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을 내쉬며 나는 옷을 다시 입었다... 검은색 셔츠를 입고서 다시 책으로 향했다. 검은 옷은 편리하다. 피가 묻은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금방 못쓰게 될 염려가 없다.
"너, 학대받고 있어?"
"......"
"정말, 건방진 녀석! 괴롭히고 싶어 지네."
"어이."
그런 부류인가 싶어 조롱하듯 쳐다보니, "뭐야, 그 얼굴은!"이라고 말하면서 이상한 여자는 분개하고 있다.
"부상을 치료해 줄게. 도구는?"
"없어."
"없어!?"
"있으면 스스로 했지."
"...... 학대받았으니, 보복은 안 해?"
"딱히."
"설마 도망치는 것은."
"......"
"이대로 있으려고?"
"시끄러."
"아닛, 뭐어어어!?"
아이인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적이고, 도와줄 어른은 없다. 게다가 시그네우스 가문은 공작 가문이다. 이 집안의 사람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몇 명 안 된다. 이 여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조용히 지내면 맞을 일은 적다. 적지만 밥도 먹을 수 있다. 미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방 안에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는 비일상도, 그래서 어쨌냐는 이야기다. 그냥 귀찮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이 여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하찮은 남자."
"......뭐?"
"뭐야. 너 정말 실피드 시그네우스야? 조금만 괴롭힘을 당했을 뿐인데, 그대로 버티고 있기는........ 불쌍한 자신에 빠져 있는 거야? 재미없는 녀석."
"말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잖아."
"어머, 화도 내는구나. 화를 낼 기운은 있는데, 너무 작아서 바보 같아."
이제는 나도 책을 책상에 내려놓고 이상한 여자를 노려본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나와 당신은 방금 만났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미래에서 왔어. 당신이 실피드가 맞다면,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혼자서 당할 녀석이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고서, 여자는 손뼉을 쳤다.
"...... 아, 혹시 당신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럼, 그냥 불쌍한 아이한테 너무 심하게 말했던 거네. 미안해."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공부하는 책상 앞 의자에 앉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선은 증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네 집은 부잣집이니 간이 촬영기도 있겠지? 어차피 많이 사용하지 않으니 잠깐만 빌려도 들키지 않을 거야. 그래서 폭력을 휘두르는 영상을 찍는 거야. 가족뿐만 아니라 하인들의 것도. 이런 학대를 방치하는 걸 보면, 어차피 하인들도 쓰레기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니까, 여러 가지를 녹화해서 약점을 잡아야 해. 그래서 죽임을 당할 것 같다든가,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병에 걸렸다든가, 여차할 때 비장의 카드로 써먹는 거야. 너무 무리한 말을 하면 반격당할 수 있으니 요구사항은 작은 것들로만 해. 그리고 반대로 당신이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 중에 도와주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사람을 찾아서 몰래 그 사람의 친절함을 이용하는 거야. 대놓고 친하게 지내면 네 부모님이 그 사람을 해고할 거야. 어른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도망가서 마음대로 하면 돼."
연이어 들려오는 그 이야기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포기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게, 그 여자는 계속 말한다.
"당신이 이런 상태인데도 그냥 내버려 두다니, 이젠 뭘 기대해도 소용없어."
"......! 네가, 뭘 안다고"
"몰라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