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4화 렉트의 결의(2)
    2024년 01월 13일 16시 38분 2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렉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몇 초 후, 천천히 눈꺼풀을 열고 멜로디를 바라보았다.



    "......그래. 레긴버스 백작 각하께 가자."



    "고마워요, 렉트 씨!"



     안겨 있는 루시아나를 달래면서, 멜로디는 기쁜 듯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조용하네요."



    "지금의 왕도는 경계 태세라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라서......."



     레긴버스 백작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가 귀족 구역의 길을 달린다. 평소 같으면 다른 마차가 다닐 법도 한데, 오늘은 멜로디 일행이 탄 마차가 달리는 소리만 들린다.



    "모두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거네요."



    "마물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자제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나도 이게 없으면 외출을 할 수 없는 처지고."



    "아, 그거 은제 검인가요?"



     렉트는 좌석에 세워둔 검을 멜로디에게 보여주었다.

     꽤 정교하게 장식된 은검이다.



    "백작 각하께 빌린 거야. 자네를 데리러 갈 때 가져가라고 하셔서요. 아까 멜로디가 지적했듯이, 나 혼자서 이걸 준비하기엔 좀 힘들어서 도와주셨어요."



    "...... 또 그 괴물이 나올까요?"



    "모르겠어. 왕도 순찰을 시작한 지 오늘로 사흘째. 목격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어 ......"



     멜로디와 렉트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왕도의 거리를 바라보며 백작 저택까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레긴버스 백작 저택에 도착한 멜로디 일행은 백작이 있는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세실리아 님을 모셔왔습니다"



    "...... 들어보내."



     문 너머에서 대답이 들리고 집사가 문을 열었다. 실내에서 팽팽한 공기가 느껴진다.

     렉트는 멜로디를 힐끗 쳐다보았다. 특별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평소와 다름없다.



    "집무실은 세실리아 님만 들어오십시오."



    "내가 함께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메...... 세실리아, 네게 달렸다."



    "네, 렉트 씨, 저, 면담에 합격하고 올게요."



    "......그래, 너라면 괜찮을 거다."



     부드럽게 웃는 렉트에게, 멜로디도 미소를 짓고서 백작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 렉트잖아?"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렉트의 형인 라이작 플로드 자작이었다. 그는 서류 뭉치를 들고 있다.



    "바쁘신 것 같군요, 형님."



    "반대로 너는 한가해 보이네. 오늘은 일 때문에 ...... 아, 오늘은 세실리아 아가씨 면담 날이었지?"



    "예, 방금 전에 시작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서류 확인을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그래서, 그녀는 합격할 것 같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라면."



    "바로 대답이네? 세실리아 양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구나."



    "......예.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



    (오?)



     라이작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랐다. 평소 같으면 얼굴을 붉히며 입을 꾹 다물었을 텐데, 이번엔 살짝 볼을 붉히면서도 분명하게 대답했다.



    (...... 이 짧은 시간에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후후후, 사랑의 힘은 대단하네)



     라이작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렉트의 변화를 기뻐했다.



    "그럼, 임시강사 문제는 어떻게 할 거지? 아까 말했듯이 그녀가 학생이 되면 만날 기회가 많이 늘어날 텐데, 백작 각하께 부탁해 볼까?"



    "...... 아뇨, 그만두겠습니다."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의 렉트였지만, 라이작의 제안을 거절했다.



    (헐?)



     라이자크는 다시 한번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랐다. 당연히 임시강사의 일을 부탁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괜찮겠어?"



    "예. 저는 다른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제는 세실리아 아가씨가 백작 각하의 면담에 합격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럼 나는 일이 있으니 이만 실례할게. 결과가 나오면 알려줘."



    "알겠습니다."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는 라이작을 바라보면서, 렉트는 생각에 잠긴다.



    (...... 확실히 임시 강사가 되면 학교에서 멜로디와 만날 기회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기뻐할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멜로디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



     멜로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백작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렉트는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답은 아주 간단했다.

     레긴버스 백작가를 섬기는 기사, 렉티아스 플로이드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 세레디아 레긴버스. 당신은 대체 누구지?)



     멜로디의, 아니 셀레스티가 있어야 할 곳에 갑자기 나타난 수수께끼의 소녀, 세레디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렉트뿐일 것이다.



    (어떤 의도로 그 자리를 빼앗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본인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곳은 셀레스티 아가씨의 자리다. 반드시 돌려받겠다!)



     렉트는 힘찬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