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정념2021년 02월 08일 20시 13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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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휴가를 얻고 나서 7일.
그 사이에, 주로 카론을 중심으로 여러 일이 일어났다.
많은 군단장과 교류를 갖기 위해서라며, 깊게 생각치 않고 바하랄카를 바깥의 세계로 불러내려 해서 에레미야와 그라도라를 크게 당황하게 한, 통칭 '지상 학살 미수사건'.
뭔가 몸에 달만한 아이템은 없나 생각하여, 자기 방을 고레어 액세서리로 가득 채운 결과, 너무 큰 마력량 때문에 루슈카와 키메라들이 혈색이 바뀌어 뛰어든 '카론님의 방 이계화 직전 사건."
카론의 휴가를 호기로 본 구치나시히메와 필미리아가 카론을 유혹하러 대쉬하려는 걸 고로 효우에가 난입하여, 큰 소란이 일어나던 차 알버트에게 숙청당했던 '변태 행드맨 사건.' 등등.
어쨌든, 왕이 휴가를 취했다는 단어로는 표현을 못 다할 일들이 나라를ㅡㅡ정확히는 그 중추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처음의 3일 동안은 평온했지만, 적극적으로 마물과 접하려 하는 카론의 모습은 그와의 사이가 깊어질 절호의 기회로서 모두를 들뜨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카론의 대리로서 분투하고 있는 루슈카는 쓸데없는 일이 늘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 바람에, 지금은 동료가 원인인 문제에 대해선 문답무용으로 무력행사를 할 정도로 다혈질이 되어버렸다.
집무실에서 일을 하는 모습은 귀기서린 면이 느껴져서, 보좌로서 도와주러 왔던 로이엔타레가 거친 펜소리를 들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바보 녀석들......일을 늘려버리다니......또 뭔가 해버린다면 징벌방에서 망령의 먹이로 줘버리겠어......크히힛, 누~구~부~터~쏴~버~릴~까~나~"
섬뜩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일은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보다, 애초에 스트레스는 일 때문이 아닌 카론과 같이 있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다.
좀 더 말하자면, 자기만 빼놓고 다른 단장들이 카론과 놀고 있는 게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밖에 못하는 일이다. 나니까 맡겨졌다. 내가 선택되었다. 부탁받았다.
그 자존심만이 어떻게든 루슈카의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한번이라도 쓸데없는 문제가 일어난다면 즉시 일을 중단하고 카론의 배로 뛰어들어서 마음껏 냄새를 음미하면서 응석부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흘끗 본 시계의 바늘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슬슬 카론님이 일어날 시간이라 생각하면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자, 노크도 없이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루슈카~ 들어봐 들어봐~"
긴장감이 없는 김빠진 에레미야의 목소리에, 루슈카는 반사적으로 공간의 틈새에서 6연장 미사일런처를 꺼내들어 어깨에 메었다.
눈 앞에는 평소의 빵모자를 손에 든 채 흠뻑 젖은 [훅스캇체]. 북실북실한 꼬리는 물을 빨아들여 홀쭉해졌고, 티셔츠는 피부가 비쳐보였다.
기분좋은 분위기를 내보이고 있었지만, 그건 놀다 지친 아이같은 만족감에서 그렇다고 루슈카는 판단한 것이다.
"이번엔 뭘 했냐 너언! 아니면 다른 녀석이냐아!"
로이엔타레가 서둘러 루슈카를 말리는 광경을 보고, 에레미야는 평소의 루슈카라며 안심한 듯 물이 떨어지는 빵모자를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왕이 방 안에 있어서, 모두 조용히 있었는걸?"
"같이 자겠다고 외치면서 카론님의 방에 침입하려고 해서 제 1단과 정면충돌한 참이잖아! 애초에 너희들은 요즘 이 왕성 안에서 너무 소란만 피웠어! 위대한 우리 왕의 장엄한 거주 공간을 어지럽히는 짓만 해버리다니....."
"왕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는데~"
다시 말해, 허가를 받았으니 자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태까지 엄숙했던 장소가 소란스러워지자 위병들에게서 곤란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루슈카는 중대한 사태라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한번 교육시키는 편이 좋아보이네. 그리고 카론님께도 너무 상냥하게 대하지 말도록 부탁해두지 않으면......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야."
"구치나시히메가, 그들이 도착한 모양이래~"
피로를 내보이던 루슈카의 눈 색깔이 바뀌고는, 벽가로 이동해서 가려놓은 채였던 커텐을 열었다.
두터운 벽과 마술에 의해 바깥에서의 소리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창의 저편은 짙은 구름에서 내려오는 비 때문에 회색의 세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루슈카는 처음으로 알았다.
역시 이 정도의 큰 비여서 그런지 마을의 흥청거림도 사그라들었으며, 어둠에 반응한 펠라이트의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왕에게 혼나지 않을까. 잠들 필요가 없는 것과 피로함은 별개잖아~?"
"알고 있어. 너희들을 혼내던 내가 카론님의 짐이 되는 건 사절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자세한 설명도 없이 에레미야가 물어봤다.
일부러 설명하지 않아도, 집무와 병행하여 감시병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던 루슈카는 이해하고 있었다.
힘에 이끌려 모여드는 벌레같은 녀석들이 목을 가지런히 하여 호랑이 입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니, 카론님께 수고를 끼칠 수도 없나."
"어? 괜찮아?"
"왕은 소중한 휴식 도중이잖아? 이런 일에 시간을 할애하게 할 수는 없다."
거기에 사사로운 뜻은 없을, 것이다.
왕의 대행자로서 집무를 다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은 거의 전권을 맡고 있으니, 카론님과 나눈 약속에 반하지도 않는다.
"괜찮아?"
"이러는 편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
"후~웅......"
작업하던 일을 그대로 놓아두고, 루슈카는 로이엔타레와 에레미야도 놓아두고서 집무실을 나가 곧바로 알현실로 향했다.
보폭은 커졌고, 옆에서 보면 화를 내는 것으로만 보이는 속도로 걷는 루슈카의 뒤를 달려온 에레미야가 뒤따라갔다.
"저기, 루슈카~"
"왜."
"나도 아마, 비슷한 마음인걸?"
잘 표현할 수 없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내심을 토로하자, 루슈카는 코웃음쳤다.
그리고, 얼버무리는 건 그만두었다.
"우리들도, 그렇다."
고백한다.
확실히 힘에 이끌려 벌레가 날아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벌레가 소중한 빛에 닿는 건 참을 수 없다.
귀찮게 모여드는, 발정한 암컷이 그의 시중을 들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박멸하고 싶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성에서 고가의 물건은 여럿 있지만, 위대한 왕의 위광을 뜻하는 가장 위압적인 의장이 많이 걸려있는 방은 한 곳 밖에 없다.
홍과 금으로 가득 찬 그 방에는 여섯 명의 방문객이 초대되어 있다.
호화로운 그 알현실은, 다시 말해 나라의 힘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긁어모아 이 방에 쏟아넣은 물건들은 가치도 예술성도 대단한 것이다.
어느 것도 규격 외인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힘의 일부를 건드린 느낌이 들어, 그녀들은 사방에 장식된 지고의 물건들에 눈을 빼앗기고 있었다.
다만, 그 중의 한 명만은 이미 한번 이 방에 발을 디딘 적이 있으며, 어두운 실내의 안에서도 밟게 반짝거리는 물품들에 열중하는 호위대상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인간을 전혀 보지 않은 채, 그냥 먼 앞에서 서 있기만 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 여러 키메라가 있는데도, 어째서 느긋한지 어이가 없다.
"아루아, 여긴 네게 있어 적지가 아니었나?"
지적당하자 눈을 부릅뜬 아루아・세레스타는, 싸늘한 표정의 미라・사이파에게 미안하지 않은 듯한, 하지만 약간 토라진 듯한 표정을 보였다.
"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넋을 잃고 본다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처음으로 진정한 예술을 접했다는 감각에 사로잡힌 아루아.
그 행동은 전투를 모르는 귀족의 딸다운 것이었고, 전투에 익숙치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미라조차도, 친숙한 친구가 다스리는 나라임에도 마음을 놓는 짓은 안 한다.
이 자리에 모인 인간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면' 아주 위험한 입장이었으니까.
"흠. 딱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지만, 허울뿐이라도 귀족이라면 그에 맞는 예절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저 경비들을 보면 카론은 아직 오지 않는 모양이니까."
미라의 지적에 이제야 기분을 전환한 아루아는, 꽃장식을 고치고 나서 키메라들의 모습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무기질한 은색 눈은 여전히 허공을 바라 본 채였고, 대화도 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발치에 있는 개미를 인식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약간 기분 나쁨을 느끼면서, 중심에 선 소녀와 시중드는 엘프에게 다가갔다.
"별고 없으셨나요, 교황님."
천장의 의장에 신경이 팔렸던 소녀는 아루아의 목소리에 어깨를 잠깐 떨고 나서, 서둘러 드레스 풍의 사제복을 정돈하며 미소지었다.
"아루아・리페리......아니, 지금은 세레스타였나요. 오랜만이네요."
그 자리에서 제일 지위가 높은 사람은, 아제라이교의 정점에 선 에이라・크란・아젤이었다.
그녀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요청에 응함과 동시에, 이전의 소동에서 막대한 민폐를 끼치고 만 일을 다시 사죄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화려한 모습의 아루아를 보는 소녀의 미소는 자애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의 꼭두각시로 지내던 멋모르는 소녀가 아니라며, 아루아는 사교로 다져진 얼굴 뒤로 놀라움을 숨겼다.
바라보는 두 사람의 말은 끊어졌다.
에이라가 보기에 리페리스는 원로원을 묵인한 간접적인 가해자였고, 아루아가 보면 딜아젤은 독립한 공국과 공모했던 적대국인 것이다.
미소지으면서도 서로 견제하는 상류계급의 방식에 혀를 내두른 미라는, 에이라의 뒤에 서 있는, 본 일이 있던 엘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아제라이교의 신관과는 정취가 다른 엘프 특유의 흰 복장을 두른 장신의 여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 솔직한 눈매에 깊은 곳에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분명, 엘프의 족장이었나."
".......미라・사이파 기사단장께서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이네요."
"몇 번인가 신도를 방문했을 때......아니, 우연이다."
원로원과 함께 있던 광경을 떠올리고는 입에 담으려던 참에, 미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배려로 곧장 말을 끝내었다.
아제라이교를 피폐시킨 악의 근원의 옆에 있었다는 의미였는데, 이제 와서 다시 자극할 일도 아니라며 미소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은 곧장 다른 화제로 전환하였다.
"그런데....어......."
"오르페아라고 해요. 지금은 에이라님의 보좌를 맡고 있어요."
"오르페아였군. 그럼 엉뚱한 일을 물어보고 싶은데, 저쪽의 두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있나?"
미라가 작게 가리킨 자는 오르페아, 가 아니라 그 뒤였다.
당당하게 벽가에 서 있는 커다란 항아리 가까이에 서서 떠들고 있는 홍과 흑의 드레스를 입은 청자색 머리카락을 한 영애와, 황과 녹의 이국적 복장을 한 갈색 피부의 여자를 가리켰다.
이국적 복장은 사르탄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상인왕 하자르・나트라크의 딸 이리셰나라고 두 사람은 추측하였다.
하지만, 화려한 드레스의 여자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저 분은 이리셰나・나트라크님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가."
장난치는 듯 웃으며 이리셰나를 곤란하게 하는 모습은 어린애같은 천진난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숨기려 하지 않는 강자의 기척이 사람의 접근을 꺼리게 하고 있었다.
용자로서 각성하여, '천뇌' 의 이명을 받기까지 한 미라여도, 섣불리 접근할 수 없다고 직감하고 있다.
어디에서 온 괴물인 걸까.
두 사람의 궁금함을 자아내고 있는 괴물은, 항아리를 보며 이야기하다가 이리셰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저 자들이 폐하를 귀찮게 하는 리페리스의 인간들이네?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서 진상한다면, 폐하께선 날 중용해줄까나. 최소한 이 나라로 오는 걸 인정해 줄 재료는 될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저기서 무시하고 있는 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안되잖아요? 안된다니까요? 왜 조금 전부터 그런 무서운 말만 하시는 건가요.....!"
"글치만, 역시 마음에 들게 하려면 먼저 형식부터라고 하잖아? 다행히 난 '용자답지 않은 용자의 피' 를 짙게 이어받은 덕에, 인간에게 관심도 그다지 없고......"
"카론 폐하께서 이 자리에 저희들과 동시에 불러모은 거라면, 대우는 거의 동등할 거라 생각해야 돼요......! 여기서 섣부른 행동을 해서 폐하의 생각과 먼 행동을 취하면 신뢰를 잃게 될 거라고요......!"
카론이 사르탄으로 날려져 버린 건을 듣고 나서 리페리스를 적대하고 있는 이 폭주 용자를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손짓발짓을 다하며 호소하는 이리셰나.
아버지인 사르탄의 왕 하자르에게서 '출가를 노려보아도 좋다' 라고 들어서 약간 그럴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폭주를 보고 있자니 절대로 그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고 고쳐먹었다.
사랑받도록 태어난 연쇄살인범과도 같은 제국 최강의 용자는, 지치기 시작한 이리셰나에게 키득키득 웃어보였다.
"후후, 농담이야."
"저, 정말인가요?"
"3할 정도려나. 자, 슬슬 온 모양이야."
키메라들의 긴장감이 높아진 건 느끼고, 모여든 인간들이 정렬하였다.
얼마 안 있어, 왕좌의 옆에서 씩식하게 모습을 드러낸 자는 루슈카였다.
뒤따라오는 사람은 없었고, 당당하게 왕좌의 옆에 선 그녀는 가치를 매기듯이 응시하면서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였다.
그리고, 명백한 모멸이 담긴 시선으로 내려다 보았다.
"어서 와라 인간 제군, 우리들의 낙원에. 이렇게 기다리게 한 일은 일단 사과해 두겠지만, 양측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 제군은 우리들의 비호를 받는 자이며, 현재 우리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자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우리들과 제군들의 명백한 차이라는 걸 이해해달라."
도발적이고 위압적인 발언.
그것에 반항할 의사를 보인 것은 아루아였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마물이 위에 서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깨문 입술이 말해주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리페리스에서 살아가고 있던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발산은 아루아에 불과했고, 다른 자들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루슈카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 알기 쉽게,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아는 자와 이 세계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자의 차이가 나뉘었다.
"그럼, 먼저 딜아젤의 교황과 그 보좌인 엘프. 먼저 이번의 빠른 방문에 감사한다. 한 종교의 교황 스스로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후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저희들 딜아젤이 받은 막대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떤 때라도 달려오겠습니다. 부디 그런 말씀 말아주세요."
"그런가. 얼마나 체류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 쾌적한 주거는 보장하겠다."
"감사드립니다."
원로원에 의해 마물배제주의였던 딜아젤이 마물의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광경은 아루아에 있어서 충격이었다.
이것이 진짜 아제라이교였는지, 정말 위화감이 든다.
드레스의 옷자락을 쥐며 감사를 표하는 에이라를 보던 루슈카의 시선이 멀어진 후 자신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루아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 하였다.
"........'천뢰' 미라・사이파. 네게는 여러 감정이 있지만, 지금은 됐다. '그 손으로 속죄한' 모양이니. 하지만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우리나라의 흙을 밟았는지 묻고 싶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먼 길을 거쳐 아렌하이트에서 온 귀빈께서 카론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래 뵈어도 쓸데 없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나만 동행으로 왔으니 칭찬받고 싶을 정도다."
"인간지상주의인 아르마성교를 국교로 하는, 우리들과 같이 설 수 없는 나라의 인간을 들이려 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어떤 이유로 왔는지 들어볼까."
미라에게 말을 걸면서도 루슈카의 눈은 아루아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일과 상황에 따라선 죽이겠다며, 창을 든 키메라들도 살기를 내보이는 와중에, 아루아는 귀족의 가면을 쓴 채 우아하게 인사하였다.
"리페리스 왕국 알드윈의 장녀이며, 지금은 아렌하이트의 세레스타 가문의 며느리가 된, 아루아・세레스타에요. 이전에 우리 조국의 위기를 구해주셨다고 듣고, 그 감사를 직접 카론폐하께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찾아왔어요. 확실히 아렌하이트는 마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교리에 기재되어 있지만, 한 나라를 존중할 만한 기량은 갖고 있답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귀국과 적대할 의지는 없다고 선언하겠어요."
마물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은 강함도 있지만, 유려한 말의 마디마디에 가시가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정과는 별개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적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알려졌다면 섣불리 감추고 속이기 보다도, 에둘러 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아루아.
그 생각은 어떤 의미로 올바랐기 때문에, 루슈카의 흥미는 곧바로 사르탄 일행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르탄 왕 하자르의 딸 이리셰나구나. 상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너희들이 우리들에게 이득을 주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 상응하는 움직임을 기대하겠다."
"감사드립니다. 하자르께서도 여러분께는 전면적으로 협력하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에, 영사관이 건설될 때엔 제가 상주하며 본국과의 긴밀한 라인이 될 것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음. 그럼......."
루슈카와, 스콜라의,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방 안에 서리가 내려앉을 정도의 한기가 채워졌다.
숨이 하얗게 될 것같은 살의의 응수는, 추위에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너구나, 만마와 황천구토를 다스리는 위대한 우리들의 왕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 인간이."
"전 인간 세상에 안녕을 가져다주기 위해 만들어진 여자의 모습을 한 병기. 의지를 가진 칼날로서 휘두를 주인을 고르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지금까지는 당신들의 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턴 변할 거예요. 그건 이해하고 계시지 않은가요?"
"물론. 하지만, 그건 인간을 같은 가치로 놓는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이 세계의 마물을 중용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낙원을 침범하는 악성분자라면 모두 배제하고, 비호를 원하는 선성분자라면 받아들일 뿐인 일."
"그렇다면 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용자는 악이다."
확실한 거절이었다.
"무슨 말을 하던, 지금이 그렇다고 하던, 인간의 세계에 빛을 가져다 주는 게 용자의 사명이며 명제아닌가? 언젠가 우리들의 적이 될 것이 확실한데, 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냔 말이다."
"어머? 그건, 절 위협으로서 보고 있다고 받아들여도 상관없을까요."
"초파리가 나방이 되면 눈에 거슬린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 날아온 드문 나방이라면 더더욱."
파직파직하고 스치는 시선에서 불꽃이 튄다.
이야기의 최종결전과도 같은, 마왕과 용자의 대치중인 듯한, 말로 나누는 격한 구격이 서로의 심금을 상처주었다.
어느 쪽이 먼저 폭발할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루슈카였다.
"이런 일을 할 때가 아니었지. 뭐, 대면으로선 이 정도로 충분할 거다. 인간이라 해도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거절하지 않겠다고 카론님께서 결정하셨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환영하겠다."
루슈카는 용자 세 명을 흘끗 보고 나서 방을 나서려 했다.
거기에 에이라가 말을 걸었다.
"저기, 카론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카론이런 자리에는 얼굴을 내밀었을 터인데,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 에이라의 물음에, 루슈카는 조금 생각한 후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카론님께선 현재 쉬고 계시다. 이야기는 이상이다."
휴가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루슈카가 남긴 단어의 충격은, 인간들의 얼굴에 확실히 드러났다.
경악, 불안, 걱정, 후회.
그걸 보는 일 없이, 루슈카는 방을 뒤로 하였다.
파란의 방아쇠가 될 것이다. 태풍을 불어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것이다.
그 때는, 분명 유쾌한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애초에, 여자 밖에 없는 게 맘에 안들어."
어느 정도 사심이 섞였지만,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스티아 대륙의 평정도 과제로 삼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방해꾼이 확실해질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카론에게 민폐를 끼치기 때문이라며. 루슈카는 그대로 카론의 방으로 향했다.
그 날 밤, 카론이 위통으로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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