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장 인외마경> 1 간섭
    2021년 02월 05일 21시 27분 2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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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7769bh/72/

     

     

     

     

     레스티아 대륙의 세력도는 크게 덧칠되었다.

     여태까지는 리페리스 왕국과 신도 딜아젤에 의해 양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양쪽 다 패권에서 멀어졌고, 갑자기 나타난 마물의 나라에 넘겨주는 형태가 되었다.

     신도는 아제라이교를 좌지우지하던 원로원과 신성기사단, 그 뒤에서 손을 잡고 있던 라돌 공국을 잃었고, 리페리스는 많은 귀족과 영토를 잃었다.

     그리되어 이제부터 힘에 의한 압정이 펼쳐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지금까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딜아젤은 여태까지 박해를 받아오던 엘프가 대두되어 건전하게 운영하고 있고, 리페리스는 피해는 컸어도 나라가 기우는 사태까지는 안 가서, 비교적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변한 점이라고 한다면, 패권을 거머쥔 나라와 마주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외국에게 무리한 조약을 들이미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인간과 동떨어진 종족이 살면서도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고, 커다란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고압적으로 대하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시가지의 사람들은 무서운 마물에 두려워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이지만 미미한 이해를 하게 되어, 가끔 찾아오는 행상들이 괴이한 시선을 보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장사에 민감한 자들이 그걸 놓칠 리가 없다.

     대표적인 일로서, 마력만을 연료로 하여 빛나는 기묘한 광석 펠라이트는 염가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급속도로 마을 안에 보급되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이 대륙에 끼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니, 커다랗게 되도록 만들어 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우뚝 선 백아의 탑. 그 중앙에서 한층 높게 우뚝 선 왕성의 집무실에서, 대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왕이 머리를 누르며 책상 위의 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크브라운의 벽지에 바닥의 한 면은 레드 카펫. 마력으로 동작되는 펠라이트가 낮에도 방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호가니로 만든 집무용 책상에 들어오는 햇살은 강하게 닿고 있었기 때문에 더워서, 흰 와이셔츠에다 어깨에 건 검은 코트라는 기묘한 조합의 복장을 입은 채, 카론은 곤란해하고 있었다.

     

     "스콜라가 보낸 연애편지.....그것도 요즘엔 매일 오는군.....도대체 뭘까, 약간의 괴롭힘인 걸까."

     

     카론이 쌓고 있던 것은, 스콜라아이언베일의 이름이 쓰여진 편지의 산이었다.

     아랫쪽엔 열린 흔적이 있지만, 윗쪽은 손도 안 대고 쌓아올려져 있었다.

     내용은 가벼운 인사에서 시작하여 카론을 생각하는 마음을 글로 짓고, 마지막엔 반드시 '언제 옆으로 갈 수 있나요? 고대하고 있으니 빨리 부탁드려요' 같은 독촉으로 끝난다고, 신도의 엘프가 해석해 준 후에야 판명되었다.

     처음엔 카론도 진지하게 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계속되면 역시 싫증이 나는 것이었다.

     

     "뭐, 일단 할 일은 했으니 적당한 때이긴 하지만......"

     

     잘 알 수 없는 사랑을 보내오는 그 용자를 성에 초대하면, 왠지 여러 곳에서 폭탄이 작동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특히 루슈카와 구치나시히메가 무섭다. 단순한 카론이어도 그건 눈치채고 있다.

     의자에 앉은 채 기지개를 켜는 카론의 귀에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자세를 바로 할 시간을 갖고서 입실을 허락하자, 문을 열고 비스크 돌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카론님. 방을 떠나게 되어 죄송했습니다."

     "안녕한가 루슈카. 이쪽이야말로 여러가지로 떠안기고 말아서 미안하구나. 그다지 쉴 수도 없었겠지."

     "결코 아닙니다. 카론님께 명을 받는 일은 지고의 행복입니다. 무엇 하나 괴롭지 않답니다."

     "일단, 일이 끝나면 다시 모두에게 휴식을 취하게 할 셈이다. 조금만 더 힘내거라."

     

     유려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인 집무보좌인 루슈카를 보며, 카론은 온화한 어조로 자세를 되돌리도록 고하였다.

     자세를 되돌린 루슈카는, 그런 카론의 모습에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제 일 개월 반이나 지났습니다. 난민들의 정리도 끝났으니, 카론님께서 먼저 휴식을 취하셨으면 하는 것이 모든 군단장들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듣자, 카론은 커다란 창문 바깥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확인하려는 듯 중얼거렸다.

     

     "벌써, 일 개월이나 지났는가......빠르구나."

     

     마왕의 침공을 물리친 후 1개월.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그 날 이후로 계속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대륙의 북부 일대를 리페리스 왕국에게서 할양받은 것으로 이제야 나라에서 떨어진 곳에 영토를 얻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성의 외곽 주변에서 살고 있던 난민들을 그곳으로 이주시키게 된 것이다.

     거리나 규모를 산출하여 난민을 분배하고, 그곳에 새로운 주거지를 건설한다고 하는 커다란 임무는, 나라에 상주하고 있는 군을 모두 총동원해서야 겨우 끝이 보이려는 참이었다.

     여태까지 지하의 사찰에서 살고 있던 수생 마물들도 북쪽 바다로 이동했으니, 이세계 전이 직후부터 문제였던 난민문제가 일단락되려 하고 있었다.

     토지가 너무 좁아서 아직 전원을 만족시키기에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쌓여있던 불만이 일정량 해소된 것은 틀림없었다.

     카론은 거의 이틀 전까지 종족의 상성을 가미한 생활권의 지정으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난민 전체의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분배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없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눈앞의 편지를 마구 생성 중인 용자의 처우가 제일 큰 문제로 꼽히겠지만, 그건 지금은 잊기로 한다.

     

     "난민들이 북부의 각지로 분산되면, 이걸로 막혀있던 1차 산업도 약간이지만 회복하겠죠. 현재 상태에서는, 아무리 해도 이전처럼은 어렵겠지만......"

     "그 시절에 비한다면 확실히 작은 영지다. 어쩔 수 없겠지."

     "약간이지만 군용의 토지를 확보했으니, 거기서 작물의 성장속도를 조작하는 등의 실험을 해서 데이터를 얻고, 성과에 따라서 백성에서 보급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뭐, 드라이어드와 흙에 영향을 끼치는 특성의 마물을 각 촌락의 상주시키는 방법도 있다. 아직 자원에 여유가 있으니, 제대로 확립되고 나서 실행해 줘."

     "알겠습니다."

     

     경애하는 주인에 대한 최대한의 예를 보여준 루슈카였지만, 문득 코를 자극하는 익숙치 않은 냄새에 눈썹을 씰룩씰룩 움직였다.

     

     "여자의 냄새가 나네요."

     

     정말로 휴식을 취할까 생각하고 있던 카론은 온몸을 경직시키며, 샘솟는 듯 식은땀을 흘렸다.

     

     "뭐, 뭐일까나?"

     "그 편지에서, 낯선 인간 여자의.....분명 카론님께서 돌아오셨을 때도 같은 냄새가...."

     "........"

     

     어째서일까.

     카론의 눈에는, 루슈카의 등 뒤에서 반투명한 칼날의 촉수같은 것이 떠오르는 걸로 보였다.

     편지로 시선을 향하는 루슈카의 안광이 위통을 자극하는 기분조차 들었다.

     이 세계에 온 이후로 단련된, 표정을 만드는 근육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선 뭐라 말해서 무마해야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바람 피운 후의 변명을 생각하는 듯한 감각.

     

     ".....아니요, 죄송했습니다."

     "아어?"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사과를 받자, 카론의 입에서 약간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륙을 하나 평정하고, 이제부터 세계를 향해 그 위광을 보이실 분. 정말......정말 불쾌하긴 하지만, 이런 자가 나타나는 건 필연적이겠지요."

     

     의외의 반응에, 카론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루슈카의 인간에 관한 대응은 카론을 따르는 형태로 약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해 줬지만, 모여드는 여자에 대해선 좀 더 저항감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었다.

     다른 군단장은 확실히 반응이 현저히 달랐다. 슈젠과 필미리아, 고로 효우에나 먀르코는 확실하게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스콜라의 정보에 난색을 표했다.

     다만, 이들이 인정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카론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런가........?"

     "예."

     

     루슈카는 짧은 대답을 하고서, 그대로 조용히 서 있었다.

     묘한 침묵에 껄끄러워져서, 카론은 일어서서 방의 바깥으로 향했다.

     가볍게 손을 들자 루슈카는 아무 말 없이 대각선 뒤에서 문을 나서는 카론을 따라갔다.

     성의 넓은 복도를 걸으면서, 가끔 마주치는 제 16단의 병사와 인사를 나누며 생각에 잠겼다.

     

     '결혼, 인가.'

     

     아직 15, 6세 정도의 소녀에게 열렬한 어필을 받아서 그럴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다른 나라와도 교류를 깊게 하려면 말도 안 되는 생각도 아닌 것이다.

     후사의 문제는 어떻게 해도 발생한다. 자신이 불로불사가 아니라면, 세대의 전환은 면할 수 없다.

     왕과 귀족은 권력과 결부되는 혼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태까지 얻은 교양이 가르쳐 주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인간의 나라와 관계를 나누는 건 반감을 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물의, 단장들 안에서 부인을 찾는다 해도 과연 아이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앞섰다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전투가 멀어지니 자연스레 찾아온 평온은 카론에게 거기까지 생각하게 할 시간을 주었다.

     도착한 곳은 선서를 했던 테라스. 카론이 똑바로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그곳에서 본 경치는 이전보다도 활기에 가득 찼다.

     길거리의 웅성거림도 그랬지만, 여태까지는 없었던 나라의 유통이 있었다.

     새로운 토지로 퍼져나간 난민들의 마을에 물자를 왕복시키기 위해. 나라 주변에 만들어진 밭과 콜드론 연봉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주변국과의 교류나 경비를 위해.

     대륙에서의 지위를 확립시켰기 때문에, 이제야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바깥에서도 마물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게 되었다.

     

     "역시, 여기는 어느 곳보다도 훌륭하고.....좋은 나라네요."

     

     루슈카가 카론보다 약간 높은 시점에서 본 모습을 솔직히 입에 담았다.

     아직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그날의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돌아오려 하는 감각이, 루슈카의 입가에 자신감을 만들었다.

     

     ".......그렇군."

     

     카론도 동의한다.

     이 나라의 모습은, 태어나고 자랐던 세계에도 없었다.

     각 종족과의 이상적인 공존과, 한 나라에서 경제를 순환시킬 국력.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군사력에다, 여러가지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의 저장.

     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이 세계의 주민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좋은 나라다.

     그것이, 왕이라고 하는 존재 하나로 성립되고 있는 사상누각이라고 해도.

     

     "우윽."

     "왜 그러십니까!?"

     

     기분이 풀어지려는 참에, 압박에 반응하여 위가 아파오자 신음소리를 내고 만 카론에게, 루슈카는 달려와서 어깨를 끌어안는 듯 몸을 부축했다.

     

     "괘, 괜찮다."

     "......카론님, 역시 방에서 쉬셔야 합니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허가를 내려주신다면 정무는 저와 제 16단이 집행할 것이니, 부디 편히 쉬어주세요."

     

     심각한 어조로 듣자, 점점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조금 전에도 들었듯 지금은 큰 움직임도 없고, 없을 것이다.

     현재 레스티아 대륙의 해안선에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병사를 비밀리에 배치하여 대륙의 입출국을 감시하고 있으며, 하늘에서도 용들이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만전의 태세로 있으니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보고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현재 상황은 편안히 지내기에 최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 있는 자는 소심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왕.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 만큼 불안한 것도 없었고, 최근에는 침대 위에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콘솔 윈도우를 바라보는 일도 많았다.

     

     '워커홀릭이란 거구나. 이런 짓, 평사원 때에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러하시다면, 대대적으로 인간을 이 나라에 초대하는 건 어떻겠소이까?"

     

     그건 루슈카의 목소리가 아닌, 기분 좋게 귓가에 들리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던 손을 미세하고 재빠르게 움직여 맵을 확인하고서, 그 목소리의 주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로 싫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슈카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연미복의 노신사는, 실크햇을 쥐고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위대한 우리들의 왕. 밀회를 방해하게 되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뭣!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버트 녀석. 미미, 미미미밀회라니. 하, 아아아하!"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일로 화를 내고 있었지만, 알버트에 말에 격한 동요를 표하는 루슈카를 신경쓰면서, 카론은 의도를 물었다.

     

     "어째서?"

     "아니요. 조금, 아주 조금 전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몸이 시원찮으신 모양이군요. 실례겠지만 카론님은 저희들 마물과 달리 정말 섬세한 종족이시니, 저로서도 부디 쉬어주셨으면 생각해서 말이옵니다."

     "할.......알버트, 그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인간들을 맞이하라는 말이냐? 그만한 일을 한 녀석들을 이 나라에 들이다니."

     "물론입니다. 현재 이쪽에서 외국에 간섭을 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한결같이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딜아젤의 교황에게서 정식으로 사죄하고 싶다는 요청도 왔습니다만 그것도 거절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이쪽도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흐음. 뭐 그렇겠군."

     

     교역을 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에스텔드 바로니아 측에서 일방적으로 가는 것 뿐이고, 콜드론 연봉에 터널을 파서 길을 만든 사르탄 조차 행상을 보내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역시 마물 투성이의 이국으로 찾아 올 기백이 있는 인간은 없겠지. 하지만 확실히 거절을 표하지는 않았다."

     "이쪽의 기색을 엿보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지 않소이까? 그러니, 우리 쪽에서 액션을 일으킨다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모여들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도 그들에게 감정이 있지만, 왕의 비원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매우 올바르다.

     알버트의 발언은 그럴 듯 했고, 이렇게 이 세계의 나라와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면 이쪽에서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게 하는 건 필요한 조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인간의 의사를 초대하면 눈에 띄고 맙니다. 사람들에게 나쁜 억측을 불러일으킬 우려보다도, 카론님께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쪽이 적절치 않습니다."

     ".......루슈카는 어떻게 생각하나?"

     

     냉정함을 어느 정도 되찾은 루슈카에게 카론이 물어보자, 루슈카는 큰 헛기침을 한 후 평소의 딱딱한 표정을 만들었다.

     

     "확실히, 인간의 출입이 없는 지금 실행하는 건 눈에 띄어버립니다. 사르탄과 딜아젤은 몰라도, 그 리페리스는 아직 방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대륙과의 교역을 원래대로 할 수 있는 허가도 나왔으니, 어디와 손을 잡는다 해도 카론님께서 깔보이는 것은 매우 화나는 일입니다."

     "그런가. 확실히 인간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방문하지 않는 채로 두는 건 약간 불이익이 되는가. 우리 나라의 풍족함과 강함을 알릴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고, 거기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도 원하던 참이니."

     "그럼, 주변 삼국에 통지를 보내어도 상관없겠소이까?"

     "좋아. 허가하지."

     

     대범한 몸짓을 하며 카론이 승낙하자, 알버트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사라졌다.

     남은 카론과 루슈카는 당분간 침묵을 유지한 후, 얼굴을 마주 보며 약간 곤란한 듯 웃었다.

     

     "알버트는 꽤 열심인 모양이구나."

     "아니요, 카론님. 저희들.....아니, 국민 모두가 이 출발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답니다. 위대한 저희들의 왕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에 대한 행복에 가득 차서, 신세계의 제패를 외치는 흥분이 어디서나 느껴집니다."

     

      그건 너무 들떠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카론이었지만, 맵에서도 알 수 있는 마물들의 활기는 그런 것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불어오는 바람의 따스한 느낌이 기분 좋아서, 카론은 바깥을 향하여 바람을 쐬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 날.

     처음으로 바깥으로 나가서, 초원에 섰을 때 느꼈던 쾌청한 바람과의 차이가, 일이 일단락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릴 것 같구나."

     "예."

     

     이 세계에 오고 나서 한 번도 없었던 비의 기척.

     먼 남쪽에서 다가오는 비구름이, 무언가를 데려오는 듯한.

     그런 예감도 느끼면서, 카론은 바깥 세계에 등을 돌리고, 따스하게 미소짓는 루슈카를 데리고 성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이유로, 신도의 여러분께는 매우 민폐를 끼치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부디 에스텔드 바로니아로 방문하시어, 주민과의 교류 등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천천히 눈을 가늘게 하며 얼굴에 손을 대고서, 아름답게 서서 신전 단상의 중앙에 선 신록의 [하이엘프 로드] 류미엘은, 눈앞의 크고 검소한 의자에 앉은 교황에게 고했다.

     제일 아름다운 종족이라 칭하는 엘프가 많이 모인 이 자리였지만, 최고위의 존재를 앞에 두면 그녀들의 미모가 바래고 말 정도로 완성된 류미엘을 보며, 누구나 긴장된 얼굴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흰 베일을 쓴 순결의 드레스 차림의 소녀 에이라크란아젤은, 류미엘의 말에 일언반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부디 협력하게 해주세요!"

     

     필사적인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이 먼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가까운 위치에 선 오르페아에게도, 옆에서 휠체어에 타고 있는 시에레게도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에이라는 상체를 기울이며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의 요청에 동의를 표했다.

     그런 에이라의 말을 주변 사람들은 막으려 하지 않았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복종을 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리페리스에서 일어난 일의 전말을 알게 되면 순진한 그녀가 그렇게 대답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국의 재상 라그롯보르노아에게 협박당하여, 미라사이파를 위험에 빠트린 것 뿐만 아니라 카론까지 휘말리게 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두려움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서, 신도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진정하지 못했던 참에 들고 온 이 이야기.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감사해요. 신도의 여러분이 협력해 주신다면, 카론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저, 저기! 그......제가 방문하는 건......그, 문제 없을까요.......?"

     

     쭈뼛거리는 기색의 에이라를 보고, 류미엘은 기쁜 듯이 가슴 앞에서 손뼉을 쳤다.

     

     "이거이거, 정말 기쁜 일이네요. 신도의 교황 스스로가 방문하신다면, 아제라이교와의 우호를 대대적으로 공표할 수 있겠죠."

     

     음색은 신바람이 났고, 몸짓에도 희색이 만연하였다.

     하지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푸근한 미소 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일정 등은 나중에 사자를 보내주시면 조정하겠어요. 아, 그리고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외곽 부근에 새롭게 작은 마을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각국의 영사관을 설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 부근의 일도 여러가지로 의논하고 싶지만, 어느 분이......"

     "그럼, 제가 담당하게 해주시지 않겠나요?"

     "시에레?"

     

     류미엘을 향해 누구보다도 빠르게 손을 든 사람은 시에레였다.

     휠체어의 바퀴를 돌리며 조금 앞으로 나온 시에레는, 오르페아와 에이라의 얼굴을 교대로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하였다.

     

     "평소에 그다지 여러분의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이런 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일은......시에레는 항상 저를 도와주고 있는걸요."

     "고마워 에이라. 하지만, 부디 하게 해줘."

     

     에이라는 오르페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었지만, 오르페아는 시에레의 눈을 보고 각오를 느꼈는지, 작게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응. 맡겨줘. 류미엘님, 불초 이 시에레, 성심성의껏 대임을 완수하도록 하겠어요."

     "감사해요. 그럼,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일은 이제 없으니, 다음은 시에레 씨와 이후의 일에 대해 상담하려고 생각하는데요."

     

     권하는 듯한 말투에, 에이라는 이 자리를 파하기로 하였다.

     여기저기 떠나가는 자들은, 지금쯤 류미엘을 접대하기 위해 서둘러 준비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시에레는 류미엘을 안내하려는 듯 바퀴를 굴리며 내전에서 떨어진 방으로 들어가자, 류미엘이 입실한 문을 닫고는 동시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전에는, 교황님에 의해 카론폐하를 위험으로 빠트리고 말아,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머, 그건 이제 상관없어요. 앞선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사과를 받았고, 무엇보다 카론님께서 용서하셨으니까요. 우리 왕의 종복은 위대한 그 분의 의지에 거스르는 듯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세요."

     

     그건 다시 말해, 카론의 의지가 있다면 손을 쓰는 것도 상관없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과 같다.

     담당이 알버트에서 류미엘로 바뀐 일에 안심하는 자도 많지만, 이 말투로 보면 내면은 그 악마와 별반 차이없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물론 이해하고 있겠지요?"

     "신도를 감시하고, 그걸 보고하는 것이에요."

     "네. 그 말대로예요. 당신이 이 딜아젤의 의혹을 전부 해소하는 것으로 이 도시는 연명할 수 있어요. 기억하고 있었다면  괜찮아요. 그러면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할까요."

     

     류미엘은 공중에 손을 뻗고서, 쪼개지듯이 드러난 칠흑의 공간에 손을 넣어 지팡이를 꺼냈다.

     그걸 가볍게 휘둘러 방음의 마술을 전개하자, 계속 유지하던 미소를 무너뜨리고 요사스럽게 입을 구부렸다.

     시에레는 천천히 휠체어에서 몸을 내려서, 지면에 엎드렸다.

     동족으로서 올바른 입장을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내심 기뻐하면서, 류미엘은 근처에 있던 나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움직임은 있었나요?"

     "신도 안의 불온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에스텔드 바로니아라는 커다란 존재에 두려워하고 있지만, 폐하에게서 받은 막대한 은혜를 잊는 일이 없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갸륵한 마음가짐이에요. 다른 나라에서의 접촉은 있었나요."

     "어젯밤, 카란드라에서 극비리에 편지가 도달했습니다. 신도 사이에 섞인 사자가 방문하여, 마도병단의 신병에게 아제라이의 축복을 받기 위한 순례를 오고 싶다 했습니다."

     "그런가요."

     "류미엘님께서 예속의 저주를 불가시화 해주신 덕분에 사자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끝났지만, 그 자들은 저희들 이상으로 마술에 정통합니다.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도에 펼쳐져 있던 유혹의 마술은 현재 해제되어 있고, 그에 맞춰서 신도의 인간에게 걸려있던 예속의 저주는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처리를 하였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평온했지만, 그 뒤는 원로원이 지배하던 시절보다도 과격한 지배의 방법인 것이다.

     설령 엘프들에게 나쁜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바깥에서 보면 의심받아도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류미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차할 때는 지킨다는 허가를 받으면 된다. 받지 못하면 슬프지만 그것 뿐이다.

     '자애'와 '조화'를 부여받은 그녀는 하염없이 울 것이다. 엘프들의 목숨을 가여워하면서, 사라져가는 모습을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왕에게 맹세한 류미엘에게 있어선, 이제 그 정도에 불과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을 언급하지는 않았나요?"

     "예. 그 뿐 아니라, 원로원과 접촉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정보는 이미 얻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순례로 온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카론은 그런 카란드라의 움직임을 한발 앞서 파악하고 있다, 고 류미엘은 확신하고 있다.

     천리를 내다보는 왕의 눈이, 모를 리가 없다.

     라고, 마물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카론이 얼추 '사람들의 출입이 있구나' 정도로만 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카론이라 해도 매일 하루종일 맵을 들여다 보고 있는 건 아니고, 정말 특별한 인간이 아니면 깊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못했지만, 적어도 류미엘은 카론이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카론은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부하의 자주성에 맡기는 부분도 점점 늘어났기 때문에, 정보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모으려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른 채 사태가 진전되고 말 정도라는 걸 여태까지의 나라의 움직임에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스스로의 발로 뛰며 정보를 모으고 공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카란드라라는 녀석이 움직이게 된다면, 다른 나라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아렌하이트는 리페리스, 바밀리아는 사르탄과 접촉을 시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 삼국은 지금은 큰 충돌을 하고 있지 않지만, 교의가 다르기 때문에 결코 어울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 뭐였더라. 마물지상주의나 인간지상주의같은."

     "예. 그러니, 접근 방식도 큰 차이라 있는 것입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시에레. 당신의 헌신은 카론님께 전해두도록 할게요."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항상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카론 폐하께 공헌하겠습니다."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류미엘이 방을 나서려 하다가 갑자기 다리를 멈췄다.

     번개라도 맞았나 생각될 정도로 등줄기를 펴며 경직된 류미엘의 등을 보며, 시에레는 바닥 위에서 이상하다는 듯 올려다 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수신하고 있는지, 찔끔찔끔하며 작게 떠는 류미엘이 기세좋게 시에레를 돌아보고서, 재빠른 움직임으로 예쁜 드레스가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시에레의 양손을 쥐었다.

     놀란 시에레였지만, 예의상 짓던 표정을 처음으로 걷어내며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류미엘을 보고, 왠지 약간 안심되었다.

     

     "저기! 이 나라에는 실력 좋은 의사는 없을까!"

     "의, 의사요?"

     "아아, 어쩌지어쩌지! 이전엔 제가 느긋하게 일을 생각했던 탓에 카론님께서 위험한 꼴을 당하셨어요! 같은 일을 당하시게 된다면.....어쩌죠 시에레!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 지지지진정하세요. 저기, 떠, 떨지 마시고......."

     

     붕붕대며 팔을 휘젓는 류미엘의 힘은, 겉모습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눈을 빙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류미엘에게 의식을 빼앗기게 되기 전까지, 시에레는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팔을 흔드는 대로 계속 휘둘렸다.

     의외로, 평범한 부분도 있구나 하고 마음 한 켠에서 생각하면서.

     

     

     

     

     여자는, 오랜만에 태어나고 자란 대륙의 흙을 밟았다.

     레스티아의 동쪽에 있는 항구 앗셀의 시가지는 4년 전의 기억과 큰 차이는 없었다.

     후드에서 삐져나온 금목서색(※황색)의 앞머리를 누르며 둘러본 경치는, 성대하게 배웅되었던 날에 비하면 훨씬 평온했다.

     세레스타의 가문에 시집가서 바로 남편을 병으로 잃고, 나라에 돌아가는 것도 못한 채 바깥에서 온 용자로서 공연히 건드리지 않도록 취급되어 온 지금의 자신에게는 이 정도가 어울릴 거라며, 약간의 쓸쓸함에 눈을 감았다.

     그렇다 해도, 마중오는 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석연치 않다.

     밀서로 방문일자를 보내었을 텐데 항구에는 그럴 듯한 병사의 모습이 안 보여서,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항구 안을 방황하였다.

     

     "으음.....이상해."

     

     윤기있는 입술을 주먹으로 가리면서 곤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마물의 나라에 의해 정보봉쇄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움직였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것이지만.

     우여곡절이 있다 해도 성왕국으로 시집가기 전엔 제 1왕녀였으며 '화관' 의 칭호를 가진 용자를 대놓고 냉대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이렇게 마중도 안 온채 우왕좌왕하는 걸 생각한다면, 나라 안에 커다란 개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몇 개의 꽃잎을 꺼내든 여자는, 옅은 벛꽃색의 마력을 담아 바람에 흘려보냈다.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간 장미의 꽃잎은 하늘 높게 떠 올랐고, 흐름에 거스르는 듯 움직임을 멈추고서 천천히 떨어졌다.

     목표를 정하고 사뿐히 날아다니는 꽃잎을 쫓아가듯이 시선을 움직인 여자는, 손을 뻗어 꽃잎을 움켜쥔 인물을 보고 놀랐다.

     백과 남색의 경장을 입은 백은색 머리카락의 여인.

     고고하고, 방자하며, 누구보다도 백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소녀의 옛 모습을 가진 기사.

     그런데ㅡㅡ

     

     "미라......?"

     

     여자는, 그 기사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사실을, 곧바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둡고 탁한 얼음의 눈동자. 가면처럼 딱딱하고 음울하고 아름다운 모습. 결코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없는, 답답한 패기.

     똑바로 걸어오는 모습에 압도되어서, 여자는 무심코 한 발 물러섰다.

     

     "오랜만입니다. 아루아세레스타."

     

     이것이 정말로, 그 미라사이파인가.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태양과 잘 어울렸던 그녀는 그곳에 없었고, 먼 곳에서 다가오는 먹구름같은 괴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알드윈 왕이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안내되는 앞이, 과연 정말로 조국인가 하는 의문조차 떠올랐다.

     강해지는 의혹과 공포에, 아루아는 아렌하이트를 떠나기 직전에 엘레나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조심해요. 어쩌면, 당신이 아는 리페리스는 이제 없을 지도 모르니까요."

     

     생각이 얕았다.

     이 대륙은 마경으로 타락해 버렸다며, 아루아는 떨리는 손을 숨기려는 듯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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