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 한 가지 당신의 오해를 바로잡아줄게."
"뭐를......"
"나는 하베스트 변경백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
"어? 아까는 정략결혼을 한다고 했잖아?"
"그런 식으로 말한 것뿐이지 실제로는 안 해. 오히려 아버님은 하베스트 변경백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어"
"그래 ....... 실비아 제4왕녀 전하와 약혼한 이후의 레오루드는 계속 혼담을 거절했으니, 플뤼겔 공작은 당신과 정략결혼을 시키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거네."
"그래. 조금은 기운이 돌아왔니?"
"...... 또 그렇게 놀리기는."
"그야, 울면 뒷수습이 힘들지 않겠어?"
"조, 조금은 위로해 줘도 괜찮잖아 ......"
"싫어. 당신은 드센 것에 비해 정신적으로 약해. 한번 울기 시작하면 방에 틀어박혀서 며칠 동안 얼굴도 안 비추는 경우가 많았잖아."
"으으......"
"나한테 바로 오지 않은 것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느라 그랬지?"
"............ 그래."
아직 평소의 컨디션에는 이르지만, 테스타로사의 따끔한 말에 엘리나는 자신의 뺨을 치며 다시 힘을 냈다.
"후~......"
머리는 맑아졌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정해졌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지크프리트와 맺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물론 그전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아무리 엘리나가 지크프리트와 결혼하면 이만큼의 이익이 있다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일단 모두랑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확인해야겠어."
"나처럼 포기하고 있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 일단 다 모아서 얘기해 보려고."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야? 설마 고백이라도 할 셈?"
"그 방법밖에 없어. 지금 이대로는 평생 이해받을 수 없어 보이는걸."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른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게 좋은 거 아냐? 나는 결국 아무것도 전할 수 없었던 거니까."
"그래. 그래서 모두와 이야기해서 같은 마음이라면 고백을 해볼까 싶어."
"그래도 안 된다면?"
"아직 거절당한다고 결정된 건 아니야. 그리고 우리를 의식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측면도 있어."
"그렇구나. 절망에 빠진 게 아니라, 제대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래......"
"그래. 그때 고백할 걸 그랬다며 후회하지 않도록 할게."
"어머, 말에 가시가 있네."
"흥. 반격이라는 거야."
뜻밖의 반격을 받은 테스타로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엘리나는 테스타로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후회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웃는 얼굴로 변함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엘리나는 테스타로사에게 따진다.
"아무렇지도 않아? 당신도 헤어지기 전에 고백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결코 강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테스타로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단정 지었으니,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테스타로사는 잘라 말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레오루드한테서 제일 먼저 떠났을 때와 똑같아."
"나빴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 시절의 레오 군을 접하다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을 테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해."
감정보다 손익을 먼저 생각하는 테스타로사와, 손익보다 감정을 먼저 생각하는 엘리나.
두 사람이 어렸을 때, 레오루드에 대한 평가는 같았던 모양이다.
"그럼,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어."
"다행이네. 고민이 해결되어서."
"그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고나 할까. 아직 멀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지."
"응원할게."
"............ 당신도 힘내."
아직 시간이 있으니 한 번만 더 함께 마음을 전하자면서 엘리나는 테스타로사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답이 정해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자신과 다른 길을 선택한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엘리나를 떠나보낸 테스타로사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난, 정말 싫은 여자야....... ......"
방금 전의 대화가 떠올라 자기혐오에 빠진 테스타로사는, 곧장 어쩔 수 없다며 자조했다.
그렇게 자라왔고, 지금 와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테스타로사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 반성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레오 군과 실비아 전하께 쓸모 있는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반성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선 레오루드에게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제2부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신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테스타로사는 분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