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해서 몸을 기울여 테스타로사에게 가까이했던 엘리나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침묵했다.
그러자 마치 타이밍을 잰 듯 테스타로사의 시종들이 다과를 가져왔다.
테이블에 놓인 차와 과자를 멍하니 쳐다보는 엘리나와,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마시기 시작하는 테스타로사.
"지크는 ...... 지크는 어떻게 할 거야?"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신의 손에 든 홍차를 바라보던 엘리아나가 테스타로사에게 물었다.
"저기, 엘리나. 사랑과 꿈은 가다고 생각하지 않니?"
"......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 정말로?"
"둘 다 깬다는 뜻......?"
"잘 알고 있으면서. 그래. 사랑도 꿈도 언젠가는 깨어나는 거야. 나는 이미 깨어났어."
"포기하려고? 좋아하잖아? 지크를."
엎드려 있던 엘리나는 고개를 들어 테스타로사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에는 비애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이 아닌,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가는 여자의 덧없이 웃는 얼굴이 엘레나의 눈에 비쳤다.
"그래, 맞아. 헤어지기로 했어. 사랑에 빠진 소녀는 될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꿈꾸는 소녀로 남을 수는 없으니까."
"!"
테스타로사의 한 마디가 엘레나의 가슴을 푹 찔렀다.
연애결혼은 인정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적일 뿐, 실제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역시 단점이 많기 때문이다.
귀족이 평민과 결혼하면 가치관의 차이, 생활수준의 차이로 헤어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평민에게 귀족으로서의 교육을 시켜야 하여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 것이다.
인간관계도 복잡한데 잘 풀어야만 하고, 못마땅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귀족끼리도 마찬가지다.
연애결혼은 정략결혼과 달리 아무런 이득이 없다.
상대가 같은 가문이나 재력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쪽이 문제가 있는 가문과는 아무리 당사자끼리 사랑해도 맺어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은근슬쩍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상대를 물리적으로 없애거나 사회적으로 말살하기도 한다.
물론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맺어지는 것은 행복이며 희극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 현실은 다르다.
동화에서는 왕자와 공주가 맺어지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현실은 맺어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엘리나. 사랑만 있으면 뭐든 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더 행복해. 왜냐하면, 사랑은 무상일지라도 무한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식을 때가 올 거야.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가 왔어."
"그래서 레오루드 에게 가는 거야?"
"당신이 보기엔 얄팍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해. 왜냐하면 레오 군에게 사랑은 없어도 신뢰와 존경은 있기 때문이야. 레오 군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어. 거기에 사랑이 없을 뿐."
"그런 거 허무할 뿐이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돌아봐주지 않는 것도 허무할 뿐이야"
"............"
다시 고개를 숙인 엘리나는 홍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끔찍한 얼굴이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테스타로사는 엘리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하면서, 조금은 미지근해진 홍차를 마시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학교 시절은 즐거웠어. 지크 군은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신분의 차이를 신경 쓰지 않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며 모두 웃으며 지냈지. 나도 너희들과 함께한 시간은 고작 2년이었지만 정말 즐겁고 행복했어."
마치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한 말투가 신경 쓰인 엘리나는 되묻고 싶었지만, 테스타로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이후로도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기사단에 입단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그건 한순간의 꿈이었다는 것을."
학창 시절은 아무런 얽매임 없이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중심이 되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의 꿈에 불과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테스타로사는 플뤼겔 공작의 딸이 되어 학창 시절 친구였던 평민 아이들과 함께 놀 수도 없고, 편하게 말을 걸 수도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같은 기사단에 입단한 평민 친구가 귀족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정말 좋은 꿈이었어. 이미 깨어났지만."
그렇게 말하며 남은 홍차를 다 마신 테스타로사는, 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음,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