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성녀와 성녀 6
    2024년 02월 24일 23시 29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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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아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펠릭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 잠깐 생각에 잠겨 있었어."



     아무튼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게 결심하고서 펠릭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첫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 사실은 엘세를 싫어한다고 들었어. 지금의 나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엘세도 싫어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예전의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묻자, 펠릭스는 눈을 깜빡이더니 웃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이사벨라가 엘세를 싫어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뭐?"



     단언하는 펠릭스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이사벨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티아나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내일이면 티아나의 성녀로서의 힘도 밝혀져서 오해가 풀릴 테니까."

    "그러길 바라지만 ......"

    "다른 말은 없었고?"



     그 물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사벨라와 펠릭스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어째선지 펠릭스에게 직접 물어볼 수가 없다.



    (어째서? 그냥 물어보면 되잖아)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 또다시 가슴 한구석에 검은 무언가가 퍼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전생과 현생을 합쳐 처음 겪는 경험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애초에 우리의 결혼은 제국이 안정될 때까지의 계약결혼이었는데 ......)



     무사히 저주를 풀고사 자유롭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성녀이자 황비라는 바쁜 신분은 당초에 원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잃는 것, 즉 펠릭스와 이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챈 듯, 펠릭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티아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 이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하아."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문득 떠오른 말을 내뱉는 순간, 펠릭스의 입에서 낮고 짧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팔을 단단히 잡히고, 집착하는 듯한 두 눈동자를 보자 눈을 떼지 못하게 되었다.



    "── 싫어."



     펠릭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대로 나를 꽉 껴안았다. 어린 시절과는 다른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에 둘러싸이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절대 이혼은 안 해."

    "뭐?"



     당황한 나에게 펠릭스는 계속 말했다.



    "내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말해줘. 원하는 것은 다 준비해 줄게. 저주가 풀리면 황비로서의 일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저기, 펠릭스."

    "나는 이제 티아나가 없으면 안 돼."



     그러니 곁에 있어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그게 아니라! 미안해!"



     단어가 너무 부족했던 나머지, 펠릭스는 내가 이혼을 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 모양이다.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부인하며 양손으로 가슴을 밀어 조금 떨어지자, 아이처럼 불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펠릭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의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해할만한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해. 나도 이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정말?"

    "그, 나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부끄러움이 밀려와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 펠릭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 다행이다. 티아나의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도 머리가 새하얘졌거든."



     이윽고 힘이 빠진 듯 펠릭스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펠릭스를 보고 나도 또한 안도하게 된다.



     만약 이혼을 하고서 펠릭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상상하면......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지는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답답하다.



    "미안해....... 정말 좋아해."



     열기를 띤 눈빛과 방금 전의 초조해하는 모습에서 펠릭스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펠릭스는 눈썹을 내리며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쉬는 편이 좋아. 방까지 태워다 줄게."

    "데려다준다니, 여기서 몇 걸음만 나가면 되니 괜찮아."



     서로의 방으로 이어지는 전이 마법진은 몇 걸음에 불과한 거리라며 거절하려 했지만, 펠릭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티아나와 함께 있고 싶어."

    "............!"



     단 수십 초의 시간도 아깝다고 말하다니, 조금 전의 나였다면 그냥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요즘의 나, 이상해)



    "잘 자, 티아나."

    "응, 잘 자."



     펠릭스의 배웅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멍하니 침대에 쓰러진 나는,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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