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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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01월 15일 12시 13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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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35/





     이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요행인가, 재앙인가.

     그걸 판단할 방법은 이 남자에게는 없었다.


     "호오. 먼 대륙에서라니. 그거 힘들었군."

     "어떻습니까? 레스티아 대륙은. 지내기 좋은 장소지요?"

     "바보냐 네놈은.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아, 죄송합니다. 실례되는 말을...."

     "아니, 그, 신경쓰지 않습니다. 정말. 하, 하하....."


     현재 가장 두려워하는 녀석들에게 포위당해서 가시방석에 앉은 상태인 카론의 머릿속에선 점점 배드엔딩 특집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라・사이파, 리발・오드・슈트라이프와 만난 그 순간, 카론은 도움을 요청하려고 쿠치나시히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쿠치나ㅡㅡ"


     그곳에는, 산들바람밖에 없었다.


     '......도망쳤나? 도망친 거야? 도대체 누구냐고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녀석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물어보려 했는데 그곳은 이미 빈 껍데기. 허공을 바라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카론의 시야 한 켠에, 쿠치나시히메가 보낸 메세지가 퐁 하고 표시되었다.


     ㅡㅡ제 15단 단장 : 그늘에서 지켜보고 있겠다


     평소엔 업무연락으로만 사용하던 기능의 새로운 발견을 한 것 이상으로, 너무나 무책임한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서 맵을 확인하자, 근처 민가의 위에 점이 표시되어 있다. 시선을 보내니 단풍잎이 그려진 검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손톱이 기다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미안한 듯이 손을 합장한다. 다시, 퐁.


     ㅡㅡ제 15단 단장 : 나, 완전히 사람으로 변할 수 없다는 걸 잊고 있었느니라.


     "가악ㅡㅡ크오오....."


     괴성을 내려는 걸 허벅지 위에서 주먹을 꾸욱 쥐며 참았다. 이상한 말투가 입에서 나오려는 걸 참는다. 눈앞에 있는 건 용자이며, 지금 카론이 제일 위협으로 보고 있는 적. 수상하다고 생각되면 재미없다.


     "저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부들부들 하며 떠는 카론을 본 리발이 쭈뼛쭈뼛 말을 걸었다. 그 보통이 아닌 모습에 약간 뒤로 물러섰지만, 그 옆에서 미라가 시치미를 뗀 척하며 지나갔다.


     "어이 조금 진정해. 물이라도 마실 건가?"


     귀신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서 미라를 바라본다. 정면으로, 정면으로 말을 걸어주는 인간의 대사. 무심코 안도와 기쁨으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그것도 삼켰다.


     "괘, 괜찮습, 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필사적으로 호흡을 반복하여, 이제야 호흡이 가라앉은 참에 지금의 상황을 정리한다.


     용자와 만났다. 현실은 비정한 것이다.


     "어, 어이. 정말로 괜찮은가? 땀이 대단한데."

     "괘, 괜찮. 괜찮습니다. 진정되었으니, 정말 괜찮으니까."


     이번엔 얼굴이 새파래지며 땀을 비 오듯 흘리기 시작한 카론을 본 미라가 어깨에 손을 대려 하는 걸 제지하였다.

     지금 카론이 품은 사정은 그녀들이 알 리가 없다. 태연하게 행동한다면 그것 뿐이고 어떻게든 된다. 어쨌든 구치나시히메의 일은 잊고 평범하게 대하지 않으면.

     조금씩 심호흡을 하며 일반인인 척을 하려고 몇 번이나 자신에게 되묻고 무릎을 바라보며 정신통일.

     그 모습을 보던 리발은, 리발의 옆에 다가가서 가볍게 어깨를 치며 귓말을 하였다.


     "어이 친근하게 만지는구나 하인. 졸라죽인다."

     "에엑! 그렇게까지!?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죠. 잠깐 여기로."

     "사람이 얼마 없다고 욕정이 일어난 건가. 그런 플레이도 너도 흥미가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둘 필요가ㅡㅡ"

     "................그게 아니라! 어쨌든 저기로!"


     충격적인 사실을 들어서, 지금도 아직 미라에게 마음이 있던 리발은 약간 얼어붙었지만, 만져서 목 졸라 죽어도 곤란하다며 카론에게서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여 있는 힘껏 손짓을 하였다.

     카론을 보는 것 이상으로 의심쩍은 눈을 보내면서도 천천히 리발 쪽으로 이동한 미라는, 비밀이야기를 하려고 얼굴을 들이댄 리발의 얼굴을 밀면서 떨어졌다.

     어디까지나 차갑다. 리발이 울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래서, 뭐냐."

     "아니, 위험하다니까요. 저 사람 어떻게 보아도 신전의 인간이 아닌데요? 혹시 공국의 인간이라면......"


     리발이 카론을 신도의 인간이 아니라고 눈치챈 이유는 일일이 나열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신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마을의 주민이 흰 옷을 입는 것도 알고 있다.

     문신이 없고 온몸이 검은 남자라니 현재의 신도와 너무 안 어울린다. 전쟁이 임박한 나라에 부외자가 있다니 너무 이상하다고 리발은 말했다.


     "그건 아니겠지."


     그걸 미라는 일도양단하였다.


     "언뜻 생각하면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겠지만,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저렇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이런 장소에 있는 것도 이상하잖아. 저 모습으로 사람 사이에 섞여들 셈이라면 머리가 이상한 거라고."

     "그것도 의태를 위함이라던가."

     "애초에, 우리들 앞에서 저렇게 격한 발작을 일으키다니 무슨 밀정이 그러겠어. 긴장에 약한 걸 보면 그럴 리 없어."


     확실히.


     "그럼, 어째서?"


     만일 공국과 무관계한 인간이라 해도, 미라가 일부러 참견하는 게 의문으로 남는다. 미라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태연히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 질문에, 힘 빠진 표정에서 단번에 진지한 얼굴이 된다. 리발의 등에 긴장감이 솟구쳤다.


     "저 남자, 아마 어딘가의 귀족이다. 가까이에서 봤지만 몸에 두른 것이 전부 상당히 고가의 수제품으로 보여. 수수하지만."

     "그래서요?"

     "그런 남자가 시중도 없이 이런 장소에 있는 건 이상해. 조금 전의 되풀이가 되겠지만. 그럼 그 시중은 어디에 있을까? 시중에게서 벗어났을까?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은 이 마을에서?"

     

     단순한 관광으로 온 귀족으로 가정해도, 혼자 있는 건 기묘하다.

     리발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 지를 물어보기 전에, 미라는 다시 카론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진정하여 이 마을에 주민으로 녹아들자고 자기암시를 걸려던 참에 다시 용자가 나타나자, 카론이 다시 몸을 약간 경직시켰다.

     

     "아, 조금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을까?"

     "예, 예에. 뭡니까."


     설마 마을의 안내를 부탁하진 않겠지, 라며 의심을 하던 차에 미라가 무심코 폭탄을 던졌다.


     "말하는 걸 잊고 있었는데, 종자는 어떻게 되었지?"


     이번엔 눈을 보며, 몸을 경직시켰다.


     '설마, 쿠치나시를 들켰나!?'

     '이 반응, 역시.'


     다시 얼굴이 새파래지는 카론을 보고, 미라는 확신했다.


     이 남자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것이라고.


     ......뭐 들어봐.

     맞잖아. 여행자도 오지 않는 이 신도에 있는 귀족같은 남자가 혼자서 뒷골목. 사람을 보고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떤다. 시중의 행방을 물었더니 벌벌 떤다.

     이 모습은, 누군가에게 습격당하여 종자를 잃고 여기까지 도망친 것 같지 않은가.

     카론의 모습만을 본다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비약시킨다면 이것도 공국이 설치한 함정일 가능성으로도 생각되었다.

     카론이 어딘가의 귀족인데, 전쟁에 휘말려 죽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된다.

     공국이 전쟁에 이겼을 때 카론의 신병을 원래의 나라로 무사히 되돌려서 은혜를 사고, 진다고 판단한다면 이 남자를 죽여서 문제를 왕국에 떠넘긴다. 전쟁 후까지도 생각한다면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확신을 얻은ㅡㅡ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ㅡㅡ미라는, 카론에게 눈을 맞추고 똑바로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확실한 의지를 가진 목소리로 강하게 제안하였다.


     "안심해라. 우리들은 다르다."


     뭐가!?


     "아마 우리들의 문제에 휘말려버린 모양이구나."


     무슨!?


     "입장 상 사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사히 나라로 돌려보낸다고 약속한다."


     어느 나라!?


     조금이지만 귀족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자세를 힘껏 취하는 미라의 모습에, 아직도 사정을 읽지 못한 리발도 일단 미라를 따라서 카론의 정면에서 시선을 맞추었다.

     

     "의심받는 건 각오하고 있다. 다만 믿어줘. 그것 만이면 된다."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고.

     시아의 한 켠에 카론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지금은 그냥 조용히 쉬고 싶다고 빌었다.

     


     그렇게, 지금에 도달한다.

     현재 카론은, 중요인물이라고 생각되는 남자를 데리고 돌아다니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미라에 의해, 그녀들이 거점으로 삼은 술집에 와 있었다.

     눈앞에 놓여진 맥주잔을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미라와 리발이 던지는 화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로 힘겨운 상황이다.

     일단 어딘가의 귀족이, 라고 하는 질문에는 "먼 대륙에서 왔다." 라고 대답해서 일단은 모면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말하지 않았구나. 난 미라・사이파. 왕국의 기사를 하고 있지. 일단 이래 뵈어도 귀족이다. 작위는 장식이지만."

     "전 리발・오드・슈트라이프라고 합니다. 같은 왕국의 기사를 하고 있으며, 원래는 귀족이었습니다."


     정중한 인사.


     "카론, 이다. 미안하지만 이름만으로 용서바란다. 아직 너희들을 신용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성은 없기 때문에 이름만 말해둔다.

     카론이 가진 경계심은 미라 일행이 생각하는 경계심과 일치하지 않는데도 묘하게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


     "흠. 뭐 그 이름을 들은 것 만으로도 조금은 신용해 준 건가."

     

     카론을 말똥말똥 쳐다보던 미라는, 내심으로 조금은 진전했다며 안도하였다.

     이 카론이라는 남자, 사실 귀족스러움이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몸짓에 교양은 있고 말투도 '그럴 듯' 한데, 귀족으로서의 품격을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갖추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카론이 입고 있는 고가의 의복으로 보면 아마 유복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금전에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다면 누구나 마음 어딘가에서 오만이 생긴다. 남을 얕보는 인간도 여럿 있고,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고 이해하며 자라며, 주변에서도 그렇게 교육한다.

     적어도 미라가 아는 대귀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독 같은 건 들어있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그게 아니라, 그, 이런, 서민? 의 것을 입에 댄 일이 없어서 말이다."

     "아, 그랬습니까. 평소에 드시던 것보다 질은 떨어지지만, 나쁘진 않은 것인데요?"

     "그렇군.....그, 이건 애초에 무엇인가."

     "이건 펠름의 과일을 짜낸 쥬스입니다. 달아서 맛있다구요?"

     "펠름, 이 뭐지?"

     "네?"

     "에?"


     하지만, 그녀가 아는 대귀족과 닮아도 닮지 않은 서민스러움이 묻어난다.

     문득, 어쩌면 비싼 옷을 입었을 뿐인 일반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서민에게 친숙한 먹을 것의 이름도 전혀 모르는 남자가 일반인일리가 없다고 부정했다.


     유감. 여러가지로 아깝다.


     하지만, 미라는 카론에 대해 꽤 호의적이었다.

     중요인물ㅡㅡ일거라 생각되는 상대ㅡㅡ에게 평소의 태도로 대하는 건 언어도단이었지만, 전세계를 둘러보아도 거의 없을 서민적인 대귀족 (임시) 은 정말 흥미롭다.


     "그래서, 카론 공. 당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셈입니까?"

     "어, 음. 종자를 찾아볼까 하고."

     

     그렇게 대답하자, 미라와 리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 그는 습격 도중에 종자를 놓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종자는 분명 이미.


     "아니......그건 위험하다."

     "어, 하지만 없으면 좀, 진정이 안되어서 말이다."

     "위험하다. 그 종자를 발견할 확증 따윈 없고, 찾는다 해도 그대로 우리들과 헤어지게 할 수는 없어. 적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며 습격해도 도망칠 수 있다.

     그래도 이걸로 반론하면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될 뿐이라는 걸 느끼고, 카론은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이제 여기까지 따라온 시점에서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있다고 한다면 밤을 기다려서 수면 중에 전이로 탈주하는 정도.

     자신이 보호와 동시에 감시되고 있는 건 눈치채고 있다. 아마 손에서 놔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적대는 하지 않는다. 보험을 들어 놓았다. 종자의 걱정. 귀족이라는 단정. 내가 귀족이고 종자와 헤어져서, 보험을 들어놓았다? 내가 누군지 이해하지 못했으니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습격당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에이 설마. 왜냐면 그런 곳에서 웅크리는 부주의한 짓을, 습격 당하는 녀석이 할 리가 없잖아.'


     유감. 이쪽도 아까웠다.


     서로의 생각이 밝혀지지 않는 채로, 표면 상 잡담을 하면서도 상대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머리를 회전시킨다.

     시야의 한 켠에 쿠치나시히메가 '빨리 도망쳐' 라고 연타하는 것에 대해, 원인을 따지면 네 탓이라고 대답을 보내어 조용히 시킨다.

     미라의 동료가 돌아오기 까지는 진전될 것 같지 않구나 하고, 태평한 리발을 제쳐둔 두 사람은 그 점에서만 생각이 딱 일치하고 있었다.





     아제라이교 총본산의 신전은, 각지의 신전과 비교해도 훨씬 크다.

     벽, 바닥, 천장, 기둥 모두가 순백의 돌을 쌓아올려 만들어졌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변치않는 모습을 교도와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서는 현재, 왕국기사단과 교황의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신전의 내부도 또한 백색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중의 한 방. 이전엔 원로원이 사용하고 있던 원탁의 방에서 교황 에이라와 바스톤두에는 서로 마주보면서 서로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돌연한 방문, 정말 죄송합니다."


     시작은 바스톤부터.

     입장은 어디까지나 기사가 밑이 된다. 처음 말을 걸면서, 깊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그걸 명확히 해보였다.


     "아니요, 신경쓰지 않아요. 사정은 들어놓았으니."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정이라니요?"


     그 바스톤의 태도에 대해, 에이라는 온화한 미소로 태연히 추궁하였다.


     "얼버무리는 건 그만두지요. 공국이 왕국에 대해 전쟁을 걸 셈이라고 하는 건 들었습니다."


     귀찮은 일은 빼자. 빨리 본제로 들어가.

     말투는 온화했지만 말의 뒤에 숨은 의미는 오싹하게 전해져 왔다. 꼭두각시라고 들었던 교황이 여기까지 관록을 가졌을 줄이야, 또한 예상 외였다.

     바스톤도 그렇게 배짱이 장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걸로 상관없다고 자세를 고쳤다.


     "그럼,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하나는 원로원의 행방. 하나는 정보를 차단한 이유. 하나는 신도의 백성에게 걸려있는 주법. 마지막으로, 공국과 신도의 관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예상대로의 질문. 에이라는 눈꺼풀을 감고 작게 숨을 빨아들인 후 조용히 바스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신관장이 철저히 가르쳐준 대사를 되풀이하면서.


     "먼저 원로원입니다만, 이미 없습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시네요."

     "네, 숨기는 건 이제 불가능하니. 알고 계실까 해서."

     "저희들이 알고 싶은 건, 왜 원로원을 배제했느냐입니다."

     "그럼, 더욱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이 신도에 존재했던 나쁜 뒤틀림을. 엘프의 일도, 신도의 내정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요?"

     

     바스톤은 싱긋 미소지으며 말을 아꼈다.

     영문 모를 압력에, 역전의 용사인 기사가 약간 압도당한 것이다.

     에이라의 얼굴은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공허한 눈으로 의자에 앉아서, 그냥 원로원 의장의 독촉에 맞장구를 치는, 인형과 꼭두각시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지만 이건 뭔가. 날개를 억누르던 방해물이 사라진 것 만으로 이렇게나 날아오를 줄이야.


     "그. 그렇겠군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엘프가 주도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예. 상관없어요."

     "그럼 정보차단은."

     "공국에 누설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공국의 행동은 원로원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배제한 후 조사하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신도가 어수선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표적이 되었겠지요. 무리한 연명처치이긴 했지만, 왕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걸로 살아남을 길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흠......"

     "덧붙이자면, 왕국의 밀정을 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자를 대상으로 해두었습니다."

     

     보충하는 오르페아의 대사에, 바스톤은 넓은 턱을 매만지며 정리한다.


     "하지만, 왕국에 사자를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왕국에서 정보가 누출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어서요."


     확실이 그 말대로다. 이치는 그럴 듯하다, 라고 생각한다.

     

     "공국과의 관계도 납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주법. 그 사정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건 너무나 비인도적인 행동이 아닙니까."

     "따로 백성을 안정시킬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공국이 움직임을 알고서, 엘프에 의한 반란이 일어난 채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설 정도로 신도의 병력은 많지 않습니다. 언젠가 해제하려고 정해놓았지만, 이것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게, 원로원과 같은 행동이라 해도?"

     "마술이란, 어느 것도 편리하며 잔혹한 것. 불을 지피는 마술 하나로 몸을 녹이고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정당성을 주장할 셈은 아니지만, 적어도 잘못을 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신도의 의향은 이해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변했다고 한다면, 지금 이상으로 저희들과 우호를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바스톤의 제안에 에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의 힘을 풀었다. 이 조건을 들고 간다면 다음은 어떻게든 된다. 공국 따위와 사이좋아질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왕국과 협력관계를 맺는다면 이보다 더할 나위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숨기고 있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일일까. 기분을 상하게 되는 일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마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안이 남는다.

     모반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오르페아도 그게 신경쓰였는지, 불빛에 비춰지지 않는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바라마지 않던 일입니다."

     "그럼, 이 회담의 내용은 왕국에 들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저희 기사에게도 작용되는 것을 해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렵다면 적어도 저 만이라도."

     "저도 오르페아도 전문이 아니니 아직 답변은 못하겠지만, 담당하는 자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유의미한 담화가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일어서서 다가와, 손을 꼭 마주 쥐었다.

     이걸로 일단은 일이 원만하게 끝났다며, 오르페아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에이라는 아직 불안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바스톤이 말한 대사. 이걸 실행해도 되는지 아닌지. 그 시비를 물어봐야 할 마물이 이 나라에 없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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