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2 전생영애의 각성(1)
    2023년 12월 14일 22시 31분 0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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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ㅡ비올레타 레이븐스는 전생자다.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열 살 때였다.







     화창한 초여름 날, 비올레타는 장미정원에서 특이한 꽃봉오리를 발견했다.

     신기해서 만져보니 그것은 꽃봉오리가 아니라 분홍색 애벌레였다.

     비올레타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치고, 그 충격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 전생에 일본인이었어!)



     넘어지면서 본 하늘은 푸르러서,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고통보다 전생을 떠올린 충격으로 인해 멍하니 있던 비올레타는 당황한 하인들에 의해 곧바로 방으로 옮겨져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침대에 눕게 되었다.



    (일본 ...... 한가롭고, 논이 펼쳐져 있고 ...... 지금 계절에는 벼가 푸르러서 ......)



     침대에 누워 논밭의 풍경을 떠올린다. 물이 가득 찬 논에 푸르른 벼가 쭉쭉 뻗어 있고, 바람이 불면 반짝반짝 빛나며 흔들린다. 밀밭과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아주 아주 먼 기억이다.

     그리고 희미한 기억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영지의 풍경만큼, 아니 그보다 더 희미한 기억이다. 기억나는 것은 흐릿한 영상뿐이고,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실감이 없다.



     어차피 전생의 자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도,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비올레타로 살아온 10년. 그동안의 기억 때문에 전생의 기억은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ㅡㅡ쌀......)



     논의 풍경에 이끌려서인지, 밥맛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갓 지은 백미. 주먹밥. 냄새에, 식감에, 단맛과 만족감.



    (쌀, 백미, 라이스 ......!)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밀이 주식이다.

     쌀이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기억이 났다. 백미의 맛을. 향기를.

     한 번 떠올리자 더 이상 잊을 수 없다.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세상은 넓다.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반드시. 분명. 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비슷한 것이.



    "이렇게 가만있을 수 없어."



     비올레타는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에 감겨있던 붕대를 벗겨냈다.

     주변에 있던 메이드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 아가씨. 더 누워있으셔야 해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으니 괜찮아. 부딪혔을 뿐이지 딱히 다친 것도 아니야.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침대에서 슬그머니 내려온다.



    "어머니한테 갈게."



     비올레타는 달음박질로 어머니의 방을 향했다.

     방의 침대 위에는 비올레타의 어머니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비올레타를 발견한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오야, 이제 괜찮니?"

    "괜찮아요. 그냥 넘어졌을 뿐이에요."



     비올레타는 밝게 말하며 어머니의 침대로 향했다.

     어머니는 걱정된다는 듯이, 보라색 눈동자와 금빛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어머니, 벼농사라는 것을 아세요?"

    "벼농사 ......?"

    "밀과 비슷하지만, 물을 채워놓은 얕은 연못 같은 곳에서 재배하는 거예요."

    "어머, 재배라니,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알고 있구나. 오스카에게 배운 거니?"

    "어, 음, 오빠가 아니라 책에서 ......"



     ㅡㅡ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제대로 기억을 떠올렸다면 모를까, 너무 흐릿하다.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전생을 떠올려도 거의 변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 말투가 달라지다니........)



     스스로도 몰랐다.



    "어머나. 비오야, 책으로 공부를 했어? 비오는 정말 기특한 아이로구나."



     가느다란 손으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비올레타는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그 가느다란 손목이 걱정스러웠다.



     원래 병약했던 어머니는 비올레타의 두 살 아래 여동생 루시아를 낳은 후 점점 더 쇠약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자고, 식사를 잘하지 않아 몸은 가늘고,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덧없는 모습을......



    (...... 너무 하얗지 않아?)



     하얀색을 넘어, 이제는 푸른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설탕과 크림 냄새.



    "어머니, 또 케이크를 드셨어요?"

    "응, 그래. 케이크는 소중한 약인걸."

    "하지만 매번 케이크만 드시잖아요?"

    "지금은 그것 정도밖에 못 먹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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