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7. 묵비권을 행사하겠다!(4)
    2024년 04월 10일 20시 36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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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아는 둘이서 쌓인 이야기도 있을 거라며 나와 리자를 단 둘이 있게 해 주었다.
     모처럼 필리아가 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예전의 리자는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그녀는 또다시 내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재회의 기쁨으로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말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해야겠다.

    "그날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어. 너를 끝장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루지도 못하고 ...... 끝나고 싶었던 너의 마음을 이기적으로 짓밟았어."
    "응 ...... 응? ...... 으으음?"

     눈을 감으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녀와 만나서 약속을 했던 그때를.
     그녀는 말했다. 언젠가 마법을 완성할 수 있다면 나라는 존재를 끝장내라고.

     불멸의 생명을 죽인다. 그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녀로서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마법의 재능이 부족한 것이다. 영원과도 같은 세월을 쌓아 인류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까지 마법을 익힌 리자였지만, 사실 리자 본인의 마법 재능은 거기까지가 아니다.
     스스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자신의 종말을 원하면 원할수록,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싫어하는 타인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에게 나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와의 약속을 어겼다.
     그녀는 나를 구해줬는데. 그녀가 나에게서 희망을 찾았듯이, 홀로 낯선 세상에 내던져진 나에게는 그녀야말로 희망이었는데도 말이다.
     비록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을지라도 그녀는 나를 지켜주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외로움 따위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늘 함께해 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불쾌한 표정뿐이었지만,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해주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그런 그녀를 배신했다. 끝내는 것이 그녀에게 구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고 싶지 않고,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며 그 자존심을 이기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 이런 것은 슬픈 과거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었다. 그런데도 슬픈 과거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내 자업자득이었다.

     그런데도 리자는 그런 한심한 내 곁에 와주었다.
     그 이유는, 어쩌면 .......

    "리자. 리자는 왜 내 곁으로 돌아와 준 거야? 혹시 리자는 나를 위해 ......"
    "잠깐, 잠깐만. 진지한 얘기인 건 알겠는데, 정말로 잠깐만......음......야, 약속을 어겼어?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 그게 무슨 뜻이야?"

     어째선지 리자가 굉장히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무슨 뜻이냐고 해도 ......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

    "그야 그날의 나는 리자와의 약속을 어겼잖아? 그래서 리자는 나를 포기하고 내 곁을 떠났잖아?"
    "포기했다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전혀 아니야! 확실히 나는 할로의 앞에서 사라졌지만, 할로를 포기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야!"

     리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쌌다.

    "뭘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에 ...... 할로가 가끔 멍한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그렇게까지 바보였었나 ......"
    "바보 ......? ...... 그래. 리자의 소원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을지도 ......"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납득하지 마! 아이 진짜, 잠깐 정리해 줄 테니 할로는 일단 조용히 해!"
    "읍! 아, 아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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