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화(1)
    2024년 01월 25일 23시 38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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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다음 날, 겨우 헤어졌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아침부터 찾아왔다.



    "세라피아, 약혼을 축하한다. 네가 행복을 잡게 되어 나도 너무 기쁘구나."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내게 줄곧 기쁨의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은 이 약혼으로 내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것과 가문의 명예가 회복되는 일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증거로 아버지는 내 마음을 한 번도 확인하지 않으셨고, 내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도 전혀 언급하지 않으시며 혼자서만 기뻐하셨다.



    그 후로 한동안은 집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조용한 생활이 이어졌다. 낯선 시녀들은 나의 과거를 알고 있기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기는 했지만, 집안의 하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편했다.



    하지만 그런 평온을 깨뜨리기라도 하듯,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찾아와서 자신을 크게 비하했다. 그것은 내가 용서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하인들에게 일부러 그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에게 그런 짓을 해버렸구나. 아아, 이 아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보상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주거라.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이 머리장식, 받아주겠니? 이런 걸로 그 시절의 너에게 아무것도 사주지 못한 것을 대신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만 좀 하라고 소리칠 수도 없어서, 나는 그저 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을 차분하게 계속했다.



    그러한 대응은 아버지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왕성에 살게 된 탓도 있겠지만, 폐하와 왕비도 가끔씩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나치게 신경 쓰이는 말을 내게 건넸다. 그 끝없는 배려가 오히려 내 처지를 악화시켰다.



    게다가 옛 친구의 초대를 받은 다과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모든 영애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전의 내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것은 정말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왕세자비한테 잘못 보이면, 그녀들과 그 배우자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녀들이 절박해지는 것은 알겠지만, 절박해질수록 주위의 시선은 나에게 더욱 따갑게 다가왔다.



    아버지도, 국왕 부부도, 영부인들도 모두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자신의 죄책감을 달래고 싶어서, 나에게서 용서의 말을 끌어내고 싶어서, 권력을 가진 나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서. 내가 아무리 이제 괜찮다고 웃으며 돌려보내도, 사과를, 지나친 배려를, 겸손한 태도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나를 향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생겼다.



    "모두가 그렇게 잘해주는데, 세라피아 님은 아직도 토라졌나 봐.", "마음이 좀 좁으시네.", "그 로젤다 전하한테도 사랑받고 있는데 뭐가 불만이시람?"



    몰라! 몰라! 몰라!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멋대로 '용서받지 못한' 것은 저쪽이다. 더 이상 내게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대접만이 좋은 고독한 삶 속에서, 나는 그 시절의 평온한 삶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울었다.





    내가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도, 용서의 말을 건네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말을 되풀이해도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마치 릴리아나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와 비슷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로젤다 전하로부터 나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세피, 네가 힘들었던 건 알지만, 이제 아버지와 친구들을 용서해 주는 게 어때? 지금의 상황은 왕세자비로서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현명한 너라면 알겠지?"



    "아버지를요?"



    어이가 없어서 벙찐 나에게, 그는 정돈된 얼굴에 가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만약 네 마음에 아직 슬픔이 남아있다면, 그만큼 내가 너를 사랑할 테니까."



    이 왕세자인 내가 사랑해 줄 테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말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웅변하듯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아니야, 그렇게 외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련한 추억이 없었다면 이 상황을 과연 견딜 수 있었을까. 예전에 사랑했던 마음을 무심코 그렇게 떠올린 것이 후회스러워서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제멋대로인 이 남자는 뭐라고 말하면서 안아주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나를 이용하기만 하는 남자의 포옹. 싫었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만으로 버거웠던 나는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껴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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