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1 잡병
    2021년 01월 20일 16시 23분 3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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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소대, 27소대 돌아왔습니다!"

     "서둘러 진형을 정비하라! 건너오기 전에는 끝내게 해!"

     "악귀의 장난, 깊은 구멍으로 저지한다.......어스 월!"

     "마력의 점검은 반드시 해 놔! 여차할 때에 쓸 수 있는 만큼은 반드시 남겨!"

     

     적의 행군은 어느 정도 저지되고 있다.

     마비를 부여하는 필미리아의 포박마술과, 마술사와 기사에 의해 파여진 참호의 효과는 생각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

     우직하게 나아가는 마물들은 눈에 보이는 덫에도 쉽사리 걸렸고, 혼잡한 선두에 막혀버린 후미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금 포진한 기사단은 선두에 중장기사가 큰 방패를 들고 그 때를 기다렸고, 그 후방에 선 기사도 여차할 때를 대비하고 있었다.


     "어쨌든 적의 발을 노립시다! 시간을 벌면 반드시 승기는 찾아옵니다!"


     지휘를 맡은 것은 리발이었다.

     지휘권을 이어받은 건 미라였을 터인데, 어쩌다 그 역할을 떠맡아서 뭐가 뭔지 잘 모르면서도 필사적으로 소리를 치고 있다.

     마술사가 호를 그리며 쏘아낸 마력의 화살은 적의 손발을 중점적으로 노렸으며, 그것도 진군의 방해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지금 이 작전을 지원하는 건 마술사에 불과했고, 기사들은 적의 포효나 열선을 막는 벽이 되어 그들을 지켜야 했다.

     조금씩이지만 적과 아군의 거리는 확실히 좁혀지고 있다. 적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사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고, 투구 밑에서 기분 나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원군은 아직인가......"

     "이대로는......"

     "죽고 싶지 않다고."


     싸울 의욕을 잃은 그들로서는, 미라가 가져다 준 원군의 소식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통솔되지 않은 마물들은 서로 돕는 일 없이, 무아지경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밀거나 밟으면서 으르렁거리는 광경은 고독과도 비슷하였다.


     그 중에는, 누구보다도 과감히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빌린 말에 타고서, 선두 집단의 앞을 왕복하며 검을 휘두르는 부대.

     이 전투에서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았던, 미라와 벨트로이, 그리고 필미리아였다.


     "필미리아!"

     "예! 패럴라이즈 크라스터!"


     주먹에 모인 뇌구를 말 위에서 쏘아내자, 착탄한 지점에서 몇 마리를 휘말리게 하여 마비시켰다.

     그 틈을 타서 목왕준마는 기수를 따를 뿐만 아니라, 무리한 공격을 결코 하지 않는 벨트로이의 역량을 알아채고 알아서 움직여 주었다.

     재주껏 양손에 쥔 검을 지나가면서 휘둘러, 손과 다리에 상처를 입혔다.


     "젠장!"


     벨트로이의 기량으로는 기껏해야 피부보다 깊게 베는 것 밖에 못하여, 힘의 부족함에 불만을 표했다.

     

     반면, 미라는 종횡무진으로 밀치며 달리는 마물의 한가운데까지 뛰어들었다.

     미소를 띄우며 말 위에서 자아내는 연격이 큰 개구리의 힘줄을 베어버렸고, 다음을 향하여 말의 배를 걷어찼다.


     "큭, 히, 하하핫! 역시 용자는 이래야지!"


     거대한 다리와 팔의 사이를 지나가면서, 때로는 뛰어올라서 머리 위를 건너며, 지금까지의 울분을 해소하려는 듯 마물을 베는 느낌에 심취하였다.

     

     "자 달려라 말아. 네놈이 카론의 부하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목을 베어버릴 테니."

     

     은발을 격하게 휘날리면서 처참한 미소로 도발하는 미라에게, 절지도 그 다리의 속도를 겨루듯이 휘저어 나갔다.


     "미라 대장은 의기양양하구나."

     "두고 갈 수는......없겠네요."

     

     참호와 포박마술 덕에 둔해지긴 했어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 사이를 꿰매면서 이동하고 있었지만, 벨트로이의 피로는 극한의 근접전 때문에 상당히 쌓여있었다.

     피곤함을 모른 채 날아다니는 미라는 일별도 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약한 소리를 내는 것도, 두고 떠날 수도 없어서, 미라를 쫓아 한번 크게 벗어났다가 다시금 적의 무리로 뛰어들려 할 때, 찬란하게 모여드는 마력의 빛이 참호의 밑에서 보였다.


     "대, 대장!"


     무리를 빠져나온 미라와 합류한 벨트로이는 그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발광체는 참호 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레일이 눈길을 주었던 화염의 거인이었다.

     발크로프스의 외눈에는 붉게 타오르는 마력이 팽배하였고, 주변의 마물보다 높은 위치에서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위험해! 전체방어술식! 중장기사는 제대로 방패를 들어!"


     본진에서도 그 모습이 확인되어, 리발은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기사단의 진영 전방에는 서둘러 마법진이 겹쳐져 나갔지만, 바레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힘없는 살얼음이다.


     "쳇! 좀 더 빨리 달려!"


     절지의 배를 찼지만, 목왕준마는 본능적으로 가까운 곳의 위험을 탐지하여 다리를 세우고 말았다.

     화가 난 미라의 무시하며 빛이 모여든 순간, 지면을 도려내면서 작열의 광선이 되어 쏘아졌다.

     붉게 빛나는 열선이 방어술식의 눈앞에서 막혔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미처 막지 못한 열풍이 흰 갑옷을 태웠다.

     끼익끼익 하며 마법진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굉음에 섞여서 들리자, 그 미라조차도 볼에서 땀이 흐른다.

     불안함에 등을 붙잡는 필미리아의 손을 쥔 벨트로이의 손도 힘이 들어간다.

     기도하는 듯이 고삐를 포갠 리발로서는, 이 시간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시야 가득히 펼쳐졌던 빛이 사그라든다.

     필사적으로 마법진을 유지하던 마술사들도 힘이 빠져나갔는데, 거의 고갈된 마력으로는 이 이상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그럼에도 해냈다며 만족스러워 하는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하지만, 다시 빛나는 외눈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음 옵니다!"

     "무리입니다! 이제 마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법을 써보지만, 현재 약해진 상태의 마법진은 술자가 쓰러질 때마다 사라져갔다.

     도망치라고 말해도 불가능하다. 기사가 받아낸다 해도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아직도 안 오는가 하고 불평했지만, 마물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당황하여 웅성거리는 기사단에게, 제 2 파가 용서없이 다가왔다.


     내달리는 광선은 한번 사라진 대지를 녹이면서 우직하게 나아간다.

     도망치려고 등 돌리고 달리는 기사의 뒤를 쫓아간다.


     '아직인가, 카론.'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도 없다.

     미라와 벨트로이가 달려간다 해도 멈출 수 없다.

     기사단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분투하는 리발도 도망칠 틈은 없다.

     누구가 보아도 알 수 있다. 명백한 패배가 다가왔다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개미를 불태우려는 듯이, 자비없는 작열이 모든 것을 불태워 나간다.




     ㅡㅡ자, 시작하자




     거대한 벽이 그들의 앞에 출현했다.

     커다란 비늘이 밀집한 것처럼 형성된 반투명한 벽은, 그 크기와 두터움이 왕국의 마술사와는 비교도 안되었다.

     열선이 충돌하는 소리만은 닿았지만, 진동도 열도 전해지지 않았다.


     "뭐야 이건......"

     

     단단한 장벽을 올려다보는 리발이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기묘한 진홍의 원환이, 본 일이 없는 문양으로 천천히 돌고 있었다.

     구해졌다는 안도보다도 의문이 교차하는 와중에, 유격부대들은 피렌츠의 숲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흥, 이제야 나오는가."


     장벽같은 마술이 사라지며 배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모여든 시선 끝.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멍멍."


     

     강아지였다.



     "멍멍."

     "멍."

     "낑낑."


     뭐라 평해야 좋을지 몰라서, 누구나 말문을 잊어버렸다.

     판단력을 거의 빼앗긴 공국의 마물조차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족 보행으로 숲에서 슬금슬금 나타나는 강아지는 투구를 썼으며, 손에는 제각각의 무기를 쥐고서 대담하게 걷고 있었다.

     마물 중에서는 슬라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랭크1의 수인종 '렛서 코볼트'. 겉모습대로 흉폭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빈약한 수인이었다.


     "뭐어?"


     미라는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을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기기."

     "그히히."


     강아지 보병의 뒷편에는 기분나쁜 웃음을 짓는 랭크1의 아인종 '고블린 아처' 가 있다.

     

     그리고 최후미.

     예리한 삼안으로 주변을 노려보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랭크 3의 요정 '스프리건'.

     이 대륙에선 낯선 마법을 장기로 하는 하급요정이다.

     

     일사분란하게 행진하였던 에스텔드 바로니아군은, 호흡이 맞는 움직임으로 정지하였다.


     "와웅!"

     "위대한 왕에게 승리를 바친다!"

     "kypd68g.ltwc4|3.#._orw@!


     종족의 리더들이 각양각색의 말을 소리치자, 대기를 뒤흔드는 함성이 일어났다.

     겉모습에 안 어울리는 용맹한 외침은 전사라는 증거다.

     아직도 아연실색하고 있는 양군을 개의치 않고, 굵고 탁한 소리가 숲 안에서 울려 퍼졌다.


     "진군을 시작하라."


     백아의 성에서, 조용하게 개전의 지시가 내려졌다.





     스프리건들은 춤추듯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노래하는 것처럼 주문을 영창하였다.

     그러자 점점 기사단의 앞에 흙이 올라가서, 공국군의 사선을 차단하였다.

     방해꾼은 죽이라고 지시받은 공국의 마물은, 진로가 막혀서 적이 있다고 한다면 발을 옮기는 방향은 당연 코볼트 쪽이 되었다.

     

     "왈왈! 왈왈!"


     거대한 마물이 일제히 다가오려 하는 광경에 무엇 하나 겁먹지 않고, 코볼트들은 외침 소리에 맞추어 무기를 들고 주저없이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맹렬하게 달려오는 강아지의 대군에, 구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외눈의 거인은 커다란 팔을 휘둘러 위협해 보았지만, 둥글고 귀여운 눈동자에는 공포가 없었다.


     그 눈동자에는 보이고 있는 것이다.

     눈앞에 뻗은 빛의 선. 적의 머리 위에 뜬 여러 팝업. 우선할 숫자.

     색칠되어 그려진,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병사들에게만 보이는 왕의 비기가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무엇을 우선하고, 경계해야 좋은지. 어디로 이동하고, 어떻게 공격해야 좋은지.

     세세하게 나누어진 지령이 주저함을 없앤다. 따르는 것이 유일무이한 충성이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 해도 결코 유린되는 일은 없다.

     자그마한 개의 이빨을 드러내며, 코볼트 파이트는 있는 힘을 다해 적에게 뛰어들었다.


     "구오오오오!!"


     1이라고 마킹된 발크로프스에게, 손가락 끝 정도의 키밖에 안되는 코볼트가 화려하게 춤추며 칼날을 휘둘렀다.


     종족보유스킬・《오메가팩Ⅰ》

     스탠스스킬・《야수의본능Ⅰ》

     

     최약에 가까울 터인데, 휘두르는 칼날은 달구어진 딱딱한 피부에 상처를 입혔다.


     매직스킬・수 《아쿠아 오라》

     매직스킬・풍 《업 어질리티 Ⅰ》

     매직스킬・수 《업 디펜스 Ⅰ》


     스프리건들의 눈에도 많은 정보가 보이고 있다.

     온갖 수단을 구사하여 약한 코볼트들이 싸울 수 있게 전력으로 백업해주니, 그에 응하는 듯 코볼트의 움직임이 더욱 가열되었다.


     하지만, 적의 한복판으로 끌어 당겨지면 아무리 강화된 코볼트여도 상대가 안된다.

     가벼운 강아지는 다리를 한번 휘두르기만 해도 날아갔고, "끼잉!" 하며 새된 소리를 내며 지면에 굴러다니는 자도 많았다.

     그걸 용서치 않는 것이, 고블린의 역할이었다.


     "게게게."

     "그기! 그기!"


     웨폰스킬・《레그 브레이크》

     웨폰스킬・《암 브레이크》

     웨폰스킬・《스킬 씰 애로우》

     웨폰스킬・《스펠 씰 애로우》

     웨폰스킬・《브레인 애로우》

     웨폰스킬・《포이즌 샷》 


     약화효과를 부여하는 원거리공격이 코볼트의 사이를 제치며 꿰뚫어나갔다.

     발크로프스는 장기인 마법을 봉인당했고, 손발에 마법의 쇠사슬이 휘감겼으며, 눈이 가려져서 번거롭게 싸워나갔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있어 가장 메이저한 백병전술.

     네온에 의한 스폿이, 선명한 라인이, 상세한 메세지가.

     효율적으로, 확실하게, 적을 죽이기 위해 군을 기능시킨다.


     한마리 씩이라면 벨트로이도 쉽사리 죽일 수 있는 건 틀림없는데.

     작열의 거인이 지면에 쓰러지자 그 위에 서서 끝장을 내는 코볼트의 모습은,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병사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무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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