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부 성녀와 성녀 4
    2024년 02월 24일 21시 00분 5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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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령 오해가 있더라도, 성실한 태도로 임한다면 언젠가는 이해해 줄 것이다. 지금은 어쨌든 이사벨라를 환영하고 싶다.



    "죄송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을 담아 여전히 미소를 짓자, 이사벨라는 더욱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사벨라."

    "이동하느라 지쳤어요, 방으로 안내해 줄래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쌓인 이야기도 있고요."

    "어머, 루피노 님이? 기뻐요."



     이사벨라의 태도를 비난하는 펠릭스를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다. 하지만 루피노가 말을 걸자 이사벨라는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펠릭스는 루피노에게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 내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사실 나도 조금 전에 알게 되었거든."

    "그랬구나. 난 괜찮아."



     오늘 아침 바이런이 당황한 표정으로 찾아온 것도 이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사벨라는 기억해?"

    "그래, 물론이야. 소중한 제자 중 하나였는걸. 곧 친해질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이사벨라의 태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마음을 담아 미소를 짓자, 펠릭스도 안도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 이사벨라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많이 친한 사이인가 보네요."

    "부부니까."

    "펠릭스 님이 엘세 님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열다니 의외였어요."



     이사벨라는 입술로 호를 그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는 당신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펠릭스와 반대편에 있는 내 귀에 속삭이고서, 순백의 성녀복 치마를 휘날리며 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벨라는 뭐라고 했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펠릭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써 웃어넘겼지만, 그녀의 골은 깊어 보인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한 번 제대로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





     그날 저녁, 이사벨라를 환영하기 위해 펠릭스, 루피노의 네 사람이서 함께 만찬회를 열기로 했다.



     펠릭스는 역시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이사벨라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접점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다.



    "티아나,"

    "어머, 루피노"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루피노를 만났다.



    "식당까지 같이 가도 될까요?"

    "그래, 물론이야."

    "당신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기쁩니다."

    "그래. 예전에는 자주 셋이서 밥을 먹었었는데."



     티아나로서는 한 번도 식사한 적이 없었지만, 전생에 어린 펠릭스와 루피노와 셋이서 별궁에서 자주 식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후, 펠릭스는 루피노가 있을 때만큼은 절대 편식하지 않았었지)



     그립고 사랑스러웠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따스해진다. 그러자 루피노는 방금 전 이사벨라를 안내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와 함께 있을 때는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솔직하고 밝고, 저뿐만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했습니다. 당신한테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하인의 작은 화상을 발견하여 즉시 치유 마법을 걸어 치료하는 등, 마음씨 착한 성녀로 이미 성내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얻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다행, 인가요?"

    "응. 옛날 그대로의 이사벨라라면 분명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실비아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를 싫어하는 것뿐이라면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자 루피노는 입가에 손을 대며 즐겁게 웃었다.



    "그렇군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죠."

    "어쨌든 지금은 이사벨라를 소중히 여기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제국에 와 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피노는 "예."라며 부드럽게 웃었다.







     대화를 하며 걸어가자, 식당 앞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펠릭스, 이사벨라 님도 오셨네요."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만났거든."

    "둘이서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어요. 아, 하지만 펠릭스 님과는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지만요." 



     펠릭스와 이사벨라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는 도중에 만나 함께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방울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웃는 이사벨라의 손이 펠릭스의 팔에 자연스럽게 닿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서와 마찬가지로 가슴속이 술렁거린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잘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펠릭스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둘은 왜 같이 있는 거지?"

    "저희도 도중에 만났습니다."

    "...... 그런가요. 계속 서 있는 것도 뭣하니 안으로 들어가요."



     루피노가 대신 대답해 줘서,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각자 자리에 앉은 후 샴페인 잔으로 건배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하인들이 있긴 하지만, 항상 넓은 식당에서 둘이서만 식사를 했던 터라 루피노와 이사벨라가 있으니 왁자지껄한 느낌이 들었다.



    "이사벨라 님은 언제까지 머무르시는 건가요?"

    "모든 저주가 풀릴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그럴 생각이에요."



     퉁명한 태도였지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다시 고맙다고 말하자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니깐."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다시 데려갈 수도 있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사벨라의 말에 펠릭스와 루피노도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모든 저주를 풀고 싶은 마음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주가 제국의 땅을 계속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다음 주, 닷새 후 베르타 마을의 정화에 동행해 주면 좋겠다만."

    "물론이에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사벨라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잔에 입을 대었다.



    "그래서, 왜 나이트리 호수가 정화되었나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현재 조사 중이지."



     펠릭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아직 이사벨라에게 말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펠릭스와 루피노 외에는 내 마력이 제국의 저주에 사용되었다는 것, 실비아가 원흉이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



     이사벨라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마력이 원인이라고 말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붉은 동굴은 정말로 티아나 님이 정화하셨나요?"



     이사벨라는 믿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내가 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틀림없어."

    "............"



     펠릭스가 단언해도, 이사벨라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무능한 텅 빈 성녀라는 소문을 들은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의심한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티아나는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성녀예요."



     루피노가 뒤따라 말하자 이사벨라는 "그렇군요"라고만 중얼거렸다.



    "믿어볼게요, 티아나 님."

    "감사해요. 그래도 이사벨라 님의 힘을 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사벨라의 전혀 감정이 없는 말에 미소를 지으며, 어색함과 함께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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