔이 지배한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는데.
     나에게 이런 감정을 가르쳐준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언제까지나 반복할 바에야 차라리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도, 목소리도, 미소도. 좋아했다는 생각까지 모두 잊어버리면 다시는 고통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쉽게 편해질 수 있다.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난 그 너머에는 분명 즐거운 일만 계속될 것이다.

    "해냈다. 이제 드디어, 나는 ......"

     마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나는 결국 내 머릿속을 뒤져 기억을 지우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앞으로의 영원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다.

     그 후 수백 년을 살아온 나는, 내가 불사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을 불에 태우든, 칼날로 목을 베든, 꼬챙이에 찔려 껍질을 벗기든,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지든.
     나는 죽지 않는다. 재생한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저주를 받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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