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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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1월 19일 02시 00분 5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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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42/





     왕의 위엄을 표현한다고 일컬어지는 휘황찬란한 알현실.

     교묘하게 배치된 희미한 빛은, 취향에 맞춘 장식품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빛나는 금옥좌에 걸터앉은 카론의 옆에는 평소처럼 루슈카가 서 있고, 감정이 없는 눈으로 인간을 품평하고 있다.

     대좌의 아래에는 오른쪽부터 미라, 리발, 마리안느, 벨트로이, 포울이 늘어서서 카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어째서 대장인 미라가 가장자리에 있는지 약간 의문이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꿀꺽 침을 삼켰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오른쪽의 채팅란을 훔쳐보면서, 카론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새기고 나서야 말을 하였다.

     나오는 목소리는, 매우 건조했다.


     "그럼, 리페리스 왕국의 용자후보 제군. 처음 보는 자들도 있으니 다시 소개하지. 내가 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 카론이다."


     이 이름은, 벨트로이와 포울도 기억에 있었다.

     필미리아가 전해준 인간의 왕의 이름이며, 미라와 리발이 과격하게 반응을 표한 이름이다.

     흘끗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리발은 동요하여 눈을 꿈뻑거리고 있다.

     미라는, 아무 말도 안 한 채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었고, 평소의 그녀에게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가면처럼 색이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카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론은 그런 미라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을 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름을 댈 필요는 없다."


     긴장 때문에 메마른 목에서 용의 신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헛기침을 하여 목 상태를 가다듬고 나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군들이 어떤 자이며, 무엇을 원하여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왔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궁지에 내몰린 자국에 대한 협력을 원한다고. 그렇지 않나, 벨트로이바제스."


     풀네임으로 불린 벨트로이가 목을 꿀꺽 울렸다.


     "흠, 대답할 수 없는 일이었나? 지금의 상황에선 공국의 전력에 따라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을. 아닌가? 포울데르피."


     질문을 받자, 포울의 이마에서 땀이 비오는 듯 솟아났다.


     "승리했다고 해도, 각지에서 봉기한 귀족 간의 전쟁까지는 손을 쓸 수 없지. 공국에 이겼다 해도 남겨진 문제는 비극이다. 제군들의 승리는, 공국만이 아닌 공국을 따르는 마물의 청소도 포함하고 있다. 어떤가, 마리안느프란루쥬."

     "우리들의 이름을....."


     설마 하는 마음에 미라를 보았지만, 그녀도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 알고 있다. 모두."


     카론은 오른편으로 시선을 움직여서, 희미하게 눈을 방황시키며 한순간 의아하다는 얼굴을 만들었지만, 앞을 다시 보았을 땐 존귀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자, 그럼 본제로 들어갈까. 먼저 제군들은 무엇을 보답으로 줄 수 있을까."


     석장을 쥐며, 다리를 바꿔 꼬고는 용자후보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우리나라의 백성을 구해준 것은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 군을 움직이는 것이 같은 가치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일국에 대한 제군들의 개인적인 봉사로는 수지가 안 맞는다."


     카론의 말은 어느 것이나 합당한 소리였다.

     

     "카론 국왕폐하, 발언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귀족의 지위에 부끄럽지 않은 마리안느의 행동에, 카론은 감탄한 듯이 목을 울리며 허가를 내렸다.


     "감사드립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쪽에서 귀국에 제시할 이익은 개인과 가문 명의 범위를 넘을 수 없습니다. 본래라면 한번 나라에 돌아가서, 검토한 후 답변해야 하겠지만, 저희들에겐 유예가 없습니다."

     "그런 모양이더군."

     "그렇기 때문에 여쭙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폐하는, 리페리스 왕국에 대해 무엇을 원하십니까?"


     마리안느의 물음에, 카론은 다시금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 앞을 다시 보았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교역이다."

     "교역......입니까."

     "구해준 소녀에게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먼 저편에서 이 세계로 날려져 왔다. 나라가 쌓았던 기반이 모두 사라지고, 여러 자원을 잃고 말았다."


     그 중에는 식량도 포함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곤궁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든 해서 생산력을 회복하려고 여러 일을 시험하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는 건 아직 앞의 일이며, 결코 때에 맞지 않는다.

     라고, 카론을 설명하였다.


     "나라를 생각한다면 힘으로 죽이고 빼앗는 편이 빠르고 확실한 성과가 나오겠지. 하지만, 난 불필요한 싸움이 싫은 것이다. 가능하다면 대화로 해결하고 싶다."


     슬픈 듯이 눈썹을 찡그리고 있지만, 에둘러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만 들렸다.


     "......다시 말해, 확약을 얻지 못하면 도울 수 없다는 뜻인가요."


     이것도 에둘러 협박하고 있다고 착각할 거라 생각했는지, 카론은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경솔한 생각이다. 이 세계에서 마물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얼마나 규율을 가졌다 해도 마물은 마물. 받아들이라고 말해서 납득이 가는 것도 아니겠지."


     카론은 다시 시선을 오른쪽으로 방황시키고, 망설이면서 입가를 들어올렸다.


     "그러니, 제군들이 짐의 제안을 왕국에 전달하기 위해 조력한다. 먼저 그걸로 타협하지 않겠는가."


     고압적인 태도는 강자의 여유다.

     다만, 한마디, 정했던 것과 따로 묻고 싶은 일을 마리안느가 입에 담았다.


     "폐하, 마지막으로 하나 여쭙게 해주세요. 성지는, 디에르고르테 언덕은, 두 번 다시 아제라이교의 밑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주름을 지으며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었다.


     "성지에 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우리들에겐 어쩔 수 없었던 사태라고는 해도, 소중한 땅을 잃고 만 것도 사실. 새로운 토지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로선 이렇게 사과하는 수 밖에 없다."


     마리안느의 당황스러움은 표정으로 드러났다.


     "이 사죄 따윈, 나의 위선에 불과하겠지. 약간의 혼잣말이라고 생각해주게."


     카론은 허리를 들고, 검은 코트를 옷자락을 휘날리며 등을 향했다.


     "대답은 내일 듣도록 하지. 오늘은 쉬도록 하라."

     "내일......"

     "찬성한다고 해도 군은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없다. 동료끼리 제대로 대화해주게. 그럼 루슈카, 뒤는 맡기겠다."

     "예."


     몇 걸음 걸어 옥좌의 뒤에 있는 문으로 향하며, 슬쩍 미라의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떼었다.


     "소중한 손님이다. 무례를 범하지 않게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자세를 고쳐잡는 루슈카를 곁눈으로 본 후, 카론은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


     어둡고 호화로운 공간에서 문을 지나면, 그곳은 눈부신 미스릴의 벽에 감싸인 통로. 카론이 자기 방으로 가기 위해서만 있는 전용통로였다.

     자기 방의 문을 열기 전에 후우 하고 짧은 한숨을 내뱉고, 다시 한번 왕으로서의 행동을 상기시키고 나서 방으로 들어간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는,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는 알버트와, 그걸 지켜보는 할드로기아 두 사람이었다.


     "어서오세요. 지치셨지요? 자자, 앉으시지요."


     카론의 입실을 눈치챈 할드로기아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마디가 많은 손을 쥐고, 알버트가 가리키는 자리로 안내하였다.

     코트의 옷자락을 바르게 하고서 부드러운 소파에 앉은 카론은, 약간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나서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이걸로 문제 없나?"

     "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이걸로 내일까지는 용자후보 일행을 묶어둘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알버트를 보고, 카론은 그 회견의 전에 열렸던 작은 회의를 떠올렸다.




     카론의 방에 딸려있는 넓은 응접실에 불리게 된 루슈카와 알버트는 자세바르게 소파에 앉아서, 이 상황에 환희하고 있었다.

     기나긴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역사에서, 카론이 상담을 요구한 일은 오늘까지 한번도 없었다.

     그랬는데, 처음으로 손을 빌리고 싶다고 부탁받았으니, 기합이 들어가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저희들의 승리란, 리페리스 왕국과의 우호를 방패로 삼아 장기말로 삼는 것이군요."


     시작하자마자 빨리도 피로가 생긴다.


     "짐은 왕국과 우호관계를 쌓을 셈이라고 전했을 텐데."


     목소리의 떨림은 분노가 아니라 당혹스러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간이회의는 상상 이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닐까?

     루슈카는 까닭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카론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알버트는 모두 알고 있다는 식의 미소로 끄덕이면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물론이지요. 저 또한, 그 말씀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들어보도록 할까."

     "예. 왕께서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해나가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하지만, 아무리 같은 인간종이어도 카론님이 정점에 계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위대한 에스텔드 바로니아 왕이 다른 왕을 자칭하는 쓰레기들과 같은 대열에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뭐야 그게! 라고 말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머리를 감싸쥐고 싶은 걸 억누르고 그냥 조용히 바라보며, 알버트가 말한 매우 이상한 이론을 제일 먼저 생각해 보았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있어 왕이란 절대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결국, 그들 안에서 카론은 인간종의 최상위로 생각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생각에 도달했을 때, 카론은 다시 자신과 부하 사이에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다시금 실감하였다.


     "신도처럼 공포와 은사에 의한 통치가 아닌, 우호의 관계를 방패로 겉표면에서 세계와 이어주는 역할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전부 착각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서 어떻게 교정해야 좋을지 곤란해지는 대답이다.

     

     "왕은 하늘 위에 서야 하는 분. 인간에 불과한 무지몽매한 녀석들과 같은 서다니 구역질이 나옵니다만......"

     "실로 유쾌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만요. 뭐, 늑대같은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한다면 문제없겠네요."


     다만, 이 위험사상을 고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짧은 침묵 사이 대략적인 결론을 내리고, 카론은 조용히 눈을 뜨고서,


     "역시, 자랑스러운 부하다."


     모르는 척을 하였다.


     "오오, 카론님의 심모원려를 당해낼 수 없는 아둔한 저로선 과분한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옆에서 모셔왔습니다. 알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상호 이해에 장애물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외적으로만 알맞게 행동하고, 카론의 뜻에 따라 행동해준다면 지금은 거의 문제없을, 것이다.


     "계속하라."

     "예. 그를 위해, 왕께선 리페리스에 대해 우리나라의 강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협력적이라고 인식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 교두보로서 그 용자도 아닌 것들을 이용하겠다고 결정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호를 맺으려 해도 아마 경계당하겠지요. 저희들은 마물. 인간과는 본래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조용해진 알버트 대신에, 루슈카가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교역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광석이 보관되어 있습니다만, 군비 확장의 예정이 없는 지금은 단순한 돌. 이걸 유출하여 왕국에서 무언가를 구입하겠다고 대외적으로 드러냅니다. 무상 지원처럼 의심스러운 것도 없으니까요."


     카론은 흐음 하고 납득하였다.

     

     "물론 카론님께서 거기까지 생각하신 것은 알고 있으니, 저희들에게 상담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겠지요?"

     

     아니, 지금 그게 본제였는데.


     "....뭐라고 생각하나?"


     루슈카와 알버트가 서로의 눈을 보고, 시험받고 있다고 착각하여 진지한 얼굴을 만들었다.

     

     "이후를 위해,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죽일 건가. 그걸 상담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


     카론은 천장을 쳐다보았다.

     배에서 나는 찌릿찌릿한 아픔에서 도망치고 싶어졌지만, 이를 악물며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었던, 하나의 수단을 듣고, 커다란 결단에 쫓기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카론의 방침은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말할 내용과 흐름을 담은 메모장을 시야 오른쪽에 붙여 넣고, 흘끗거리며 컨닝하면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건 게임시스템이 가져다 준 은총 덕분이다.

     어쨌든 잘못 말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지만, 과연 카론의 의도가 올바르게 전해졌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이걸로 그 용자후보들은 본래의 목적인 정보를 얻었으니 왕국으로 돌아가서, 저희들이 강경하게 나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밑준비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쪽은 무력이 비장의 수. 이 전쟁개입으로 성과를 낸다면 그만큼 위협적이라고 인식해준다, 인가."

     "네. 교역을 한다면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으니, 기를 쓰며 달래려고 하겠지요."


     알버트의 생각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아마도 인간은 인간답게 반발하거나 계획을 꾸미거나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그 때 두 사람은 나라의 수족을 얼마나 잘라낼 태연하게 제안하였으니까.


     "아버님?"

     "......"

     

     양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인 카론에게, 할드로기아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었다.


     아직 자신의 선택에 고뇌하고 있다.


     바로 군을 출격시켜서 공국을 근절시키고, 엘프를 구했을 때처럼 정의의 히어로처럼, 악을 타도하여 찬양받는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지금보다 훨씬 편하고 마음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ㅡㅡ.


     "문제없다."


     다만.

     이 결단이야말로 성장한 증거라고 자신에게 들려줄 수 밖에 없었다.


     "알버트, 공국에는 네가 가라. 나에게 시킨 결단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증명하라."


     한 줄기 눈물 자국을 숨기려 하지 않고 고개를 든 카론에게, 알버트는 몸의 떨림을 숨기려 하지 않고 튀어올라서 신하의 예를 하였다.


     "맡겨주십시오! 천마파순을 다스리는 위대한 폐하께, 반드시 최고의 성과를 가져오도록 하지요!"

     "그런가......그럼, 뒤는 맡기겠다. 조금 혼자 있게 해주게."


     한 줄기의 눈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희색이 만연한 알버트와, 걱정스러워하는 할드로기아를 방에서 내보내고, 몸을 뒤로 젖혔다.


     이 가슴에 휘몰아치는 감정은, 신도의 일로 버렸을 터였던 제멋대로의 동정. 더러운 위선의 마음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가혹한 세계의 위정자 대부분이 직면하여 분명 이겨내었을, 보잘것없는 마음.

     이제 단순한 사회인이 아니게 된 지금, 깊은 곳에 눌러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간단히 버릴 정도로의 수라는 될 수 없었고, 그렇게나 얼굴의 피부가 두껍지도 않다.

     

     창 밖을 보니 칠흑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새벽이 오기에는 멀다.

     잠들지 않는 밤은 아직 계속되는 듯 하였다.







     "카론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주어진 객실에서, 속옷 차림의 미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마리안느와 리발은, 수상쩍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저기, 미라 부대장각하. 어째서 그런 생각을?"

     "그런 거야 뻔하다. 그 회견 때 카론이 몇 번이나 내게 시선을 보냈으니까다." 

     "아니요, 그게 어째서 그렇게 해석되는지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만....."


     확실히 카론은 몇 번이나 미라를ㅡㅡ정확히는 미라의 위치에 있던 메모장을ㅡㅡ보고 있었지만, 그게 어째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되는 건지 두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귀족으로서의 격이 있으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마리안느가 메인으로 세워지고, 옆에 미라가 따라오는 것 뿐이었지만, 생각도 못한 오해가 생겨났다.


     갑옷 틈새에 낀 흙을 털어내면서,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한다.


     "그 녀석은 진정한 자유를 원하고 있다. 경과는 모르겠지만 마물의 왕인 건 틀림없어. 그리고 거기에서 해방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거겠지."

     "그럴 때 저희들과 만나자, 기회라고 생각했다구요?"


     만족스레 끄덕이는 미라였지만, 리발로서는 의문만 떠올랐다.

     

     "하지만, 어째서 그 자리에 혼자서 있었는지 설명이 안됩니다. 이만한 세력입니다. 하인도 없이 왕이 훌훌 걸어다닐 수 있는 걸까요."

     "우리들에겐 보이지 않는 특수한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단순한 평민과 다름없는 녀석이 아것도 없이 마물을 복종시킬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럼 어째서 그 때, 그 힘으로 도망가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구나 카론은. 아아, 정말 흥미가 샘솟아."

     

     검을 갈고 닦으면서 웃고 있다. 기분 나빴다.


     무섭다고 느꼈던 적은 많이 있었지만, 이런 미라는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분이었어요."


     미라의 말에 맞장구치는 건 아니었지만, 회견을 끝낸 마리안느는 자신이 느낀 이미지를 입에 담았다.


     "위엄이 있는 모양이지만, 하지만 허구로도 느껴지네요. 매우 엉성하고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과는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양이어서....."

     "그렇네요. 저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도 신경쓰이는 것은,


     "미라 부대장각하는, 카론 공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벨트로이에게 향하는 것 이상의 집착을 보여주는 미라의 마음 속이었다.

     불쑥 나타난 다크호스를 신경쓰는 리발의 질문에, 미라는 싹 잘라 말했다.


     "처음엔 그렇지도 않았었는데. 갖고 싶잖아, 그런 재미있는 녀석."


     무슨 의미인가, 라고 묻는 것보다 빨리 마리안느가 몸을 기울였다.

     그 벽안에는 연애사에 민감한 소녀의 반짝임이 떠올랐다.


     "그건, 설마 그 미라에게 드디어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다니!?"

     "하아?"


     비석 양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게 환희하는 모습에, 미라는 억눌려 있었구나 하고 따스한 시선을 주었다.


     "용자와 마왕의 사랑......! 멋진 것이에요!"

     "뭐냐 너 갑자기 텐션을 올리고서. 이상한 거라도 먹은 거냐 네놈은?"

     "자, 들려주실까요 미라이파. 그 분과의 사이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소파에서 내려와서 상체를 들이대는 마리안느에게, 미라는 싫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미라도, 이런 일에는 잼병인 모양이다.

     참고로 마리안느는 이상한 걸 먹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책은 상당한 수를 읽었었다.


     "그만둬 성가시다고! 내게 그런 감정은 없다!"

     "에~ 진짜일까요~?"

     "젠장, 시끄럽다 마리안느프란루쥬!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 빨리 자라!"

     "괜찮잖아요. 자, 포기하는 게 어떤가요? 자자!"

     ".......좋아, 이 나에게 접근전이라니 좋은 각오구나."

     "어, 아, 잠깐."


     견디지 못한 미라가 마리안느에게 덤벼드는 옆에서, 리발은 시선을 돌렸다.

     

     창 밖은 아직 어두운 밤에 감싸여있다.

     날이 밝으면 생각할 시간 따윈 없어질 것이다.

     아주 잠깐의 휴식.

     그걸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도, 먼저 암바를 당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마리안느를 보며,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미라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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