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7 늑대인간
    2021년 02월 02일 10시 31분 0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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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7769bh/67/

     

     

     

     늑대인간의 최상위종 [크로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는 최전선에서 적진에 파고들며, 정면에서 힘으로 때려눕히는 제 2단의 군단장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고화력 고내구의 물리특화. 하지만 다른 스탯도 높기 때문에 쓰기 편한 유닛이다.

     더불어, 통상공격과 스킬이 범위공격인 큰 망치를 장비하고 있어서, 격이 낮은 상대의 괴멸속도는 수인종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반면 랭크7의 이형종 [안젤마타]. 마환장군 칼바란은 특수한 타입이다.

     은밀행동, 실내전에서의 우위성은 할드로기아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안젤마타] 는 특수한 조건도 필요 없이 실내전투에서의 우위를 점하는데 반해, [키메라] 는 시간이 걸리는 대신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아포카리스페의 구조 상, 공성전은 병사의 수와 강한 캐릭터로 짓누르는 게 제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사용되는 일은 없었지만, 결코 약한 마물은 아니다.

     여긴 아직 리페리스 왕성의 부지여서, 땅의 이점만이라면 확실히 칼바란에게 있다.

     그렇게 칼바란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ㅡㅡ

     

     "오라오라오라오라아!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치여 죽는다고오!!"

     

     쾅쾅하는 호쾌한 소리를 내며, 벽도 바닥도 천장도 분쇄하면서 거대한 늑대가 성 안을 휘젓고 있었다.

     주저함 따윈 전혀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슬렛지해머를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움직이는 다이너마이트다.

     그런 파괴의 화신에게 쫓겨다니는 검은 연기의 사마귀는, 주변의 물체에 몸을 녹아들게 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렇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속도로 뒤를 쫓아오는 이상, 왕국 따위 알 바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도주극.

     표정이 없는 칼바란이었지만, 만일 있다면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넓은 복도를 메우는 청과 백의 거랑이 지나간 뒷편은 폐허처럼 붕괴하였고, 보기에도 무참한 잔해의 길로 변해있었다.

     

     '뭐야? 뭐야? 뭐야!?'

     

     칼바란의 당혹감은 멈추지 않았다.

     왕국이 이런 소행을 허용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늑대의 주인이 허락한 것 만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물리특화를 풀어놓았는가. 자신을 상대하려면 여자 늑대 쪽이 적임이 아닌가.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었고, 누구라 해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설마 상대가 근육뇌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칼바란.

     하지만 그라도라의 성격을 아는 자가 본다면, 이 타이밍에서 무대에 오르는 게 제일 적절했다고 이해할 것이다.

     참고 참았던 것이다.

     부하를, 나라를, 왕을 우롱하는 듯 조소하며 돌아다니는 칼바란의 존재를 알면서도 손을 대지 않은 채 오늘까지 참았다.

     아무리 충의의 거랑이라고 해도 한도가 있다. 뭐든지 참고 있을 정도로 성격은 느긋하지 않다.

     이제야 빗장을 열어제끼고, 거기다 일절 봐줄 필요없다는 명을 받았다면 이렇게 되는 건 필연이었다.

     

     "하앗하하하하하하! 최고의 기분이다! 네놈도 그렇지!? 어이!!"

     

     광기에 가득 찬 포효가 들려올 때마다 칼바란은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주위의 무기물에 녹아들어 잠기기만 하면 다른 층과 방으로 이동하면 될 거라 생각하지만, [안젤마타] 의 능력은 거기까지 만능은 아니다.

     은밀행동 중에는 건조물의 구조에 맞춘 이동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칼바란은 인접한 방으로 숨는 일이 불가능했다. 벽을 파괴하는 것도 못하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벽과 창이 아니면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없는 것이다.

     눈치채이지 않는다면 매우 유리하지만, 한번 포착당하고 말면 어드밴티지를 잃고 만다.

     이전에 하루나와 전투하게 되었을 땐 아직 특성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망치는 일에 성공했지만, 이번엔 그렇게도 안된다.

     

     웨폰스킬・큰 망치 《크루얼 임팩트》

     

     옆으로 휘두른 슬렛지해머가 공간을 때리자, 충격파가 통로를 파괴하면서 칼바란의 등을 쫓았다.

     전방 광범위를 일직선으로 날려버리는 그 위력은, 무기물 속을 떠다니는 안젤마타의 능력이어도 미처 도망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도달했다.

     반쯤 광란에 빠지면서, 칼바란은 근처의 문을 통해 구역을 바꾸었다. 문을 열고 닫지 않아도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는 강점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하지만, 그라도라도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옆 방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물리라고 하는, 정말 단순한 것이었지만.

     파괴된 벽의 구멍에서, 느릿하게 몸을 나타내는 늑대인간.

     

     "다 숨었냐? ......아앙?"

     

     파괴충동이 차오르는 감각에 기분이 좋았던 그라도라였지만, 날아든 무언가를 눈치챘다.

     

     매직스킬・저주 《이븐의 날개화살》

     

     하루살이의 날개처럼 얇은 칼날이 그라도라의 얼굴을 스쳤다.

     볼을 지나간 날개의 궤적에, 한 줄기의 붉은 선이 그어졌다

     

     "하, 하핫! 그럴 거라 생각했다고? 힘만 있는 바보는 마술에 약하다고 상성에 그렇게 되어있으니깐 말야? 하지만 이제 약발도 줄었는데? 네 패배는......정해졌다!"

     

     매직스킬・저주 《인디비전 프라나》 

     

     돌바닥에 숨은 검은 사마귀가 쏘아낸 불길한 탄환이, 무방비하게 서 있는 그라도라를 향해 쇄도하였다.

     고인 물에 비추어진 밤하늘을 굳힌 것 같은 괴상한 반짝임을 발하는 저주는, 용자라고 해도 죽음에 도달하게 하는 힘이 담겨져 있다.

     한발만 몸을 관통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독과 환각의 저주에 걸리게 하여, 정상적인 사고를 빼앗는 무서운 마술.

     그것이, 몇발이나 늑대의 거구에 착탄하여 육체를 도려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입는 부상. 마술방어가 부족한 크로셀이지만, 그럼에도 어중이떠중이의 술자로는 털끝조차 상처입히지 못한다.

     그 단단한 방벽을 뚫는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진 칼바란은, 이제야 우위에 섰다면서 어둠 속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머리 위로 쫓아온 가시달린 손잡이를 눈치채고 바로 정신을 되찾았다.

     

     "어, 어째서!?"

     

     우뚝 선 상태에서 급가속한 그라도라의 맹공은 조금 전 이상으로 거칠고 무차별적이었다.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모두 잔해 더미로 바꾸어가는 모습은, 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새로운 놀잇감을 받은 개처럼도 보인다.

     순식간에 전부 파괴된 작은 방은, 그라도라가 방에 뛰어들어온지 십 초를 조금 넘기자 벽을 파괴당하며, 복도와 연결되는 넓은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녀석이, 이제야 나왔구나!! 드디어 우리들을 위협할 존재가아, 하하하! 왕이여! 위대한 우리들의 왕이여! 이 세계도 최고로 즐길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하하핫, 좋아 좀 더 오라고 쓰레기벌레! 그 상태로 좀 더 날 끓어오르게 하라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듯이 외친다. 그것은 환희가 섞인 위협이다.

     점점 기어가 상승하고 있는지, 방해물을 이용해 숨으며 도망치려 하는 칼바란을, 사자의 포효같은 바람소리를 내는 슬렛지해머가 주변과 함께 통채로 날려버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완강하게도 천장만은 파괴하지 않았다. 그것이 칼바란에게 있어 제일 괴로문 점이었다.

     위아래로 빠져나갈 장소도, 계단도 없다. 바깥으로 나간다면 벽을 통해 가는 것은 가능한데, 무차별적으로 보이면서 사실 제대로 유도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인간은 어디로 간 거야?'

     

     성을 파괴하는 굉음과 충격이 일대에 퍼지고 있는데, 도중에 한번도 인간과 만난 일이 없었다.

     도망치는 기척도 없었고, 어딘가에 숨어있는지도 느끼지 못해서, 인질을 잡는 선택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안되었다.

     결국, 전부 계획된 일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실행하였는지 칼바란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곳만 확실하게 인간이 있는 장소가 있다. 그라도라에게 들키지 않도록, 암흑의 사마귀는 통로를 구불거리면서 잠깐 보았던 목적의 방으로 뛰들었다.

     

     "자ㅡㅡ아......어......?"

     

     그곳은, 무도회가 열리고 있던 왕성의 대회장.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주도로 왕족과 귀족을 한꺼번에 가두어두었을 방.

     하지만, 지금 칼바란의 눈에 비치고 있는 곳은, 상하좌우 전부가 하얀 공간 뿐이었다.

     거기다, 능력을 발동시켜도 모습을 숨길 수가 없다.

     길고 가느다란 낫의 모양을 한 여덜 다리와, 일그러진 날개를 가진 인간 크기의 사마귀.

     그림자가 되어, 어둠이 되어, 인간을 홀리게 하고 목숨을 갈취하는 재앙의 해수는, 세로로 쪼개진 턱을 딱딱 울리면서 소년소녀 어느 쪽도 아닌 목소리로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뛰어든 불 안에 있다, 라는 건 그야말로 이를 말하는 걸까요. 능력에 기대는 것 밖에 못하다니 얄궂은 일이네요."

     

     사그락, 사그락.

     등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돌아보자, 표정을 만들 수 없는 벌레의 얼굴에서 증오가 흘러나왔다.

     

     "너어어......암캐에에에에에!"

     "잘 있었나요, 해충. 구충될 때가 왔어요."

     

     흰 카리기누(역주 : 일본 음양사와 신주들이 입는 옷)와 검은 스커트를 입은 아름다운 회색 늑대인간이, 손에 부적을 쥐고 조용히 서 있었다.

     

     " [루나루가르브] 의 하루나, 전날의 사례를 하러 왔습니다."

     

     매직스킬・성 《청정의 성옥》

     

     하루나가 사용한 구역을 격리시키는 특수한 마술은, 공성과 방위에 효과를 발휘하는 마술이다.

     대상을 구속하는 것과는 다르게, 술자를 죽여도 일정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해제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력이 강하고,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싶은 적을 격리시키는 데에 유효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강점은,

     

     "이제야 붙잡았다고......이걸로 네놈도 살육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른 아군 유닛이 침입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슬렛지해머를 메고서 흰 방으로 들어온 그라도라의 피투성이 모습에 하루나는 순간 놀랐지만, 바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만들었다.

     

     "단장, 또 그런 싸움 방식을..... 카론님은 단장을 높게 평가해 주시지만, 그건 난폭함만을 원해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있을 텐데요. 그런 쓸데없는 상처를 입는 건, 카론님이 믿고 맡기는 제 2단의 단장으로서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ㅡㅡ"

     "쫑알쫑알 시끄럽다고 하루나. 빨리 고쳐."

     "하아......"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며 싸움을 갈구하는 그라도라의 모습을 보고, 이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다고 판단한 하루나는 마지못한 모습으로 영창을 시작하였다.

     2대1의 상황에서, 물리특화와 마술특화의 조합은 칼바란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비, 비겁하지 않아? 이거저거 말한 주제에, 결국 숫자에 기댈 셈이야? 강자의 자존심도 버린 불쌍한 개로 전락해버리다니, 역시 단순한 인간의 애완동물 아냐?"

     

     1대1이라면, 승산은 있을 것이다. 선전은 가능할 것이다. 여자를 죽이면 도망칠 수도 있고.

     회복을 끝낸 그라도라는 그 도발에 아무 말도 안하고, 강하게 내딛으며 사마귀의 머리를 옆에서 후려쳤다.

     숨을 곳이 없는 공간에서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당하면, 안젤마타의 능력 따윈 가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방어도 때에 맞추지 못하여 제대로 맞아버린 칼바란은, 머리와 몸이 조각날 듯한 위력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뭔가 착각하지 않았냐? 세상을 모르는 거냐? 마왕군이 바보인 거냐?"

     

     가슴 후련한 직격의 감촉에 기분이 좋아진 그라도라였지만, 쓸데없는 생각에 침을 뱉었다.

     

     "위대하신 카론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는 건 이기는 일 뿐이다. 누구에게 원망받든, 미움받든, 그딴 거 알 바 아냐. 내 자존심도, 목숨도, 왕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바친다. 그게 충실한 종복이라는 거라고."

     

     길고 긴 전투의 역사, 그 끝애 도달한 경지는 확고한 충성이다.

     무도한 일도 비겁한 일도 해왔고, 당해왔다. 그런 상태에서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승리를 거머쥐어 온 것이다.

     자존심을 우선하여 추태를 보인 경험도 있다. 거기서 커다란 타격을 입은 일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배우며 도달한 결론을, 카론은 충성도의 파라미터라고 부르겠지만, 그들 군인은 마음에 강하게 새겨진 각오를 담아 충성을 외친다.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신하의 귀감.

     무패의 군세가, 무패인 까닭이었다.

     

     "히, 히, 기이이이아아아아!!!"

     

     벽에 패대기쳐진 칼바란이 외쳤다.

     그것은 그라도라와는 다른 의미로 자존심을 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힘을 전부 해방하여, 자신과 함께 적을 없애려는 전신전령의 투쟁을 위기상황에서 선택했다.

     몸을 불태우는 검은 화염을 일으키면서, 일그러진 별의 탄환으로 주변을 메꾸어갔다.

     

     "핫하! 과연 이래야지! 하루나, 두 번의 실수는 용서하지 않겠다!"

     "물론이에요. 월랑의 이름에 맹세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승리를."

     "죽어어어어어어어어!!"

     

     곤충의 턱에서 외침 소리가 나오는 것에 맞추어, 엄청난 수의 탄환이 일제히 쏘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이 물리치며 우뚝 솟은 광휘의 부적. 사악을 떨쳐내고 궁극으로 나아가라! 《헥사 세이크리드》 !"

     

     던져진 여섯 장의 부적이 두 사람의 앞에서 춤추며, 육각형의 투명하고 흰 방패가 정면에 나타났다.

     폭격과도 같은 흑탄이 빗발치는 듯 쏟아졌다. 한발 한발이 인간 정도라면 조각내버릴 만한 위력을 갖고 있었으며, 순백의 세계를 이곳저곳 그을음으로 메워갔다.

     전부 쏘아보낸 후, 칼바란이 다시 한번 《인디비전 프라나》 를 쏘려고 네 다리를 들었다.

     동시에, 연기 안에서 슬렛지해머를 끌어내리면서 그라도라가 뛰쳐나왔다.

     중전차와도 같은 무겁고 빠른 돌진으로 거리를 좁혀나갔다.

     떠오르는 검은 탄환의 앞에서 무엇하나 겁먹는 일 없이, 희희낙락하며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간격으로 커다란 야수의 다리로 뛰어들어갔다.

     

     "젠장젠장젠장! 너희들만 없었다며어언!"

     "핫하! 싸움을 걸어온 건 네놈들 쪽이라고!?"

     "아아AAA아아아아아AA!!"

     

     네 다리가 좌우로 크게 벌려짐과 동시에 제 2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었지만, 그라도라는 결코 멈추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냥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 태어났다.

     시산혈해의 격전을 여는 짐승으로서 기대받았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힘 만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것이야말로, 제 2단의 의의라고 한다면.

     

     "싸움은 이래야지!"

     

     하루나의 헥사 세이크리드가 쪼개졌다.

     검은 마력의 덩어리가, 용자의 힘에 필적하는 마술에는 무방비만 내성 정도만 갖고 있는 그라도라를 꿰뚫으며, 새로운 상처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그 정도는 경상도 안된다. 겉보기에는 깊은 상처지만, 체력의 소모는 미미한 것이었다.

     칼바란은 공격의 수단을 바꾸어, 발 밑에 만든 어둠의 웅덩이에서 마술을 부여한 촉수를 창처럼 찔러들었다.

     그라도라도 역으로 쥐고 있던 해머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고, 기세를 담아 그대로 휘둘러 떨쳐냈다.

     

     매직스킬・저주 《스바라의 흑염》

     

     마지막은, 단순명쾌한 접근전이었다.

     칼바란은 묶은 촉수로 받아내려고 하면서 그라도라를 찔렀다. 무겁고 격한 거대한 철괴의 맹공은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칼바란은 전신이 삐걱거렸음에도 정신없이 공격하였다.

     그라도라는 무방비하게 몸을 드러낸 채 무기를 휘둘렀다. 찔러드는 촉수를 모기 정도로만 생각하였고,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혈풍이 춤추는 맹공을 되풀이하였다.

     어느 쪽이 우세인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점점 촉수의 움직임은 단순해지고, 예리한 요철의 면으로 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아얏! 장군이 되었다아! 인정받았다,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외톨이는 싫다아아아!!"

     

     정상까지 오른 것으로 언어를 부여받고, 동료를 손에 넣었다.

     고독하게 살기 위해 약자를 포식해 온 안젤마타가 이제야 손에 넣었던, 머물 곳.

     그것이 목숨과 함게 사라진다는 공포에, 칼바란은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어."

     

     갑자기, 맹공이 멈추었다.

     왼손으로 쥔 큰 망치를 오른쪽 등 뒤로 돌리고, 뒤튼 몸을 팽창시키며 힘을 모은 그라도라가, 미소를 없애며 중얼거렸다.

     

     "그럼, 후회하며 죽어."

     

     웨폰스킬・큰 망치 《디 헬 베이론》

     

      상체를 왼쪽으로 크게 기울이면서, 한팔로 휘두른 철괴가 호쾌한 속도로 칼바란의 측면에 충돌하였다.

      가느다란 벌레의 몸을 '공기의 벽에 부딪히게 하여' 소닉붐을 일으키는 고위 웨폰스킬은, 굳히고 있던 방어를 무시하며 휘둘러졌다.

     

     "아ㅡㅡ......"

     

     순식간에 음속을 초월한 칼바란의 육체는, 엄청난 가속도와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음속의 벽을 넘기는 것과 동시에 산산조각으로 흩뿌려졌다.

     비스듬히 휘두른 해머는 지면에 닿으며 불꽃을 일으키며, 그라도라의 등 뒤에서 정지하였다.

     흩뿌려진 검은 갑각과 파편은 호쾌한 궤적을 따라서 반원형으로 펼쳐져 흰 바닥을 더럽혔다.

     그걸 비스듬히 바라보면서, 그라도라는 투쟁의 여운을 맛보려는 듯 입에서 커다란 흰 연기를 내뿜었고, 피투성이가 된 큰 망치를 메고서 하루나를 돌아보며,

     

     "하루나, 너 회복 하나 해주지 않다니 무슨 생각이냐."

     

     라고, 평소의 기분 나쁜 듯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날 죽일 셈이냐." 라며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그라도라를 보며,하루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흰 결계의 해제를 하였다.

     상대하지 않는 그녀의 후두부에 콱 하고 망치의 자루를 갖다대자, 회색 늑대는 일부러 그러는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단장의 진심을 받아내면서 결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구요. 마지막에는 성벽을 부수는 게 아니라 성의 한 부분을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구요?"

     "딱히 상관없잖아. 우리들이 고치는 것도 아니니까."

     "고친다구요......이대로 간다면 카론님의 악평에 연결되고 마니까요."

     "쳇......옛 친구라고 제멋대로 말하기는."

     

     종이를 벗기는 듯이 결계가 사라져갔다.

     넓고 호화로운 대회장의 모습으로 돌아온 방의 안에서, 옅은 녹색으로 빛나는 회복의 마술을 그라도라에게 걸어주면서, 하루나는 고개숙이고 있던 코끝을 실룩실룩 움직였다.

     

     ".......딱히, 제 2단 안에서 의견을 낼 사람이 없잖아. 그리고 난 옛 친구가 아냐."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손을, 자그마한 짐승의 손이 감싸쥐며, 꾸욱 하고 손등을 꼬집었다.

     

     "소꿉친구야. 틀리지 마."

     

     그라도라는 하루나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뭐든지 꿰뚫어보는 것처럼 느끼거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식으로 느끼는 것도 그랬지만.

     그 이상으로, 여자라는 생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때문에 정말 껄끄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부단장에 어울렸지만, 그럼에도 편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흥!"

     

     이런 때에는, 반드시 어린애처럼 토라지는 것 밖에 못하는 그라도라를 보며, 하루나는 역시 알아챈 듯한 미소를 띄우며, 정해진 것처럼 화제를 전환했다.

     

     "단장, 카론님의 추가 연락 같은 건 왔었나요?"

     "......아직이다. 다만, 상대의 군은 문을 넘어서 이 나라를 목표로 직진하는 모양이다."

     "그건 누가?

     "베이오스가 준 정보다."

     "그런가요. 이미 이쪽은 슈젠님과 에레미야님의 군이 전개하고 있어요. 우리들도 빨리 전선에 가세해야겠네요."

     "알고 있다니까~!"

     

     격한 싸움의 흔적은 공간에 무엇 하나 남기지 않았다.

     칼바란의 사체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란히 바깥으로 걷고 있었지만, 그라도라는 갑자기 멈춰서서 돌아보았다.

     

     "태어난 나라가 나빴었다고."

     

     원한이나 고통은 알바 아니었지만, 그 쓸쓸함만은 가슴에 와 닿았다.

     텅 비어버린 대회장을 본 그라도라였지만, 흥, 하고 강하게 코웃음을 치며 쓸데없는 잡념을 버리고 떠났다.

     

     "단장?"

     "아무 것도 아냐."

     

     의아해하는 하루나에게 틈도 안주고 대답하고서, 그라도라는 다시 걸어갔다.

     이 방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라며, 두 번 다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보다 인간들은 어떻게 했지?"

     "다른 방에 밀어 넣었어요. 꽤 쇠약해진 덕분에 순순히 따라주었어요."

     "전 용자후보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정중히 격리시켜 두었어요. 전투가 끝날 무렵에는 몸 성히 나올 수 있겠죠."

     "정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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