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는 백작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그 능력은 적자인 형보다 뛰어나다고 자타가 공인했다.
더글러스의 형은 어느 날 그런 동생에게 '네가 백작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불손한 동생은 '미안하다, 형. 백작령으로는 부족해. 자력으로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라고 말한 것이다. 그날 형의 기절초풍했던 표정을, 더글라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왕궁의 관료가 되어 여러 부서를 거치며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렸고, 일찌감치 1대 백작의 지위를 얻었지만 거기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세습 귀족의 자리가 없어!)
세습 귀족이라고 해도, 자작가 수준이면 여기저기서 교체가 이루어진다. 더글러스라면 지금까지의 공적을 이용해 문제없이 취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작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글라스의 야망은 그 정도의 영지 경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빈자리만 있다면 백작, 아니 후작이라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백작가는 온건하게 영지를 다스리는 경우가 많고, 전쟁도 없는 요즘은 새로운 영주 백작의 지위를 신설하는 것 자체가 드물다. 신설된 후작가의 경우, 최근 60년 동안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운 좋게 인근 자작령에 빈자리가 생기면 그곳을 통합하여 ...... 아니 물밑작업이 없으면 어렵지 않을까 ......)
아무리 더글러스라 해도 야망을 위해 자작령을 무너뜨리는 짓을 하는 것은 주저된다.
이제 세습 귀족을 포기하고 1대 후작을 노려야 할 것일까.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장남 다니엘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아버지. 여기서만의 이야기지만, 이건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장남 다니엘에 따르면, 가드너 차기 변경백이 일부러 왕도까지 찾아와서는 다니엘에게 술자리에서 "만일 세습 귀족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가정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자작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아. 그다음에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우리를 어디까지 평가하느냐에 달렸다."는 아들 다니엘의 대답에, 가드너 차기 변경백은 "오, 역시 대단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더글라스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내가 자식을 키운 이유가 바로 이때를 위해서였나 보다'라는, 아들에게 혼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뻐했다. 실제로 다니엘을 껴안으며 그 생각을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그게 뭐야!"라며 화를 냈다.
차기 변경백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분명 백작 이상의 영지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술자리의 잡담일지라도 뒷사정을 확인해 볼 가치가 있다!
더글러스는 곧바로 국내 정세를 파악했다.
지금 현재 혼란스러운 땅, 불안정한 귀족 가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드너 변방 백작령의 정보.
조사 결과, 국내에서 입지가 위태로운 것은 역시 자작가 이하의 귀족 가문들뿐이었고, 백작가 이상의 가문은 별다른 변동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만약 백작가 이상의 세습 귀족의 자리가 생긴다고 한다면, 영주가 실종되었다는 통치의 난관인 살베니아 자작령 정도일 것이다. 그 땅이라면 통치의 난이도 때문에 작위를 올리는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남쪽 끝, 가드너 변경백령에서 차기 변경백이 금빛 머리칼을 가진 연둣빛 눈동자의 소녀를 만난다는 정보가 있다.
(그렇군. 차기 변경백이 그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땅을 다스릴 인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작으로는 부족하겠지...... 그렇다면 백작, 혹은 후작)
틀림없다.
이건 기회다.
그렇게 생각하고 응한 회담 자리에서, 커티스는 망설임 없이 '후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선택지는 더글러스에게 없다.
통치를 위한 조건은 나중에 들으면 된다. 그리고 설령 원하는 만큼의 지원이 없더라도, 더글러스에게는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인맥과 지혜, 후작으로서 국가가 부여한 초기 자산으로 그 자작령을 다스릴 자신이 있다.
원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보다, 이 안건을 보류하는 동안 변경백이 다음 후보에게 타진하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더글러스는 최선을 다해 커티스-가드너 변경백에게 자신의 힘을 어필했다.
이제 그의 판단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손에 땀을 쥐고 있는 더글라스의 눈앞에서, 문득 커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선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군."
"......! 그럼."
"자네한테 그 땅의 통치를 부탁하고 싶네. 이제부터 그 일을 위해 서로 협의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각하!"
이렇게 해서 더글러스는, 커티스 가드너 변경백이 그리는 살베니아 자작령의 승격 계획과정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협력자로서 후작의 지위를 얻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