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차2021년 01월 23일 19시 56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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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숲에서, 두 남녀가 밀회를 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 그늘 밑에 선 기사와, 후드가 달린 망토를 두른 귀여운 소녀의 광경은 그림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경장의 기사는, 자신의 가슴 높이인 소녀의 얼굴을 보며 섭섭한 듯 눈을 내리깔고 미소지었다.
"이제, 가는 거야?"
배웅하러 온 것이니, 그런 거라고 알고는 있어도 물어보고 싶었다.
소녀는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듯 씩씩하게 미소지어 보였지만, 망토를 쥔 손은 떨고 있었다.
"마물과 인간이니까요. 지금은.....지금은 아직, 같이 있을 수 없어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등장에 의해, 왕국은 대륙의 패권을 거머쥘 수 없게 되었다.
손을 맞잡아야 할까, 아니면 칼날을 맞대야 할까.
어느 쪽이든, 펠미리아는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면 문제가 될 거라며 신경을 써주어서, 아직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을 노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왕국을 떠났다.
하지만 벨트로이는 그 행동을 읽고, 먼저 숲에 들어가는 곳에서 말을 걸어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다.
"지금은, 분명 여러분께 민폐를 끼치고 말 테니까요....."
"그렇지 않아. 나도 있고, 포울과 리발도. 대장은 잘 모르겠지만, 마리안느도. 네가 원한다면 왕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분명 그들은 그렇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괴물인 것이다.
"감사해요. 하지만, 그 나라가 저의 돌아갈 집이에요."
부드럽게, 필미리아는 그 부탁을 사양하였다.
"우리들은 네게 많이 도움을 받았어.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다면 그 때엔 반드시 힘이 될게."
용자후보 따윈 관계없다. 마물은 쓰러트려야 한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물도 있다고 알게 되었다.
"그 때까지, 부디 잘 지내."
남자의 강한 시선을 받으며, 필미리아는 희미하게 몸을 떨면서, 벨트로이의 귀에 살짝 손을 대고,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개체보유스킬・《음마의 각인》
"고마워, 벨트로이・바제스. 개같은 청춘극이었지만 조금은 재미있었어."
"뭐?"
속삭이는 소리는, 귀가 막혀진 벨트로이로서는 들을 수 없었다.
싱긋 웃는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꽃이 만개한 듯한 귀여움이었는데, 왠지 꿀에 젖은 가시같다고 연상된다.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입맞춤에 대한 놀라움 쪽이 컸던 벨트로이는, 조용히 멀어지며 숲 안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마른 초목을 밟으면서 숲 안 깊숙이 나아간 필미리아를 기다리는 자가 있었다.
장소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몸을 정돈한 노신사는, 망토를 버린 고딕드레스의 소녀에게 심술궂은 미소를 보였다.
"여어, 첫 위장임무는 어땠으려나? 미리아."
노인이 그렇게 말한 순간, 숲 속에 크고 날카로운 금속의 소음이 울려퍼졌다.
낫같이 생긴 가시가 돋아난, 살얼음과 비슷한 반투명한 도신이 연결된 것이 소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노인을 찢어발기려 했지만, 맞는 느낌은 없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칼날은, 사복검이라 불리는 무기로서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음에 그렇게 부르면 진짜로 죽인다? 카론님의 부탁이니 꾹 참고 한 것 뿐이니까."
묻은 것을 떨쳐내려는 듯 기괴한 검을 털어내며, 필미리아는 베어진 곳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알버트를 노려보았다.
알버트는 평소와 같이, 인간미가 없는 가면같은 미소를 띄웠다.
"그거 실례했군. 그만 좋아해 버렸다고 생각했지 뭔가."
"좋아? 내가? 인간을?"
숙였던 얼굴이 천천히 올라간다.
그곳에 귀여움이나 연약한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재미있네요 알버트. 식사의 취향은 있을 수 있지만 식재료에게 호의를 품는 자가 있을까요? 뭐 식사할 때 안는 건 아까워하지 않지만요."
지면에 검을 꽂으며, '음마의 여왕' 은 내민 가슴에 손끝을 대면서 흐흥 하고 콧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이렇게 귀엽고 예쁜 내가 가련하고 청초하고 애처로운 소녀를 연기해줬으니까, 사랑을 백이건 천이건 받아도 어쩔 수 없다구요! 아아, 이 얼마나 죄 많은 나일까! 카론님의 손에 의해 절세의 미소녀로 만들어진 탓에, 어리석은 수컷이 먹이가 되려고 모여들고 말아......정말 폭력적인 귀여움이 아닐까요!?"
".......그래."
"역시 루슈카 다음가는 지모의 소유자라 그런지 잘 알고 있네요!"
눌러 쓰고 있던 가면에 귀찮다는 글자가 옅게 떠올랐지만, 그런 건 전혀 관계없다는 듯 그녀는ㅡㅡ제 6단단장의 음마는 기분좋은 듯 고딕드레스의 스커트를 펼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서, 전말은 어떻게 되었지?"
"전말이고 뭐고, 제 역할은 이제 끝났지만요. 뭐 상관없겠죠."
그루터기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면서, 일부러 스커트의 옷자락의 틈을 만들어 남자를 유혹하려는 몸짓을 보였다.
"그래서, 무엇부터 듣고 싶나요?"
"물론, 왕에게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부터."
"평범했는데요? 용자후보에게 접근해서 호의를 품게 하고, 에스텔드 바로니아와의 교두보가 되라는."
"호오, 그게 말 그대로 되었다니."
"그리 생각할 리가 없잖아요. 총명한 카론님이 직접 명하신 일이니, 그 숨은 뜻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요!"
숨은 뜻이란,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다.
마물의 나라에선, 카론에 대해선 당연한 듯이 유행하고 있었다.
"카론님이 목표로 삼을 만도 했네요. 이 전쟁에서 많은 목숨을 없애고 높은 지위도 노릴 정도로, 인간들 중에선 유망주였으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그 나라의 중책 중에, 마물 측을 편들려는 인간이 섞이게 되었다."
"용자를 잃고, 기대하던 용자는 마물의 편. 왕족과 문관의 대립은 피할 수 없을까요?
군도 그 정도의 전투를 보았으니 맞설 생각은 안 날 거고, 귀족도 거의 마찬가지."
"다시 말해, 이걸로 이 나라는 왕정의 위기에 직면한다. 왕족은 의견을 내지 못하게 되어 충돌을 피할 수 없어지겠지."
그것이, 알버트 일행이 제멋대로 상상한 카론의 작전의 전말이었다.
국내에 회의감을. 병사에게 공포를. 귀족에게 은혜를 입혀서, 내부 붕괴를 노린다.
거기에 더해, 또 하나의 수.
"그 여자가 카론님에 집착한다면, 다음 기사단장으로 세워서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쉬워진다. 마물에 대한 기피보다 카론님에 대한 심상이 강해졌을 터. 그건 우리들에게 덤비지 못하는 익충으로서 왕국 안을 휘저어주겠지."
"후후훗, 카론님은 그게 용자로서 각성하는 것도 알아채셨나 보네요! 역시 그 분은 우리들 따윈 닿을 수 없는 선견지명을 가진 분! 아아아아아아, 너무 멋져!"
카론의 지시로 자유로운 행동을 허가받은 알버트는, 그걸 현재의 용자들을 배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것은,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다스리는 왕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시키고, 말 한마디로 우호관계나 왕국도 낙엽처럼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몸을 끌어안으며 취약한 인간의 왕을 연모하고 흥분하여 욕정하는 필미리아.
"하아, 정말 훌륭하네요! 이제 정말 돌아가는 대로 엉망진창으로 품어버리고 싶어요! 포상으로 부탁하면 안될까요!? 촉촉하게 끈적하게.....핫! 하지만 만일 145년이나 동정을 유지했다면......마벨러스! 베리 굿! 엑셀렌트! 하아하아, 이렇게 가만있을 수 없어요, 지금 바로 만나지 않으면 충동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으니 실례하겠어요!"
그렇게 말을 남기고, 혼자서 소란을 피우다 재빨리 사라지고 만 필미리아.
알버트는 혼자 남겨지자, 드물게도 지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필미리아 양을 다루는 건, 우리 왕만이 가능한 대담한 일이로구나."
그녀에 대한 불평과, 카론에 대한 칭찬이 함께 나왔다.
'조화' 와 '교활' 을 부여받은 알버트라 해도, '음탕' 과 '고귀' 를 부여받은 그녀를 잘 다루는 건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나도 미력하게나마 장치를 해 놓을 수 있었고, 필미리아 양도 보험을 걸어 놓았다. 정말로, 미라 양 덕분이구나."
만일 미라가 순순히 왕국으로 돌아갔더라면 이렇게 까지는 안되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이렇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나뭇잎 사이의 햇살을 피하려는 듯 모자를 손으로 잡고, 희미하게 비추어지는 왕국을 바라보며 등에 일렁이는 암흑을 만들었다.
"자, 이제부터는 카론님의 솜씨에 달린 걸까요. 뭐, 결국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아마 지금 무렵,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 상냥함이 자애인지 자비인지까지 알버트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약자를 구하는 것 또한 왕 다운 일이다. 그것이 만마가 모인 나라를 다스려 온 근간이라는 것은, 작은 오두막 시절부터 고블린을 부리며 시작한 건국의 과정을 아는 자라면 이해할 수 있다.
실패했다 쳐도, 베스트가 베터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패해 주는 편이 재미있을 정도로 왕국은 혼란에 휩싸여 줄 것 같다.
그리고, 대공을 감시하고 있던 여러 시선.
장난치는 듯이 쓴 상위스킬의 격류를 보고서 어떻게 접근해올 지로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이 전쟁의 결과를 즐거이 생각하면서, 진조는 코트를 휘날리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눅눅하고 어두운 통로에는, 킥킥대며 웃는 여자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도서관과 같은 층계에 있으며, 지금까지 쓰여지지 않았던 지하의 한 켠을 떠다니는 랭크 5의 사령종 '릿퍼 레이스' 가 벽에서 벽을 지나다니며, 갇혀진 인간의 앞을 몇 번이나 왕복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천을 적당히 휘감은 인간에게는 다리가 있었다.
허무의 암흑에 빨려들어 사라졌을 하반신은 완벽히 고쳐졌다.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을 인간은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두꺼운 철의 삐걱거림이 들려왔다.
소리는 두 가지였는데, 어느 쪽도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눈앞에서 멈추었다.
"잘 있었나, 미라・사이파."
그렇게 불리자, 용자에 도달한 인간은 이제야 얼굴을 들었다.
더럽고 난잡하게 된 은발의 사이에서, 그 두 사람을 보고 미세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게 보여?"
"꽤 지내기 힘들어 보인다. 꽤 시끄러웠지?"
"그래,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런가 라고 중얼거리고, 목소리의 주인은 시중드는 여자에게 손짓을 하여 쇠창살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루슈카, 돌아가도 좋다."
"카론님. 이 여자는 용자입니다. 당신과 둘만 두게 하다니 너무 위험합니다. 부디ㅡㅡ"
"돌아가라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바깥에서 기다려라."
낮은 음성에, 여자는 입술을 꾹 깨물며 깊게 고개를 숙이며, "무슨 짓을 한다면 삶을 후회하게 해주지." 라고 중얼거린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럼."
그렇게 운을 떼고, 마왕 카론은 용자 미라와 세 번째의 만남을 가졌다.
"왜 살아있는 걸까, 라고 생각한 모양이네."
"아니. 그건 대충 예상이 돼. 용자로 눈뜬 나를 장기말로 삼을 셈은 없겠지? 아마 도그마 단장도 바레일 공도,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거다. 날 기사단장으로 세우고, 마물 긍정파를 편들게 한다. 그런 계획을 세웠겠지."
하지만, 그에 대해 카론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카론, 넌 생각하지 못했던 거냐?"
"뭐?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뭔가를 속이는 느낌은 있었지만, 미라는 깊게 추궁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리페리스 왕군은 큰 소란이 났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던 마물이, 기사단을 고전시키던 공국군을 무리 지어 쉽사리 죽여버렸으니까. 그런 건 실제로 보지 않으면 누구도 믿지 않아. 저놈들을 적으로 돌리려 한다면 하극상도 일어날 수 있다.
내게, 그들을 제어시킬 셈이겠지? 입맛에 맞는 개로서 왕국을 이용하기 위해. 하하, 네가 구해달라는 걸로 생각했었다니 바보같군."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화를 내고 싶을 정도로 치밀한 작전이었다.
그 연약한 모습도 모두 연기였다고 한다면, 이 남자의 손바닥에서 전부 춤추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제멋대로의 망상이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망가진 듯이 웃는 미라였지만, 카론은 손을 뒤로 깍지낀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몸짓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미라의 목소리는 뚝 그쳤다.
"그것도 있기는 있겠지만, 내 희망과는 달라."
"뭐?"
이 이상 뭐가 있는 건가.
이제는 마물 이상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밖에 없는 마물의 왕은, 패기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 목적은 교역이야."
"......잠깐, 잠깐 카론. 그런 걸 위해서 이런 짓을 한 건가?"
"그런 거라니 실례잖아. 중요한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부산물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미라는 눈을 치켜들고, 분하다는 듯 이를 깨물었다.
"그런가, 신도는 벌써 너희들의 수중이었나."
"정답. 잘도 알아챘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해. 딜아젤은 각국의 종교의 성지로서, 왕국 이상으로 중요시되고 있지. 엘프를 해방했으니 아인과 수인이 있는 나라와의 접촉도 잘 진행될 테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의 창구로서 이용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왕국이 공국과 신도를 제어하지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이 지위를 생각한다면, 신도 딜아젤 쪽이 대외정책으로 이용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왕국에 바라는 역할은 정말로 교역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럼, 왜 이런 짓을 했나. 어째서, 날 살려뒀어! 이런 수치를 주는 이유가 뭔가! 대답해!"
상상하고 있던 자신의 가치가 무너져서, 미라는 억누르지 못한 화를 토해내었다.
누더기 천을 벌리며, 하아하아 하고 거친 숨을 쉬는 미라를 바라보며, 카론은 천천히 등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 이상, 피해를 내지 않게 위해서야."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쓸데없는 죽음을 싫어해. 설령 마물이어도, 인간이어도, 목숨의 존엄성에 차이는 없어."
그 용자들이 남았다면 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겠지. 그 이상의 전력으로 압승해버리면 외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되어버려. 이 이상 용자를 잃으면 민중이 폭동을 일으키게 되어버리고. 에스텔드 바로니아와 공존을 하려면, 여기까지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게 이유야."
왕국은, 이후로도 살아가기 위해, 강대한 나라에 반기를 들지 않도록 손발을 잘렸다.
마치 극악무도한 방식으로도 비추어지겠지만, 강대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명법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 외엔 왕국이 살아남을 수단이 없었다고 말하는 듯.
"우리나라의 국민도 인간에 대해 분노를 품고 있어. 칼날을 들이밀어도 가만히 있다니, 왕인 나로선 할 수 없어. 그 때는, 멸망시켜야만 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카론은 선택한 것이다. 구애되는 생각을 눌러담는 듯한 평탄한 어조로 이야기한 내용에, 미라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넌, 바보인가?"
"어이. 다 들어 놓고서 바보라니 뭐야."
"너희들이 보기엔, 왕국 따윈 오히려 방해되는 존재가 아닌가."
"그게 어때서. 난 왕이다. 연약한 인간들의 왕이라고. 어째서 약자를 내버릴 수 있겠어."
미라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카론으로선 알 수 없었다.
미라는, 여기서 진정한 왕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변명이 따로 생각나지 않았던 것 뿐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너무한 내용이야.'
라는, 카론의 마음속 소리였다.
미라와 만나서 설득할 수 있는 거짓말을 만드는데 잠도 안 자며 생각한 성과는, 어떻게든 통한 것 같아서 안심하였다.
그 뿐인가 미라가 말했던, 무서운 작전의 개요는 몸이 섬뜩해 할 정도였다.
분명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이익만을 보면 그렇게 된다. 루슈카 일행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면 그 쪽이 수긍시키기 쉬울 것이다.
미라에게 변명하기 위해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그럴듯한 방향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서 움직여 줬을까? 아니, 그럴 리 없겠지. 구치나시히메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그 녀석은 날 곤란하게 하는 녀석 톱3로 추가해두자.'
참고로 1위는 알버트. 2위는 루슈카다.
"하나 들려줘."
등 뒤에서 진정된 목소리가 들리자, 카론은 목만 돌아보았다.
"뭔데?"
"넌, 갇혀있는가? 이 나라에, 그 마물들에게."
그 대답을 알면 어떻게 할 셈인지, 조금 모르겠다.
미라가 왜 야습을 하였는지 몰랐던 카론은, 등을 보는 미라의 안광에 두 번째의 결의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나라를 적으로 돌릴 생각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다.
자신의 동료들이 상처입는 모습을 보고 나서 이제야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대사였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나라다.
평온을 좋아하고, 축제만 열고 있는 듯한, 그런 녀석들이 살아가는 행복한 나라다.
인간에게 박해받고, 매도되고, 학살당했음에도 오히려, 내 뜻에 따라주는 듯한 상냥한 나라다.
그러니, 적대하겠다면 용서는 없다. 무슨 수단을 준비한다 해도 매장할 것이다.
그것이, "
ㅡㅡ사랑하는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지키기 위해, 내가 선택한 왕도다.
"네 반기에 두 번째는 없다. 다음엔 주저없이 죽인다."
어둠을 몸에 두른 남자의 말은, 무릎을 꿇고 싶다고 생각될 만한 기백으로 충만하였다.
자비롭고 냉철한 목소리에, 미라는 이제야 카론의 본질을 알고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정말 바보같은 여자였구나 난. 그 여우가 맞았던 건가."
무슨 이야기인지 묻는 것보다 빠르게, 미라는 포기한 듯 힘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마물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기사로서......아니, 미라・사이파로서 맹세한다."
마물을 죽이라고 호소하는 성가신 목소리는, 베어버려서 조용히 시키겠다.
이식된 사상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후련한 기분이었다.
이 남자가 다스린다면, 믿어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카론은 싱긋 웃고 나서, 이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며 쇠창살의 바깥으로 나가서 어두운 통로를 재빨리 걸어갔다.
이렇게, 소동은 막을 내린다.
이제부터 어떤 사태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카론은 스스로 정한 가시밭길을, 소중한 동료에게 길을 만들게 하며 나아갈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개막은, 한 인간을 크게 바꾸었다.
"마왕이라고 자칭해볼까."
그에 어울리는 존재로.
만마를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모습으로.
이 세계를 지옥의 도가니로 바꾼다 해도,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인간으로.
"그에 어울릴 만큼의 힘을 손에 넣어주겠어."
그걸 환영하는 듯 머리에 노이즈가 생겼다.
지금, 문득 무언가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돌아봤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라?'
멈춰선다.
"왜 무서워했었지?"
빠트린 것의 정체를 떠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남자에게는 선택한 길을 걷는 일 외에는 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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