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휴가2021년 02월 07일 03시 33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원문 : ncode.syosetu.com/n7769bh/73/
※ 일본에선 서적이 2권까지 나왔네요.
루슈카와의 면밀한 논의 끝에, 카론은 드디어 휴일을 손에 넣게 되었다.
카론의 심사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 처리하지만, 그 이외의 일은 제 16단이 주로 한다는 방침이다.
오랫동안 보좌로서 일해온 루슈카에게 불가능한 정무란 거의 없다. 거기에 부하가 동원된다면 카론이 나설 일은 그야말로 희박해진다.
카론도 알고는 있지만, "그걸 증명시키게 해주세요." 라며 루슈카가 요청했기 때문에, 이번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휴일을 맞이한 카론이 무심코 들어가려 했던 집무실의 문에는 큼직하게 '폐하의 입실은 가능한 한 삼가해주시길' 이라는, 매우 정중한 문체의 메모가 쓰여져 있었다.
"뭐어........?"
적당히 화려한 미스릴의 복도에서 다리를 세운 카론은, 설마 하던 취급에 그만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입실금지' 라고 쓰여진 것 보다는 정신적인 대미지는 적었지만, 여기까지 하는 거냐고 생각했다.
"왜 그래요?"
뒤에서 말을 걸자 돌아본 카론은 메모지를 가리켰다.
호위로 따라온 [키메라]인 레무리코리스는, 사이드 테일로 묶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면서 카론의 옆에 서고선, 종이를 들여다보며 문자를 바라보았다.
"아~"
"뭐, 뭐야 그 반응은."
"아니요 아니요~. 루슈카도 카론님께서 쉬시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구요. 그러니 여기선 못 본 걸로 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런 건가?"
"음~, 그렇게 물으시으면 대답이 어렵다고나 할까......카론님께서 신경쓰인다면 볼 권리는 있으니, 음~....."
다시 말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인 카론은, 이 메모를 무시해도 누구에게 혼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메모지의 문구에서도 나오고 있다.
"저기~ 뭐라 해야 할까요......신경쓰이신다면 들여다 봐도 혼나지 않는다는 걸로 칠게요"
"흐음."
그렇게 들으면 신경 쓰이게 된다.
카론은 레무리코리스에게 주변의 망을 보도록 눈짓을 주고 나서, 천천히 문의 손잡이에 손을 대고 살짝 열었다.
불과 몇 cm의 틈이 생기니, 안에서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알았지, 그 바보견들을 빨리 하천의 정비로 돌려. 그리고 남색귀군단을 먀르코의 조수로 보내. 뭐? 그럼 패버려서라도 따르게 해. 국왕대리의 명령이라고.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국가반역의 죄로 전원 매달아버린다고 전해둬!"
아무래도, 통신마술을 써서 부하에게 지시를 내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앙? 배급이 도달되지 않았다고 불평? 그런 건 마을의 경비한테 말해. 아니면 암여우한테 하라고 해. 어차피 한가하잖아. 정말 이 녀석도 저 녀석도......좀 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 이런 추태가 카론님께 알려져도 괜찮은거야!? 옅까지 얼마나 왕에게 부담을 지워왔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자각하라고! 죽인다!"
그 즈음에서, 카론은 문을 살짝 닫았다.
"어라, 괜찮나요?"
"음. 뭐.........음."
역시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은 위대하다.
화면조작으로 모든 지시를 내릴 수 있고, 진정이나 문제도 한눈에 알 수 있으니까.
만일 이 기능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진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분명히 큰일인 듯한 루슈카를 돕는 것은, 그녀에 대한 신뢰를 배신하는 행동이다.
몸 상태가 완전해질 때까지. 대처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그렇게 약속한 카론은 쉰다는 결단을 내렸다.
부하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하는 건 좋지 않다.
결코, 지옥의 사자같은 루슈카의 박력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빨리 몸이 나아야겠군."
"예! 제대로 쉬어주세요!"
방의 안에서 분전하는 보좌관을 향해 작게 "힘내라" 라고 중얼거리고서, 카론은 레무리코리스를 데리고 걸어갔다.
"그런데, 카론님께선 어디로 향하실 건가요? 너무 방을 벗어나면 모두 걱정한다구요~?"
"그런 말 마라.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방에서 가만히 있기만 하면 기분도 안 좋아진다. 아무 것도 안하면 진정되지 않아."
"그런 법인가요?"
"레무리코리스는,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 건가?"
"저는 성과 카론님을 지키는 게 역할이라서요~ 카론님께서 방에 계실 땐 일하는 중이라서 생각해본 적이 없으려나~"
"여기에도 워커홀릭이......"
"네? 뭔가요 그건?"
블랙 기업같은 환경을 무의식적으로 구축해온 폐해를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눈자위를 꾸욱 누르는 카론.
하지만 마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관념이기도 하다.
그건 제쳐두고, 카론이 망설임없이 향하고 있는 곳은 성의 바깥이었다.
계층의 이동에 사용되는 전이문으로 1층까지 이동하고, 걸어서 그대로 왕성 앞의 정원으로.
주변의 마물이 카론을 눈치채고 부동자세를 취하는 걸 손으로 가볍게 제지하고서, 똑바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 어이. 카론님은 지금 요양중이 아니었나?"
"난 휴가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절해라 절. 위대한 우리들의 왕이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절하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
"카론님을 보면 평생 행복해진다는 소문 진짜일까?"
"소문인 게 당연하잖아. 보지 않는 녀석도 행복하게 해주시니까."
"캬."
소곤소곤 귓말을 하는 드라이어드와 마니코이드, 리저드맨과 그렘린들.
카론이 성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이전과 비교한다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왕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모양이어서, 조금 시선을 보내는 것 만으로도 마물들은 딱딱히 굳었다.
그런 모습을, 지금의 카론은 들여다 볼 여유가 있다.
"내가 오면 일에 지장이 생겨버리는가."
"그런 일은 없다구요. 카론님을 뵙게 되면 모두들 기뻐하니까요~"
".......역시 모습을 숨기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그것도 대답하기 어렵네요. 그게,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 보다는 의미가 있냐 없냐라고 해야 할까......으으으, 저로선 루슈카처럼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는데요~"
".......?"
"아아, 아뇨아뇨 이쪽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사이드 테일을 묶지 않은 쪽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리며 머리를 감싸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파닥파닥 휘젓는 레무리코리스.
부디 이 마음이 전해지라며, 전신으로 집무실의 메모지 이상의 생각을 내보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에 관해선 루슈카의 방침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천을 뒤집어 쓰면 마물들에게 눈치채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골몰해있던 카론은 레무리코리스의 반응에서 뭔가를 깨닫는 일은 없었다.
"그, 그래서! 결국 카론님은 어딜 향하고 계신가요!?"
"그래.....마을에 가보고 싶다."
흘러가 버린 화제를 되돌렸기 때문에, 이번엔 순순히 대답하는 카론.
그러자, 레무리코리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카론님, 다른 키메라를 불러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필요한가?"
"만의 하나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돼요. 방해가 안되도록 주변에 '녹아들어서' 동행할 거니까요."
"그런가....그럼, 맡기겠다."
"예. 그럼 문의 근처에서.....내곽 수호자 두 사람의 옆에서 기다려주세요."
레무리코리스는 깊게 고개를 숙인 후, 녹아드는 검은 소프트크림처럼 지면에 융합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혼자 서 있는 카론은 사라진 레무리코리스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깊게 한숨을 쉬고 나서 콘솔을 조작하여 검은 천을 꺼내들고, 머리부터 푹 뒤집어 썼다.
후드의 아래에서 고개를 숙인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떠올라있었다.
'그렇게나.....'
그렇게나,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숨으려 하지 않고 걸어다닐 정도로, 난 강해졌나?'
어째서, 이렇게 스스럼없이 움직이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나 무섭다 무섭다하며 소란을 피웠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일 조차 잊고서 나돌아다닐 만큼 대담한 녀석이었나?'
누락된 것 같은.
빠져버린 것 같은.
빼앗긴 것 같은.
잊혀진 것 같은.
성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스스로에게 납득이 안 되었고, 익숙해졌다고 말하기에는 당돌하게 생각된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생각에 모래로 문지른 듯한 흰 빗금이 생겼다.
현기증과는 다른 싫은 감각인데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말을 걸고 있는 듯 하면서도, 물어보고 있는 듯한....
"카론님."
이름을 불려서, 카론은 얼굴을 홱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성의 정문을 지키는 홍과 창의 자매였다.
성을 두르는 성벽을 수호하는 제 13단의 단장인 [사자・해태] 의 두 사람은, 카론과 눈이 마주치자 들고 있는 무기를 허공에 수납한 후 공손이 머리를 숙였다.
모르는 사이에 숨을 멈췄던 모양이어서, 토해낸 공기는 뜨거운 납덩이같은 무게가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성내의 부지라고는 해도 혼자서는....아니, 누구든지 시중을 동반해주세요."
매우 진지한 어조로, 진지한 표정으로 자아내는 충고에 카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홍과 백의 무녀복과 비슷한 복장을 입은, 사자의 탈을 머리에 올린 소녀가 말끝을 흐린 것은, 이전의 만남에서 카론이 입에 담은 구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맙다 코우렌. 하지만 괜찮다. 레무리코리스가 다른 키메라를 부르러 간 것 뿐이니까. 너희들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들었지만, 잠시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랬었나요~. 그렇다면 찾아오길 잘하셨어요. 아, 대기소에서 쉬시겠나요?"
"어이, 소우렌. 그런 곳에선 카론님을 만족스레 대접해드릴 수 없다고."
"코우렌~, 거기서 우리들 13단의 실력을 보여줄 부분이잖아~"
"그런가. 하지만, 그 쓰레기장 같이 되어버린 장소를 치우려면 시간이ㅡㅡ"
"아~! 아~! 코우렌은 너무 솔직해! 그래도 잠~깐 입을 다물고 있어줘~! 카론님! 저기,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하하, 상관없다. 여차할 때에 대비해두고 있다면, 사소한 일에 흠을 잡을 생각은 없다."
"죄송해요......이제부터 제대로 청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잠깐 코우렌!? 왜 신경쓰지 않았는지 계속 이상했었는데, 그게 이유였어!?"
"으응?"
"아으아으아으.....언니의 교육도 이제부터 힘내도록 할게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코우렌의 옆에서 하염없이 우는 소우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각하던 일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안 좋은 감정을 섞지 않고 의사소통이 되고 있으니까, 일단은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한 카론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려는 생각이신가요. 그 모습을 보면, 마을의 시찰로 보이는데요."
"응? 아, 그럴 셈이다."
"그랬나요. 그거 좋은 일이네요."
그렇게 말하고, 소우렌은 거의 보이는 일이 없는 귀여운 미소를 보였다.
"문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백성의 활력을 나날이 비추어주고 있어요. 이 세계에 온 이후에도 그들은 우울해하지 않고 살아왔었지만, 마왕군의 군세를 맞이해 승리를 거머쥐고 나서는 한층 더 활기차게 되었다고 실감하고 있어요."
"그런가. 성의 창문에서도 그 활기가 전해져 온다고 생각했지만, 소우렌이 그리 말한다면 틀림없겠구나."
"주제넘은 일을 하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마을을 걷는 건 모두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흐음."
"분명, 기뻐할 거예요."
".......응?"
마중나온 자가 있다고 말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던 카론은 약간 마음에 걸리는 소우렌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와 동시에, 코우렌의 손이 재빨리 뒤로 돌아가서 소우렌의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자, 소우렌도 이 쯤 해두자~. 알았지~"
"우읍우읍."
"어째서라니! 거기서부턴 암묵적인 이해라는 걸로~. 아, 카론님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분명 기운찬 마물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아, 그래......"
"카론님~, 기다리셨어요~"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였던 카론이었지만, 왕성에서 달려온 레무리코리스가 불러서 다시 생각을 멈추었다.
처음으로 시간이 났기 때문에 들뜬 것이라고 느낀 기분에 위화감은 없었지만, 이건 분명히 자신의 감정의 동요였다.
왕이 거리로 나온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는 자는, 카론 이외의 마물들일 것이다.
검은 천으로 전신을 가려도 결국은 단순한 인간.
누구보다도 0에 가까운 분위기가 흐르고, 거기다 왕의 수호를 담당하는 제 1단을 데리고 있다면, 그 자가 누구인지는 일목요연하다.
밋밋한 촌충처럼 생긴 [미트웜] 은 점심식사를 멈추고서, 뒤를 지나간 남자를 보았다.
농사의 방침으로 다투던 [루프스 운디네] 와 [실프 베르세르크] 는 말다툼은 멈추고 시야를 메운 검은 천을 놀라며 바라보았다.
비번이라며 술에 절어서,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부르던 [거미남] 과 [릿퍼 맨티스] 는 정면에서 다가오는 검은 천을 보고 손을 향하다가, 서둘러 서로의 손을 누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인간을 보았다.
"응?"
갑자기 등 뒤가 조용해진 걸 느낀 카론이 돌아보자, 주민들은 당황한 듯 그 자리와 안 맞는 행동과 대화로 웅성거리며, 보지 않았다는 어필을 하였다.
"음~? 기분 탓, 인가?"
"카론님~, 가요~"
"아. 미안."
마음에 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레무리코리스에게 불린 카론은 산보를 재개했다.
왕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이 검지를 세우자, 마물들도 대답하는 듯이 입 앞에 검지를 세워보였다.
나라 전체가 카론의 대응법을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거대한 마을이지만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시골보다도 빠른 모양이었다.
애초에, 왕을 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반응인지 알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하지만, 이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삶에 익숙해진 어른들이 주가 되어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라면 입을 맞추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이 날 처음으로, 카론의 앞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라미아의 소년이 멈춰섰다.
"왕이다~!"
카론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키메라들도 얼어붙었다.
거기다 주변 사람들도 얼어붙었다.
순진무구한 눈매로, 누구나 자랑으로 생각하는 위대한 현왕과 만난 일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반인반사의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억지로 끌어낸다?
협박해서 쫓아낸다?
설득한다?
무슨 짓을 해도 카론의 눈에 보이고, 카론의 이미지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행동이다.
아무래도 부모는 근처에 없는 모양이어서, 서둘러 달려오는 라미아의 모습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북적거렸던 거리의 모습은 어딘가 사라졌고, 마물들은 숨을 삼키며 이 비상사태의 전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카론은 떨리는 목소리로, 후드의 밑으로 약간의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떻게든 말을 해보았다.
소년은 그렇지 않다는 듯, 입에 검지를 대면서 얼굴을 돌리는 카론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도중에 다른 일을 떠올린 듯 화제를 재빨리 바꾸었다.
"그래! 왕이시여, 감사드립니다!"
"뭐?"
"저, 그라도라님 덕분에 살았어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말했더니, '카론님께도 감사해야 한단다' 라고 들었어요! 덕분에 평화로워졌다면서요!"
그 말에는 겉도 속도 없었다.
마음을 정확하게 부딪히는 대사는, 폭력적인 상냥함이었다.
"그러니, 왕이시여. 우리들을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소란에 섞여 몇 번이나 울렸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도 상상이 안 된다.
긴장된 공기가 감도는 와중에, 카론은 돌리고 있던 얼굴을 되돌리며 천천히 무릎을 꿇고는, 소년의 머리 위에 살짝 손을 올리며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이쪽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나라에서 살아줘서 고맙구나."
모든 마물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난 왕이 아닌데. 만일 만난다면 전해줄게."
"그런가요?"
"왕께선 쉬고 계시다. 이런 멋진 만남을 찾으러 말야. 그러니, 그렇군..... 아마 왕께선 쉬는 중이라 안 계실 테니, 다시 일하러 돌아오면 전해줄게."
빙 둘렀지만 전할 거라는 말을 고른 후, 카론은 제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듯이 말을 걸었다.
소년은 이상해 하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서 그런지, 뭔가 깨달은 듯 표정을 확 빛내고는 "알겠습니다!" 라고 큰 소리를 내었다.
"자, 조심해서 가라.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항상 지켜보고 있다."
"감사합니다! 왕......이 아니라, 저기.....좋아합니다!"
쓰다듬는 손을 멈춘 카론에게서 멀어지며, 기운차에 외친 소년은 부끄러워하면서 뱀의 몸통을 구불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작은 등을 바라보면서 일어난 카론은, 만족스레 미소지었다.
콘솔에 표시되는 미션과, 종이 위에 쓰여진 문자와, 단장들이 말해주는 전이 아니라, 처음으로 살아있는 마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어린 눈으로 보아왔던 경치였다는 점과, 소문을 들은 모습으로 자아내는 더듬거리는 말이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감개무량함도 남달랐다.
"젠장, 눈물이 그치질 않아....."
"나도 그래......"
"천사인가? 신인가? 아니, 왕이였지."
"역시나 카론님.......이건 후세까지 전하지 않으면......"
"나도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소만."
지켜보던 마물들은, 방금 전의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자 바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만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러 갈 기세였다.
다만, 지금 일어난 일을 이유로 카론을 떠받들 수는 없다.
카론 자신이 왕은 쉬고 있으니 이 자리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왕이 거리에 오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그들은 지켜나가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보면, 솔직하게 호의를 전한 라미아의 소년 쪽이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도 든다.
"그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려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 카론.
생각치 못한 만남에 기뻐졌던 감상에 젖어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뚝 그쳐버린 마물들의 왕래를 방해하고 말았나 싶어서 이동을 개시했다.
하지만, 생각치 못한 만남이란 운과도 같은 것. 원해도 찾아오지 않고, 원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아, 카론님!"
라미아의 소년과 비슷한 정도의, 하지만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카론의 이름을 확실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이제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불렀다.
비상구의 마크같은 자세로 경직된 카론의 옆으로 달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라미아의 소년과 비슷한 정도로 기뻐하는 듯한 얼굴로 후드의 안을 들여다 보며 미소를 만개하였다.
"오랜만이에요! 와아, 이런 곳에서 뵐 수 있다니요!"
".....리레, 였구나."
다크 브라운의 원피스와 흰 에이프런 모습의 엘프 소녀는, 이름을 불리자 뛰어오를 것 처럼 기뻐했다.
이전에 봤을 때보다도 피부가 윤택해졌으며, 전신에 난 흉터같은 문신에서 아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되었다.
"예!"
"......왕은 쉬고 있으며, 당분간 안 계신다."
"네? 하지만 카론님은ㅡㅡ"
"좋아, 리레. 어딘가 추천할 만한 가게를 소개해주겠니. 거기서 대화를 하자꾸나."
"네에? 아, 예."
"좋아. 그럼 빨리 데리고 가줘. 알았지, 사적인 대화는 엄금이다? 빨리 가급적 재빠르게다."
강한 어조로 서두르게 하여, 당황한 채로 들은 대로 안내하기 시작한 리레의 뒤를 카론은 빠른 발걸음으로 쫓았다.
빨리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었다.
자신이 카론이라고 들켰기 때문이 아니다.
더욱 부끄러운 가능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나의 일이 다 들켜버렸다던가?'
새삼스럽다.
뒤에서 쫓아오는 레무리코리스를 흘끗 쳐다보자, 재빨리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한다.
'아니아니, 설마. 그래, 설마....우연히.....로 있어준다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런 모습으로 걷고 있던 자신이 바보같지 않은가.
오늘 이야기했던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던 건가.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도 된 기분의 카론은, 죽고 싶어질 정도의 부끄러움을 후드로 가리고, 그냥 리레를 쫓는 수 외의 마음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도착한 곳은 멋진 찻집이었다.
그야말로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안티크 풍의 실내에, 동화 속 세계에 뛰어드는 것처럼 컬러풀하게 튀어나온 소품이 군데군데에 늘어서 있는 가게다.
리레와 레무리코리스와 함께 테이블에 앉은 것은 조금 껄끄럽지만, 따로 손님이 없는 것은 마침 좋은 일이었다.
"리레....."
"저기, 예....."
"넌, 한 눈에 내가 카론이라는 걸 알아챘나?"
고개를 세로로 끄덕이려 했던 리레였지만, 갑자기 덮쳐든 강렬한 살기에 전신을 떨었다.
그것은 옆의 레무리코리스에게서 날아왔으며, 발치의 그림자에 떠오르는 무언가의 것이기도 했다.
아직 젊어도 험난한 인생을 걸어온 리레다.
여기서 수긍한다면, 내일의 빛은 보지 못할 거라고 직감으로 이해했다.
"저기....후드의 밑이 보였을 때, 왠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요. 저기, 정말 그랬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냥 확신해서 기뻐하며 부르고 말았네요."
"정말인가?"
카론의 위압이 늘어났다.
하지만 살기도 같이 늘었기 때문에, 리레는 바늘방석에 올라탄 상태다.
카론을 생각한다면 진실을 말해주는 편이 제일인 느낌이 들었지만, 키메라들은 카론의 자존심에 이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사실이에요....."
죄송해요 카론님, 하고 리레는 마음 속에서 사과했다.
귀엽게 미소짓는 리레의 얼굴을 바라보는 카론이었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약간 납득하고서 몸을 의자에 기대었다.
확실히 후드만으로는 얼굴이 보이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인간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마물들이라면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런 후에 신경을 써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라면 시점도 낮으니 더욱 보이기 쉬운가, 하며.
그 결과, 우연히 들키는 일도 있었지만 신경을 써준 것이었다는, 누구에게도 적당히 좋은 생각으로 결론짓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뭔가 가면이라도 만드는 편이 좋겠군. '흑의 법의' 는 벗지 못하니까 복장을 변경할 수 없는 게 난점이지만."
"그렇네요~ 아, 저희들이 보물고에서 괜찮아 보이는 거라도 찾아올까요?"
"아니, 내가 쓸만한 것이 보물고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맡겨만 주~세요! 성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저희들 키메라가, 딱 맞는 걸로 찾아올 테니까요~"
"그런가.......그럼, 일단 부탁해두지."
얼굴을 숨기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카론과, 그걸 도와주려 하는 레무리코리스에게, 리레는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이 세계에 사는 인간과 마물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부에 차있는 마력이 카론에게는 전혀 없다는 시점에서 곧바로 눈치채인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자. 모처럼 만났으니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상관없을까?"
"예. 도움이 된다면 뭐든 대답해 드릴게요."
"그럼 묻겠는데."
혼자만 살벌한 분위기와 관련이 없었던 카론이, 왕의 풍격을 내보이면서 리레에게 물어보았다.
후드에서 보이는 소리개색 눈동자에, 리레도 공포와는 다른 긴장을 품었다.
"바깥에서 와서 이 마을에 정착한 리레가 보기에, 지금의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리레는 원래 신도의 엘프였으며, 제반 사정에 의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을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나라를 아는 이세계의 주민일 것이다.
카론의 뇌리에 한순간, '그 외에도 나라에 맞이했던 인간이 있다고' 라는 생각이 났지만, 그건 바로 머릿속 한켠으로 치웠다.
리레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감으며, 가만히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모르겠어요."
라고, 주저하지 않고 입에 담았다.
"호오?"
"저 같은 아인과 수인이라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바로 익숙해질 테고, 마을 사람도 받아들여 줄 거라 생각해요. 실제로도 전 지금 일하는 가게 분들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전신에 문신이 있는 엘프 소녀라는 건 드문 법이지만, 수많은 종족이 같이 살아가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선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다.
루슈카처럼 단 한 마리만 존재하는 종족의 마물도 있기 때문에, 드물다고 해서 차별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나라를 병합하면서 영토를 확대한 과거가 있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 외부의 마물이 찾아오는 일은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꽤 배타적인 취급을 받지만, 이곳의 법을 따른다면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카론님이라는 커다란 존재에 대해 반감을 가진 자는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네요. 아인과 수인이라 해도, 이 마을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바로 충돌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니, 공존한다고 해도 상대를 고르고 나서가 아니면...."
이것은, 단장들이 제창하는 힘에 의한 통치와 한없이 가까운 이야기다.
그 시점이 안이냐 밖이냐의 차이인 것 뿐이고, 본질은 다름없다.
하지만, 다른 시점에서 말하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의견이었다.
"과연. 확실히 리레의 말대로다. 죄를 벌할 때도 상당히 강압적인 수단을 취하는 일이 있는 이 나라에서 인간을 살게 하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아보이는 군."
"저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꽤 과격하던데요..... 같은 일을 인간에게 한다면, 상당한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해요."
"흐음. 레무리코리스, 어떻게 생각하지?"
"말로는 조금 확 와닿지 않았지만, 대개 찬성이네요. 아마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주민도, 비슷한 이유로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런가. 아니, 꽤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우리 측으로서 이야기해 준 점이 좋아."
"도움이 되어 영광이에요."
카론에게 칭찬받자, 리레는 이제야 도움이 되었다며 마음속 깊이 기뻐했다.
몇 번이나 종군의 희망을 내었지만 통과되지 않아서, 생명의 은인을 위해 일하는 걸 포기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와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에 눈물을 띄웠다.
"왜 울지?"
"아니요, 아니요.....기뻐서요. 당신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넌, 언제나 깨끗한 감정을 내게 보여주는 구나."
"네.....?"
"아니, 아무 일도 아니다. 배는 고프지 않나? 뭔가 좀 먹자. 저기, 메뉴는......"
카론이 얼버무리듯이 테이블 위를 찾고 있자, 달려온 소녀가 가슴에 메뉴판을 푸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색의 드레스에다 흰색 에이프런, 금색 머리카락을 리본으로 묶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소녀는, 최고의 스마일을 보이며 카론에게 메뉴를 내밀었다.
"이걸 써주세요!"
"아, 고맙군. 에~......[앨리스] 인가. 이전에 16단에 있던....."
"와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에요 카론님ㅡㅡ앗, 죄송해요! 몰래 오셨는데......"
"음. 아니, 상관없다. 다만 소문을 퍼트리면 곤란하지만."
"물론이에요! 저, 입은 무거우니까요!"
턱, 하고 평평한 가슴을 치며 콧김을 내뿜는 모습은 정말로 아이같았고, 어딘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양이었다.
귀여움을 전면에 드러내는 앨리스의 모습에, 리레와 레무리코리스는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질 나쁜 무리들이나 악의 조직의 간부같은 성격이어서, 그것이 재앙이 되어 가게에 파리만 날리게 하고 있는 소녀로, '토막베기' 라는 매우 섬뜩한 이명을 가진 소녀가,
"글치만 글치만, 정말로 와주셔서 기뻐요! 계속 계속 경애하고 있던 분이셨으니까.....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네요!"
시치미를 몇 개라도 뗀 듯 내부의 마수를 숨기는 짓을 하는 건, 세계가 끝난다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무리코리스는 확신했다.
이 앨리스, 마을에서의 소란도, 여기에 오고 나서의 대화도 전부 파악하고 있으며, 카론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캐릭터 만들기를 하고 있다고.
귀여움 한가득인 아이라면 먹힐 거라고 판단하여,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자신을 굽혀서 이미지를 바꾸었다고.
그걸 앨리스도 눈치챈 것일까.
레무리코리스에게 내민 메뉴를 쥔 손에는 혼신의 힘에 의해 떠오른 근육과 혈관이 솟아나 있었고, 쥐고 있는 부분이 극한까지 압축되어 있었다.
"키메라 씨도, 여기요?"
방긋한 표정이었지만, 약간 닫힌 눈꺼풀 저편에 보이는 늑대의 눈동자는, 먼 옛날 사선을 넘나들던 시절의 잔혹한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감사."
"예, 리레도!"
"아, 예예예예."
앨리스의 평소의 모습을 잘 아는 리레는, 이제 무서움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카론이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동석한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을 것 같았다.
'이 아이, 성격에 '급함' 과 '교활' 이 있는데도, 이렇게 솔직하구나.'
그런 일은 전혀 모르고, 자신이 붙여준 성격도 믿을 만한 게 못된다며 성격을 확신했던 걸 부끄러워 하는 카론.
처음의 생각이야말로 정말 딱 들어맞았지만, 그걸 수정해줄 사람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즉흥적인 외출은 카론에게 있어 유의미한 것이 되었고, 레무리코리스에게는 지옥같은 한 때로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728x90'판타지 > 에스텔드 바로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정념 (0) 2021.02.08 3 음신 (0) 2021.02.07 <5장 인외마경> 1 간섭 (0) 2021.02.05 에필로그 거절 (0) 2021.02.05 20 신위 (0) 2021.02.04 다음글이 없습니다.이전글이 없습니다.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