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0화 겨울
    2023년 11월 14일 22시 35분 0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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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



     드디어 한겨울이 왔다는 느낌인지, 하루 평균 기온이 한 자릿수를 유지하게 되어서 외출할 때면 목도리나 장갑이 필수품이 되었다.

     그래도 뺨이나 귀는 보냉제처럼 차갑게 식어버렸고, 스커트를 두른 다리는 유리처럼 깨질 정도로 차가워졌다.



     흔히 여성들의 패션은 기합이라며 미니스커트에 민다리를 드러내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건 진짜 바보거나 패션 스타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몇 년 전 미니스커트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다리가 새빨갛게 부어올라서, 그 이후로는 스타킹을 신고 다닌다.

     세상에는 기합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패션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스타킹을 신어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 현실이다.

     주변을 지나다니는 학생들도 스타킹과 민다리를 드러낸 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서, 안에 있는 손난로를 만지작거리며 '춥다, 춥다'를 연발하고 있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나 추운데도 학교를 가야 하는 걸까 .......

     이제 며칠 후면 겨울방학이라고 생각하면 해냈다는 해방감도 있지만, 동시에 며칠은 더 이 길을 걸어야 하는 건가 ...... 하는 권태감도 밀려온다.

     하아, 빨리 따뜻한 집에 틀어박히고 싶어.......



     그런 연휴 전의 우울한 기분을 안고서 교실의 문을 연다.

     인싸들의 시끌벅적하고 시끄러운 수다를 BGM으로 삼아서, 가방을 내 자리에 내린다.

     아무래도 그들은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가거나 밤샘으로 연말을 보내려는 모양이다.

     뭐, 나한테는 상관없지만.........



    "아, 쿠로네 씨도 괜찮으면 같이 새해맞이 참배에 가지 않을래?"

    "어.......저기......"



     그녀는 요즘 그럭저럭 대화하는 반 친구다.

     항상 곁에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자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갑자기 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평소처럼 말을 건넸던 것이지만, ...... 새해 첫 참배, 인가.



    "사람이 많은 곳은 좀 ......"



     참배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사람이 넘쳐나는 것 같은 인상이 있다.

     단순한 인구 밀도로 따지자면 코미케를 능가하지 않을까 싶다. 큰 행사장에서 여러 서클을 돌아다니는 코미케와는 달리, 새해 참배는 한정된 범위에서 모두의 목적지가 거의 같으니, 밀도도 엄청날 것 같다.



    "아, 쿠로네 씨는 사람 많은 곳 싫어했었지?"

    "으, 응. 그래서 첫 참배는 좀."

    "그래, 왠지 미안하네."



     그렇게 말하며 미안해하는 그녀.

     왠지 반대로 내가 더 미안해져서 조금 어색하다 .......

     하지만 권유도 안 했는데 며칠은 놀 수 있어! 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연말은 연말대로 버튜버 활동이 바쁘기도 해서 일정이 좀처럼 맞지 않는다.

     뭐, 취미로 하는 게 아니고 일단은 직업으로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

    "........."



     으으.

     의자에 앉아서 책상 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나와,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주변은 시끌벅적한데 서로 침묵이 계속된다는 묘한 공간.

     

     최근 들어 반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가끔 놀러 갈 때도 있다.

     하지만 갑자기 대화가 막히면 이런 식으로 침묵의 시간이 흐를 때가 있다.

     나츠나미 유이──아카츠키 미나토와 업무상 통화를 할 때는 무음의 시간이 이어져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부담스럽지 않아서 편했는데, 반 친구들과 무음의 시간이 이어지면 왜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 음, 어, 날씨 좋죠?"

    "어, 흐린데 ......"

    "아"



     날씨는, 실패!

     왜 날씨 얘기를 할 때만 항상 흐린 날씨냐고!

     아니 그야 겨울의 하늘은 꽤 흐린 날이 많지만, 가끔은 분위기를 읽어줘도 괜찮잖아!



    "그러고 보니 쿠로네 씨의 생일이 12월이었지?"

    "어, 응. 24일."

    "오~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이라니, 정말 멋져!"



     쿠로네 코요이의 생일은 12월 24일이다.

     즉, 며칠 후면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17살이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7년 차다.



    "마침 월요일이니, 방과 후에 노래방이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축하하자!"

    "미, 미안. 이미 약속이 잡혀서 ......"

    "그래, 생일이니까 쿠로네 씨도 바쁘겠지. 그럼 다른 날에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응, 응. 시간 비워둘게."



     버튜버는 자신이 태어난 날에 생일 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소속이라면 하나의 큰 이벤트로서 미리 공지하고, 당일에는 시청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방송을 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방송을 하지 않는다.



     12월 24일, 그날은 쿠로네코 씨에게 ㅡㅡ쿠로네 코요이에게, 예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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