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말없이 이어지는 그 집중력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해야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캐롤 같은 인물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멜로디는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 좋겠다아)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 지난 일주일 동안 스스로 지원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메이드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이 환경은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었다.
(설마 이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 완전히 예상 밖이야)
멜로디의 입에서 무심코 한숨이 흘러나왔다.
"...... 잠깐 휴식. 세실리아, 집중력이 떨어졌어."
"어? 아, 네. 죄송해요."
캐롤의 지적에, 멜로디는 잡념이 생겼다며 반성했다. 멜로디가 긴장을 풀자 캐롤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밑그림은 잘 되고 있나요?"
"절망적이야."
"오, 그런가요......네? 절망적?"
너무 가볍게 하는 말이라서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아무래도 잘 안 풀리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기보다는 보이지 않아 ...... 세실리아라는 사람이."
"무슨 뜻일까요?"
멜로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캔버스를 보았다. 거기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연필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
"마치 제가 전에 그린 풍경화 같은 분위기네요."
즉, 이 밑그림에서는 화가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캐롤도 동의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 마치 투명인간을 그리는 것 같아. 아니면 정교하게 만든 인형을 모델로 한 것 같은 ...... 아까부터 계속 보이지 않아, 당신이라는 인물상이."
"안 보여요? 나는 여기 있는데 ......"
"그렇긴 하지만, 너를 그리다 보니 심한 위화감에 휩싸이는 거야 ...... 마치 세실리아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 같아.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멜로디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 맥머든이라는 사람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인물이다.
(캐롤 씨의 직감이 너무 대단해. 뛰어난 화가는 그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내면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캐롤 씨는 그야말로 그거야)
이 예리한 감성만으로도 대단한 재능이라 할 수 있다. 멜로디로서는 캐롤이 꼭 미술 선택과목을 수강하여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캐롤, 제가 그림의 모델이 되면 미술 수업을 받을지 생각해 준다고 했죠?"
"어? 아, 응, 생각해 볼게."
"혹시 생각만 하고 수강할 생각은 없으신 건 아니죠?"
캐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멜로디에게서 슬며시 시선을 돌린다.
"왜 수강하지 않으세요? 교실에 몇 번이나 오셨으면서. 관심은 있는 거죠?"
멜로디는 그것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선택과목에 '메이드학'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당장 수강신청을 했을 것이다. 캐롤은 왜 망설이는 것일까?
멜로디는 조용히 캐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민에 빠진 듯 머리를 긁더니 이유를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잘 팔리지 않는 화가였어. 뭐, 솔직히 말해서 가난했거든. 어렸을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면서 꽤나 즐거운 나날을 보냈어. 하지만 그건 어머니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우리 집의 생활비는 어머니가 일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셨어. 하지만 무리한 일 때문에 병에 걸렸던 거야.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더 이상 화가가 될 수 없게 되었어."
캐롤의 아버지는 팔리지 않는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덕분에 어머니의 병도 나았고 생활도 편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아버지는 화가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