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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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1월 09일 11시 34분 1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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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만 달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켄돌에게, 기사단장이 거듭 외친다.



    "켄돌, 빨리 돌아와!"



    단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켄돌이 키메라에게 달려가 큰 검을 휘두른 순간이었다.



    켄돌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졌다.

    불길한 예감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힐끗 머리 위를 바라보니, 대량의 그리폰 무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돼. 키메라가 그리폰을 불렀다는 건가 ......?)



    마물들은 별다른 지능이 없어서, 동종의 마물 외에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면 도움을 요청하는 키메라의 포효가 그리폰 무리를 불러들인 것만 같다.



    (설마, 그럴 리가)



    켄돌이 놀라서 검을 휘두르던 손을 멈춘 순간, 눈앞의 키메라는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키메라의 앞다리가 다가오더니, 날카로운 발톱은 켄돌의 오른팔을 파고들었다.



    "크악!"



    검을 내려놓은 켄돌을 노리고 머리 위의 그리폰들도 원을 그리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키메라도 다시 한번 켄돌을 향해 앞다리를 휘두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켄돌을 본 다른 기사단원들은 거리상 손쓸 수 없어서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켄돌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과 마법사들 역시, 한 발짝만 더 가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던 키메라 무리와 그리폰 무리에게 협공을 당하게 된 이상, 곤경에 처한 것은 마찬가지다. 일제히, 모두가 공격을 위해 태세를 재정비한다.



    (젠장. 이 내가, 이런 곳에서 끝날 줄은......)



    키메라의 앞다리가 다시 한번 켄돌을 향해 휘둘러지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감각이 켄돌을 감쌌다. 켄돌의 얼굴 위로 휘둘렀던 키메라의 앞다리가 갑자기 딱 멈추나 싶더니, 키메라의 몸 전체가 흔들리면서 가볍게 떠올랐다.



    머리 위의 그리폰들에게도 불안한 동요가 일었고, 동시에 갑자기 그 몸이 바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켄돌은 주변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한 에너지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키메라 무리도 그리폰들도 놀라운 힘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공중에 떠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대로 마물들의 몸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소용돌이치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굉음과 함께 일제히 마물들이 힘차게 땅바닥에 떨어졌다.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그것은 찰나의 일이었다.



    "끝났나 ......?"



    기사단장이 어안이 벙벙하여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사단원과 마법사단원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퍼지고 있다.



    키메라도 그리폰도, 모두 한데 모여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이미 죽은 것이 분명했다.



    '와아!'라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몇몇 기사단원들이 켄돌의 부상을 걱정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켄돌은 팔이 아픈 것도 잊은 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 뛰어난 바람의 마법사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아군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휘말리게 하지 않고 마물들을 쓸어버린 이 엄청난 위력의 바람 마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주인공은, 아직 젊은 눈매가 선명한 청년이었다. 그 놀랍도록 단정하고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운 용모에는, 신이 내린 듯한 바람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도 없이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단 한순간에 이 많은 마물을 모두 쓰러뜨리고도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다니)



    켄돌은 아직도 눈앞의 일이 믿기지 않는지, "역시 천재, 마벨릭 님이셔.....!"라는 찬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을 씁쓸하게 듣고 있었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켄돌도 알고 있다. 하지만 켄돌이 얻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칭찬이었다.



    반면 마베릭은 그런 주변의 칭찬이 별 거냐는 표정으로, 한동안 말없이 쌓여 있는 마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방금 바람 마법을 발동한 자신의 양손에 눈을 떨어뜨렸다.



    (내 바람 마법에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그다지 소모가 느껴지지 않아....... 이, 마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듯한 힘은 도대체......)



    마베릭은 시선을 내린 채, 얼음처럼 맑은 눈동자로 자신의 양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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