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폭거2021년 02월 01일 22시 52분 2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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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가치가 없는 생명이어도, 아무리 취약한 생명이어도, 양분이 되는 이상, 감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할드로기아는 이런 거라도 그웬타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고마워 잔반. 네 목숨은 미미한 것이지만 소중히 쓸게."
검붉은 고기에서 드러난 무수한 이빨이, 제단의 앞에 굴러다니는 그웬타에서 뽑혀나와서 할드로기아의 팔을 형성해 나간다.
부착된 피를 작은 혀로 할짝 하고 닦고서,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네. 키마이라는 의인화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능력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너만은 특별했던 걸까."
키메라도 본래는 의인화할 수 있는 능력은 갖지 않았지만, 그걸 숨긴 할드로기아는 방 안을 걸어다니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마왕을 자칭하는 마물은 어떤 힘이 있을지 정말 흥미로워. 마물을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힘을 부여할 수 있을 지도? 신경쓰여, 정말."
대답은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와 끊어질 듯한 호흡음.
엎어져서 쓰러진 키마이라의 실루엣은 꽤 단정해졌다.
그와 떨어진 장소에서는, 수십년 만의 식사를 기뻐하는 듯이 씹는 소리가 벽과 바닥에서 들려왔다.
"먹은 것의 기억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면 수고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편리하진 않네. 그러니 솔직히 말해줄 순 없을까."
듣고있는 건지 아닌지, 그웬타는 이제 욕지거리도 말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다리에 힘은 없었고, 무릎을 세워보려고 했지만 실패하는 모습은, 어딘가 벌레를 연상시킨다.
조금 전까지 격렬한 공세를 취하던 거한은 흔적도 없었고, 몇 번이나 팔을 뜯어먹혀서 막대한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스킬에 의한 재생도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모든 어드밴티지를 빼앗긴 그웬타가 이 규격외의 괴물을 없애기에, 여섯 팔 만으로는 도통 부족하였다.
벽이, 천장이 이를 드러내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낸다.
담담하고 덧없이 입가를 움직일 뿐인 할드로기아로 변하여, 실속없는 오만을 비웃음의 소재로 삼아서.
"크, 으.....네놈따위, 네놈, 따위한테.......!"
이제야 말을 꺼낸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자존심이었다.
할드로기아는 재미없다는 식으로 어깨를 떨구고는, 한바퀴 돌고 나서 방의 입구까지 도착한 참에 다리를 세웠다.
손장난으로 돌린 창이 피리같이 날카로운 소리로 연주된다.
촛대의 불을 꺼지니 유일한 광원이 된 마법진의 붉은 빛에 비쳐져서, 기분나쁜 피부의 흰색을 돋보이게 하였다
"싸우는 보람 뿐만 아니라 유머도 부족하다니. 마왕군의 간부는 모두 이런 걸까나? 아니면 네가 특별하게 무능한 걸까?"
"나는, 제, 제 8 석을 맡은 마수......마왕님에게서 받은 이, 힘이......계집 따위에게.....질리가 없다아!!"
분노에 미쳐서 내지른 포효가 돌을 격하게 진동시킨다.
순식간에 돋아난 팔로 지면을 치며 몸을 일으키고는, 할드로기아를 향해 무기의 모습으로 바꾼 팔을 기세좋게 뻗었다.
채찍, 낫, 도끼, 작살, 검, 갈고리로.
불규칙하게 구불거리면서, 콜드론 연봉에 군림하고 있던 야수조차 일격에 쓰러트릴 정도의 위력이 담겨진 혼신의 일격이 무방비한 야윈 소녀를 덮쳐들었다.
하지만, 가느다란 팔을 가볍게 치켜든 것만으로 할드로기아의 주변을 가리듯이 지면이 일어나서, 전부 받아내고 말았다.
겉보기엔 돌과 흙의 집합체지만, 고무공같은 탄력과 일관된 단단함은 근육에 한층 가까운 감촉이다.
벽돌 정도의 두께밖에 없는 벽이 막고 있는 것이니, 뭔가로 변질되었음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걸 알았음에도 그웬타에게 가능한 것은 실력으로 밀어붙이는 것 뿐이었다.
마왕에게 받은 '례' 의 힘은 벗겨진 피부를 촉매로 하지 않으면 쓸 수 없고, 마물끼리의 싸움에 버틸만한 힘도 담아낼 수 없다.
그웬타 이상의 위협이 나타난다고는, 상정하지 못했던 능력인 것이다.
"너무 들어서 질린 대사야."
벽의 틈새로 들여다 본 검은 안대에 그려진 문장이, 그웬타를 똑바로 향하고 있다.
전신에 흐르는 두려움이 그웬타에게 위기를 알렸지만, 이미 늦었다.
뻗어온 팔을 노리고, 천장에서 단두대가 내려왔다.
이미 다섯 번의 절단인데도 통각이 둔해지는 일은 없었고, 몇 번이나 선명한 격통을 뇌에 주입시켰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절규의 연속으로 쉬어버려서, 목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소리는 더이상 목소리라 부를 수 없는 것이 되어있었다.
흑백으로 점멸되는 시야에 비치는 빨강.
그것은 그웬타 자신의 피였으며, 그리고 제단에서 나오는 마력의 색.
이 수육된 사당을 파괴할 수 없다면, 그웬타가 마왕에게서 받은 임무를 완수할 수 없게 된다.
이대로 그냥 도전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는 소극적인 사고가 생겨남과 동시에, 그웬타가 쓰러지는 듯이 제단의 위에 새겨진 마법진 위에 무릎을 꿇고, 남은 마력을 단번에 주입시켰다.
작열하는 듯이 빛이 강해진 마법진은 급속도로 마력을 불태워나가서, 원 안에 쓰여진 마술식을 기동시켜간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꼴 좋다! 이걸로 네놈들은 끝이다! 인간의 왕도, 너도! 사르탄도!"
지옥의 문은 열렸다.
그것도, 두 개.
이계에서 일거에 몰려드는 마물의 무리는 금세 레스티아 대륙을 침식하고, 이 땅을 혼돈으로 이끌 것이다.
"좋다, 네놈의 승리는 인정해주지. 하지만! 이 전쟁의 승리는 우리들이 가져간다!"
이 키메라가 아무리 강해도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면 맹위를 떨칠 수 없다고 간파한 그웬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계획의 이행을 선택했다.
밖에서 결계를 파괴했던 마물이 합류한다 해도, 폭거의 파도를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연봉의 저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옥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얕봤구나 계집! 의식을 파괴하지 않았던 네놈의 죄다! 마왕의 군세에 떨면서ㅡㅡ"
얕봤다?
방 그 자체를 단어 그대로 집어삼킨 마물이, 언제까지나 제단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럴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빛나는 진홍의 빛을 받으며, 달성감을 잃은 합성수의 얼굴에 전율이 떠올랐다.
몸을 비틀며 돌아보며, 접근해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 해답은 짧은 대사로 끝났다.
"고마워. 기다리다 지쳐버렸지 뭐야."
웨폰스킬・창 《폴 돈》
높게 치솟은 할드로기아는 창을 쥐고, 기고 있는 그웬타를 향하여 있는 힘껏 던졌다.
머리를 관통한 일격은 영광처럼 눈부신 백은으로 빛나며 지면을 꿰뚫은 후 멈추었다.
불타는 듯한 열기 속, 가벼운 몸놀림으로 지면에 내려온 할드로기아가 돌아보자, 고밀도의 마력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물이었던 것을 집어삼키는 바닥.
그리고, 벗겨올린 지면의 고치에 휩싸여, 이 소란 속에서도 느긋하게 잠들고 있는 '천름'의 용자.
싸우는 보람이 있다고는 조금 말하기 어려운 상대였지만, 어쨌든 할드로기아의 목적은 완수되었다.
마왕군의 장군을 죽이고, 전이문의 마술을 발동시키고, 용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뭔가 부탁해도 화내지 않으려나.....하지만, 만일 아버님이 싫어하신다면. 아아 어떻게 할까나."
할드로기아는 부끄러운 듯 몸을 비틀면서 제단의 방어를 풀어나갔다.
"......어라?"
그곳에, 스콜라의 모습은 없었다.
공격 도중에 날아가버렸나 생각했지만, 제단 위에는 흰 천만이 놓여져 있을 뿐이고, 어딜 둘러봐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지면에서 뽑아든 창을 빙글 돌리면서 그녀는 의식을 집중시켰다.
이 방은 모든 것이 할드로기아의 육체와 같다.
실내의 방어전에서 무적을 자랑하는 할드로기아의 <침식아성> 을 쉽게 돌파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궁전을 통채로 날려버려서 실내의 정의를 바꿔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나가거나 들어오는 일도 불가능하다.
아포카리스페 공식 치트의 이름은 겉치레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상은 된다.
"후후, 나를 쫓아서 들어온 쥐가, 갇혀버려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걸까나."
눈으로는 보지 못해도 감촉은 있다.
잔인한 위장 속에서 몰래 움직이는 누군가가.
그 위치를 향해, 예비동작도 없이 창이 투척되었다.
창은 벽에 꼳혀서 부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떨렸다.
그 창끝이 뭔가를 벽에 붙잡아뒀다는 것을 피부보다 민감하게 느낀 할드로기아는, 벽에 회수되어 지면에서 돋아난 또 한 갈래의 창을 거머쥐고, 이번엔 알기 쉽게 투척의 자세를 취했다.
"아버님과 유쾌한 경쟁을 약속했다고 하던데, 이건 누구의 승리인지 가르쳐 줄래? 응, 서생원 씨."
".......그야, 그쪽의 승리잖아?"
마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자는, 망토로 싼 스콜라를 팔에 품은 하인켄・그레이크로우였다.
산적 차림이 아닌, 안아르바의 제복인 검정과 빨강의 천을 몇 겹이나 두른 불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내 뒤에 숨어있었던 거네. 대단하다고 말해줘야 할까."
"이래 뵈어도 암살이 생업이라서 말이다. 당신 정도의 마물을 속였던 일은 자랑할 수 있겠어."
"나, 마술은 못하는걸. 하지만, 그랬는데도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니 꼴사납게 되었네."
"그쪽이 이런 비장의 수를 쓰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지. 그 마례장군을 아이취급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본래라면, 더욱 빨리 구해서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할드로기아가 외곽으로 도망치면서도 스콜라에게서 의식을 떼어놓지 않았고, 그 후엔 제단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싸운 탓에 기회를 계속 놓친 하인켄.
이렇게 교활하게, 스콜라를 먼저 구출한 건 자신이라고 말하며 끌어안는 수 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걸로 할드로기아가 죽여서라도 빼앗으려 한다면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언제 벽과 바닥이 습격해올지 신경쓰였던 하인켄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 땀이 눈에 들어와도 태연한 얼굴을 계속 지었다.
"당신의 그걸 '구했다' 고 말하기에는 조잡하지 않으려나. 아직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는걸?"
"설마. 경쟁 상대에게 손을 대는 비겁한 짓을, 당신네 왕이 허용할 리가 있나?"
"그렇네. 아버님은 허락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당신이 마왕군의 간부에게 살해당했다' 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 누구의 말이지. 당신인가? 왕인가?"
"그건 가르쳐 줄 수 없겠는걸."
"그래.....어쨌든 스콜라님의 신병은 내가 확보했다. 구출에는 확실히 협력했다. 승부는 누가 먼저 신병을 확보하는지였다. 다시 말해, 구했는지 어떤지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 방을 지배하에 둔 시점에서 내가 확보했다는 말과 같은 뜻이야. 그 키마이라를 죽인 시점에서도 당신은 그 용자를 건드리지 못했잖아."
"그건 확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자신의 정원에 옆집 아이가 완구를 떨어트렸다고 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녀석은 없다고."
"집주인이 무서워서 완구를 되찾지도 못한 주제에, 주인이 바뀌자마자 받으러 오는 것도 꼴불견이야. 계속 떨어트리고 있었으니 내 정원이 된 이상 내 것이야."
"당신에게는 불필요하잖아."
"가주는 아버님, 난 정원을 맡겨진 사냥개. 주인님이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 주는 건 의무인걸."
"그럼 그 주인님은, 스콜라님을 부인으로 맞이할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제국의 공주를 원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냐고?"
"뭐!? 아버님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마물과 살며 마물에게 모든 걸 바쳐온 존귀한 인간이란 말야! 인간 여자에게 빠져버리는 일 따윈."
"결국 당신 정도로 괜찮은 여자에게도 손을 대지 않는다는 말인가. 확실히 여자 경험은 적어보였지. 혹시 아직인가?"
"아......그......잠......아니, 그 가능성은 버릴 수 없으려나. 루슈카도 구치나시히메도, 그 뿐인가 필미리아도 방으로 불렀던 일이 없어. 그럼 카론님은 계속 미경험......? 설마, 그건.....괜찮을까. 나쁜 걸까.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올바를까? 어라? 어어?"
생각도 못한 실마리에 말문이 막히고 만 하인켄이었지만, 바로 정신을 되찾고 그대로 교섭을 진행해보았다.
"아~, 뭐, 그런 걱정이 있다면, 여기선 내가 구출한 걸로 하는 편이 서로를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겐 할 수 없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이 원한다는 것은 사실. 아무리 왕이 그 여자를......그, 그렇다 해도 넘겨줄 순 없는걸."
"쳇."
하지만, 왕의 명령을 배반하는 일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할드로기아가 제안을 승낙하는 일은 없었다.
'우왕좌왕하지만, 최종적인 지점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최강의 충견인가. 믿음직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선문답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좋아. 이 심의는 아버님이 결정하도록 하겠어."
할드로기아가 충견인 이상은 주인의 의향을 물어볼 수 밖에 없었고, 피곤한 듯 고개를 숙인 하인켄으로선 원하던 전개가 되는 것이었다.
창이 뽑혀서 자유가 된 하인켄은, 소중히 품고 있던 스콜라를 양손으로 다시 품고서, 사장의 지배를 풀어가는 할드로기아에게 물어보았다.
"어이, 왜 마법진을 사용하게 했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걸."
"마왕군을 맞아들이다니, 쓸데없이 귀찮은 위기를 초래할 뿐이다. 그웬타만 죽였다면 원만히 수습되었잖아."
하인이 보기에, 이 소녀가 쓰러트린 마왕군의 간부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리고 제국군이 국경에서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를 그 눈으로 보았었다.
그 군세가 밀어닥친다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이 준비한 장기말 만으로 버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아, 그거."
질문에 대답하려고 돌아본 소녀의 얼굴은 부정형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찢어진 입. 불규칙한 여러 안구.
방에 흘러들었던 자신의 일부를 흡수하면서 재배치하고 있는 탓에 몸의 곳곳이 검붉은 이형으로 변하는 것을 눈치채고, 하인켄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아버님이 화났으니까. 그냥 그것 뿐이야."
충견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불길한 괴물.
그걸 태연히 장기말로 삼는 그 남자의 가치를 다시 올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건드려서는 안될 나라에 올려놓는 것도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이게 최상의 전력이 아닐 가능성' 을 생각하는 것이 두렵다.
마물에 대한 회한조차도 두려움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을 품게 하는 괴물과, 어떻게 싸우면 좋을까.
이 전투 안에서 얻은 것은, 분명 죽어도 모를 만한 것들 뿐이라고, 하인켄은 키득거리며 귀엽게 웃는 괴물을 보면서 느끼고 말았다.
◆
사당의 제단에서 발동한 마술은, 레스티아 대륙의 지하에 펼쳐져 있떤 지맥을 달려 북쪽으로 향했다.
그웬타가 남긴 마력의 전부를 주입한 마술은, 영봉을 넘어 동서로 갈라져서, 커다란 흙더미에 파묻혀서 숨겨져 있던 마법진에 힘을 주입했다.
갑자기 위로 뻗은 두 진홍의 빛기둥은, 그 아래에 잠든 것을 잡아일으키듯이 하늘로 뻗어올랐다.
대기를 흔들고, 세계에 가득찬 마력을 진동시키면서 붉은 마력의 그물이 되어 지면에서 끌어올린 것은, 몇 마리의 악마가 달라붙어있는 참혹한 이계의 문.
괴상한 비명소리를 울리는 거문의 건너편은 한탄의 도시. 그곳에는 영원한 번뇌가 넘쳤고, 사는 자들은 멸망의 주민들이었다.
그야말로 지옥의 문과 같았으며, 절규와도 비슷한 개문의 소리가 레스티아 대륙 안에 울려퍼졌다.
리페리스 왕국에 사는 백성, 귀족, 병사, 기사할 것 없이 누구나 세계를 혼돈으로 이끄는 마의 첫 울음소리를 느꼈다.
그것은 절망의 개막. 시작의 만종. 끝을 고하는 목소리.
선택된 자들만이 맞서는 게 허락되는 짐승의 무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걸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것은, 이계에서 나타났을 거대한 문에 대한 공포인가.
그것은 아니다.
느끼는 것이다. 불길하고, 오싹한 느낌의 폭마의 '기척' 따위를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인간 따위 많을 리가 없다.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진자가 많을 리가 없다.
그 공포를 불러 일으킨 것은, 좀 더 가까이에 기다리는 죽음이었다.
지금, 이 왕국을 에워싼 괴물의 무리가, 드디어 커다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걸 이해하고 본능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먼 옛날 광대한 대륙 하나를 유린하기 시작한 파괴의 화신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전율하는 마물이 한 마리, 성 안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면 좋다고 생각해? 그웬타는 잘 해낸거야? 아무 것도 모르겠어, 뭐를뭐를뭐를? 이런 것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리가 없잖아?"
소년도 소녀도 아닌 어린 목소리로 당혹감을 입에 담는 검은 연기의 해충은, 도망칠 길을 찾으려고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왕군의 간부이며, 용자조차 저항할 수 없는 마술을 행사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마물에게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면 좋아? 마왕군에게 연락할 수 없어? 아니, 나라면 죽일 수 있잖아? 왜냐면 난 강한걸? 하지만, 하지만.....난 죽일 수 없는걸?"
꿈틀거리는 검은 연기는 대답이 안나오는 자문자답에 휘둘려서 불규칙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 어조와 음정의 앳됨은 지성의 정도에도 직결되어 있어서, 복잡한 사고가 가능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혼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이란 과시하는 게 당연한 법이다. 마물로서 태어났으면서, 주변을 배려하는 일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방식은 이해할 수 없다.
일부러 힘을 숨기고, 연약한 인간을 따르다니 쓸데없고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은 연기의 충수는 무의식적으로 도주하는 일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웬타는 성공했잖아? 이제부터 마왕님의 유린이 시작되니까, 난 나의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 마환장군을 맡은 칼바란이, 이 성의 인간을 죽여서.....'
성의 뒷편이라 할 수 있는 좁은 회랑의 천장에 숨어 있던 충수는,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오는 걸 느끼고 서둘러 뛰어내렸다.
다음 순간에는, 자신이 있던 회랑이 낙하해 온 거대한 무언가에게 파기되었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검은 연기는 가스같은 부정형이었지만, 실루엣은 그야말로 사마귀를 연상시켰다.
마왕에게서 마환장군의 자리를 받은 랭크 7의 이형종, 심연을 거니는 해충 [안젤마타] 는, 잔해를 밟고 있는 청과 백의 거대한 늑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이어이어이, 어딜 갈 거냐고 벌레 녀석. 이제부터 본 게임이니 좀 더 놀아줘도 되잖아. 그리고 카론님을 떼어놓은 일의 보답도 끝나지 않았다고? 뭐어, 이제 와서 무사히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고오!!"
큰 망치가 횡으로 휘둘러진 것만으로도 질풍이 휘몰아친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는 마력에도 태도에도 나타나 있어서, 열화와 같이 분노하는 [크로셀] 의 포효는 어제까지 여유로웠던 사마귀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떨리게 하였다.
"열받아열받아, 전부 다 열받아서 견딜 수 없다아!! 잡것들이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우리들한테 이를 드러낸단 말이다! 우리가 따스히 대해주니까 기어오르기는!!"
오늘까지 참아왔던 감정이, 드디어 빗장이 벗겨진 세계로 분출되어간다.
'급한 성미' 와 '저돌' 을 부여받았으면서 오늘까지 참아왔던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그럴 정도로 이 그라도라에게 있어, 왕을 빼앗긴 분노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쌓여있던 스트레스의 원인이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였다.
겁먹은 인간의 모습. 태연히 살아있는 하수인의 존재. 소중히 남겨두었던 반찬을 빼앗긴 에레미야의 태도. 무기력한 슈젠의 얼굴.
후반은 사적인 일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흘러나오는 창염의 마력은 호응하는 듯 격렬히 흔들렸다.
"나, 나. 날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긴 내 영역이라고? 어둠을 걷는 나를, 땅에 발을 붙이는 개가 만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 존재감에 압도된 사마귀의 허세.
상성을 말하자면 안젤마타 쪽이 우위다.
여긴 아직 왕성의 안. 좁은 복도를 빠져나가도 돌아와도 실내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루나와 싸웠던 것 처럼 얼마든지 농락할 수 있다.
거기다 마술도 못쓰고 물리 공격밖에 수단이 없는 둔중한 상대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분노를 발산하고 있던 그라도라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회색의 삼백안을 매우 유쾌하게 일그러뜨리며, 깊고 무거운 잔혹한 미소를 입에 띄운 모습에 공포심이 늘어났다.
"그러어어어엄,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겠구만?"
분노의 거랑과 어둠에 잠긴 사마귀.
그것은 기묘하게도, 사르탄과 마찬가지로 간부끼리 싸우는 형세가 되었다.
동시에, 왕국에게 마물의 무서움을 일깨우는 지옥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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