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전황2021년 01월 18일 02시 20분 5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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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일행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시각.
레스티아 대륙의 리페리스 왕국령 각지에서, 대규모 전투가 때를 맞춘 듯이 일어났다.
왕국에 충성을 맹세한 귀족과, 공국에 붙은 귀족에 의한 전쟁.
그것은 현 시점에선 10곳에서 일어났는데, 더욱 늘어날 기색도 있었다.
지금 이 대륙의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는 없는 것이다.
인간끼리의 추한 전쟁으로 끝났다면 좋았다. 그럼 따로 기댈 곳이 있고, 안전을 확보할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왕국 귀족이 마주친 것은, 공국이 각지에 준비한 이레귤러의 투입에 따른 혼란과 비극이었다.
"영주님! 빨리 대피를! 여긴 이제 버틸 수 없습니다!"
"바보 같은 말 마라! 어디에 도망치라고 하는 건가! 애초에 승리 이외로는 안전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흙과 피로 얼룩진 채로, 무릎 꿇고 진언하는 부하에 대해, 말에 올라탄 백은의 기사는 분노하였다.
이 땅에 임명된 귀족은, 청렴결백으로 이름이 알려진 백작이다.
왕국 직속의 밀정에게서 이곳의 전투를 시사하는 전문을 받았었지만, 소중한 영민을 도망치게 하고 싶어도 피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와중에 부주의하게 다른 영지로 보낼 수도 없어서, 갑자기 생겨난 전장에서 도망치는 자들을 후퇴시키는 것 만으로도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ㅡㅡ
"구오오오오오........옹."
"젠장! 이쪽으로 향해옵니다!"
"백작! 빨리 피난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지 마 시발! 오면 에 ㄱ'
"장벽마술을 계속 유지하라! 무너진 구멍에서 단번에 올 거다!"
인간이 아니었다.
달빛 아래를 제멋대로 달리는 거구. 아래턱에서 휘어지게 뻗은 기다란 송곳니와, 선명한 녹색과 흰색의 털이 특징적인 표범이, 태연하게 전장을 내달리고 있었다.
" '닐브레' 다! 뭐야, 왜 저런 게 있는 거냐고!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나!"
옥풍표 '닐브레' . 이 대륙에 산다면 한번은 귀로 들었을 동화 속 단골.
골드론 산맥에 버려지면 닐브레가 먹으러 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은 아이에게 말해준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야 실존한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될 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것은 멀리서 전장을 바라보던, 반역한 영주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생겨도 좋은가....."
수염을 기른 영주의 목적은, 몰락하는 왕국에 예전의 영광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평화에 젖어들어 나태해진 왕궁으로선, 언제까지고 옆나라와 다툴 수 없다. 공국의 꼭두각시가 된 시점에서 뻔히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반기를 들었다.
다만 일개 귀족이 모반을 일으켰다고 해도 계몽이 되지는 않는다. 나라가 각성할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누구나 위기감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공국에게서 지시받은 건 교두보였다.
어떤 꿍꿍이가 있다고 해도, 저 '강검' 과 '큰불' 을 상대로 무사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감수하겠다.
그런 각오는 비밀리에 들여온 '저것' 에 의해 융해되었다.
애초에 전쟁조차 안되었다. 마음대로 찢어발기는 마물이 남긴 자를 병사가 처리하는, 무참한 광경이다.
올려다 본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녀석들은......공국은ㅡㅡ"
회색 구름의 사이에서 익룡이 성벽에 서 있는 영주를 삼키려고 급강하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도망치는 게 늦은 백작이 표범의 송곳니에 찢어발겨지기 직전이었다.
리페리스 왕국의 왕성 안. 촛불에 비추어진 백과 청으로 통일돤 넓은 방 안에서는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왕관을 쓴 장년의 깊은 한숨에, 벽의 좌우로 늘어선 40명에 가까운 문관들의 등에 긴장감이 서렸다.
무거운 공기에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누군가가 움직여주기를 원했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정지하고 있었을까. 두터운 문을 밀고 나타난 현자의 모습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바레일, 어떻게 되었나."
칙칙한 회색 로브를 어깨에 두른 방문객은, 이 나라의 통치자가 내던진 물음에, 히죽대면서 옆구리에 품은 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누군가가 무심코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예리한 헛기침에 서둘러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최악이다. 그것 이외의 다른 무엇도 아냐. 여전히 신도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어. 공국이 사역하는 마물들이 밀고 들어오는 광경을 정찰자들이 본 게 마지막이고 그 후부터 앞일은 전혀 몰라!"
이건, 공국이 신도와 협력체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진 정도의, 역시 확증을 얻지 못한 정보였다.
"........그럼, 그 유격부대는. 미라・사이파는."
"소식없음! 하아아.......일생일대의 발명품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성공했는지도 모르다니. 달리 사용할 곳이 없는 게 문제지만."
"다시 말해,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는 말이구나. 보낸 기사들의 생사도, 유격대의 상황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자, 더욱 공기가 무거워졌다.
현지에서 대기하던 왕국군의 병사가 보낸 보고서에는, 너무나 이상한 광경을 보고 전의가 하락하고 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쓰여져 있다.
그것이 바레일이 내던진 두루마리의 정체. 우는 소리만 한다며 요청이 쓰여진 종이를 보고 코웃음치는 '큰불' 의 경박한 태도에, 왕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예전의 인마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고 선선대의 왕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영웅과 용자의 존재 덕분에 괴롭고 힘든 역경을 이겨냈지만, 그건 대국의 요소를, 각각의 장소에서의 승리를 이어나간 것으로 타개한 것 뿐이며, 결코 인류가 마군에게 우세했었다는 건 아니다.
지금 이 때로 비유한다면 공국의 본거지를 습격하여 라돌 대공을 저지하는 것이 제일 빠른 승리로 이어지겠지만, 그걸 해내기 전에 과연 아군이 버틸 수 있을까.
잃어버린 교훈을 되새기기에는,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리페리스 왕국 제 23대 왕위계승자, 알드윈・리페리에게는, 결단할 사고력이 없었다.
"제군의 의견은 어떤가."
내심을 억누르면서, 바레일에 의해 무너진 공기는 이제야 다시 그들에게 공을 던진다.
"전군을 공국으로 향해야 합니다. 저걸 함락시키면 승리가 정해지겠지요."
"하지만, 모반한 귀족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설령 공국에 이긴다고 해도 처벌이 결정된 녀석들이 조용히 물러날 리가."
"이 상황에선 눈앞의 위협이 최대의 장해인 것을!"
"장해가 많다면 승리했다고 해도 언젠가 무너진다고!"
"마술부대를 모두 투입해야 한다!"
"신도에서 병사를 되돌리게 하여 무방비한 옆을ㅡㅡ"
"내구전으로 끌고 가서 제후와의 연계를ㅡㅡ"
"아니, 지금부터라도 그리온과 카란드라에 요청을ㅡㅡ"
발언의 허가를 받고, 기다림에 지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의견이 난무한다.
어느 것도 일리는 있지만, 결정타에는 닿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사이에 얼마나 세련되어질까.
"자네라면 어떻게 할 건가."
"뻔하지. 본인과 도그마가 악역을 쓸어버리면 될 뿐이다!"
후하하하! 라며 기세좋게 웃은 덕분에 문관들의 눈은 자연스레 두 사람을 주목하고 말았다.
비밀로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 바레일에게, 왕은 다시 관자놀이를 눌렀다.
바레일은 한껏 웃어서 후련해졌는지, 작게 숨을 토하고 드물게도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는 확실한 승리가 되지 않겠지."
"호오. 어째선가."
"단순한 말로 하자면, 저쪽의 전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아무리 밀정을 보내봐도 자세한 정보를 갖고 돌아온 자가 없어. 기분 나쁠 정도로 침묵을 유지한 채 전쟁이 시작된 걸 보면, 우리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데에 더해 승산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 뭐, 이미 보고에 있는 몇 가지만 해도 충분히 손이 갈 거고."
용자는, 개인이 무리를 밀어낼 정도의 힘이 있다.
그 용자를 하면서, 손이 간다고 일컬어지는 마물을 복종시키고 있다. 태연히 금기에 손을 물들인 끝에. 그 외법에 통달했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다.
"여러가지로 신경쓰이는 점은 있긴 해. 어디서 조달했는가, 라던가. 하지만 그런 건 어떤 전장에도 붙어다니는 것이니 생각하는 걸 그만둔 본인은 천재다! 그건 그렇고, 귀찮은 문제도 있지. 설령 승리했다 쳐도, 이 내분은 어떻게 수습하는가. 테임이 풀리면 마물들은 분별없이 인간을 습격할 거고,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은......오오, 이건 조금 전 이야기했구나."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그렇게 듣고, 왕도 문관도 침묵을 유지했다.
가령 바레일과 도그마가 라돌 공을 토벌한다고 치고, 그 후에 남겨진 마물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항복할 리가 없다. 울타리를 벗어난 야수가 순순히 따를 거라는 건 말도 안되는 망상이다.
승리 조건의 어려움이, 가열되던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고, 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회의장에 내려왔다.
"의논은 끝났나? 그럼 본인은 준비를 하고 빨리 전선에 가세하도록 하지. 뭔가 새로운 수단이 생각난다면 전령을 보내줘."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말했다며, 바레일은 손을 흔들면서 대답도 안 듣고 방을 뒤로 하였다.
남겨진 사람들로서는, 그냥 떠넘겨졌다는 곤란함에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주민의 피난경로를 우선합시다."
왕의 옆에 앉은 대신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래서는."
"음. 하지만 지킬 장소가 너무나 많은 현재, 백성을 한 곳에 모으지 않으면 고뇌의 씨앗은 부풀어오를 뿐이다. 무모할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이라도 많이 이 왕도에 도착시켜야 할 것이다."
"그럼, 전선은 그들에게 맡기지 않는 겁니까?"
"지금 배치된 자들은 공국을 담당하게 하고, 다른 자는 구조작업으로 돌린다. 그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겠지."
이 난국에, 개인으로서 맞설 강함을 갖지 않은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다.
부탁하는 이상, 그들의 패배를 수습해주지 않으면 면목이 서지 않을 거라고, 대신은 말한다.
"그 대전에서도 길을 열었던 것은 아홉 명의 기사였지만, 그걸 지탱한 것은 무력한 우리들 같은 존재였다네."
용자도 인간의 자식. 뜻밖에 패배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어쨌든 정보를 모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렇게 말하고 턱을 흔드는 모습에, 기분을 전환한 자들이 순서대로 바레일이 버린 자료에 손을 대어, 내용을 읽고서 발언해 나갔다.
약한 자가 강함에 맞서기 위해선, 모일 수 밖에 없다. 그 지혜와 무력을 모아서야 겨우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용자에게는 용자의 싸움법이 있다. 그걸 지원해주는 것이, 지켜지는 자들의 역할인 것이라고.
움직이기 시작한 나라의 모습을, 왕은 조용히 바라본다.
아홉 명의 용자가 타개한 절망에는 부족하겠지만, 지금 여기에 제2의 인마전쟁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이걸 넘어선다면, 그 때엔 이렇게 뒤에서 지원하는 모두를 영웅으로 불러주겠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열의에 가득 찬 모습에,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굴에 붙인 손의 아래에서, 입가를 들어올렸다.
"저기, 괜찮았던 건가요??"
"후후후, 상관없다. 본인에게 군략의 재능 따윈 없어. 연구만은 잘하지만 그 이외에 관해선 전혀 모르니 말이다! 적당히 들쑤시고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회의장을 뒤로 한 바레일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빌을 데리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왠지, 기분 나쁘네요. 나쁜 것이라도 드신 겁니까?"
"네놈 잘도 이 타이밍에 말했구나. 아니 뭐, 오랜만에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이 천재가 천재인 까닭을 잠시 보여줬지 뭐냐. 오늘이야말로 이 내가 '큰불' 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일깨워주겠다!"
"그러니까 대신이 너무 지나쳤다고 화내는 거지요. 전 이 흐름을 벌써 몇 번이나 봤었지만."
"후하하하! 그런 말 마라 첼미!"
"세빌입니다."
아마 죽어도 고칠 생각은 없을 거라며 흘겨보면서 한숨을 쉬는 소리에, 혼나는 게 아닐까 하고 바레일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평소에 주던 벌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길 수 있습니까?"
연구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물어보니, 바레일은 문을 닫고 나서 입가를 들어올렸다.
"물론."
연구기기가 널려있는 어둡고 넓은 방의 안을 쑥쑥 나아갔다
"회의장에선 약간 위태로울지도?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지금 파악하고 있는 녀석 뿐이라면 여유만만하다. 너무 낙승이라고 생각되면 이쪽이 부담되니 말이야. 용자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쉽사리 생각되면 곤란해."
"하아....."
"뭐, 높은 전투력이 있는 녀석을 전선에 내보내는 건 당연하니까. 그 이외의 일은 약한 녀석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어."
"의외네요. '용자 바레일・오더가 있다면 만사해결이오!' 정도는 말할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마력로를 기동시키면서, 바레일답지 않은 발언이 신경쓰인 세빌의 무심한 발언에, 거대한 철제 상자를 주무르던 바레일의 손이 멈췄다.
".......첼미, 넌 용자적성을 갖고 있었나?"
"아니요, 없는데요."
"그런가. 그건 좋은 일이다. 없는 것보다 나은 일은 없으니까."
"왠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투네요."
"본인은 말이지. 용자도 마물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얼굴을 돌리지 않고 다시금 손을 움직이면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바레일은, 그 등을 보며 눈을 부릅뜬 부하의 일 따윈 신경도 안 쓰고 말을 이어나간다.
"언제 인마전쟁이 유발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세계는 받아들였지만, 한끗 잘못하면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로서 배제당했을지도 모르는 게 용자다. 나라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폭력이 당당하게 활보한다면 무서운 게 당연. 올바른 반응이겠지."
과거에는 그런 흐름이 생겨났었지만, 인마전쟁이 심어준 트라우마가 가까스로 억제해 준 덕분에 오늘이 있다.
눈에 보이며 적이라고 부르는 마물. 같은 모습을 한 병기인 용자.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될지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압도적인 폭력에 약자가 삼켜질 뿐이다.
"악에 빠져버린 용자의 자손은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아주 강하지. 누가 막을 수 있겠어? 마물도 용자도, 아군이라면 마음 든든하지만 적이라면 곤란한 점은 똑같지."
"하지만, 같은 인간이 아닙니까."
"그 인간끼리 전쟁을 하고 있으니 지금 큰일난 거라고. 이러다 도그마같은 녀석이 적으로 돌아서면 어떻게 할 건가. 녀석이 진심으로 날뛰면 얼마나 피해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 같은 인간이니까, 인간에게 이빨을 들이댈 기회가 많은 거라고. 그래서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그렇군요."
"용자는 용자가 되는 것을 강제당한다. 사실은 살기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이 나라는 좋아. 귀찮은 건 일 뿐이고 그 다음은 사양하지 않아도 되니까!"
"역시 그거였습니까. 진지하게 들은 게 후회됩니다."
"그만한 힘이 있으니, 우리들 용자는 대다수의 약자에게 키워지고, 지탱받는 것이다. 마술에 관한 거라면 본인 만으로도 만사해결이지만, 싸움은 그렇게 안돼. 수없는 피가 흐르고 목숨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본인인 채 살아가게 해주는 목숨을 하나라도 많이 지키고, 지켜준 목숨이 또 다른 목숨을 지켜준다. 이것이 용자의 올바른 역할이야."
끼이익 하고, 자물쇠를 푼 것 치고는 격한 소리를 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던 바레일은, 반쯤 열린 뚜껑의 사이에 손을 넣어서 목적이었던 것을 꺼내들었다.
그가 대현자라고 불렸던 것은 마술의 지식 때문이지만, 용자로서 주어졌던 이명과는 전혀 관계없다.
그의 본질은 광범위를 고화력으로 불태우는 심플한 마술에 있다. 이걸로 안된다면 그보다 더한 걸 태연히 저지르는 것이 바로 '큰불'.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기 위한 모체가 되는 것이, 상자에 수납되었던 세 갈래의 지팡이.
"그러니, 본인은 은혜를 갚지 않을 순 없다!"
이름은 '게헤르 존'.
선대 리페리스 왕에게서 수여받은, 붉게 빛나는 마도강으로 만든 석장.
그의 전성기를 함께 물들였던 파트너다.
"훗, 어때? 어때? 본인 지금 꽤 멋있지 않은가?"
"내일의 점심은 린캐롯의 소테로 하겠습니다."
"그그그그그런 건 인간이 먹을 게 아니니 두 번 다시 본인의 식탁에 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제대로 일하고 돌아오세요. 대신에게 잔소리 드는 건 피곤하니."
"너 정말 마이페이스로구나.......뭐, 그게......"
오랜만의 전장에 들떠있던 자신을 조금 탓하고, 그 기대에 응해야 한다며 마음 속으로 감사를 말한다. 직접 말하는 건 왠지 부끄러워서, 그런 고집스런 자신을 기분 나쁘게 생각했다.
"본인의 희망으로선 신도에 인식방해를 걸었던 녀석을 놀려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공국의 용자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전혀 짐작이 안 되니."
"네? 공국은 용자의 양성을 하지 않았잖아요? 용자가 있었습니까?"
"뭐야, 몰랐던 거냐? 애초에, 이번 마물대소동의 발단은 그 용자가 시작한 거라고?"
흰 수염을 매만지면서, 그 이명을 기억에서 찾는다.
어떤 의미로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이제 와서 입에 담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상층부의 인식이었고, 그걸 용자라고 인정하는 것도 누구나 꺼리고 있었다.
리페리스 왕국의 용자제도에 맞지 않아 쫓겨난 이단아.
"그란버드・라돌. 마물에 매료되어 외법에 손을 댄 '찬탈' 의 대공이야."
◆
국가에 필요한 것은 몇 가지가 있다.
인, 의, 식, 주, 법, 일, 돈.
하지만 그 무엇보다 외부에서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지 않으면 그건 단순한 마을과 촌락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라돌 공국은 성지에 뿌린 대량의 돈으로 인정받은 나라였다.
오랫동안 공국은 외국의 방문을 거절하고 있다.
마물을 복종시키기 위한 마술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약 10년 이상은 지났을 것이다.
공국이 품은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공국은 나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살고, 의식주가 갖추어 졌으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돈이 돌고, 외국에서 나라로 인정받는 것을 가리킨다면.
지금, 이 나라는 그 절반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전선의 배치가 종료된 것을 보고하러. 젊은 병사가 공국의 성벽 안을 나아갔다.
갑자기 옆길에서 뛰어든 민간인에도 놀라지 않는다.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도 신경쓰지 않는다.
설령 그 자가, 실제 아버지라고 해도.
"카, 카인즈! 도와줘!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절도도 거짓말도 무엇 하나! 너도 도와줘!"
마음이 아파도, 도와주면 안된다고 지금은 사망한 선배에게 가르침 받았다.
선배는 여동생에게 약을 주기 위해 돈을 훔쳐서, 여동생과 같이 죽었다.
일상다반사가 된 이 폭정의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무엇과도 이별을 고하고 눈과 귀를 닫을 수 밖에 없다.
군인이 된 것은 약간 목숨을 오래 살게 해줄 뿐이고, 살아남을 보증 따윈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히익!!"
민간인의 뒤를 쫓아온, 뱀의 꼬리를 가진 수탉이 병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도 동료냐고 물어보는 듯.
떨리는 다리로, 병사가 민간인을 차버리는 걸 신호로, 수탉은 예리한 발톱으로 민간인을 붙잡고 부리로 뜯으면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그걸 그는 무시하였다.
들리지 않아. 들으면 안돼.
보이지 않아. 봐서는 안돼.
조금이라도 의식을 기울이면 보이게 된다.
어두운 마을 안에서 누워있는 시체를 먹는, 공작의 하인이.
".......!"
네 발의 늑대가, 떨어져 있는 해골을 쪼개고 있다.
보라색 촌충이, 자식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머리가 없는 멧돼지가, 태연히 걸어다닌다.
옆에서 웅크리고 떠는 백성은 매우 야위어 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마을의 여러 장소에 방치되어 있다.
라돌 공국의 모습은, 이제 마을을 둘러싼 돌로 된 방벽만 남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신도의 엘프와 자신들 중, 어느 쪽이 행복한가 하고.
누군가가 대답했다. 어느 쪽이든 변함없다. 신도도 원래는 공국이라고.
그 어느 쪽도, 다음날 아침엔 성벽의 얼룩이 되어버렸다.
살기 위해선, 뭐든지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도착한 저택의 안, 그의 침실에 가면 싫어도 알 수 있다.
악한 자를 따르게 하여 이 세상 위에 올라선 남자는, 흐물흐물하게 움직이는 촉수의 고치에 휘감겨, 아비규환을 자명종 삼아 잠을 자고 있었다.
이 공작은, 분명 지옥에서 왔다.
"각하,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꼬인 밧줄을 푸는 것처럼 얽혀져 있던 고치의 팔에서 일어선 남자는, 구부정한 뼈에 피부를 씌운 듯한 모습으로 점액을 흘리면서 걸어나왔다.
깊게 들어간 눈동자에 보이는 핏발선 눈이, 재미있다는 듯 돌아보았다.
그란버드・라돌.
이 세계에 다시금 파멸을 원하는 자, 그 첨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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