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6 사이러스=살베니아
    2023년 12월 04일 20시 23분 4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사이러스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대부분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계산도 잘했고, 기억력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있어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이러스가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것은, 사이러스가 아홉 살 때 왕도의 다과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 다과회는 당시 아홉 살이었던 왕세자 아담샤를을 위해 열린 것이었다. 왕세자였던 그의 약혼자 후보와 측근 후보를 찾아내기 위한 자리였다.

     공작영애, 후작가의 영식들, 그리고 백작가의 영애들.

     쟁쟁한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사이러스는 생각했다.



    (이 녀석들, 별거 아니네).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다들 그다지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식도, 지혜도, 대화에 대한 재치도 부족하다.

     심지어 왕세자 아담샤를조차도 사이러스에게 있어 존경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이러스의 형인 스티브가 훨씬 더 지적이고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재상의 아들과 이야기할 때는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그다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머리가 좋은 게 아니다. 저 사람은 형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사람이 좋고, 그 똑똑함을 누군가를 위해 쓰려고 하는, 사이러스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리고 사이러스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가문, 살베니아 자작가에 대한 평가를 알게 되었다.



    (더 높은 곳을 꿈꿀 수 있었는데, 이런 땅 때문에 자작에 머물러서 고생만 하고 ......)



     그 훌륭한 아버지가 매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통치란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달랐다.

     이 살베니아 자작령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좀 더 편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형도 아버지를 도와 이 땅을 계속 다스릴 생각이다.

     거기에는 사이러스의 도움도 기정사항인 것 같다.



     사이러스는 싫었다.



     사이러스는 아버지와 형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상위권에 들 정도로 똑똑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아버지와 형이 선택한 빚 때문에 사이러스까지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못 하는 척을 했다.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본다. 고생만 하고, 일만 시키고, 명예도 없고, 성과도 적다. 그런 일에 나를 끌어들이지 마)



     귀족학원 입학시험도 적당히 했다. 하급, 중급, 상급, 특급의 네 반이 있는데, 나는 굳이 하급반에 들어가도록 조절했다. 결코 배움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식은 자습과 형의 정보로 어느 정도 익혔고, 때로는 자기 반 수업을 빼먹고 창가에 숨어 상급생들의 수업을 보며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모습은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의욕이 없는 부분은 확실하게 밖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살베니아의 낙오자, 사이러스 살베니아'였다.



     예전에는 잘했었는데 왜 그러냐며 한탄하는 어머니에게는, '학원 입학 전의 공부가 쉬웠다', '조숙했던 것뿐'이라고 둘러댔다.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와 형은 별다른 말 없이 사이러스의 주장을 믿었다. 아버지와 형은 그토록 지적이고 똑똑한데도 막내의 일에는 왠지 머리가 둔한 듯, 사이러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도 사이러스는 싫어했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은 각각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 자작령을 관리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이며 무리한 결과던 모양이다.

     울고 있는 형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이러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후, 그는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 후 형이 살베니아 자작이 되어 결혼을 하고 조카 사샤가 태어났다.

     이 무렵 사이러스도 자작가의 삼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사이러스는 형인 스티브의 일을 돕고 있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일을 맡지 않기 위해 관료들이 짜증을 낼 만한 지점에서 절묘하게 섞어놓는 등 일을 못하는 척하는 것에 주력했다.

     이 모든 것은 이 못된 자작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형은 자작령의 재건을 위해 노예처럼 일했지만, 사이러스는 그렇게 삶을 희생하며 사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못 하는 척을 하고 있을 무렵, 형 부부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사이러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조바심이 났다.

     이 쓰레기장 같은 자작령에 남은 것은 자신의 가족과 아홉 살짜리 조카 사샤뿐이었다.



    (어떻게 하지? 도망칠까 ......? 딱히, 이 땅에 관심은 없는데)



     사이러스는 자작의 동생이라는 지위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머리는 있다고 자부했다.

     가족을 먹여 살릴 정도라면, 적당히 벌면 어떻게든 될 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짜증이 났다.



     ㅡㅡ왜 자신이 이런 식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가.



    (전부, 아버지와 형 때문이다. 전부, 전부 ......)



     아버지와 형이 예를 들어 평범한 백작이었다면, 두 사람이 죽은 후 동생 사이러스가 여유롭게 백작 대행을 이어받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면서 사샤를 아이답게 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녀석들 때문에.



    "사이러스 삼촌. 이곳에 숙소를 만들면 어떨까요. 아마 다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사이러스 옆에서 사샤가 눈앞의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살베니아 자작령 내부를 표시한 지도였다.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사샤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그때 사이러스는 생각했다.



    (사샤 ...... 이 조카가 있으면, 나는 또다시 어리숙한 나로 남을 수 있다. 자작의 동생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작의 삼촌으로 ......)

    728x90

    '연애(판타지) > 피로에 찌든 자작 사샤는 자취를 감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전말(2)  (0) 2023.12.04
    17 전말(1)  (0) 2023.12.04
    15 가이아스의 일(2)  (0) 2023.12.04
    15 가이아스의 일(1)  (0) 2023.12.04
    14 국왕의 결단과 웰닉스 가문  (0) 2023.12.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