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 음신
    2021년 02월 07일 20시 46분 3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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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7769bh/74/

     

     ※ 음신 : 일본 요괴의 일종으로, 저녁 무렵에 나타나서 늦게까지 놀고 있는 아이나 숨바꼭질하는 아이를 납치한다.

     

     

     

     

     그곳은, 마치 밤하늘같았다.

     수많은 작은 반짝임이 모래를 흩뿌리는 듯 검고 감청색인 하늘을 채색했고, 발치에 펼쳐진 어스름의 벨벳은 끝을 모를 정도로 저편까지 뻗어있었다.

     우주 안에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지만, 그곳은 제대로 된 땅이 있었고, 다리가 붙어있었다.

     반짝이며 흐르는 별들은,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주변을 선회하다가, 중심에 앉은 신수가 움직인 일에 놀라서 산산이 흩어졌다.

     신수는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두 발로 서고, 물건을 쥐는 손을 가졌으며, 얼굴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큰 나무와도 같은 땅딸막한 몸통과, 강맹한 근육이 튀어나온 약간 짧은 팔다리.

     하지만 전신은 검고 회갈색의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입과 코는 늑대처럼 툭 튀어나왔고 흰 수염으로 뒤덮였다.

     크르르하고 으르렁거린 신수는 완곡한 삼각형의 귀를 쫑긋 세우더니, 세계를 집어삼킬 듯한 신음 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목소리로 희색을 드러내었다.

     

     "하하. 이제서야."

     

     귀 밑까지 닿는 입가를 씨익 들러올리며 웃고는, 내버려 두었던 네 기둥을 난폭하게 쥐어 어깨에 메고, 길고 흰 눈썹을 문지른 후에 목을 빙글 돌리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루슈카 아가씨도 괜한 걱정이 많아. 애초에 우리에 대항할 거라곤 없는데 말야. 뭐, 위기를 대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하지만 따분하구만. 누군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꽤 충성심이 높은 녀석들이로다."

     "당연하잖아요. 우리들은 그 분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신수는 높은 하늘에서 울린 평온한 여자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천천히 낙하해 온 자는, 강한 휘광을 두른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였다.

     관자놀이에서 생겨난 두 날개는 눈을 덮었고, 허리에서 돋아난 두 날개는 다리를 가리고, 등에서 돋아난 두 날개로 날아다니는 천사는 신수의 앞에 내려섰다.

     그 신성함은 보통 사람이 보면 눈이 불타버릴 정도로 찬란했고, 그 존재감은 보통 사람의 혼을 불태울 정도로 고귀했다.

     결코 인간과 같은 땅에 설 일이 없는 천상의 존재.

     순백의 법의를 몸에 두른 랭크 10의 천사종 [세라핌] 은, 억누를 수 없는 주인에게로의 찬미를, 펼친 양손으로 표시했다.

     

     "위대한 창조주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그래. 슬슬 돌아가라는 지시가 와서 말야."

     "그거 쓸쓸해지겠네요."

     "누구의 모습도 보지 못하면서, 잘도 뻔뻔하게시리."

     "우리들은 창조주님을 위한 생명체이며 시스템입니다. 설령 동양의 신수라 해도, 주인에 대한 기도를 멈추면서까지 상대할 도리는 없으니까요."

     

     본연의 자세의 격차를 느끼고 손으로 머리를 짚는 신수.

     그렇다고는 해도, 웬만한 일이 없다면 이곳에서 해방될 일은 없고 스스로 나가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귀찮음은 일시적이라며 수염을 손으로 말면서 참기로 했다.

     

     "그래서? 그 시스템이 왜 내 앞에 나왔을까. 기도를 멈출 도리는 없다 하지 않았나?"

     "네, 그랬지요."

     

     치천사는 하늘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 손짓에 날아 온 것은 갑옷 차림의 천사 [프린시파티] 였다.

     네 명의 권천사는 손에 든 커다란 빛의 구슬을 신수의 내밀었는데, 마력을 흘리자 영상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에녹의 문자가 쓰여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동양의 신이라서 그걸 보아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뭐야 이건."

     "이른 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에요. 우리들의 행동원리와 기록이 쓰여져 있으며, 여러 외부정보도 여기에 기록돼 있어요."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뭐가 쓰여져 있냐고 묻는 거라고."

     "아아, 실은 말이지요.......이 세계의 신이라고 생각되는 자에게서, 간섭을 받은 일이 있는 모양이에요."

     "뭐어?"

     "자세한 일은 우리들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마 우리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한 거겠지요. 침식같은 건 확인되지 않았고, 공성의 프로텍트에 의해 몇 번이나 요격했지만 반응은 없었네요. [시바] 신이나 [로키] 등을 준비한다면 소재를 찾아서 소멸시킬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창조주님의 허가 없이 최고신을 움직이는 건 할 수 없고, 비상등에도 긴급을 요하는 반응이라고 나오지 않았게 때문에 현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치려고는 하지 않은 채, 상대도 소극적인 간섭에 그치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지만, 강행수단을 써올 때를 위해 사전의 허가를ㅡㅡ"

     "에에이, 잠깐 잠깐! 물어본 건 나지만, 그런 영문 모를 이야기를 들어도 다 전할 수는 없다고!"

     

     카아, 하고 큰 입을 벌리며 외친 신수의 모습에 치천사는 뚝 멈추었고, 잠시 사이를 두고 재기동하듯이 움직였다.

     

     "그럼, 이것만 부탁할게요. 이계의 신에 대한 대책을 부탁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긴 이야기라면, 통신마술로 전하면 되지 않은가."

     "아앗, 그런 황송한 일을. 위대하신 창조주님과 연결되다니.....우리들은 창조주님의 편재, 전지, 전능을 찬미하고, 기도하는 자에 불과한걸요."

     

     천사는 자아가 있지만 자기를 갖지 않았다.

     프로그램에 따르는 시스템을 탑재하고, 통합된 의견으로 행동을 취한다. 이른 바 자율병기다.

     그래서, 여기에 유폐되고 있는 것이다.

     별의 저편, 하늘의 끝을 구현한 이 '천공연환' 에서.

     

     "그럼, 안녕히 가시길 [음신형부(隠神刑部)] "

     

     치천사에게 그렇게 불려서, 신수에 도달한 너구리의 화생은 늑대처럼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멋없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천사님. 난 어엿한ㅡㅡ'산잔사자라' 라는 이름을 받아놓았다고."

     

     

     

     

     여러 문제가 있었던 외출로부터 하룻밤 지나, 카론은 다시 거리로 나갔다.

     결코 한가해서라던가, 즐거웠기 때문의 이유는 아니다.

     거리를 시찰하는 건 유의미했으며, 거기서부터 생각나는 것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의 카론은, 의사의 진찰을 받아 위통이 낫기 전까지는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지금 가능한 일을 한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만 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건, 단장들과의 교류다.

     국내에서의 활동을 주로 하는 자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레 많아졌지만, 사방수호와 해역, 공역의 수호자들과는 아무래도 접할 일이 적다.

     그 중에선 아직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자도 있었기 때문에, 카론은 이 휴가를 그들을 위해 쓰기로 정한 것이다.

     

     "역시 사메하다 라멘집은 해산물&소금 맛이니라! 자자 카론, 맛 좀 보거라!"

     "암여우는 아무 것도 모르는군. 여기는 바베큐&된장 맛이 진리! 이거야말로 남자의 라멘이지 않소! 자자, 주인이여."

     "별 그지같은 맛들은 닥쳐 주지 않을래요!? 라멘이라고 한다면 참깨두유탄탄면이잖아요! 귀여운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이니 틀림없다구요 카론님!"

     '나, 히야시츄카를 먹고 싶어서 라멘집에 온 건데......'

     

     비번이라는 이유로 동행하게 한 건 실패였던 모양이다.

     루슈카가 추천해준 라멘집에서, 먼저 도착해서 자신의 라멘을 통채로 내미는 세 사람을 보고, 검은 후드 차림의 카론은 쓴웃음만 지어보였다.

     어제의 일로 필사적으로 사진을 감추는 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된다고 배워서, 이름을 불리는 건 단념한 카론이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눈에 띄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동행해준 고로 효우에, 구치나시 히메, 필미리아에게 그런 배려가 있을 리는 없어서, 네 명이 앉는 테이블에서 부딪히듯이 큰 목소리로 말을 걸 때마다, 주변의 시선은 싫어도 모이고 만다.

     얼굴과 입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카론의 안에는 매우 후회하는 마음이 쌓여갔다.

     

     "그건 또 다음 기회에 스스로 주문할 테니, 나의 일은 신경쓰지 말고 먹도록 해라."

     "그래? 뭐, 카론이 그렇다면야....."

     "그럼, 다음에 찾아오실 땐 부디 바베큐&된장 맛을 드셔보시길!"

     "정말이지. 고기가 들어가서 맛이 진해져야 맛있다고 생각하니 곤란하네요!"

     "뭐어어어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느냐!"

     "흐흐~응! 이 수프의 밸런스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저의 귀여움에는 완전 닿지 못하겠네요!"

     "훗, 본인 것도 침실 안에선 꽤 귀엽다고 정평이 나 있소만."

     "꺄아~! 식사 중에 더러운 이야기를 하지 말아주시겠나요!"

     "어느 쪽이나 비슷한게 아니더냐. 된장에다 탄탄면? 뇌까지 근육이니 그런 진한 맛을 좋아하는 게 아니겠느냐."

     "잘도 말했겠다 구치나시이......!"

     "소금도 진한 맛이잖아요!"

     '애초에 라멘집에서 맛의 진함을 논하는 게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언제까지나 소란피우게 놔둘 수는 없다.

     카론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니, 그것 만으로 세 사람은 노려보기를 그만두었다.

     

     "민폐를 끼치는 군."

     

     온화하기는 하지만, 그 음정에서 분노를 느낀 세 사람은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조용해졌다며 한숨을 쉬고서, 카론은 얌전하게 면을 먹기 시작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외모에서 시작한 모든 것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며, 긴 세월을 같이 지내온 소중한 동료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어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의 자신은, 그를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뭐, 뭐냐 카론. 그렇게 바라보며.......뭔가 묻었느냐?"

     "아니, 신경쓰지 마라. 그건 그렇고, 좀체 오지 않는군."

     "아, 확실히. 점주인 [브레이버 투스] 는 장인 기질이 있어서, 이렇게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걸 싫어하는 녀석인데.....잠깐 물어보고 와줄까?"

     "기다리셨습니다ㅡㅡ!"

     

     말을 끊으며 가게 안에 울린 목소리.

     바닥을 삐걱거리며 다가온 이족보행의 상어는, 물갈퀴가 있는 손에 든 거대한 돈부리라멘을 테이블 정중앙에 놓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일인분으로는 보이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히야시츄카는 아니다.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려진 고급식재의 더미. 그 안에는 머리부터 회 떠진 도미가 통채로 하나 들어있었것이, 대하의 사이에서 보였다.

     

     "......점주, 이건 주문했던, 가?"

     

     주문했던 건 히야시츄카였을 터인데, 모락모락 일어나는 수증기는 어떻게 보아도 시원해 보이지 않았다.

     

     "가하하! 이야,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손님. 잠깐 팔이 이렇게, 떨고 말아서요! 뭐 당신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 식대는 괜찮습니다. 이야, 정말 우연히. 우연히! 왠지 최고의 일품이라는 걸 만들어 보고 싶어졌을 뿐이니까! 자자, 부디 드셔주십쇼!"

     

     카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나 버리는가.

     인싸는 괴롭구나, 하는 농담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주위에 앉은 세 사람을 보았다.

     

     "마, 맡겨주거라 카론......왜냐면 우리들은 마물이지 않느냐! 도와주는 일이야 당연히.....당연히....."

     "우헤헤, 설마하던 간접 키스가 마음껏이라니 이 얼마나 포상인 걸까요. 이것만으로도 밥 세 공기는 가능하다고요!"

     "여기선 주인 공에게 본인의 남자다움을 보여줄 때! 팔, 아니, 배가 울리지 않소!"

     "........."

     

     역시, 사람을 잘못 고른 느낌만 든다.

     동시에, 얼마나 루슈카에게 맡기기만 했는지도 실감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점주. 다만, 이건 이번만으로 해주세요. 평소에 내놓는 식사도, 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카론의 말에, 상어의 어인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지느러미가 붙은 팔로 닦았고, 카론을 향해 한번 절하고 나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

     

     5인분 이상은 될까. 본 적도 없는 사이즈의 그릇 안에서 넘쳐나는 재료가 식욕을 떨어트린다.

     아니, 이쪽에는 세 명의 강력한 마물이 있으니, 분명 괜찮ㅡㅡ

     

     

     

     "꺼억......."

     "이제 못 먹어......."

     "우욱......저, 빛나고 있나요.......?"

     "반짝거리는 게 너라면 말이지......"

     

     괜찮았다.

     하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전쟁에서도 요 근래 보지 못할 정도의 대미지를 입은 단장들과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고, 카론은 무거운 배를 누르면서 해냈다는 달성감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나서 마음이 풀어진 것을 자각했다.

     평소라면 좀 더 필사적으로 회피하려고 했을 텐데, 분위기가 좋은 게 원인인지, 경계심이 옅어진 느낌이 들었다.

     빨리 일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반동으로 점점 축 처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 조차 느껴졌다.

     

     "하아아......"

     

     뭐 어쨌든, 배가 괴롭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에 머물게 되면 가게에 민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 슬슬 일어나서 후드를 고치고, 점주 쪽으로 몸을 향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가자, 하고 아직도 쓰러져 있는 세 사람에게 말을 걸며 일으키는 사이에, 점주는 황급히 카론의 앞으로 이동하여, 예리한 이빨을 딱딱 울리며 뭔가 말하고 싶어했다.

     잘 나오지 않는 말 대신에 내민 것은, 커다란 물갈퀴가 달린 손이었다.

     신음하던 구치나시히메가 즉시 카론을 지키려고 손톱을 세우려 했지만, 카론은 그 손의 위에서 손을 포개어 말린 후, 커다란 상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틀림없는 괴물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정도로 무서운 외모를 하고 있다.

     그런 상어를 보면서, 카론은 자신의 손을 내밀어 천천히 커다란 손바닥을 쥐었다.

     

     "앗.....아아.....! 세상에.....이런 행운이 있어도 좋은 걸까.......!"

     

     그것은 점액으로 약간 질척거렸으며, 꺼끌꺼끌한 피부의 감촉 때문에 손이 따가웠다.

     하지만, 따스함이 느껴졌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점주는 양손으로 카론의 손을 따스하게 쥐고선,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다며 거친 살갗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다른 손님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는 결말.

     혼란스러웠던 자리였지만, 나쁘진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것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준 감정 따위가 아니라고, 확실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또 올게요."

     

     라만집을 나서자, 구경꾼들이 이리저리 퍼지는 듯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잘 둘러보니, 일상을 연기하면서도 먼 곳에서는 시선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소란을 피웠다면 주목을 모으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카론은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카론의 뒤에서 나타난 구치나시히메에게로 향하자, 너무 먹어서 조금 빵빵해진 배를 보고 소곤소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실화냐. 라멘집에서 임신한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고료 효우에님도 똑같은 걸 보면 너무 먹은 것 뿐이라고."

     "카, 카론님께서 단장들을 임신시켰다......?"

     "어? 설마 고로 효우에님도......?"

     "만능의 왕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지 않을까?"

     "폐하께서 고로 효우에님을 임신시켰다고."

     "세상에나. 어디까지 위대한 거냐고 카론님은......"

     

     그런 말을 수군거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카론은 맛있는 음식을 먹은 일에 만족하였다.

     슬슬 해도 기울어 가니, 루슈카가 걱정하기 전에 성으로 돌아갈까 하여 구치나시히메 일행에게 말하려고 고개를 돌려보자, 갑자기 마을 안에 울리는 듯한 큰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오우! 거기 계셨는가 부친 공! 하핫하! 이야 찾고 있었습니다!"

     

     순간 누가 부르는지 알 수 없어서 두리번 거리며 시선을 돌리던 카론이었지만, 인파를 제치면서 똑바로 향해오는 수인을 보고 놀란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늑대와 비슷하지만 그렇지 않은 짐승이었다.

     

     "산잔사자라, 였나?"

     "무사히 지내셨습니까 부친 공! 어명에 따라, 이 산잔사자라,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랭크 10의 수인종 [음신형부].

     동방의 수호를 맡긴 제 10단의 장이며, 그라도라와 비등한 전투능력의 소유자다.

     봉술과 격투술의 익스퍼트이면서도 환술에도 능숙한 수인으로, 국지전에서는 다루는 수단이 많기 때문에 대인전 최강인 고로 효우에조차도 확실한 승리를 얻기가 어려운 올라운더다

     확실히 부른 것은 카론이었지만, 설마 거리에서 만날 줄은 생각치 못했고, 눈앞까지 다가온 2미터를 넘는 거체를 올려다본 채 당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켁. 너구리 할배, 뭐하러 온 거냐 너는......"

     "웬일이래요 사자라! 뭔가요? 개귀여운 절 만나러 왔나요!? 하지만 오늘의 전 카론님의 것인데요!"

     "오랜만입니다 사자라여. 얼마간 보지 못했는데, 여자로 변신해서 남자라도 낚아왔소이까?"

     "하하! 여전히 시끄럽구만. 부친 공의 앞이 아니었다면 날려버렸다고."

     

     동료와의 재회에 기뻐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대화를 머리 한쪽에서 들으면서, 카론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성에는 가지 않았나?"

     "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 늑대가 달려들어서 루슈카가 있는 곳으로 피난갔습니다. 하지만 루슈카는 루슈카대로 기분이 나빠보여서, '부친 공은 거리에 있으니 빨리 사라져' 라고 들어서 말이죠. 혹시, 위험했던 것입니까?"

     "그랬었나. 아니, 오히려 잘 왔다."

     "그거 잘 됐습니다. 그럼, 보고는 어떻게 할깝쇼?"

     "......구치나시, 미안하지만 필미리아와 고로 효우에를 데리고 돌아가 줘."

     "엥? 어째서냐!? 모처럼의 데이트가 아니었느냐. 방해꾼은 눈 감아줄 테니 파르페라도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 카론~"

     

     같이 외출하는 걸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며 역설했지만, 거기에 있는 건 카론이 아니라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이라고 눈치채고서, 구치나시히메는 천천히 물러섰다.

     

     "너희들은 카론의 대신이 되어줘야 하느니라. 자, 가자 변태들~"

     "어라어라? 엄청 무시받는 느낌인걸? 잠깐 여우씨 날개를 잡아당기지 말아주겠어요!? 아아아아, 뜯겨져! 뜯겨진다니까요!"

     "잠깐! 본인도 좀 전의 달달한 대화를 하고 싶소이다! 그러니 목을 조이는 건.......꾸엑."

     

     기모노 여자에게 끌려가는 음마와 오니를 배웅하면서, 갑작스런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산잔사자라가 거체를 굽혀 카론에게 귓말을 하였다.

     

     "정말 괜찮으신지? 성에 돌아가고 나서 해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오늘의 나는 휴가 중이라서. 성에서 일하면 혼난단 말이다."

     "하하! 그랬습니까아! 부친 공도 변하셨다는 말입니까. 이야 그거 잘 됐군요."

     "걸으면서 해도 된다. 말해줘."

     

     정처도 없이 산잔사자라와 나란히 걸으면서, 카론은 보고를 받았다.

     그것은 이 세계에 전이했을 때, 루슈카가 즉시 부탁하였던 천공원환의 감시의 보고였다.

     만에 하나 천공원환과 지하사당에서 마물이 나온다면 나라의 부흥이 어려워질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의 처치였다.

     결과는 기우로 끝났기 때문에 이 너구리 신수를 자신의 곁으로 부른 것이었지만, 보고의 내용은 또 다른 불안을 샘솟게 하는 것이었다.

     

     "외부에서의 간섭?"

     "예. 그 치천사의 말로는, 상대도 상위의 존재인 모양입니다."

     ".....솔직히, 이 세계의 신은 유명무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신앙심이 깊습니다. 신앙이란 세계에 간섭하는 연료가 되며, 개변하는 소체의 수와 같은 의미입니다. 부친 공이라면 신앙이 부족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신경써두어야 할 것입니다. 총본산인 신도는 특히나."

     "알겠다. 연환의 관리자들에게는 내 쪽에서 명령을 갱신해두지."

     "그거 잘 부탁드리겠사옵나이다."

     

     대담하고 강한 목소리로 발랄하게 대답하는 산잔사자라의 독특한 말투에, 카론은 무심코 내뿜고 말았다.

     사자라는 그 반응에 불쾌감을 표하지 않고, 뭔가 이상한가 하며 불안스러운 듯 눈썹을 찌푸렸다.

     

     "아니, 미안하다. 역시 사자라가 맞구나 하고 생각해서 말이다."

     

     "호쾌' 와 '향락' 의 성격이 전면에 드러난 형님같다고나 할까, 호방하고 담대한 행동은 카론이 그리고 있던 사자라와 딱 들어맞았다.

     그게 기뻐서 웃고 만 카론을, 사자라는 늑대와  비슷한 너구리의 얼굴을, 마치 자기 자식이라도 보는 듯한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친 공은, 꽤 사나이다워진 모습입니다."

     "사, 사나이? 내가?"

     

     딱히 운동하지도 않았을 자신의 팔과 몸을 확인하는 카론의 모습에, 사자라는 하하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몸이 아닌 마음말입니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꽤 듬직하고 상냥한 얼굴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속이는 건 너구리의 습성이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는 건 본인의 습성. 생각없이 경박한 단어를 늘어놓는 짓거리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라며 산잔사가라는 카론의 어깨를 큰 팔로 품고서, 나름대로의 키가 있는 카론을 옆구리 밑으로 스윽 끌어당겼다.

     

     "하지만 좋은 전투를 반복하는 것만으론 진짜 남자라 할 수 없는 것. 연마해야 하는 건 꼭 전장만이 아니니까 말이죠."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부친 공, 여자라도 품으러 가지 않겠습니까?"

     "가겠냐! 바보같은!"

     "아핫핫핫하!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자를 모른다는 건 아까운 일이지 않습니까! 자자, 제가 맘에 들어하는 애는 어떻습니까?"

     

     카론이 꼼꼼히 주변을 보니, 샘각에 잠겨있던 사이에 자연스레 대로에서 한 집 뒤에 있는 창관 거리로 이끌렸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직 날이 높은데도 열고 있는 집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시간엔 사람의 인파가 거의 없었다.

     비밀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마침 좋은 장소라고 설명한다면 좋은 이야기지만, 그만 드러나버리고 만 못된 심산이 사자라를 근질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입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카론과 말을 나누는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에에이, 그런 건 상관없다! 어쨌든, 널 부른 건 하나 부탁할 일이 있어서다."

     "오호? 다른 녀석들을 제쳐두고서 본인이라니, 꽤 한정적인 모양이구려."

     

     연기하는 듯한 어조로 움직이며 카론을 풀어놓은 사자라는, 카론의 앞으로 이동하여 용맹하게 무릎을 꿇었다.

     

     "어명, 기쁘게 받들겠습니다. 뭐든지 명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아버지, 나의 왕이여."

     ".......하아. 이건 진짜, 산잔사자라구나."

     

     여기까지 생각하여 그렸던 대로의 캐릭터라며, 어이없음보다도 기쁨 쪽이 샘솟았다.

     그래서, 카론은 사자라를 발탁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럼, 어명을 받거라 나의 자식이여. 마음껏 날뛰도록 하여라."

     

     

     

     

     "이게 무슨 일인가요! 대답해 미라사이파!"

     

     리페리스의 왕성에 비통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주위에 문관이 있는 것도 상관치 않고 미라의 멱살을 잡은 아루아세레스타는, 분노와 절망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힘없는 팔로 흔들었다.

     화관을 몸에 달아서 귀엽게 장식한 전 왕녀의 격앙에 웅성대는 주위였지만, 미라가 얼음장같은 안광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조용해졌다.

     

     "어째서.....당신이 있는데도 그런 일이 된 거야.......! 기사의 명예로서,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아바마마의 앞에서 맹세하지 않았나요!?"

     "맹세했지."

     

     열화와 같은 격정을 불태우는 아루아와는 대조적으로, 미라의 목소리는 싸늘해졌다.

     무저항으로 있는 채의 그녀였지만, 내려다보는 눈에는 실망감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맹세했기 때문에, 전 나라를 위해 좋은 길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이게 나라를 위해? 누가 봐도 멸망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도그마 단장과 바레일 선생, 많은 병사와 기사를 마물에게 빼앗겼어! 어떤 자에게 라그롯 숙부님까지 살해당해버렸잖아? 벌써, 붕괴하고 있는걸........!"

     

     완전히 변해버린 무참한 모습에, 솟구치려 하는 눈물을 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참는 아루아.

     고개를 숙인 채, '천뢰' 를 붙잡은 팔만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바마마까지....."

     

     아루아의 쉰 중얼거림에, 미라는 알현실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은 저 안에 있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과 말을 주고 받았었다.

     하지만, 미라는 이제 그걸 국왕이라고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저것은, 마음이 부숴진 노인이다.

     처음으로 강하게 바깥으로 내비친 의지에 의해 나라를 궁지에 몰아 세운 것에 더해, 이기적인 판단으로 중죄인을 감싼 어리석은 남자.

     순순히 처형했다면 상처없이 끝났을 터인데, 믿고 있던 용자라는 빗장을 잃고서 얻은 자유를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침대에 목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미라는 알드윈과 아루아의 대화를 떠올리며 물어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미라에게 분풀이 해봤자 그녀가 전부 나쁜 건 아니라 생각하여, 아루아는 약간의 냉정함을 찾고 손을 떼며,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무리한 게 당연하잖아요. 에스텔드 바로니아로 시집가라니."

     

     알드윈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대해 커다란 트라우마를 가졌다.

     그 나라가 나타나고 나서 톱니바퀴가 엇나가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건 리페리스 왕이라는 지위에 불과했고, 그걸 잃으면 라그롯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기 않을까 하며 떨었다.

     그래서, 이젠 제대로 된 생각도 못하고 자신을 지키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했던 딸을 내놓는 일 따위 말할 리가 없었다.

     남편을 잃었지만, 세레스타 가문의 며느리가 된 아루아는 아렌하이트의 인간이 되었다.

     그런 황당무계한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다.

     하지만, 죽은 사람처럼 야윈 얼굴로 알드윈이 몇 번이나 거듭한 말은, 주언처럼 아루아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당신은 아렌하이트의 여자다. 나로서는, 오래 체류하지 않고 돌아가줬으면 하는데."

     "......."

     "리페리스를 걱정할 자격이 없는 당신이 뭘 할 수 있겠어. 이 시기에 귀향한 이유는 바보라도 알 수 있는걸? 실태는 알았을 테니, 빨리 성왕예하께 보고하면 돼."

     "미라......당신은 아무 것도 느끼지 않나요?"

     

     여기는 이제, 지키고 싶었던 나라가 아니게 되고 있다고.

     겨우 한 사람만 남은 왕국의 용자는, 차가운 눈동자에 미세한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느끼고 있다."

     

     무력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정도의 죄책감은 있다.

     하지만, 그건 리페리스에 대한 것은 아니다.

     희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수많은 온정을 받았으면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아집을 부리려 했던 자들조차 용서한 마물의 왕에 대한 것이다.

     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겨우 한 사람과 나눈 약속을 지키려 해주는 그 남자에게 보답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어나고, 나아가고, 지나간 이상 되돌릴 수는 없다.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려 할 뿐이다. 아루아세레스타, 당신이 어떻게 하든 자유지만, 내 방해만은 하지 마라."

     

     아니면, 하고 덧붙인다.

     

     "카무히와 합동으로 만들고 있다는 그 검이라도 꺼낼 건가? 꽃을 피우는 것 밖에 못하는 너라도 조금은 싸울 수 있게 되겠지?"

     "미라....."

     "우리들의 힘이 있는 한 무너질 일은 없다. 나라란 그런 법이다."

     

     병사도 기사도, 설령 왕이라 해도, 건강을 해쳤다면 적당한 이유를 들어 적당히 쉬면 된다.

     자신에게 좋은 경우라면 혈통조차도 가치를 산출하게 된다. 겉모습만 고치면 어떻게든 된다.

     알드윈 왕이 있기 때문에 왕국이 존속되는 것이 아니고, 도그마와 바레일이 죽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멸망시키니까 멸망하는 거다.

     미라는, 그걸 배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 아루아에게 흥미를 잃은 미라는, 가슴을 잡고 있는 손을 떼어놓고서, 떼어놓듯이 걸어갔다.

     그녀의 안에 있는 것은, 왕국을 지키는 각오와 약속을 다하려는 의무.

     이번에야말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겠다며, 차가운 눈동자에 엽기적인 결의를 담았다.

     

     '어떤 희생도 기쁘게 지불해 주겠다. 그게 설령 나라고 해도.'

     

     멀어져 가는 미라의 등을 보지도 못한 채, 허물어지듯 앉은 아루아는 소리 죽여 울었다.

     미라가 말한대로, 아렌하이트의 여자가 된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거기다 남편을 잃어 영향력도 없는 자신으로선.

     지금의 아루아로서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올바른지 조차 판단이 안 되었다.

     그 모습이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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