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3 초전
    2021년 01월 16일 17시 30분 5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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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37/





     딜아젤의 신전에서는, 성대하다고 부르기에는 약간 조용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왕국기사의 환영회일 터인데, 넓은 식당 안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무장을 해제한 기사들은 테이블에 놓여진 요리와 술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자신들을 둘러싼 신도의 기사를 향했다.

     당연하다고 한다면 당연한가. 아직 그들이 공국과 손을 잡지 않았다는 확증을 얻지 못했으니까. 거기다 공국의 움직임도 불명확한 채여서,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지 않은 상태에서 긴장을 푸는 건 당최 무리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역시, 이런 행사는 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예의 상 해야 하는 일이지만, 상황을 생각한다면 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의미를 담아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앉은 대장 바스톤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웃음소리로 돌아왔다.


     "아니아니, 저희들도 꽤 강행군을 했으니, 이렇게 성대한 식사 대접을 받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냉수를 입으로 가져가는 에이라를 본받아, 바스톤도 술을 목으로 넘겼다. 태연한 바스톤의 모습에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교황님, 그 주법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담당자에게서 대답은 있었습니까?"

     "그게, 여러분들을 열외로 처리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느 무렵이 되겠습니까."

     "빨라야 이틀 후에......"


     길다.

     적어도 몇 명 만이라도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렵다고 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에이라가 일부러 늘리고 있다고 쳐도, 전문 외인 자신이 논파할 수 있는 지식이 있을 리도 없어서, "그렇습니까."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를 대하는 에이라의 마음 속도 편치는 않았다.

     알버트라고 자칭하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마물이 넘겨준 대응 매뉴얼대로 대화는 어떻게든 하고 있지만, 엉뚱한 질문을 받았을 경우는 에이라의 재량으로 단어를 고를 필요가 생겨버린다.

     만일 그래서 불이익이 될 발언을 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등줄기에 서늘하고 예리한 무언가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건대, 상대가 마구잡이로 행동하지 않을 거라 예측한 알버트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 요지를 전해 듣지 못한 에이라로서는 이 자리를 재빨리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요.....'


     말할 것도 없이, 무리한 이야기다.

     에스텔드 바로니아도 관련된 이상, 저쪽이 개입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입은 은혜를 배신할 수도 없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껄끄러운 공기. 다만 태연하게 있는 것은 신성기사들 뿐.

     그런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를 잘라낸 것은, 갑자기 열린 식당문 소리였다.

     부서질 듯한 기세로 열린 문에서 나는 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모인다. 누구나 경계했지만, 그곳에 있던 자는 익숙한 제사복을 입은 신관이었다.

     창백한 얼굴엔 땀이 나있었고, 숨을 들썩이면서 얼룩진 흰 옷을 끌어당기며 비틀비틀 식당 안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인가요. 지금은 연회의 도중으로ㅡㅡ"

     "급보입, 니다. 마물이......마을 안에......"


     간간히 끊기는 호흡소리에 섞인 말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바스톤 공, 바로 준비를."

     "알겠습니다. 모두, 움직이지 마! 바로 무기와 방패를 가지러 가자!"

     "신성기사 여러분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열 명 정도는 신전의 방어를. 엘프 여러분에게도 전해주세요."


     재빨리 소리를 낸 두 사람의 목소리에 기사들이 반응하여 움직이려 했다.

     식사를 버리는 듯이 쟁반 위로 되돌린 그들은 신관의 인도로 바깥 문을 향하여 걸어갔다. 에이라도 뒤따라서 신성기사를 이끌고 바깥으로 향했지만, 스쳐 지나가면서 보였던 기진맥진한 신관의 얼굴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어라?'


     그녀는 그다지 많지는 않은 신관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솎아내어서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얼굴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런 사람, 있었나요?'


     문 앞에서 무릎 꿇은 신관의 얼굴이, 기억에 와 닿지 않았다.


     "기다려주세요! 공국에서 전문도 도착했습니다!"


     이제 곧 바깥으로 나가려 하는 참에, 조금 전의 기어가던 소리와 딴판인 신관의 외침에, 움직이던 기사들이 멈추고 '말았다'.

     얼굴을 들고 쳐다보는 신관은, 이미 창백한 얼굴이었다. 이제는 인간이라고 하기에 무리인 창백함으로, 싱긋 웃으며 일어섰다.


     " '이대로 여기서 죽어라.' 이상입니다."


     그렇게 말한 순간, 신관의 몸이 급격히 부풀어 올랐다. 풍선처럼 손발 끝까지 팽팽하게 부풀었고, 구멍이란 구멍에서 바깥을 향해 흰 빛이 새어 나왔다.

     순식간에 눈치챈 에이라가, 채워지는 빛에 지지 않게 당황한 목소리를 질렀다.


     "안돼! 마력폭주입니다!"

     "너희들 엎드려어어어어!"


     두 사람의 비명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채, 식당은 강렬한 섬광과 충격에 휩싸였다.





     쿵! 하는 강렬한 폭발음을 눈치챈 벨트로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열리지 않던 철문과 격투를 벌였지만 열리지는 않았고, 시간만 소비하고 있었다. 미라와 연락도 못 취하고 망연자실하게 있던 차에 일어난 굉음과 진동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며 예리한 안광을 되찾았다.


     "무슨 소리지."


     냉정하게 말한 것은 포울이다. 역시 이 정도의 소리라면 누구나 눈치챌 거라며 주변을 둘러보니, 마리안느의 허벅지에서 잠자던 필미리아도 깨어났는지 눈을 떴다.

     

     "전투의 소리가 난다. 공국이 쳐들어온 게 아닐까?"

     "하필 이런 때냐고! 젠장, 어떻게 하면 좋아!"

     "진정하세요. 소란을 피워도 여기에선 나갈 수 없어요."

     "그럼 가만히 있으면 뭔가 해결되는 거냐고!"

     "소란피워도 변함없잖아요!?"

     "진정해 둘 다."


     쌓여가던 불만이 폭발하여 말다툼으로 발전할 것 같은 포울과 마리안느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들어서 제지한다. 말려진 두 사람은 아직 말할게 있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콧김을 내뿜으며 멈추었다.


     "싸, 싸움이 일어났나요........?"


     눈에 눈물이 맺혔음에도 울지 않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독기가 빠진 마리안느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있으니."


     포울도 마리안느도 마찬가지여서, 미안한 듯이 머리를 긁으면서 벨트로이에게 얼굴을 향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이렇게 되었다면 단장 일행도 움직였을 텐데. 합류하지 않으면 큰일나지 않을까?"

     "적어도 연락을 취한다면 도움을 부를 수 있을 거야. 마리안느, 아직 무리같아?"


     유일하게 마술을 쓸 수 있는 마리안느에게 통신마법이 닿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젓는 걸로 대답하였다.


     "젠장."


     욕하면서 갈 곳 없는 분노를 벽에 부딪히는 포울의 모습을 시야의 한 켠에 두면서, 벨트로이는 일어서서 턱을 매만지며 이곳에 갇히게 될 때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이게 그 녀석이 말했던 계기인가?"


     여기에 가둬둔 친구이며 범인인 타이라의 말.

     그 의문의 해답은 비교적 빨리 다가왔다.

     문 저쪽에서 저벅저벅하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달려왔다. 소리로 보아, 천만 입는 신관의 소리가 아니다.

     소리의 정체는 벨트로이 일행이 갇혀져 있던 문 앞에서 멈추더니 서두르는 소리를 내었고, 철컥 하며 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정말로 여기에 있었나! 뭘 하고 있던 거냐!"


     그곳에 있는 자는, 원래 이곳에 올 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리발!? 왜 이곳에 네가!"

     "이야긴 나중이다! 빨리 여기에서 나가자고!"


     무거운 철문 저쪽에서는 폭발음과 비명과 외침이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고 방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장비는 전부 수중에 있다. 모두 바깥으로 뛰쳐나간 후 주머니 안에서 검을 꺼내 들어 허리춤에 찼다.

     길고 어두운 통로를 지난 끝에 있는 신전의 뒷 편. 그곳은 이미 많은 마물이 서성이고 있었다.


     "뭐, 야 이거."

     "젠장! 이미 이런 곳까지!"


     벨트로이 일행을 눈치챈 마물이, 몸을 향함과 동시에 덮쳐왔다. 초조함에 혀를 찬 리발이 방패를 들고 마물을 막아내었고, 포울은 접이식 파르티잔으로 소인 크기의 마물을 찔렀다.

     '고블린' 이라고 불리는 마물일까. 다 떨어진 나이프를 든 그들은, 그들의 훨씬 뒤에 있는 약간 큰 고블린의 지시에 맞추어 습격해왔다.

     사태를 파악할 틈도 없이 일어난 전투에 약간의 동요는 있었지만, 서로 짠 것처럼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응전하였다.

     2번 정도 달려든 키가 낮고 추악한 모습을 한 코가 큰 마물. 수만 많고 그렇게 강하지는 않아서, 모여드는 적을 쉽사리 베어버렸다.

     필미리아를 지키려는 듯 흙의 마술로 만든 구리 중갑과 방패와 의례용의 검을 쥔 마리안느가 길을 열었고, 경장인 세 명은 제각각 자신있는 무기로 무찌르며 나아갔다.


     "젠장, 너무 많아!"

     "그렇게, 움직임이 빠르진, 않, 아! 후우, 내가 신전 안에 올 때까지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재주좋게 창을 빙글 돌리면서 노리는 고블린을 일섬찌르기로 절명시키는 포울의 불평에, 방패와 검을 잘 나누어 착실하게 쓰러트리는 리발이 정중하게 대답해준다.


     "그래도 이대로는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읏, 좀 걸릴 거라고!?"

     "이만한 수다. 아마 지휘관이 있을 거다." 

     "그럼 난전이 장기인 네 차례다 벨!"


     포울의 말에 응하는 듯이, 벨트로이는 검을 들고서 단번에 달려나갔다.

     무리의 사이를 가로지르듯이, 달려드는 고블린들의 사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면서 안쪽으로 나아간다.

     미라에게서 배운 것은 단신의 전투방법이다. 항상 일 대 다수를 상정한 검술을 배웠고, 그 첫 번째로 '지휘관을 재빨리 죽인다' 라고 들었다.

     적을 한 명 씩 쓰러트리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고 들어서 우울해졌던 벨트로이였지만, 그 말을 실행할만한 실력은 제대로 손에 넣었다.

     볼과 손에 날아오는 나이프에 잔상이 남는 것도 상관치 않고 돌진하자, 다른 고블린보다 한층 커다란 고블린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저놈이다!'


     그 거리를 20보까지 좁힌 곳에서 땅을 짚듯이 상태를 숙이고 기세 좋게 날아올랐다. 빙글 선행하는 하반신을 뒤쫓듯이 몸을 회전시키며 표적의 바로 위를 향해 낙하한다.

     자신을 지키려는 듯 부하를 배치한 고블린의 머리 위는 당연하게도 비어있다. 양 허리에서 검을 뽑아서, 올려다보는 추악한 머리를 향해 낙하시킨다.

     하지만, 그것은 희뿌연 보라빛 막에 의해 막혀졌다.


     "이 녀석, 메이지냐!"


     케케케케하는 거슬리는 조소. 숨겨 들었던 지팡이를 꺼내어 벨트로이를 향한다. 회피해야 한다며 막을 눌렀지만, 그보다 빠르게 뭔가의 마술이 쏘아질 것이다.

     지팡이의 앞이 빛나는 걸 보고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았다.

     싱글거리는 얼굴 그대로, 메이지 고블린의 입에서 녹색 피를 솟구치게 하는 가시가 생겨난다. 주변의 부하고 마찬가지로 지면에서 생긴 가시에 꿰뚫렸다.


     "어리석군요 당신. 조금 머리를 굴리면 알 수 있었을 텐데요."

     "이거......마리안느인가!"


     훨씬 뒷편에서 어이없다는 듯 말해오는 목소리는, 아무런 초조함이 없는 냉랭한 목소리.

     떨고 있는 필미리아를 자신의 등에 숨기면서, 그녀가 날에 직각으로 꺾이는 듯한 칼날을 가진 검을 지면에 꽂아 넣자, 그 몸을 회색 마력의 격류가 감싸안았다.

     

     "나의 마를 삼키고 응하라 정령! 날 해하려는 악한 오물을 전부 흙으로 돌려보낼."


     조용한 영창은 힘이 되고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명 앞에 비추어지는 적 모두를 노리는 주문을 자아내었다.


     "책형에 처한다!"


     매직스킬토 <그레이브 랜스>


     신전에 빙 둘러있던 자도, 벨트로이 일행을 덮치던 자도, 분별없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 입에서는 가시가 돋아났고, 처형장을 떠올리게 할 제물의 나무들이 생겨났다.

     너무나 처참하게 꿰뚫린 자는 말없이 죽음으로 변했고, 땅에 발을 디딘 벨트로이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마, 마법 대단해....."


     찔끔찔끔 한 마리 씩 쓰러트리던 포울은, 자기가 하던 짓이 바보같이 생각될 정도의 마술의 힘을 또렷하게 목격하여, 마술기사의 강함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자, 앞으로 가자고요."


     30마리는 있었을 고블린이 꼬챙이에 꿰여버린 광경은, 검을 지면에서 빼내자 원 상태로 되었다.

     난폭하게 지면에 떨어진 고블린들. 마리안느는 움찔하고 떠는 필미리아를 돌아보고, 바이저를 열어서 안심시키려는 듯이 미소지었다.


     "역시나 비석 양이라고 부를 만하군......이동하자. 여기다."


     이명에 걸맞는 강함에 놀라긴 했지만 리발의 지시에 모두가 따랐고, 주변을 확인하면서 제일 경계하고 있을 정면의 상황을 확인하려고 이동한다.

     도착한 신전의 옆. 기둥 뒤에서 몰래 들여다보니, 신전 앞은 거대한 소머리의 마물에게 점거되어 있었다.


     "....... [미노타우로스] 는 역시 무리겠네요."


     맨 앞에서 마리안느가 작은 소리로 고한다. 한 마리만 있다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보이는 시야에만 다섯 마리나 있다면 당해내는 건 무리다.

     그리고 마을도 혼란이 극심한 모양이다. 먼 곳에서도 피어오르는 불길 속을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이 비추어지는 것이 보인다.

     분함에 떨고 있는 벨트로이의 어깨를 포울이 가볍게 치고, 마물이 없는 루트를 찾기 위해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그보다 리발, 넌 어떻게 여기로 온 거야? 그리고 대장은."

     "너희들이 언제까지고 오지 않으니까 혼자서 찾으러 왔다. 도중에 어떤 신관이, 저곳에 너희들이 갇혀져 있으니 도와주라고 가르쳐 줬다."


     아마도 타이라일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신경 쓰였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일이 아니라며 의식의 바깥으로 내쫓았다.


     "미라 대장이니 뭔가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그건 그렇고 너무 빨라. 내가 너희들의 장소까지 왔을 때는 아직 마물은 없었는데."

     "추측이지만, 무언가의 전이마법을 쓴 게 아닐까요."

     "그런 걸 어떻게."

     "여러 마술사가 있다면 가능하겠죠. 미리 마을에 잠복해 있다가, 때를 맞춰서 발동시킵니다. 수상한 자를 내쫓을 정도로 신도의 경비가 엄격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자기들도 수상한 자처럼 들어왔으니 반론할 수 없다.

     자세를 낮추면서 마을과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는 일행. 정면에서 마을까지의 길에는 당연히 마물이 드글거렸고, 벨트로이 일행이 쓰러트린 무리와 다른 집단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허술한 뒷 쪽의, 마을을 피하는 루트를 통해 일단 산기슭까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미리아, 괜찮니?"


     하지만 걷는 길은 길이라고 부를 만한 하지 않았고, 거의 동물의 길에 가까웠다. 앞서가는 남자들의 뒤를 위태하게 뒤쫓는 필미리아에게, 제일 뒤에서 걷던 마리안느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았다.


     "괜찮, 아요. 민폐를 끼칠, 순 없으, 니까요."


     기운차게, 땀에 젖은 검은 머리를 턱에 달라붙게 하며 웃는다. 격한 운동에 적당하지 않은 굽 높은 신발로 걷는 건 괴로울 터인데도, 대견하게도 그런 기색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행동하고 있다.

     그걸 불안하게 생각한 벨트로이는 리발에게 어깨가 닿을 정도로 다가가서 후방에 들이지 않도록 대화한다.


     "저기, 이대로 미리아를 데리고 다닐 거냐?"

     "놓고 갈 수도 없잖아.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안전 따윈 없다."

     "그건 그렇지만....."

     "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맞춰줄 수 밖에 없어."


     이 상황. 그것은 마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제부터 더욱 가혹하게 된다는 걸 생각한다면 때를 봐서 이탈시켜야 하겠지만, 이미 기회는 놓쳤다. 아니, 숲에서 만난 시점에서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라의 말대로, 데리고 다니면 안되었다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모두 자신의 어리석음에 기운을 잃고 있었다.


     "저기, 저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어, 어? 아니 하지만 그건....."

     "이, 이래 뵈어도 마술을 쓸 수 있으, 니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후우후우하고 귀엽게 숨을 내쉬면서 눈썹을 찌푸리고 앞을 걷는 세 사람을 바라본다. 잔해가 굴러다니는 가도의 도중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모두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절 감싸주는 건 기뻐요. 하지만 제가 뭔가를 하든 안하든 그건 변함없겠지요?"

     "그건......"


     리발이 반론하려 하다가, 그만둔다.

     조금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벨트로이가 뜻을 굳히고 감았던 눈을 뜨고서, 필미리아의 앞으로 이동하며 웅크렸다.


     "후회, 하지 않는 거지."

     "예. 저도 모두를 지키게 해주세요."

     ".......알았어. 마리안느, 미리아의 호위를. 포울은 전위를 맡아줘. 리발, 나와 네가 유격이다."


     그 결의를 받아들이고, 세 사람에게 지시를 내린다. 세 사람도 의의는 없는 모양이어서, 아무 말없이 필미리아를 중심으로 배치를 바꾸었다.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가자."


     이제 곧 비탈의 끝. 그곳에서 시가지로 이동하면, 그제야 그들의 제대로 된 임무가 시작된다.

     일단 미라와 합류하기 위해 격전의 안을 돌파해야 한다.


     "가자."


     그 목소리에 오케이,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아."


     다시 걸어가는 도중에 필미리아가 입가를 가리고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그건 다른 자에게 들리지 않았다.





     어딘가 먼 곳에서 소리가 난다. 결코 부르는 목소리가 아니다. 그런 상냥함은 없다. 가라앉았던 의식을 흔드는 것은, 귀청을 찢는ㅡㅡ비명이다.


     "쿨럭......."


     기침과 함께 뱉어낸 피. 동시에 뇌가 깨어난다.

     여긴 어딘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난 어떻게 되었는가.

     자문을 하니 자답이 떠오른다. 바닥에 누워있던 몸을 팔로 천천히 일으켰다.

     머리가 아프다. 등도 그렇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입가에 굳어버린 피를 혀로 닦아내자, 점점 감정이 솟구쳤다.

     주변의 소란으로 어떻게든 사태의 파악은 하였던 미라는, 삐걱이는 몸을 채찍질하여 일어선 후, 굴러다니던 자신의 검을 주웠다. 쥐는 손에 담긴 힘은 검자루를 끼익끼익 울릴 정도로 강하다.


     "젠장......"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을 가리는 걸 상관하지 않고 고개를 들고서, 경첩이 부서져 덜렁거리는 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도망치는 신도의 주민들을 뒤쫓는 이형들의 모습. 손발이 여섯 개 난 개구리가 긴 혀로 아이를 붙잡는 것이 몽롱한 눈동자에 비추어진다. 새된 비명이 들린다. 털썩 무너지는 것처럼 얼굴의 반을 잃은 남자의 시체가 굴러다닌다.

     점점 들끓는 명예의 피가, 주민의 죽음을 민감하게 느낀다. 그저 키워진 본능과 교육이 만신창이의 몸을 부추기며 움직였다.


     "시이이이익."


     이빨을 드러낸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는 열기를 띄었고 약간 하얗다. 높아진 체온이 뇌를 점점 자극하여 통각을 잊혀지게 한다.

     탄, 하고 주먹을 강하게 꽂아넣음과 함께 주점의 안에서 화사한 몸이 뛰쳐나간다. 소리에 반응하여 돌아본 개구리를 향해, 뛰쳐나가기 직전에 주운 검이 밤의 어둠을 갈라버리려는 듯 달빛을 품은 일섬을 그렸다.


       개체보유스킬・《용자의 피Ⅰ》

     스탠스스킬・《페더댄스 Ⅲ》

     개체보유스킬・《기사의 명예》

     스탠스스킬・《윈드스탭 

     웨폰스킬・한손검 《에어슬래쉬》


     버터를 자르듯이, 스윽 하고 저항도 없이 가르는 칼날.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마물은 미라에게 손을 뻗었지만, 머리만 그대로 남기고 녹색 거구만 썰려나간다. 그 광경에 눈길도 안주고, 다음 표적으로 몸을 도약시킨다.

     일방적이었다. 인류에게 있어 위협이며 해악인 마물이 정말 간단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도살장과 다르지 않다.


     웨폰스킬・한손검 《게일스핀


     반복적으로, 하지만 격정을 담아서 지면을 누르는 듯 달려나가며, 칼날바람처럼 눈치챌 사이도 없이 베어넘긴다.

     거체가 지면에 쓰러지는 것에 맞추어 착지한 미라가 자아를 되찾았을 때 이미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거기다 움직이는 마물의 모습도 없었다.

     차츰 냉정해지는 의식으로, 자기가 일으킨 참상을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낀다. 피가 목적을 다한 것 때문에 술렁거림이 잦아들자, 경험에 의해 깨달았다.

     조금 서늘한 공기가 열을 빼앗아간다. 그런데도, 아직 마음이 식혀지진 않았다.


     "그 괴물......"


     명백한 패배. 기사의 명예로서 마물에 대한 패배는 용서되지 않는다. 왕국의 검인 자신이 적에게 지는 일은.


     무엇보다, 희귀한 존재를 비참하게도 빼앗겼다니.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조각조각난 돌바닥 위를, 검을 휘두르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돈다. 초조하게 검을 휘두르자, 우연히 누워있는 추태를 보이던 이형의 고기가 썰리면서 형형색색의 피를 흩뿌렸다.


     "이, 이 나에게서 빼앗다니, 웃기지 마."


     그 격정은, 그녀의 안에서 새로 태어 것이며, 첫 경험이다. 패배 이상의 분노.

     인생을 왕국에 바치는 대신 그녀가 얻어왔던 여러가지 물건. 원한다면 정말 간단히 손안에 넣었고, 한마디만 하면 자신의 앞에 놓여진다.

     보석도, 서적도, 장식품도 옷도 집도 갑옷도 검도 가축도, 인간도.

     패배하면 용서없는 질타와 폭력이 가해졌지만, 자신을 죽이고 싶어질 정도의 수치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미라사이파의 감성은, 강함과 인생을 맞바꿔서 이것저것을 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왜곡되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 손을 벗어났고, 더군다나 빼앗겼다고 하는 것은 기사의 명예의 피가 아닌, 미라사이파 자신이 용서치 못했다.

     이것이, 그녀를 처음으로 밀어붙이는 충동이었다.


     "........칫."


     그렇다고는 해도, 딱히 카론을 자기 것으로 한 것은 아니니 그렇게까지 집착하면 안된다고 마음이 반론을 하였다. 그 이상으로 해야 할 일이 현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마물에게 납치되었다면, 이 싸움의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ㅡㅡ그렇게 하면 된다.

     피를 묻은 검을 휘둘러 더러움을 떨쳐낸 미라는, 일단 부하들과 합류하기 위해 정처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투의 밤은, 아직 시작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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