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전2021년 01월 21일 17시 28분 0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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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고 추궁당해서 정중히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인간들을 보는 알버트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질하였다.
"대답했으니 그쪽도 이름을 대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멋대로 내 성에 침입한 녀석을 왜 이쪽이 배려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여기에."
"평범하게 들어왔지. 정면에서."
그란버드는 자신이 전개한 탐지마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였다.
청과 백의 세계에 흰색의 빛을 띈 실루엣이, 확실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역시 알버트가 말한 대로 완전한 부외자라는 뜻이었지만, 용자들에게는 거짓말을 입에 담는 마왕의 부하로만 비추어졌다.
알버트는 경계를 풀지 않는 사람들을 태연히 둘러보면서, 바레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난 어명을 받고 자네들에게 가세하기 위해 왔으니까."
"........가세, 라니?"
"호오, 미라・사이파에게서 듣지 못한 건가?"
확실히, 공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들었다.
시선으로 사실이라는 걸 도그마에게 전했지만, 미간의 주름이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호오, 왕국의 원군입니까. 에스텔드 바로니아......들어본 일이 없군요. 어딘가에 나타난 소국일지."
"소국.....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뭐라는 건가?"
"여기까지 침입당하고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눈치도 못 챈 약자가, 입만 살았구만."
조소하는 듯한 도발을 태연히 받아치는 알버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란버드는 약간 손가락을 움직였다.
직진한 촉수는 나선을 그리며 알버트를 쫓았을 터인데, 살을 찢고 피를 튀기고 내장을 파열시켜 절명으로 이끄는 감미는 맛볼 수 없었다.
"더러운 걸로 만지지 말아주겠나. 왕에게서 하사받은, 세계 유일한 귀중한 예복이거늘."
예의를 모르는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알버트는 귀찮다는 듯 몸에 다가오는 촉수를 손으로 떨쳐냈다.
"그럼."
크흠 하고 작게 헛기침을 한 것 만으로 도그마의 검이 끝을 내린다.
"슬슬 본제로 들어가도 상관없을까? 난 내 주인 이외의 일로 손을 쓰는 게 정말 싫단 말이다. 그 분과 지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시간이고, 그를 위해 일하는 건 힘들지 않지만,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라서."
그리 말하고 그란버드 쪽으로 몸을 돌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란버드는 일부러 그러는 듯 유유히 다가오는 침입자를 어떻게 물리쳐야 할지 머리를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그 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절망하고 있던 자신에게, 마왕의 부하를 자칭한 여자에 의해 주어진 이 힘.
자기를 거절한 세계에 보복을 하라며 건네받은, 세계의 악과 절망으로 짜여진 이 고치.
한번은 세상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가장 흉악한 마물의 힘이, 불쑥 튀어나온 존재에게 질 리가 없다.
"하지만, 마왕이란 자는 정말 재미있는 일을 생각한 모양이군. 타락한 용자라니."
이번엔 이 고치의 힘을 전부 해방한다.
도그마와 바레일과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 빠트리고 부숴버리면 된다.
비장의 수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웃을 수 있다.
"인간의 구세주를 방치하고 마에 종속된 존재.......흥미롭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도움이 안 되겠구만."
손을 움직일 필요조차 없다.
원하고, 바라는 것 만으로도 이 고치는 손발처럼 움직여준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한발한발 다가온다.
그 걸음에 맞추어, 노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농밀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 세계의 용자였다면 어땠을까. 초월한 힘의 원동력이 마물에 대한 살의라면, 창끝을 인간에게 향했을 경우도 같은 효력을 발휘할까? 이놈만 보면 제대로 모르겠어."
얼어붙은 그란버드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 검은 촉수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움이 되려 해도 결국 쓰레기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렇지?"
밝고 신난 목소리에 감정은 없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보이는 수많은 눈알이, 인간의 지혜를 불쌍히 여기는 듯 돌아갔다.
"학, 학, 학."
여유를 잃어버린 그란버드에게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만이 힘겹게 목숨구걸을 하고 있다.
"기다려 달라, 알버트 공."
등 뒤로 손을 돌려서 뭔가를 끄집어내려는 몸짓을 하는 알버트에게, 바레일이 말을 걸었다.
"흠, 뭐지?"
내버려둬도 상관없지만, 말 뿐이라고는 해도 동맹관계를 맺은 상대다.
"원군으로 온건 고맙지만, 이 전쟁은 어디까지나 리페리스 왕국과 라돌 공국의 전쟁이다. 그 주범인 그란버드에게 손을 대면 우리들도 면목이 없어져."
"호오. 하지만 제군들의 약함이 불러일으킨 사태가 아니냐. 추태를 드러낸 걸 도와준 건 우리들인데? 면목이 없다니 너무 제멋대로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쪽으로선 그 우군의 이야기조차 의심스럽다고 생각한다."
그야 당연하다.
미라・사이파가 전해준 것 뿐이라서 어느 세력인지도 몰랐고, 정식으로 요청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버트의 등장으로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말았다.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자고 판단한 바레일.
하지만,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 도그마가 대검을 휘두르며 분위기를 무너뜨렸다.
"합시다."
"뭐......? 도그마, 네놈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괴물을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어깨를 붙잡은 바레일을 돌아보는 눈에는 정의감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쓸데없는 감정이다.
"상황을 생각해! 협공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이런 존재의 밑이 되는 게 좋다고 하는 겁니까!?"
"이야기가 비약되었다고! 잘 생각하지 못할까! 적어도 이 자리에서 적대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 쯤 모르겠냐!"
"그렇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몸은 적의의 증표이기도 하며, 동시에 두려워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악이 왕국에 독니를 드러내고 있는 걸 못 본 체 하다니, 저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괴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따른 위험은 바레일도 잘 알고 있다.
"......이길 수 없다고. 저것에게는."
도그마와 마찬가지로 피의 충동에 흔들리면서도 이성으로 억누르는 바레일이 속삭이자, 도그마는 검을 드는 것으로 대신 대답했다.
"그런가. 그럼 어울려 줄 수 밖에 없겠구나."
"죄송합니다."
"됐어. 마음은, 마찬가지야."
어깨에서 손을 놓고, 바레일도 지팡이를 휘둘러 소리굽쇠를 울렸다.
공명한 파문이 마력에 작용하여, 선명한 진홍색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오, 무슨 셈이지? 난 그쪽의 아군인데."
"웃기지 마라 괴물. 너 같은 존재가 인간의 편을 들 리가 없다. 사악의 화신을 내버려두면 세계에 파멸을 인도하게 된다."
"꽤 건방진 말을 하는 구만. 그리움조차 느껴지는군."
"그리워......?"
알버트의 말에 걸리는 것이 있었던 도그마는, 그걸 인마전쟁의 일이라고 순식간에 결부시켰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하지만 도그마는 정정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고, 오히려 좋다며 괴물다운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자네들 왕국을 도우러 왔다."
"그럼 나도 다시 한번 말하지. 사악의 화신을 내버려 두는 건, 용자인 나로선 못한다고!"
손을 들고 있는 틈에, 도그마가 달려들었다.
"하아, 하아, 크으으으으으!"
그와 동시에 그란버드도 움직였다.
도그마 일행과 같이 싸울 의사는 없었지만, 여기서 움직이지 않으면 무참하게 살해당할 거라는 건 눈에 보였다.
공포의 끝에서 도망치는 걸로도 보이는, 검은 마수의 모든 것을 해방하여 조금 전보다 강력한 나선의 창의 일격을 내질렀다.
모두가 알버트를 보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고무하려는 것처럼 포효하는 강검.
그 뒤에서 지금 쓸 수 있는 최상의 마술을 자아내는 큰불.
"우와아아아아아아!!"
두려움에 내몰려 절규하는 찬탈.
웨폰스킬・《엘리미네이터》
순간, 검은 빛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리없는 두려운 반짝임이 시야를 메꿨고, 사라졌을 때에는 저택의 태반이 도려졌다.
무엇 하나 자각하지 못하고, 왕국 최강의 기사도, 최고의 마술사도, 악에 타락한 용자도, 흑백의 저편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를 달성한 장본인인 알버트는, 후련한 표정으로 자세를 풀었다.
왼손에는 흑철의 깃털을 겹쳐 포갠 거대한 활이 있었고, 오른손에는 세 날이 방사선으로 달린 거대한 화살이 쥐어져 있었다.
흥얼거릴 듯한 기분으로 이형의 화살을 그림자 속에 사라지게 하고, 높게 울리는 금속음을 내며 접혀진 흑우 '알데바란' 을 등에 메고서, 들뜬 발걸음으로 무너진 저택의 바깥으로 나왔다.
"이런이런, 이렇게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다니 배를 끌어안고 웃고 싶어지는구만."
알버트는 이번 계획에서 용자에 의한 우호관계의 방해를 우려하였다.
용자가 마물에 대해 진심으로 호의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용자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대해 강경태세를 취해버리면 십중팔구는 따르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론에게서 이 임무를 부여받을 때 카론의 의도를 추측하고, 변명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양쪽을 처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카론이 이 전개를 기대하고 있다고 알버트가 생각한 것이다.
이 두 용자만 잃는다면, 재능 면으로 본다면 카론과 교류가 있는 미라 일행이 윗자리에 취임할 가능성이 있다.
천칭이 더욱 기울어지는 정도였지만 파고들 틈을 만들어 줄 것이다.
"저쪽도 이미 끝날 무렵인가. 본래라면 대공이라는 걸 죽이고 그를 위장하여 전장에 가세하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허가없이 목숨을 취하는 건 알버트여도 켕겼기 때문에, 얼굴을 긁으며 아쉬워하고서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다.
이걸로 모두 원만히 수습된다.
이 성과를 어떻게 칭찬해 주실 것인가. 그걸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휘어지는 입가를 억누를 수 없다.
오랜만의 후련한 기분에 취해서 태양빛을 우러러보며, 눈부시게 빛나는 빛 속에서 웃어제꼈다.
"잘 봐둬라.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쟁이들. 쓰레기장에서 들끓는 구더기에게 관심은 없지만......우리들의, 우리 왕의 방해만큼은 하지 마라."
챙, 하는 소리를 울리며 쥐어진 흑철에, 거대한 세날 화살이 쥐어졌다.
"그럼 안녕히. 처신을 틀리지 않도록 조심해."
손을 놓자, 섬광이 하늘 높이 쏘아졌다.
그것은, 이 전투의 끝을 고하는 신호가 되었다.
왕국은 승리를 얻는 대신, 대신할 길이 없는 대가를 지불했다.
마물의 나라의 존재 때문에 이제부터 커다란 개혁을 요구당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 행운이라고 불릴 지는 이후의 처신에 달려있다.
"대장?"
시체가 널린 피투성이의 대지에서, 미라만큼은 먼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쾌재를 울리지도 못하고 떨면서 모인 기사집단에서 벗어나, 사체의 처리를 하는 코볼트보다도 저편의, 숲의 나무들보다 높은 백아의 성을.
약간 열린 입술은 누군가를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다가, 그대로 천천히 닫혀졌다.
다만, 아드득하고 소리낸 이빨만큼은 억누른 마음의 소리를 대변했다.
◆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이 끝났고, 사람들은 마음의 앙금을 품은 채 나라로 돌아갔다.
반면, 밤의 장막이 드리워져도 빛나는 조명을 드리우며 흥청거리며 노래하는 것은 에스텔드 바로니아였다.
왕성 오른쪽에 세워진, 내정을 담당하는 집무탑.
그 주변에 세워진 식량고의 앞에서, 예리한 안광을 손에 든 자료로 향하며 구두로 자신이 이끄는 제 16단의 병사들에게 식량반출의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누님, 이 이상 고기를 꺼내면 예정을 넘기게 됩니다요."
가까이 다가온, 오크보다 돼지에 가까운 '피그맨' 이 킁킁거리며 귓말을 하였다.
"그래."
"그래라니.....요, 이거 카론님의 허가를 받지 않지 않았잖아요?"
"허가는 받았다. 맡긴다고."
"아니, 네에.......?"
아무리 상사라 해도 독단에 따르는 건 석연치 않았던 피그맨이 다시 한번 진의를 물어보려 하였다.
"누님, 역시ㅡㅡ"
"어이어이, 단장을 그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안되잖아?"
아니꼬운 어조에, 피그맨은 얼굴을 돌리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아채고 얼굴을 찌푸렸다.
"부단장....."
"그래, 부단장인 놋트・코브라트위스트 라고."
소리만 들으면 미청년을 연상시키지만, 피그맨의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 앞에 있는 자는 거대한, 거대한 눈알을 갖고 있었다.
랭크 10의 이형종 [안라・만유] 는 거대한 안구에서 촉수와 날개가 돋아난, 괴물 중의 괴물이다. 마물들 안에 있는 격을 논한다면 도서관의 원령보다 위다.
"뭐야, 그 소금덩이를 입안에 쑤셔 넣은 듯한 얼굴은."
"소금덩이보다 맛없는 게 와서 그래."
"이런 감귤처럼 상쾌한 맛의 신을 앞에 두고 실례되는 말을 하다니."
어떻게 말한다 해도, 흐물거리는 촉수가 돋아난 눈알이다. 거기에 상쾌함을 느낀다면 마물이라 해도 미쳤다고 생각될 것이다.
"카론님도 이번 승리를 기뻐하고 계신다."
"그럼, 왜 풀이 죽은 건데."
이 전투는 카론이 그린 그림대로 진행되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카론님이 방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말이다."
"뭐? 왜 또."
"몰라. 지쳤는지 생각하는 일이 있는지......"
"그래서 모두 걱정하고 있었구나. 군에 명령을 내린 이후 두절되었고 말야."
"말야, 가 아니라고. 시중드는 키메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래. 녀석들도 입실을 금지당한 모양이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럴 터였다.
그럼 어째서.
마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세계로 전이하고 나서, 알지 못했던 왕의 모습을 볼 기회가 늘었다
그것은 기쁨이었으며, 동시에 맣은 불안과 의문을 낳게 하였다.
"같은 인간이라면....."
똑같이 고민하고, 지탱해주었을까.
자신이 인간이라면, 드러내 주었을 것인가.
올려다 본 왕성의 중추에 켜진 방의 조명을 올려다보며 생각해 보아도, 루슈카로서는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
밤길에서 연회가 이어지고 있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어둠은 틈탄 그림자가 내달렸다.
"왔느냐."
높은 외벽 위에 서 있던 회명백호가, 기대하던 대로라며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바람을 제치며 달리던 사람이 외벽 아래에서 도약하자, 몇 번이나 벽을 차며 올라왔다.
진녹색 망토로 머리까지 뒤집어쓴 침입자는, 구치나시히메의 앞에 내려오자 조용히 검을 빼들었다.
달빛 아래에서 백은색으로 빛나는 쌍검. 그 앞을 목을 향하여 들었다.
"너라면 이렇게 해 줄,거라 생각했지 뭐냐. 내 눈은 틀림없었구나."
"입닥쳐. 그 더러운 입을 바로 다물게 해주지."
"후후, 좋아. 알버트에겐 미안하지만 이쪽에 걸었던 내 쪽이 즐길 수 있겠구나."
이형의 팔이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손톱을 울린다.
"모처럼이니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그 땐 제대로 보지 못해서 말이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죽일 인간의 얼굴 정도는 기억해두고 싶구나."
침입자는 팔을 내민 채로, 다른 손으로 거머쥔 손을 역수로 바꿔쥔 후 잠금쇠를 벗겼다.
순간 일어난 바람을 받은 망토는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죽여주마."
"해봐라. 두 번째의 패배는 곧 죽음이니라."
은월의 머리카락을 묶은, 얼음장같은 눈매로 살의를 내보이는 용자ㅡㅡ미라・사이파는, 깔끔한 기사의 갑옷에 어울리지 않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예기치 않았던 싸움.
이 싸움의 제 2 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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