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6 켄돌의 회한
    2024년 01월 09일 19시 35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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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켄돌은, 방 안으로 들어온 약혼녀 헬레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켄돌이 마물 퇴치 원정에서 큰 부상을 입어 한동안 치료를 위해 왕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헬레나에게 전해졌을 텐데도, 그녀는 곧장 켄돌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켄돌은 드디어 나타난 헬레나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왜 빨리 오지 않았어? 헬레나는 이제 회복 마법을 쓸 수 있지? 가능하다면 내 팔을 고쳐줬으면 좋겠는데 ......"



    켄돌은 부탁하는 목소리로 헬레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헬레나에게서는 그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 켄돌 님. 부기사단장에서 강등되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헬레나의 얼음 같은 눈빛과 험상궂은 목소리에, 켄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너는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물론 내가 회복될 때까지 부기사단장 대행을 맡는다고 들었어....... 하지만 단장은 내가 회복하고 컨디션만 회복하면 다시 부기사단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했거든......."



    켄돌의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켄돌이 예전처럼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면 다시 부기사단장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기사단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켄돌은 기사단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여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해 엄중한 주의를 받았고, 부상으로 기사단 활동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켄돌을 대신하던 부기사단장 대행이 그대로 부기사단장으로 승격될 예정이다.

    의사는 오른팔에 입은 상처에 대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검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때까지 회복하려면 상당한 재활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게다가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힘을 느끼고 있는 켄돌에게 부기사단장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이제 절망적인 일이었다.



    헬레나는 켄돌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의 질문 말인데요. 회복 마법은 빛마법 중에서도 최상급 난이도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그런데 아직 공부 중인 제가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설령 제가 회복마법을 쓸 수 있다 해도, 이렇게 부끄러운 부상을 입은 켄돌 님께 쓸 명분은 없어요. 기사단장님의 지시를 무시한 결과 생긴 부상이라면서요."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 헬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켄돌 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나에게 ......?"

    "네. 손을 내밀어 주시겠어요?"



    당황한 듯 켄달이 내민 손바닥에, 헬레나는 왼손 약지에서 켄돌이 선물한 약혼반지를 빼내어 무심히 내려놓았다.



    "이거, 돌려드릴게요."

    "어째서 ......!"



    켄돌은 건네받은 약혼반지를 꽉 움켜쥐며, 헬레나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너는 그토록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 기사에게 부상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쯤은 너도 알고 있잖아? 곧장 다시 일어서서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갈 거야. 부탁이야, 헬레나. 조금만 진정해 줘."



    부기사단장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 눈앞에 다가오자, 자신에게 남은 아름다운 약혼녀 헬레나만이라도 지키고 싶다며 집요하게 매달리는 켄돌에게 헬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모르겠나요? 지금의 당신은 제게 어울리지 않아요. 제가 말했죠? 나는 켄돌 님의 재능에 반했다고. 하지만 지난번 마물 토벌에서는 좋은 모습도 없었고, 죽을 뻔한 상황에서 마베릭 님께 도움을 받았다면서요? 게다가 앞으로 강등까지 당하게 될 테고요....... 그런 당신은 제 곁에 설 자격이 없답니다."

    "기다려, 헬레나 ......!"



    켄돌에게 등을 돌리고 병실을 나서는 헬레나는, 다시 그를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절망에 떨고 있는 켄돌의 머릿속에는 이리스와의 약혼을 파기할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되살아났다.



    '너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약혼자에게 그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켄돌은 그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행위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라 ......)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서, 켄돌은 무심코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켄돌을 격려하고 부드럽게 안아주던 이리스의 따뜻한 미소가 가슴이 조여올 정도로 그리워졌다.



    (아아, 이리스. 나는 네 친절함과 따뜻함에 언제나 감싸여 있었지. 그런데도 나는 왜 너의 손을 놓아버린 걸까? 넌 항상 나를 지지해 주고, 어떤 때든 내 편이 되어주었어. 내가 힘들 때면 따스하게 격려해 주고, 내가 공을 세우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는데. 그런데도 나는 헬레나의 외모의 아름다움과 능력에 눈이 멀어 손쉽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어. 네가 나 때문에 집을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네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지 ......)



    켄돌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살짝 벌어진 켄돌의 입에서는 미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켄돌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병원 복도를 걷는 헬레나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아, 저렇게 완전히 멍청해진 켄돌 님과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야. 빨리 인연을 끊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빈센트 님이 크룸로프 가문에 보낸 그 편지. 그 빈센트 님이 이렇게까지 찾아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다니. 도움을 받았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언니가 간병이라도 해준 걸까? 뭐, 어쨌든 언니는 이제 집에 없으니까 상관없어. 게다가 마베릭 님까지 오시다니 ......! 켄돌 님과 약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 기회는 꼭 잡아야 해 ......!)



    헬레나는 자신의 미모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빈센트를 간병한 사람이 이리스이며 헬레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어떤 남성이든 자신의 뛰어난 미모에 사로잡히기 쉬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헬레나는 이 나라에서도 극소수만 인정하는 빛마법 사용자다. 남자들의 청혼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헬레나는 생각했고, 그 생각에는 근거가 있었다. ...... 그토록 언니 이리스를 사랑했던 것처럼 보였던 켄돌조차도 자신의 미모와 재능에 순식간에 손바닥을 뒤집었으니까.



    (마베릭 님도 빈센트 님도 둘 다 훌륭한 재능과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역시 천재로 이름난 마베릭 님일까? 켄돌 님이 실수한 그 몬스터 토벌에서의 활약도 세간에 널리 알려졌으니. 빨리 만나 뵙고 싶어 ......)



    헬레나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얼굴 전체로 퍼지자, 그 눈동자가 요염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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