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피곤해서 그럴 기분은 아냐. 아가씨의 저녁을 만들 때 조금 맛보았으니, 오늘은 이제 그만 자자."
식욕보다 피곤함이 앞섰는지, 멜로디는 재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수업이 있다. 루시아나 호위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럼, 잘 자요.
.......
.............
(...... 음, 오늘도 금방 잠들지 못할 것 같아)
멜로디는 오늘 밤도 조금 뒤척이는 것이었다.
◆◆◆
시간을 조금 되돌려 멜로디와 루시아나가 귀가했을 무렵. 올리비아 랭크돌도 방금 자기 방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그래, 다녀왔어. 잠시 쉬고 나서 공부할게. 차 좀 끓여 줄래?"
"알겠습니다. 옷은 갈아입으실 건가요?"
"공부가 끝나고 나서 해도 돼요. 차는 거실에서 마실게요. 잠시 침실에 있을 테니 준비되면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바로 차 준비를 하겠습니다."
마중 나온 시녀와의 대화를 마친 올리비아는, 일단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 들어간 올리비아는 시녀의 감시가 없는 것을 보고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아아,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아. 역시 오늘 아침의 일이 걸리는 걸까?)
HR 직전에 일어난 커닝 소동.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만점임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퍼질 뻔한 부정행위 의혹.
타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얄팍한 유언비어, 그것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올리비아가 한 마디로 제지하여 자리를 수습했지만, 그 때문인지 아침부터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에는......)
올리비아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한 번 몸을 굽혀 침대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거기서 양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길쭉한 나무상자를 꺼냈다.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반짝이는 장식으로 장식된 그것은, 마치 보물을 보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올리비아는 상자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칼날이 반쯤 빠진 은제 검이 들어 있었다.
올리비아는 은검을 꺼내 들고 창가로 향했다. 커튼을 열자 암적색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양손으로 은검을 들어 올리자 빛에 노출된 검신이 반짝반짝 빛났다.
"...... 아름다워."
석양에 비친 은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올리비아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방금 전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올리비아는 마치 은검이 스스로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검으로서 소중한 칼날의 절반을 잃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당신 ......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올리비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부러진 검의 단면에서 살짝 새어 나오는 백은의 빛을.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알 같은 작은 빛이 마치 빨려 들어가듯 올리비아의 가슴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갔다.
살며시 눈을 뜬 올리비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 신기해. 당신을 손에 쥐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씻은 듯이 맑아지는 것 같아. 오늘 아침부터 느꼈던 꺼림칙한 느낌도 어느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정말 왜 그럴까......?"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해. 나는 항상 당신에게 말을 걸어버리네. 당신은 그냥 검일뿐인데........"
이제 그만 치우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무 상자가 있는 침대로 가려고 돌아섰을 때였다.
'빠직' 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은검의 끝이 깨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어!? 어, 어째서 ......!"
당황한 올리비아. 소중히 다루고 있던 은검이 손상되어 버린 것이다. 어딘가에 부딪힌 기억도 없는데 갑자기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일단 서둘러 은검을 나무 상자에 다시 넣고 침대 밑에 숨겼다. 그녀의 손에는 조각난 은검 조각이 들려 있다. 나무상자에 함께 넣지 못한 것 같다.
"...... 이거, 어쩌지. 고칠 수 있을까?"
"아가씨, 차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ㅡㅡ! 지금 갈게."
올리비아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재빨리 교복 주머니에 조각을 숨긴 올리비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침실을 떠났다.
다음날부터 올리비아는 이 은조각을 부적 대신 들고 다니게 되었지만, 물론 멜로디도, 안네마리도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