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7. 묵비권을 행사하겠다!(1)
    2024년 04월 10일 20시 34분 4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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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방 앞에 다다르자, 리자는 아직 열려있던 문틈을 비집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내가 방에 들어서자, 리자는 방 중앙에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오~ 여기가 할로의 방인가 보네."

     취미인 독서를 위한 책이 조금 많이 있는 정도고, 나머지는 별 것 아닌 평범한 방이다.
     그렇게 두리번거려도 재미없을 것 같은데, 리자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들여다보거나 침대 시트와 베개 천을 만져보며 확인하는 등 요정 특유의 초소형 체격을 활용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외모에 걸맞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는 그녀는 보기에 흐뭇했지만, 자신의 방을 이런 식으로 관찰당하는 것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장식이 없는 심심한 방이라서 미안."
    "어, 재미없을 리가 없잖아. 할로가 어떤 가구를 좋아하는지,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등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면 여기!"

     리자가 가리킨 곳은 바로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침대였다.

    "여기, 잘 보면 베개가 두 개 있잖아. 할로가 두 개를 쓰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할로는 평소에도 그 아이랑 함께 자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아침에 할로가 마당으로 달려왔을 때도 그 아이와 함께 있었잖아? 그 아이도 할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았고. 후후, 맞는 걸까?"
    "응, 맞아. 잘 알아챘네, 리자."
    "후훗, 그 정도야 알지! 뭐니 뭐니 해도 하로인걸! 단지......"
    "단지?"
    "음~...... 그 아이는 음마잖아? 음마는 요즘 시대의 인류들한테 상당히 위험한 마물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 왜 할로네 집에 있는 거야?"
    "아 그거...... 아모르는 원래 어떤 A급 모험가 그룹이 전멸시킨 음마 무리의 생존자인데,. 이 마을에 숨어들어 추격자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만났어."

     아모르와의 만남과, 그녀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드워프와의 혼혈이라는 것. 드워프의 피가 짙은 탓에 몸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 그래서 동료들에게서 반푼이라며 멸시당하고 있었다는 것.
     반쯤 감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식적이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사람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고, 그 마음은 매우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처음 만났을 때 마안으로 신체의 자유를 빼앗은 상태에서 귀를 만지작거렸던 일이나, 목욕탕에서 이런저런 짓을 당했던 일, 밤에 기어들어와 입술을 빼앗겼던 일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부끄러운 일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묵비권을 행사한다!

     리자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콧방귀를 뀌며 불쾌한 듯이 말했다.

    "감금, 학대. 마음대로 낳아놓고서 그러다니. 이단을 혐오하는 건 결국 어느 시대, 어느 종족이든 마찬가지야."
    "...... 특이하네. 리자가 남의 처지에 분개하다니........"

     내가 무심코 중얼거리자, 리자는 허를 찔린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자는 아까 필리아가 물어봤을 때 아모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했었는데 ...... 역시 사실은 꽤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
    "......"
    "아, 대답하기 싫은 거라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아니, 괜찮아. 그래 ...... 그 암소, 아니 ...... 할로의 제자한테는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음 ...... 역시 어쩌면,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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