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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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1월 28일 03시 55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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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58/





     인적이 드문 성의 안을 성큼성큼 걷는 미라는, 귀기어린 표정으로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파직파직하며 전격으로 변화된 마력이 몸에 떠올랐고, 그게 튕겨날 때마다 희뿌연 파랑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편지에 쓰여져 있던 것. 그것은, 에이라크란아젤의 장소였다.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런 대담한 책략을 취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아제라이교의 톱을 당당하게 납치하다니.

     발신인은 쓰여져 있지 않았지만 필적은 본 기억이 있었다. 단장의 취임식 때 빈번히 보았던 점 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쉽사리 예상이 되었다.


     '개 같은. 멋대로 저지르다니......! 이럴 거면 성가신 일을 각오하고서, 쉬고 있는 벨트로이라도 붙여두면 좋았는데.'


     기사단장 직속부대라 해도 계급이 낮은 자들은 기본적으로 성 안의 경비를 맡을 수 없다.

     아무리 과격파라 해도 아제라이교는 배려해주겠지. 기껏해야 회유 정도는 하겠지만 정도로 생각했었다.


     '바보인가? 교황은 제거할 수도 위해를 가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입막음을 할 셈이냐. 프리스티스의 가치 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고! 그보다, 그 뒷처리는 내가 해야 한단 말이다! 아 열받아!'


     탕! 하고 강하게 내딛음과 동시에 한층 더 강한 전격이 내달렸다.


     '아마, 나한테 교황을 처분하게 한 후 그 죄를 카론에게 뒤집어 씌우게 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내가 없어지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게 맞설 인간이 사라지게 되는데.......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


     확증도 없는 외국의 협력을 그렇게까지 기대한다는 뜻은, 누구도 모르는 사이 외부와 미리 말을 맞춰 놓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교역의 거점이 되는 세 항구도시는 엄중한 감시를 하고 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공포에 물든 기사들이, 위험을 끼치게 할 만한 행위를 그냥 지나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미라가 재상에게 느끼고 있던 인상은 좀 더 교활했고, 이런 얕은 생각을 할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무언가에 부추겨지고 있는 듯한', 알 수 없는 힘의 개입을 느끼게 한다.

     

     "........흥, 관계없나. 그쪽의 생각이야 어떻든, 기사답게 검으로 물어보면 될 뿐이다."


     도착한 곳은, 예전엔 후궁으로서 쓰여지고 있던 저택으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 

     높은 위치에 있는 틈에서 새어들어오는 달빛 만을 기대어 안으로. 거기서 우뚝 멈춰서 성가신 듯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제게 어떻게 대답할 겁니까? 보르노아 재상각하."

     "역시나 기사의 명예라고 해야 할까. 뭐, 그렇지 않으면 기사단장 따위 맡을 수 없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라그롯보르노아는, 에이라크란아젤에 바싹 붙어있었다. 거기엔 애인같은 달달한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은의 칼날이 겁먹은 소녀의 목덜미에서 반짝 빛나고 있었다.


     "당신은, 나라를 멸망시킬 셈입니까?"

     "멸망? 바보같은 말이다 미라사이파. 지금 그야말로 마물에게 침략당하고 있지 않은가."

     "저건 길들여진 야수입니다. 어중이떠중이처럼 방치된 야수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게 어쨌다고 하는 건가! 마물임에 변함은 없다! 용자인 네놈이, 누구보다도 빨리 힘을 휘둘러야 할 상대이거늘!"

     

     외치는 라그롯을 보며, 미라는 씁쓸한 얼굴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다. 벌써 져버렸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그걸 라그롯은 반론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여, 더욱 말을 이어나갔다.


     "길들여졌다고 해서 우릴 잡아먹지 않는다는 증거 따윈 없다! 뻔뻔하게 성지에 진을 치는 녀석들에게 협박당할 바에는 먼저 멸망시키는 편이 흐르는 피는 적게 끝난다! 왜 그걸 이해 못하나! 나라를 지켜야 할 기사들이 떼지어 마물 따위한테 아양이나 떨다니......그게 나라를 지키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인가!"

     "그 공국 상대로 압승을 거둔 상대입니다. 신중해지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

     "그딴 건 관계없다!"


     흥분한 팔에 힘이 들어가서, 가느다란 목을 끌어안는 것처럼 보이며 죄어들었다. 전 기사인 남자에게 대항할 수 없었는지, 몸을 비틀어 도망치려 하던 에이라의 입에서 신음이 피리처럼 흘러나왔다.


     "역할을 다하지 않는 용자에겐 의미 따위 없다. 인외마경의 개가 되기 전에 처리하는 편이 안전할 거라 생각하지 않나? 앗차, 움직이지 말라고? 어느 쪽이 목숨을 잃어도 나에겐 좋은 일이지만, 연약한 소녀를 지키지 않는 건 용자의 본의가 아니겠지?"


     이제는 재상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악당의 표정을 짓는 라그롯. 하지만, 미라로서는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가령 교황이 죽고, 내가 재상을 죽인다고 하면, 누가 외부에 거짓 보고를 할까? 확실하게 이 녀석과 손을 잡은 녀석이 있을 텐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는 건 곤란해.'


     에이라가 살해당하는 것보다 먼저 라그롯을 죽이는 건 가능하지만, 구속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다지 자신이 없다.

     흥분하여 서 있는 라그롯에게는 말이 통할 기색이 없으니, 일단 순순히 따르자고 결정한 미라는 양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하면서 자신이 왔던 길의 도중에 서 있는, 천장을 지탱하는 기둥을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조금 정도는, 협력해 줄 거라 믿고 있으니까.'


     

     미라가 보낸 시선의 끝. 기둥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모습을 몰래 보고 있던 카론은, 그녀가 돌아본 것을 눈치 못 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뇌를 풀회전하는 도중이었다.


     '완전히 내 실수다......교황에게 호위가 붙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었지만, 다른 녀석을 배려줄 정도로 그렇게 상냥하지 않았었구나 내 부하들은.'


     신도의 엘프가 그녀와 동행하지 않았던 것은,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신경써준 것이 원인이다.

     "당신들은 교황의 몸을 지키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라고 듣는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이렇게나 신용하고 있다고 어필하려는 목적으로, 에이라는 단신으로 따라온 것이었다.

     그 뜻을 이어받은 카론은 이쪽에서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취지를 단장들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등 뒤에 서 있는 코드홀더는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었고, 맵에 비추어지는 그라도라 일행도 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왕국의 기사가 대신 호위해주었을 테지만, 그 자들이 재상과 한패였다는 말이네. 하지만 어떻게 하냐고 이거. 저 말투를 보면 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교황을 죽일 것 같다고.'


     이동버프를 가진 구치나시히메보다 빠르게 움직였던 미라라면 간단히 구할 수 있을 터인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미라에게 있어서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가정한다면ㅡㅡ


     "그럼, 벗도록 할까."


     예상 외의 발언을 듣고, 카론은 무심코 뿜어지려던 입을 강하게 틀어막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미라의 질린 목소리에, 라그롯은 짜증을 일으키는 것처럼 갑자기 분노를 표출했다.


     "도그마의 오른팔인가 뭔가하며 노래부르던 베일의 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그 남자에겐 정말 호되게 당했다. 그걸 상냥한 딸에게 갚으라는 것 뿐이라고? 무리하게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경우엔.....알고 있겠지?"


     '재상은 미라가 교황을 죽이면 된다고 말했지만, 그럼 재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누가 오거나 하는 불의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 벗기는 건 미라의 힘을 봉인하는 수단으로 이어지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강한 태도잖아.'


     그만큼 이 작전에 자신이 있는 건가 하는, 미라와 같은 의문을 품은 카론은 광역 맵을 열어서 자신이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확대하여 표시하였다.

     맵은 점령하지 않은 구역의 상세한 정보를 표시하지 않지만, 대략적인 위치와 캐릭터의 점은 표시된다.

     기본적으로 비추어지며 비추어져야만 한다. 그렇지만.


     ".......빠져있다?"


     예를 들어 인식장해의 마술을 쓰는 자가 있을 경우, 그 범위도 마찬가지로 맵에서 사라진다. 벽에 기대고 있으면 그 벽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기 때문에, 부자연스럽지만 은밀행동을 하는 마물은 길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포카리스페의 지론이다.

     그 지식이 갑자기 떠올라서, 재빠르게 부자연스러운 장소를 확인하려고 잠깐 기둥 그늘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음!"


     마침 미라가 속옷을 벗고 있었는데, 긴 은발이 휘날리는 흰 등이 보여서 다시 기둥으로 숨었다.

     미라의 각오를 보면 안된다며 한번 심호흡하고 나서, 뒤로 손짓을 하여 코드홀더를 얼굴 옆으로 부르고, 작은 귀에 대며 살짝 소곤거렸다.


     "오더인가요."

     "아니, 달라. 지금 내가 상대에게 눈치채이지 않은 건, 네가 뭔가를 해서 그런가?"

     "간이적이지만 재밍을 발생시켰습니다. 중위의 마술로는 간파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저 남자를 해석한 결과 그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코드홀더의 스킬은 성질 상 뇌속성과 상성이 안 좋기 때문에, 미라사이파는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저쪽의 벽에 뭔가 보이나?"

     

     스슥, 하고 코드홀더의 고개가 돌아가서, 카론의 얼굴의 옆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고 기계식 오드아이를 작동시켰다.


     "........아니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중위까지는 탐지할 수 있다. 그렇게 못한다는 뜻은, 류미엘같은 마술의 익스퍼트가 아니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조사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범위공격에 휘말리면 해제되겠지만, 그런 눈에 띄는 일을 할 수도 없다.


     '게임과는 달라'


     하지만 그건, 게임 시절의 이야기다.

     다시 한번 광역 맵을 확대축소하면서 확인하고, 미라가 스커트에 손을 댄 타이밍에 코드홀더에게 지시를 내렸다.


     "통로 중앙에서 지정포인트를 쏴. 다음의 판단은 맡긴다."


     큐웅, 하고 기계가 기쁨의 구동음을 내었다.


     "예스, 마스터."


     새벽같은 머리카락을 펼치며, 보라색 드레스를 휘날리며, 재밍을 해제하고 기둥에서 뛰쳐나온 코드홀더는 내민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며 카론이 지시한 포인트로 조준을 하였다.

     앗 하고 라그롯이 소리를 내는 것보다 빠르게, 손에 모였던 마력은 탄환이 되어 벽을 꿰뚫었다.


     "미라!"


     외침에 바로 호응하여, 미라는 스커트에 대었던 손을 코드홀더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뻗어서, 전격을 라그롯의 팔로 정확하게 날렸다.

     카론이 본 것은 두 가지.

     미라의 전격을 받고 반사적으로 에이라의 구속을 푼 라그롯보르노아.

     또 하나는, 운 좋게 코드홀더의 사격을 맞지 않은 누군가가, 벽에서 떨어지며 뭔가를 내던지는 모습.

     불한당의 대응은 코드홀더에게 맡긴다. 미라는 라그롯을 붙잡으려고 움직인다. 그렇다면 나는 교황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몇 초 동안 달리던 참에, 왼쪽 위의 시야가 왜곡되는 것을 보았다.


     "뭐?"


     그것은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여자가 던진 자그마한 반지. 홈에 박혀있던 푸른 보석이, 대량의 마력을 빨아들이며 카론에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다. 코드홀더는 지시에 따랐다. 미라는 즉시 라그롯을 감전시켰다. 에이라는 벗어난 틈을 타 달리고 있었다.

     여자는ㅡㅡ세빌하이란드는, 증오하는 적국의 왕을 발견하고, 재빨리 던지고 말았다.


     고위 전이마술 <디비전 게이트> 가 봉인되었던 반지는, 카론에게 다가오면서 삼켜버릴 것 같은 마력을 넓혀나갔다.


     "카론!"

     "카론님!"


     미라와 에이라의 절박한 목소리. 하지만 카론에게는 피할만한 반사신경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란스러운 머리로 놀란 채 반지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마스터, 함께 하겠습니다."


     카론을 품고서 수축되는 마력의 틈을 뚫고 상냥하게 끌어안은 코드홀더의 감촉이, 왕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음."


     천천히 눈꺼풀을 뜨고서, 졸릴 눈으로 주변을 확인하는 카론.


     "마스터의 기상을 확인.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래, 그곳에 있었는가."


     무기질한 목소리는 창가에 있었다. 닫혀진 커텐의 틈새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드레스 차림으로 커텐의 가장자리를 쥐고 서 있던 코드홀더는 카론의 근처까지 접근하고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런 손길로 얼굴에 손을 대었다.


     "바이탈에 이상 없음. 하지만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습니다. 당분간 더 쉬는 것을 제안합니다."

     "......저기, 코드홀더?"

     "오더입니까?"


     애인같은 느낌으로, 입가를 약간 들면서 얼굴을 쓰다듬는 걸 제지하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카론은 순수한 의문을 물어보았다.


     "여긴, 어디지?"

     "회답. 항만상업국가 사르탄의 도시에 위치한 에사드의 숙박시설입니다."

     "......지불은."

     "그 산적이 마련했습니다."


     ㅡㅡ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다만, 그녀가 가게 사람을 협박하지 않은 것에는 안심했다.

     심호흡을 하고서 침대에서 내려와 커텐을 열어보니, 태양빛을 쬐어서 빛나는 수평선과, 석조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선 광경이 보였다.

     

     "........"


     카론은 이제부터 구출이 오기 전까지 이 사르탄에서 지내게 된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모험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목표가 나타난 것을 기뻐하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문 카론을 보는 코드홀더는 구동음의 옥타브를 높이며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카론의 안에 그런 큰 야망이 있을 리도 없어서,


     '조용히 지내자......'


     다툼에 휘말리지 않도록 느긋한 생활을 하면서, 원거리에서 에스텔드 바로니아와 왕국의 문제를 처리하자고 단단히 맹세하였다.

     

     "먼저, 이 옷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그를 위해서도 이 군복과 그녀의 드레스는 재빨리 숨겨두고 싶었다.

     카론은 말끔한 자세로 서 있는 코드홀더에게 얼굴을 돌리며, 진지한 눈빛으로 고하였다.


     "거리로 가자."

     "예스, 마스터. 어디로든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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