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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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2월 02일 23시 02분 2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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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7769bh/68/

     

     

     

     

     리페리스 왕국을 향해 돌진하는 마왕의 수하들이 만드는 왜곡된 지평선.

     저물어가는 태양 빛이 그 그림자를 드리우자, 움직이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지옥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왕성에서 떨어진 위치에서 진을 치고 있는 왕국기사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지....."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들은 자들은 마음 속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국의 반란에 이어 마왕군의 습격이라니,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해온 나날에서 급강하하는 최악의 나날.

     느긋하게 지냈던 벌을 받는 것일까.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던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이렇게 간절해질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기사단 앞에 척척 정렬하는 수인들. 기사단 후방에도 땅울림을 울리며 움직이는 거수의 무리.

     그 수는 천을 넘을 것인가. 본국에서 원군으로 보내진 그라도라 일행의 병사는, 당황하는 기사단과 다르게 정면만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물 사이의 싸움에 휘말린 듯한 구도지만, 이건 왕국과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함께 마왕군에게 맞서기 위한 공동전선이다.

     마환장군의 암약에 의해 나라가 내부에서 붕괴되려고 하는 순간을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구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힘을 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럴 터였다.

     

     "정말로 아군이냐고."

     "어이, 그만 두라고. 들리면 어쩔거냐."

     "알게 뭐야. 다른 녀석들도 말했다고. 왕국을 접수하기 위해, 이 녀석들과 마왕이 손을 잡지 않았냐고 하던데."

     "어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들어맞잖아! 이대로 왕국이 넘어가버린다면......!"

     "그런 일 할 리가 없잖아요~?"

     

     꽉 쥔 검을 부들부들 떨며 감정을 분출시키는 평민 출신의 기사.

     거기에 갑자기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기세좋게 돌아보았다.

     큰 고양이 귀를 모자 틈으로 내놓은 여자는,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캐주얼한 복장으로 미소지으며 서 있었다.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주변 사람들도 놀라면서 후퇴한다.

     인간이 물러난 공간에서 [훅스캇체] 의 에레미야가, 손가락으로 놀고 있던 마술각인이 새겨진 나이프를 바라보는 채로, 인간이 품은 의문에 대해 혼잣말을 했다.

     

     "일부러 성가신 일을 할 거라면 멸망시키는 편이 편한데. 접수할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나~"

     "뭐, 뭐야. 무시하지 말라고!"

     "그만둬! 죽는다고!"

     "시시, 시끄러. 어차피 죽는다......그럼 확실히 말해주지......우리들 인간은 말이야, 너희들 같은 녀석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 따윈 없다고!"

     

     이름도 대지 않은 단순한 기사의 말이었지만, 그건 왕국에 사는 자들의 뜻이기도 했다.

     이 전쟁이 끝난 후에 있는 것은, 마물에 의한 지배다.

     그것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인가, 마왕군인가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제 왕국에게 남겨진 길은, 강자에 대한 복종 밖에 남지 않았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에레미야로선 그것의 뭐가 나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군이 이기는 편이 좋지 않나요?"

     "마물이 아군.......? 누가 그런 걸 믿겠냐고!"

     "에~"

     

     젊은 기사는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에레미야를 상대하였다.

     왕의 옆에서 모시고 있던 수인을 상대로 맞서고 있다고 착각하여, 말로는 안하지만 용기를 칭찬하는 듯한 분위기에 취하기 시작했다.

     

     "그 이상은 그만둬라."

     

     거기에 물을 끼얹은 것은, 기사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스톤두에였다.

     듬직하고, 어딘가 도그마제르딕트를 연상시키는 대장부의 옆에는, 차갑고 아름다운 푸른 번개를 손 끝에서 빛내는 미라사이파의 모습도 있었다.

     

     "두에 대장...."

     "우군에 대해 할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라고 해도, 리페리스 왕국기사단의 명예를 실추시킬만한 짓은 처벌해야만 한다."

     

     그 대사에,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대해 반발의 의사를 드러내던 주변 사람은 턱을 당기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희들은, 결국 마물의 말하는 대로 해야 합니까."

     ".......그때 원망해야 할 자는, 힘이 닿지 않았던 우리들이며, 그들이 아니다."

     

     거기까지 듣게 되면, 기사도 조용히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했다. 에레미야 공, 으로 괜찮을까?"

     "응. 빨리 와줘서 다행이네요."

     

     그 의미를 물어 보려 하지 않고, 바스톤은 에레미야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을, 불경한 행동을 한 기사를 대신한 사죄라고 보는지, 아니면 마물에게 자세를 낮추는 걸로 보는지.

     괴로운 듯한 주변의 모습에서, 대략 눈치챘을 것이다.

     

     "자, 와라 괴물 고양이. 애초에 뭘 하러 온 거냐 네놈은."

     

     보다 못한 미라가, '천뢰' 의 용자로서 흉악한 마물에 대항하는 모습을 가장하여, 에레미야를 이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팔짱을 끼고 강하게 이끌었다.

     

     "괴물 고양이가 아니라구요! 나한테는 카론님이 주신 에레미야라고 이름이 있다니까요!"

     "알았으니 조용히 해."

     

     미라에게 끌려가는 채로, 큰 소리로 불만을 말하면서도 따르는 에레미야.

     

     "침략자 괴물 녀석."

     

     기사와 지나치기 직전 내뱉은 단어를 듣고서, 에레미야도 분노가 담긴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리를 죽여온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니."

     

     빵모자 아래로 노려보는 눈동자의, 털이 골두설만한 금색 반짝임을, 그는 직시하지 못했다.

     수인의 모습을 한 마물이 물러가자, 이제야 모두의 표정이 풀어졌다.

     젊은 기사의 감정에는 동의하지만, 결국은 허세에 불과하다.

     

     "죽을 뻔 했구나."

     "네?"

     "어떤 의도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손을 대지 않은 건 저쪽이 우리들에 대해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들이 생각하는, 힘에 의한 지배를 모토로 하는 나라였다면, 칼날을 들이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겠지."

     

     소란을 느끼고 이 자리에 온 바스톤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기척을 느끼고 따라와준 미라에게 감사하였다.

     

     "바스톤 대장. 정말로, 그 에스텔드 바로니아라는 나라는 아군입니까?"

     

     기사의 물음에, 주위 사람들도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입에 담았다.

     

     "실은 마왕군의 자작극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시급히 대책을 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있지도 않은 음모론으로 상대를 보는 건 그만둬라. 그리고, 가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저 군세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 건가."

     

     눈앞에 포진한 수인의 군세. 등 뒤에 서 있는 거수의 무리. 먼 곳에서 다가오는 이형의 행진.

     

     "미라사이파가 용자로서 각성했지만, 그걸로 얼마만큼 버티겠나? 이 대륙의 먼 옛날 일어났던 전쟁에서 안녕을 얻은 것은 오로지 아홉 명의 영웅, 용자의 조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 시대에선, 마왕군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조차 없어."

     "그런 일은."

     "그럼, 가능한가? 저 나라에 기대지 않고,  이 세계가 하나가 되어 싸워 이겼던 마왕의 군세를 상대로 승리하는 일이."

     

     멀리 보이는 군세의 수는 백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제군과 마찬가지로, 나도 마물을 신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타협을 할 필요는 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왕국을 도와주는 한은."

     

     

     팔을 강하게 끌면서, 미라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군세 사이를 태연히 가로질렀다.

     전부 수인으로 갖추어진, 그라도라와 에레미야가 이끄는 군단은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 맹렬하게 노려보았지만, 그 손에 잡힌 것이 에레이야라는 걸 안 순간 얼굴을 돌리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또 뭔가 해버린 건가 저 사람은."

     "인간에게까지 혼나는 건가 에레미야님은."

     "그라도라 단장한테도 엄청 혼났는데."

     "질리지 않잖아."

     "질리지 않겠구나."

     

     자유분방한 에레미야에게 일군을 맡는 장으로서 따르게 하는 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카론 뿐이었으며, 동시에 지위에 있는 자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것도 카론 뿐이었다.

     결코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결코 다른 자에게 간섭당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천의무봉함은 에스텔드 바로니아 군 전체 뿐 아니라 거리에도 넓게 알려져 있다.

     요약하자면, 그녀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멈출 수 있는 건 다른 단장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유는 불명이지만 인간에게 붙잡혀서 순순히 따라가고 있다.

     

     "천재지변의 전조인가?"

     "벌써 일어났잖아."

     "확실히."

     "가슴 뜨거워지는 커플링이네."

     "알 것 같아."

     

     결국, 그들은 '에레미야님의 어수룩함이 나타났는가' 라는 걸로 의문을 자기종결시키며 납득하고서, 이상하게도 자연스레 미라를 신경쓰지 않는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에레미야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정말, 네놈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쓸데없는 짓만 하는구나."

     "아니야~. 잠깐 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눈을 실처럼 좁히면서 입을 삐죽이며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에레미야였지만, 그녀를 최전열까지 데리고 가며 기사단에서 떼어놓으려 하는 미라는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나쁜 일 하지 않았잖아~"

     "마물이 어슬렁거린 것 만으로도 충분히 사건이 된다. 그게 동맹이라 해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흐음~? 그럼 미라는 어떤데. 응, 용자님?"

     

     에레미야는 잡혀있던 팔을 슬쩍 떼네고, 들고 있던 나이프의 칼끝을 미라의 코앞으로 들이대면서 시험하는 듯 웃었다.

     이 흐름 속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않냐고 물어보니, 미라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받아들인다. '지금은'."

     

     지금 당분간은 조용히 있어주겠다.

     카론이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상대를 죽이는 기술을 갈고닦으며.

     

     "음후후. 그럼 그건 '다음에'."

     

     싱긋 웃은 에레미야가 다가오는 마왕군을 나이프로 가리켰다.

     미라는 시선만 움직여서 수인들을 보았다.

     공국군에 대해 파병되었던 신병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정예가 모여들었다.

     공동전선 따윈 이름뿐인 자장가다. 마주 서서 돌격했다면 겨우 십분 만에 기사단이 괴멸할 것이 눈에 선하다.

     나라의 위기에 맞서려고 모인 기사단이 나설 차례란,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들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전열에 동참할 영예를 주겠노라, 농담이야. 거기 있으면 미라한테 좋은 경치를 보여줄게. 우리들,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제대로 눈으로 봐야해?"

     

     그렇게 말하고, 에레미야는 두 시중을 데리고 혼자서 평원으로 달려나갔다.

     도대체 뭘 할 셈인가, 전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금모금안의 수인의 등이 멀어지는 걸 보면서, 미라는 모르는 사이에 검을 쥐고 있던 것을 깨닫고 힘을 뺐다.

     

     '카론, 그 때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네게 있어 순풍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나?'

     

     마왕의 부하의 책략과 대륙의 침공.

     그걸 부수면 분명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존재는 확고한 것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카론이 마왕으로 불리게 될 싹을 틔우게 된다.

     

     '네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이어도, 누군가의 이야기에선 악인이 되지. 어떤 선행을 하여도, 누군가에겐 악행이 된다. 지금, 네가 하려는 건 누구에 대한 선인가.'

     

     미라로선 알 수 없다.

     품은 뜻의 일면에 닿지 못했던 미라로서는, 고독의 왕을 이해하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아~, 아~, 들립니까~?]

     

     레스티아 대륙에,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푸른 하늘에 울려퍼졌다.

     

     "저기, 괜찮아?"

     "예. 지시대로예요."

     

     에레미야가 양 옆의 부하에게 묻자, 확성의 마술을 행사하는 이족보행의 고양이, 랭크 8의 수인종 [백천묘] 두 명이 함께 끄덕였다.

     그걸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 에레미야는, 마왕군이 움직임을 멈춘 걸 확인하고서, 허리에 손을 대며 준비했던 문장을 읽어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 창끝을 향하고, 지금 이렇게 침략하겠다며 대거 떼지어 오는 마왕군에게 고한다]

     

     에, 하며 문장을 확인하며 다시 한번 말한다.

     루슈카와 알버트가 공동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에레미야로서는 읽기가 조금 어렵다.

     

     [우리들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위대한 왕의 비호하에 있는 영광스런 마물의 나라이며, 인마불문하고 손을 잡고 살아가는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제군들의 동료가 했던 행패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들은 불구대천의 의지로 제군을 상대하겠다. 이 대륙에 발을 디딘 자의 피와 살로 저지른 일의 죗값을 치뤄라.......라네요~]

     

     살의에 가득 찬 문구는 선전포고 같은 뜨듯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살육의 선언이었다.

     공국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두려움을 떠올리고 바들바들 떠는 왕국군에 반해, 저편에서 다가오는 군세는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에레미야를 비하했다.

     마왕군 사이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자는, 호사로운 검은 로브를 두른 해골이었다.

     왕관과 석장. 주변에 떠오른 죽은 자의 영혼.

     사령마술에 심취하여, 죽음을 장악한 불사의 왕.

     

     "신과도 같은 마왕폐하를 섬기는 것이 마에서 태어난 자들의 숙명. 인간 따위에게 굴복하다니,우둔하고 왜소한 자들의 말로다. 몰락한 쓰레기여, 마사장군 사우자레의 앞에서 사라지도록 하라."

     

     암흑의 화염을 전신에서 분출하는, 언데드의 상위종인 [크로니클 네크로맨서] 는 막대한 마력을 석장에 모았다.

     하늘까지 휘몰아치는 암흑은 거대한 마법진을 에레미야 일행의 머리 위에 형성시켰고, 수많은 영혼을 빨아들여갔다.

     

     "사라져라. 《인디그네이트그라드》 !!"

     

     개전의 봉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강대한 고대의 마술이 초원에 펼쳐졌다.

     거대한 암흑의 구슬이 공중에서 생겨나 대지에 닿은 순간, 기포가 터지듯이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주를 흩뿌렸다.

     초목은 메말라 흙으로 돌아가고, 대지는 썩어 재로 변한다.

     기사들은 폭풍의 여파를 쐰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었다.

     마법진을 올려다보며 오도카니 서 있던 에레미야와 두 병사가 삼켜지는 모습을 누구나 눈으로 목격했으며, 이것을 직격으로 맞는다면 틀림없이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할 정도의 참극이었다.

     

     매직스킬・저주 《인디그네이트그라드》

     

     마왕군의 힘을 선보이기 위한 가공한 주언의 앞에 사라진 적군의 장수를 조소하며, 사우자레가 지팡이를 들어 호령을 내리려 했다.

     

     "와~우. 아파보여~. 맞았다면 큰일났겠네~"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와서 움직임을 멈추고, 해골은 얼굴을 오른쪽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좀 그렇네. 바하랄카 정도는 아니네. 옛날에 몇 번 인가 도서관에서 나온 일이 있었는데, 대단했던걸~? 영창을 멈추지 않으면 주문과 즉사가 빗발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용자를 죄다 죽여버렸다니까."

     "꽤 빠른 모양이지만, 결국은 기어다니는 쥐와 동의미. 죽음을 넘어선 나에게 도달할 수는 없다. 비참하게 발버둥치지 말고 이 절망을 받아들ㅡㅡ"

     " [크로니클 네크로맨서] 는 말야."

     

     허리에서 뽑아든 두 나이프를 거머쥐고, 에레미야는 캐스캣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물리공격에 내성이 높은 것 뿐이고, 무효화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

     ".....바보같은 말을. 이 몸은 이미 죽음에 바친, 죽음 그 자체가 되었다. 나의 혼을 네놈같은 연약한 칼날로 잘라내는 일은 이룰 수 없다."

     "흐흐~응? 그래.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언데드도 때리면 결국 죽는다는 걸. 너 같은 건 혼이 부서지는 방식이 별난 것 뿐이고, 죽음의 개념 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도."

     

     진정한 죽음이란, 그 지하도서관에서 사는 괴물을 가리킨다.

     진정한 불사란, 그 왠지 싫은 노인같은 생물을 가리킨다.

     손 안에서 춤추는 나이프의 마술 각인이 강하게 점멸한다.

     설명한 황혼과도 비슷한 마력이, 죽음을 자칭하는 암흑의 마술사를 비추고 있었다.

     

     "그 내성을 뚫지 못한 녀석만 만났을 뿐이잖아, 저승길 선물로 알려줄게."

     

     카론은 이미 칙명을 내렸다.

     ㅡㅡ일절 봐줄 필요 없음, 이라고.

     아직 개전의 신호는 아니지만, 약간의 여흥이라며 에레미야가 자세를 낮추며 양발에 힘을 주입했다.

     

     "닥쳐라 암코양이!"

     

     매직스킬・저주 《카오틱 오라》

     

     "땡~! 난 고양이면서도 여우였지요~!"

     

     뼈의 사이에서 분출되는 탁기에서 거리를 둔 에레미야는, 각인 이외에는 눈에 띄는 장식이 없는 수수한 나이프를 역수로 꽉 쥐고, 목표를 제대로 노리며 혀를 낼름거렸다.

     여유만만한 그 표정을 바로 공포로 물들이겠다며, 사우자레는 지팡이 끝에서 무수한 망령을 마탄으로 변화시켜 무작위하게 흩부렸다.

     난잡하게 쏘아지는 탄환은 전부, 대상의 움직임을 늦추는 '중구' 의 독이 담겨져 있다.

     한번이라도 닿으면 확실하게 다리를 무겁게 하여 행동력을 뺏는 것이다.

     면으로 제압하려는 듯, 격한 착탄음을 울리면서 기관총처럼 사출되는 총탄의 비.

     그 속을, 에레미야는 춤추는 것처럼 뜀뛰면서 질주하였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흉탄의 사이를 빠져나오며, 땅에 다리가 닿을 때마다 점점 가속하여, 점점 쫓아오는 탄도를 추월해나갔다.

     사우자레가 노리는 것보다 빠르게, 눈으로 쫓는 것보다 빠르게, 의식이 향하는 것보다도 순식간에, 어느 사이엔가 시야에 금색의 궤적만을 남기고, 이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스피드로 초원을 종횡무진으로 달렸다.

     

     "읏, 크으!"

     

     적당히 조준을 하려고 해도, 바람도 소리도 놓아둔 채 독주하는 에레미야를 인식할 수 없으면 헛된 공격이 되고 만다.

     광범위하게 날려버리는 마술로 바꾸려는 듯 사우자레가 마력의 방출을 멈추었다.

     그 순간, 금색의 띠는 잃어버린 심장이 한번 맥동을 울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사우자레의 주위를 메꿨고, 정면에서 저돌적으로 웃는 에레미야가 뛰쳐나왔다.

     감정이 경악으로 바뀔 틈도 안주고, 역수로 거머쥔 나이프가 휘둘러진다.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좌우 두 칼날에서 방출되는 육연격이 사우자를 덮쳤다.

     겉보기에 마른 몸으로 자아낸 스킬은 무방비한 해골에 직격하였다.

     하지만, 사우자레는 미세하게 움직임을 멈춘 것 뿐이었고, 에레미야의 전력을 받고도 태연히 서 있었다.

     

     "죽음의 화신인 나를 죽이는 일, 누구일지라도 할 수 없음이다. 우매한 짐승이여. 발버둥치지 말고 죽음을 받아들ㅡㅡ"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틈을 주지 않고 자아낸 두 번째의 스킬.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또 다시 두번.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웨폰스킬・단검 《이그젝 엑스》 

     

     또 두 번.

     거듭하고 거듭하여, 최단의 공격간격으로 발동하는 육연격이 사우자레의 대사를 막으며 뼈의 몸을 덮쳤다.

     평소라면 마력에 둘러싸인 몸에 공격이 닿는 일 없이 헛수고로 끝났을 것이다.

     합 36연격의 검섬은 실로 탁월한 것이었다고 칭찬 한 마디라도 보내 줄까 생각했던 사우자레였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의 위화감에 검은 안구가 흔들렸다.

     

     "자아자아~"

     

     웨폰스킬・단검 《테트라 지바》 

     웨폰스킬・단검 《팔괘연무》

     웨폰스킬・단검 《우덴엔네아》

     웨폰스킬・단검 《트윈 반다하르케》

     

     이상할 정도의 다양한 수법과 기술이 연격의 그물망이 되어 사우자레를 덮쳤다.

     끊임없이 계속 베이는 에레미야의 얼굴에는 피로가 없었고, 숨도 안쉬며 스킬을 연발하는 중에도 흉폭한 미소를 띄운 채였다.

     그녀만이 가진 유일무이한 스킬, 《천의무봉》.

     모든 공격행동이 두 번 발동하는 대신, 드물게 공격과 방어를 하지 않는다는 위험한 능력.

     하지만, 최속을 자랑하는 [훅스캇체] 인 그녀에게 있어 일절의 디메리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금수를 포착하는 일 따윈 불가능하다.

     권투와 그 다음으로 수법이 많은 단검을 조합하여, 모든 것을 속도에 쏟아부어 육성된 에레미야의 손은 멈추는 일도,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우햐아~! 최고로 자유롭다~! 아~하하~!"

     "웃, 안 통한다아!"

     

     귀찮은 듯 떨쳐내려고 휘두른 사우자레의 지팡이 끝에서 다시금 사령의 탄환이 쏘아졌지만, 에레미야는 번쩍임보다도 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쉴 틈도 주지 않고 태연히 모습을 드러내어, 다시금 신속의 연격을 해골에게 쏟아부었다.

     기분좋은 듯한 에레미야의 공세는 멈출 줄을 몰랐고, 점점 움직임이 가열차게 되었다.

     세세한 스탭이 점점 도약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사우자레의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금색 띠로 변화해나갔다.

     번쩍 거리며 울리는 칼날의 불꽃. 쾅쾅 흘러나오는 금색의 벼락.

     이것이야말로 《천의무봉》의 수인. '고독' 의 전장이야말로 에레미야가 가장 사랑하는 살육전의 무대다.

     

     "좀 더 ! 좀더좀더 목숨 걸고 놀자아! 네 죽음이 나에게 닿는지, 내 죽음에 네게 닿는지! 왜그래왜그래왜그래왜그래! 아하! 즐겁지!? 자자, 웃어봐 죽지도 못한 것아!"

     

     전후불명으로 헤어나지 못하게 될 정도로, 여러 방향에서 기분 좋아하는 소녀의 목소리와 나이프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체를 버리고 마력으로 다시 태어나서, 전부 마력으로 형성된 크로니클 네크로맨서에게 죽음을 주는 일은 불가능할 터.

     얼마나 상처를 준다 해도 세계에 가득 찬 마나가 바로 메꾼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수복에 가깝다.

     그 힘에 덕분에 사우자레는 마왕군의 간부에 이름을 올렸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그 자체가 되어서, 그 무서운 대륙에서 많은 마물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뭐, 냐! 무슨 짓을 한 거냐!"

     

     수 백년 전에 버렸을 육체,

     그 무렵에 갖고 있었던 느낌이 드는 감각이, 마력으로 만들어진 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타는 듯한, 찌르는 듯한, 쑤신듯한, 마비되는 듯한.

     신경도 존재하지 않는 뼈에서 의식으로 전달되는 그것을, 예전엔 아픔이라고 불렀던 느낌이 들었다.

     

     "이노옴이노옴이노옴이노옴이노옴!"

     

     매직스킬・암《이그저스트 게헤나》

     

     카오틱 오라보다 강력한, 나락에서 불러낸 암흑의 파동이 하늘을 꿰뚫고 검은 기둥이 되어 사우자레의 전신에서 솟아올랐다.

     낮이었던 레스티아 대륙에 한때의 밤을 생겨나게 할 정도의 강력한 마력의 격류. 닿은 것 모두를 어둠의 뇌옥에 붙잡아서, 영겁의 어둠 속을 방황하게 하는 금기의 마술.

     '이 세계' 에서, 그 금술을 다루는 것은 사우자레 밖에 없다.

     

     "안됐네요. 그거, 아저씨도 잘 쓰던 거였다구요!!"

     

     하지만, 발동한 시점에서 에레미야는 주위의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회피하였고, 나이프의 끝을 손가락으로 쥐며 투척의 자세를 취했다.

     

     웨폰스킬・단검《디라도르인노바시온》

     개체보유스킬 《굿・후돌》

     

     오버 스로우로 던져진 나이프는, 저편까지 닿을 한 줄기의 화살로 변했다.

     어둠을 꿰뚫은 황금의 섬광은 사우자레의 복부에 꽂혔다.

     금단이 마술의 사라졌을 때, 남아 있던 것은 검은 로브의 밑에서 무너진 뼈의 모습이었다.

     

     

     인간도, 마물도, 이건 파멸을 가져올 전투라고 느꼈다.

     끝이 찾아올 거라 누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이건 시작이었다.

     자그마한 대륙에서 일어나는, 어디에나 있는 전쟁의 개막에 불과했다.

     썩고, 패이고, 문드러진 초원의 위.

     마음껏 날뛰어서 만족한 에레미야가, 볼을 상기시키며 양손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자, 시작해요 왕님!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전쟁을!"

     

     그 외침에 호응하듯이,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원환.

     진홍색으로 빛나는 state of war의 문자가 레스티아 대륙의 하늘 위를 뒤덮었다.

     

     "시작하자. 우리들의 전쟁을."

     

     먼 사르탄의 궁전에서, 흑의의 왕도 마찬가지로 중얼거렸다.

     무릎 꿇은 부하와, 이 땅의 왕족을 흘겨보면서, YES를 누르는 손에 떨림은 없었다.

     

    ===============

     

     ※ 역주 : 후돌(風doll) 은 풍속녀 중에서 특별히 인기가 많은, 풍속업계의 아이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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