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무해요, 캐롤. 저 역시도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고 있다고요."
"미안, 미안. 하지만 세실리아가 나와 거의 반대로 고민하는 게 웃겨서. 그렇게 뭐든 다 할 수 있으면 권유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장래의 취직처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제 장래희망은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헤에 ...... 그게 뭔데?"
"비밀이에요!"
멜로디는 조금은 토라진 표정으로 캐롤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마음이 치유된다. 아무리 대단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눈앞에 있는 소녀는 여전히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그렇지만 세실리아에게는 색깔이 없어. 이토록 다재다능한데도. 수수께끼야)
신기한 아이라며 캐롤은 눈을 가늘게 했다. 이 투명한 소녀의 색을 꼭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창작 의욕이 샘솟는다.
"자, 그럼 다시 모델 일을 시작해도 될까, 세실리아?"
아무래도 휴식 시간이 끝난 것 같다. 캐롤이 마음을 다잡은 것을 눈치챈 멜로디는 토라진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로 향했다.
"네. 오늘 밤은 캐롤 씨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었으니 마음껏 하세요."
(아가씨에게 모델 일을 말씀드렸더니 오늘은 안 와도 된다고 했는걸......)
그것은 멜로디에 대한 친절함이었겠지만, 멜로디의 본심으로는 메이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원래는 모델 일이 끝나면 일하고 싶었다.
(......아아, 메이드 하고 싶다아)
"세실리아, 집중해"
"아, 네, 죄송해요."
(안 돼. 집중해야겠어)
멜로디는 이후 두 시간 정도 모델을 했다.
"음, 역시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 뭐가 잘못된 걸까?"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해요."
그 후 몇 번이나 밑그림을 그려보았지만, 캐롤은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로는 투명인간 같은 그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내 탓일 거야, 아마. 하지만 세실리아 상태의 나는 투명인간이었어 ......? 조금 이상한 표현)
"오늘은 고마웠어. 잘 자, 세실리아"
"안녕히 주무세요, 캐롤."
멜로디가 떠나고 혼자 남은 캐롤은, 캔버스에 그려진 멜로디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납득할 수 없지만, 아마 몇 번을 다시 그려도 같은 그림이 될 것 같아. 즉, 이것이 지금의 세실리아라는 뜻 ...... 인데, 이 위화감은 무엇일까?)
세실리아 맥머든. 천사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 외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고 한다.
마음씨도 착하여 캐롤이 본 바로는 속내가 없는 것 같다.
그림의 소양은 다소 부족하지만, 그림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승마도 할 줄 안다고 했는데 ...... 캐롤은 생각한다. 이건 어디의 완벽한 초인일까.
(모델로는 파격적인 스펙. 그런데도 나는 그녀에게 만족할 수 없어. 그 이유는 ...... 아마도 지금의 그녀가 색채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투명인간을 그리는 것 같다.
그렇게 평가한 자신의 느낌은 분명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세실리아는 더 매력적인 소녀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그녀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래서 아무리 그려도 납득할 수 없는 것 같다.
(세실리아는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투명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아. 어쩌면 지금의 세실리아는 텅 비어 있는 것일지도 몰라)
캐롤은 무심코 침을 꿀꺽 삼켰다.
세실리아는 매력적인 소녀다. 하지만 캐롤이 보기에는 그 매력이 많이 빠져있다. 그렇다면 본래의 세실리아는 얼마나 빛나는 소녀일까?
(보고 싶으면서도 무서운 ...... 그래도 역시 보고 싶고 그려보고 싶어)
언젠가 색채를 되찾은 세실리아를 그려보고 싶다. 캐롤은 그렇게 생각했다.
"...... 메이드 일, 하고 싶어..."
옆방에서 멜로디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당연히 캐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자정이 지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 멜로디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멜로디는, 오늘도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