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베르타 마을 3
    2024년 02월 25일 21시 54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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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타 마을의 안은 몹시 조용했다.



     아직 마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독기도 붉은 동굴보다 훨씬 옅다.



     결계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저주가 끓어오르듯 짙어져서 강해졌을 거라 생각했기에, 이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펠릭스와 내가 나란히 앞을 걷고, 이사벨라가 바로 뒤에서 따라온다.



    "뭐야, 이거 ...... 이런 게 있어도 되는 거야......?"



     처음으로 제국의 '저주'를 가까이서 본 이사벨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이것도 보통의 저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저주이니 그럴만하다.



     나도 처음 목격했을 때 그 끔찍함에 숨 쉬는 것조차 주저했던 기억이 있다. 마을 안에는 썩어가는 집들만 있을 뿐 생물의 흔적은 전혀 없다.



    "...... 여기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갔을까."



     간간이 의복으로 보이는 천이 떨어져 있어서 누군가가 이곳에서 죽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숨을 잃어도 애도받지 못하고 그저 이곳에서 썩어갔을 것이다.



     짙은 독기는 사람이나 동물을 썩게 하고 뼈조차 남기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은 다음 눈을 감으며 두 손을 모은다. 그런 나를 두 사람은 말리지 않았고, 이사벨라 역시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부디 편히 잠들기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것뿐이다. 계속 결계를 세워주고 있는 루피노를 생각하면, 지금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묻어주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일어선 나는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저주의 원흉을 찾아보자."

    "그래."



     붉은 동굴의 작은 상자처럼 뭔가 근원이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을 안을 계속 걸어가자 조금씩 마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딱딱한 비늘을 온몸에 두른 거대한 도마뱀을 닮은 몬스터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온다.



    "역시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었구나."

    "그런 것 같아. 잠시만 기다려 줘."



     땅을 박찬 펠릭스는 검을 뽑아서 순식간에 몇 번을 베어버렸다. 아마 내 눈에 보인 횟수보다 훨씬 더 많은 횟수로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의 검은 마물의 몸을 확실하게 찢어내어 보라색 피분수가 튀었다.



     조금 뒤늦게 커다란 몸이 땅에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동시에 펠릭스는 마무리로 머리의 바로 위를 검으로 찔렀다.



     마물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펠릭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뽑았다. 압도적인 힘에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갈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검을 칼집에 넣은 펠릭스는 작게 웃었다.



     이보다 더 든든한 동료는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한 발짝 마을 안쪽으로 나아간다.



     그 뒤로도 붉은 동굴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적은 수였지만 마물이 계속 나타났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몸이 나빠질 뿐이니 저도 가담할게요."



     그런 와중에 펠릭스뿐만 아니라 이사벨라 역시 정확하게 몬스터의 약점을 노려 정화해 나갔다. 마치 가벼운 운동이라는 듯이 로드를 들어 올리면서.



    (대단해......!)



     이 반응과 판단력은 재능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과 더불어 수많은 마물과 싸워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터.



     이사벨라의 로드에 있는 마석도 공격 보조에 특화된 것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쓰러뜨릴 테니 티아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고마워, 펠릭스"



     나도 도우려고 했지만, 펠릭스는 이후의 정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마력과 체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는 이사벨라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지만, 마력량이 많은 그녀는 "문제없어요"라며 일축했다.



    "캬아아아아아!"

    "정말, 시끄럽네!"



     이사벨라는 자신의 두 배 이상 큰 마물을 결계로 제압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했다. 이어서 결계 내부를 정화하자, 마물은 스러지며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고 있자, 이사벨라는 "흥"하며 코웃음을 쳤다.



    "왜 그래요?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아주 훌륭해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더 좋은 방법이 있어서........"



     마침 같은 개체가 다가왔기 때문에, 나도 다시 로드를 겨누고 결계를 펼쳤다.



     방금 전 이사벨라의 결계보다 간단한 결계를 전개함과 동시에, 결계 내의 일부를 마법식으로 범위지정하여 정화했다.

     이렇게 하면 마물의 약점만을 정화하여 단시간에 쓰러뜨릴 수 있다.



    (오랜만에 해봤는데 잘 되었어)



     역시 마력량이 늘어난 덕분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이렇게 하면 마력 소모도 절반으로 줄어들고, 광범위하게 전개해도 여유가 생겨서 여러 마물을 상대할 때 편리한........"

    "............?"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깜짝 놀라는 이사벨라를 발견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이사벨라의 성장이 기뻐서 그만 스승의 느낌으로 옛날처럼 가르치듯 말하게 되었다.



    (어떡해, 내가 갑질하는 못된 여자로 보이면......)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이사벨라의 상태를 살폈다.



    "...... 어째서."



     이사벨라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파론 왕국에서 보았던 나와의 차이에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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