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원정2021년 01월 14일 09시 30분 5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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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츠의 숲은 디에르코르테 언덕과 신도를 양분하듯이 밀집되어 있다. 언덕을 둘러싸듯이 반원형으로 펼쳐져 있었고, 왕국의 근처도 그 포위에 포함되어 있다.
드디어 찾아온 신도원정 당일. 왕국 정문의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호령이 울려진 원정군보다 떨어진 위치, 숲 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집단은, 짊어진 장비를 덜그럭거리며 일어섰다.
"좋아, 가자."
그 목소리에, 뒤따르는 네 명은 고개를 끄덕인다.
천에 감싸인 무기와 방패를 고쳐 메고, 쌓인 낙엽을 밟으며 숲 속으로 이동한다. 사람의 눈길을 피하려고 일반인이 들어올 일이 없는 피렌츠의 숲 속으로 이동하며 북상을 개시한다.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보고하도록. 들키기라도 하면 웃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미라가 놀리는 것처럼 코웃음을 친다 은색 머리를 숨기려는 듯 후드를 뒤집어 쓰고, 고저차에 걸음을 늦추는 일 없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올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신성하고 자상한 숲에 발을 들이려는 불신자 따윈 왕국에 없다구요."
쓴웃음을 지으며 벨트로이가 대답을 해준다. 그도 미라와 같이, 적지 않은 장비로 경쾌하게 숲은 나아간다. 표정이 약간 경직되어 있는 것은, 이 멤버 안에 흐르는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일까.
"뭐, 그게 우리들이지만."
"어이 그만둬. 아제라이의 신자한테 몰매를 맞을 거라고."
매우 진지한 얼굴로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던 폭탄을 꺼낸 포울은 넓은 등에 거대한 타워실드를 메고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두 사람의 뒤를 따랐고, 서둘러 옆에 서있던 리발이 태클을 걸었다.
두 사제와 다르게 그들은 건장한 갑옷을 입는 편의 기사였지만. 이번 임무에선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로 장비하지 못하였다. 유사시에 원정군에게서 갑옷을 받을 계획은 있었다.
"네에, 네에 정말, 두터운 신앙심의 신자라면 들어오지 않겠지요. 네에, 여기도 엄밀하게는 성지니까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저는......."
제일 뒤를 걷는 자는 마리안느다. 그야말로 아가씨라고 알 수 있는 품위있는 용모와 행동거지였지만, 포울과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지 않았고, 대신 입고 있는 옷은 어느 것이나 엉망진창이다. 마음만 앞선 변장이다.
정말 갑갑한 분위기를 만드는 원흉은 그녀에게 있었다. 라는 것도 그녀는 성실한 아제라이교의 교도이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번은 반드시 순례하고. 기도도 매일 빠트리지 않는다. 당연히 성지의 중요함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있다.
마리안느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신도까지의 길을 비밀리에 이동하려면 숲을 지날 수 밖에 없다고. 그래서 담담하게 승낙했지만, 이렇게나 안까지 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그 초조함의 오라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달래주는 것 조차 주저하고 있었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떻게든 해보라며 떠넘기고 있었다.
"아아 신이여! 아제라이시여! 이 죄 많은 절 부디 용서하소서!"
"괜찮으려나? 광신자는 머리가 이상하다던데 저것도 그런 쪽인가?"
"네가 이 팀에 끌어들여서 저 신앙심 깊은 자의 마음을 짓밟은 탓이잖아..... 하아, 그런데, 미라 교도관님."
"네놈은 바보냐. 벨트로이・바제스같은 놈. 지금은 미라 부대장각하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잖아."
"아니 지금은 보통이 아니고, 사람의 이름을 욕처럼 말하는 거 그만해 주실래요?"
매우 실망한 표정을 보이자 벨트로이는 무표정하게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공국 녀석들, 언제 움직일까요."
미라는 아주 약간 걷는 속도를 늦추고, 턱에 손을 대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일단 정보는 있지만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하고 싶지 않다니....."
"그건 그건가요. 기밀의 문제 때문에?"
"아니,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포울・데르피. 네놈은 지금 상황에서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생각나는 게 있나?"
"으엑!? 어~ 그렇네요, 예를 들면~, 이 원정의 틈을 찌른다, 정도."
"그렇게나 면밀히 지도해준 탓에 뇌도 근육이 되어버렸나? 리발・오드・슈트라이프, 네놈은 어떤가."
"어, 아, 예. 공국과 인접한 귀족의 모반일까요."
"정답이다. 이미 열여섯의 귀족이 공국 측에 붙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확실히 우울해지는 이야기였다.
"자, 그럼 마리안느・폰・프란루쥬. 네놈과는 한번 대화했었지만, 거기에서 도출할 수 있는 건 뭘까?"
귀족의 수치를 듣고 더욱 기분이 나빠진 마리안느를 일부러 지목한 미라를 보고, 남자들은 괴로운 얼굴을 만든다. 눈썹을 찌푸린 마리안느는, 크게 심호흡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상관이기 때문에 그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게 원통하다고 눈동자로 말하고 있었다.
"전장의 수가 늘어나겠네요. 공국 측과 왕국 측의 귀족이 여기저기서 부딪히게 되겠고요. 현재 나라만 놓고 보면 전력은 왕국이 유리하지만, 그것도 큰 차이는 아니에요. 오히려 숫자만 보면 공국 쪽이 많을 가능성도 있네요."
마법사라는 것들은 사역과는 별개로 세뇌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급 마물은 한 마리는 약하지만, 수로 밀어붙이면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적은 그 방식으로 양을 충분히 모으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되면 외부에서, 특히 영지를 가진 귀족의 소집에 기대고 싶지만, 마리안느가 말한 대로 공국 측에 붙은 귀족에게서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다. 이건 가능한 한 인원을 유지하고 싶은 왕국으로선 힘든 문제였다.
"신도의 신성기사가 공국에 가담한다면, 반대로 왕국이 불리해지겠네요. 지금도 수가 많을 공국을 상대하고 있는데도 신도로 향할 기사도 내보내야 하니까요."
"그 말대로다. 그럼 녀석은 어떻게 공격해 올 거라 생각하나? 벨트로이・바제스가 다시 대답해 보도록."
"역시 다방면 작전이겠지요. 명령계통 따윈 이미 엉망진창일 테니 제멋대로 왕국을 목표로 침공하지 않겠습니까?"
"음. 충분히 그럴 듯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 부족해. 포울・데르피."
"우, 저, 저도 벨트로이와 같은 의견입니다."
"이 근육뇌가. 그럼 리발・오드・슈트라이프."
"큰 차이가 없다면 전략이 아닐까요. 어딘가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던가."
그렇다고는 해도, 이 부근에 전략 상 중요한 장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공국, 왕국, 신도를 잇는 대지는 거의 평지이며 엄폐물이 없다. 야전이 되는 건 피할 수 없었고, 우열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까지 도달하자, 모두에게 하나의 가설이 떠올렸다. 그것도 마리안느가 더욱 화내버릴 것 같은 가설을.
"서,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공국이 성지나 숲을 쓸 거라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마물은 야전을 할 때에나 오겠지. 숲에 신성함이 있으니 아인같이 지성이 있는 마물이 아니라면 발을 들일 수가 없으니. 하지만, 어딘가의 귀족이 디에르코르테 언덕에 거점이라도 만들어버리면 위험해."
"숲을 통한 강습도 경계해야 되나요. 최악이네요 정말."
"저쪽이 수단방법 가리진 않을 테니까. 신앙보다 돈을 선택하는 녀석들이다, 관습이나 금기 따윈 태연히 범하고 만다고."
"그래도 신도를 제압하는 건 고려하지 않겠지요."
"신도를 빼앗지 못한다면 언덕을 빼앗을지 어떨지 예상이 안되지만 그럴 여유는 왕국에는 없어. 원정군이 체류할 수 있다면 좋은 정도겠구나. 그것도 큰 의미는 없겠지만, 신도에서 얻을 정보는 중요해지지."
다시 말해, 뒷북만 치게 된다는 소리다. 공국을 내버려 둔 업보가 여기까지 돌아온 것이다.
행군이 질질 이어진다.
단순한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편안함. 하지만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기분이 울적해지고 만다. 남자들은 그걸 떨쳐내려는 듯 정숙을 만들지 않으려고 변변치 않은 이야기로 애써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그런 그들의 등을 바라보면서도, 찌릿찌릿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이건 놀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내면의 초조함이 표면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 다리가 멈췄다.
"지금, 뭔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따라오는 기척이 멀어진 것을 눈치챈 벨트로이가 돌아봄과 동시에, 마리안느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사. 그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고개를 갸웃하였다.
"뭐냐니ㅡㅡ"
뭐지?
그렇게 되물을 틈도 없이, 숲 속, 디에르코르테 언덕에 가까운 방향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결코 대화의 소리가 아니다. 노성도 아니다.
틀림없는ㅡㅡ비명이다.
"비명!? 왜 이런 곳에.....근데 벌써!?"
포울이 의문을 입에 담는 것보다 빠르게, 벨트로이와 미라가 달려나갔다. 벨트로이는 정의감에. 미라는 사명감에.
질주하는 두 인영은, 여자가 남자를 잡아당기며 안으로 돌진한다. 장해물을 개의치 않고 화살처럼 달리는 미라는 지나가는 나무들을 제쳐가며, 목소리의 정체를 시야에 포착했다.
"안돼, 안돼에! 싫어, 놓아줘!"
목소리의 주인은 여자였다. 고가로 보이는 짙은 보라색 고딕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바구니. 그 안에는 약초가 튀어나와 있어서, 이 소녀가 뭘 하러 숲에 들어왔는지 쉽게 상상되었다.
인형같이 단정한 외모를 찌푸리며, 병적일 까지 흰 피부를 상기시키며 떨쳐내려 하는 소녀. 다리로 차버리려 하는 움직임 끝에는, 드레스의 옷자락에 예리한 송곳니를 박고서 격하게 고개를 흔드는 고양이가 있었다.
[엔비캣] 이라고 불리는, 이 근방에 서식하는 커다란 고양이 모습의 마물이다. 얼굴이 인간의 여자와 비슷하고, 털이 가득난 몸은 소녀의 두 배는 된다.
미라는 어째서 숲 속에, 라고 하는 의문을 품는 것보다 빨리 노출된 나무뿌리를 부술 기세로 달려들어서 높이 도약한다. 소녀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엔비캣은 미라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소녀의 다리를 물어버리려 하던 참이었다.
"안돼에에에에에에!!"
사랑스러운 새된 목소리를 내며 괴물 고양이에게서 도망치려 하는 그녀의 앞에, 탁 하고 사람이 내려왔다.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날아오르는 붉은 비말과 반비례하여 지면에 낙하한다. 큰 입을 벌린 마물의 얼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에 물들여지면서 사체를 바라보는 미라를 보고,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할 수 밖에 없었다.
"미라 대장!"
정지한 두 사람이었지만, 제 3자의 개입으로 이제야 움직였다.
맨 먼저 벨트로이가 도착하여 참상을 보고 눈을 찌푸렸고, 이어서 달려온 자들은 모두 숨을 헐떡이며 늦게나마 도착하였다.
"왜 마물이 숲에......"
"글쎄. 알 수 있는 건 공국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 뿐이다."
엔비캣의 절단된 목을 차버린다. 굴러간 머리의 정수리에선, 강제로 새겨진 마법진이 보였다. 공국이 쓰는 테임의 기법. 그 상흔.
성지가 가진 신성함은 자유의지를 빼앗긴 마물에게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가설을 세워보았지만, 결과로서 숲에 적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있는 이상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놀고 있을 수 없어졌구만."
"아니, 놀지는 않았는데요. 그래서, 이 아이는?"
빈정대는 미라의 말을 척수반사로 부정한 벨트로이는, 시선을 소녀에게로 향했다.
미라도 소녀에게 눈을 돌렸지만, 귀찮다는 듯 혀를 차며 다른 쪽을 향했다.
"저기, 괜찮아? 상처라던가, 없어?"
남자 세 명은 소녀를 맡아도 곤란하다며 얼굴을 맞대며 난처해 하였다.
그런 바보들의 내심을 눈치챘는지, 잠깐 세 명을 노려본 마리안느가 서투른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실은 아이를 좋아하는 마리안느. 하지만 얼굴이 무섭다며 울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과 시선을 맞추며 대화해주는 마리안느에게 안심했는지, 후우, 하며 한숨을 쉬고서 눈가를 닦고, 자세를 조치며 꾸벅 인사하였다.
"저기, 감사드려요. 도와줄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소녀도 이 숲에 들어온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부지게 행동하는 소녀의 모습에, 마리안느의 표정이 약간 풀어진다. 딱딱함이 약간 사라진 마리안느는 소녀에게 손을 뻗어서 일으키려 했지만, 소녀는 힘이 빠져서 일어설 수 없었는지 난처해 하며 웃었다.
"죄,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아요. 천천히 일어서도 되니까요."
"감사해요....."
"어째서 숲 안에? 이곳은 출입금지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마리안느의 물음에, 소녀는 몸을 경직시켰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인지, 시선이 이곳저곳으로 방황하면서, 다시 곤란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마리안느는 서투른 미소를 보이면서도 경계심을 품었다.
공국의 함정일 가능성도 있다.
방심하지 않고 음음 하며 신음소리를 내는 소녀를 바라보고 있자, 소녀는 결심했는지 눈에 힘이 들어오더니 마리안느에게 등을 보였다.
뭘 하려는 건지 생각했는데, 드레스의 등에 기묘한 틈이 두 곳이 있는 걸 눈치챘다. 의문스럽게 생각하자, 흰 피부가 기묘하게 꿈틀거렸고, 다음 순간 커지며 커다란 박쥐의 날개가 펼쳐졌다.
"앗ㅡㅡ!"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단번에 물러나서 무기를 들었다. 벨트로이 일행도 소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허리춤에 찼던 검을 손에 들었다.
그 몸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박쥐날개. 한두번 펄럭거리고, 천천히 돌아본 소녀는 서럽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제 이름은 필미리아. 살고 있던 땅에서 내쫓겨난, 비참한 마족입니다."
지성이 있는 마물은 신성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선이라 해도, 악이라 해도.
필미리아라고 이름을 댄 소녀가 어느 쪽인지, 경계하는 기사를 서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소녀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반월을 그리고 있었다.
◆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지하도서관.
원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자는 거의 없는 명부의 서고.
어둠이 드리워진 실내에 떠있는 유령이, 칸막이가 있는 한 켠에서 몇 번이나 왕복하며 멀찍이 상태를 보고 있었다.
마법진이 그려진 거대한 원탁의 한 켠에 켜져 있는 촛불. 서늘한 바람이 불어 불안정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옆에는, 여러 책이 산더미같이 있었다.
원령의 흐느낌을 BGM으로 하여, 펄럭거리며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책더미에 파묻힌 사람은 얼굴을 들고서, 피곤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아는 역사와 너무 달라...."
목소리의 주인은,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유일한 인간, 카론이었다.
이런 리얼한 유령주택에 혼자 찾아온 그는, 바하랄카에게 명하여 나라의 역사서를 긁어모으게 하고, 한권한권 읽어내리고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대부분 가치가 없는 것 뿐이었다.
바하랄카가 준비해준 서적의 대부분이, 카론의 일만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바하랄카 왈 국보급의 서적이라는 모양이지만, 카론이 보기엔 과대망상의 메모지 수준에 불과했다.
"귀찮아....."
누군가에게 대역을 맡기고 싶다. 하지만 이걸 쓴 것이 마물이라면, 간추린 정보도 편중될 거라고 예상된다. 결국 카론이 할 수 밖에 없다.
가까이 있던 둥근 유령을 배게삼아 탁자에 엎어지며, 어떻게든 모은 정보를 정리한다.
먼저, 마물들은 인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이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역과 교류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은 의외로 적게 느껴졌다.
카론이 펼쳤던 정책때문에 몇 번 교류를 했었는데, 불만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협력은 해주지만 공존은 하고 싶지 않다, 는 말인가. 서로를 지성이 있는 야수 정도로 본다면 어렵겠구나."
"기기기기, 카카카카카카로, 카론니이이이이임."
"아, 그래그래. 거기에 두고 가."
얼굴을 눕히며 노트를 넘기는 카론의 앞에 두둥실 접근한 바하랄카의 망가진 목소리에도 빠르게 익숙해졌다.
옆에 앉아서 다음 지시를 조용히 기다리는-다리는 없지만- 그녀? 를 흘끗 쳐다보고서, 다시 생각으로 돌아갔다.
'이전 세계의 전이 전에는 이쪽이 압도적 강자로 착취하는 쪽이었지만, 그럼에도 용자와 영웅을 칭하는 녀석들은 단장을 몇 명 보내지 않으면 힘들 정도의 싸움을 강요당했지. 이 세계의 히어로는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계속 강하게 밀고 나갈 수는 없겠어.'
이 인식은 루슈카와 이미 합의를 마쳤다.
라고 생각하는 건 카론뿐이었으며, 루슈카가 각 단장에게 전달한 내용은 "그러니 전력을 파악하고 나서 장악하라." 라는 쓸데없는 부분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법률에 관해선 거의 모르겠지. 어느 곳에서 한번 시찰의 명목으로 마을에 나가볼 필요가 있으려나."
앉아서 지시를 내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서는 이 평온이 머나먼 저편으로 가버린다.
침대 대신으로 쓰는 서늘한 유령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자신도 꽤 담력이 세졌다고 생각하였다.
"카로오오오오온!!"
하지만, 돌발적인 일에는 약하다.
위에서 강렬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에서 떨어질 듯한 기세로 튀어오른 카론이 올려다 본 끝에는ㅡㅡ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체가.
"......힉!"
눈앞으로 수직낙하하는 물체를 바하랄카가 공중에서 받아낸다. 그건 도서관의 입구에 있어야 했을 강철문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카론의 머리가 상하로 두 쪽이 났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는 눈앞에서 빛나는 동색 문을 보며 핏기가 사라졌다.
"카카카론니, 니이이이이임, 괜찮, 습니니니니, 까까까까!"
재빨리 문을 쥔 바하랄카가 걱정하며 말을 걸었지만, 머리가 새하얗게 된 카론이 대답을 할 여유는 없었다.
"카론카론카로오온! 들었다고 재밌는 일이 신도에서 일어난다며! 저기저기 잠깐 놀러 갔다 오자꾸나! 조금, 조금이면 되니까!"
"에에이, 기다려 이 암여우! 왕의 방해가 된다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멈춰, 어이, 멈추라고 했지!"
"좋아 붙잡ㅡㅡ우옷!"
"젠장! 슈젠이 당했다!"
"상관 마 계속 밀어붙여!"
"잠깐~! 급무다 급무~!"
그렇게나 조용했던 도서관 안이 일제히 시끄러워지며,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들이 일제히 내려온다.
으르렁대며 소란피우면서, 카론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죽을 뻔한 것도 모르고 찾아오는 바보가 다수.
아연실색한 카론의 눈앞에 돌연 나타난 자는, 계단에서 뛰어 내려온 쿠치나시히메였다. 짓밟힌 책과 종이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카론이 만든 노트까지도.
눈앞에서 훨훨 나는 종이를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어 봤지만, 어깨를 탁 잡힌 탓에 방해되고 말았다.
"카론! 놀러갈까!? 가는 거지! 좋아, 그럼 가자!"
"어, 뭐야, 잠깐."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가자! 뭐, 잠깐 동안의 여행기분이다. 넌 조용히 따라오기만 하면 되느니라. 왜냐면 이 쿠치나시히메가 지켜줄 터이니!"
"무, 무슨 이야기인지....."
양쪽 어깨를 덜덜 흔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개가 앞뒤로 흔들리며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던 카론은 쿠치나시히메의 어깨에 메어지는 꼬락서니가 되었다.
"네놈! 스스럼없이 왕을 만지다니! 부럽, 괘씸, 어쨌든 카론님을 놓아라!"
"훗후, 카론은 이제부터 나와 휴가이니라. 비참하게 일이나 하거라 제군."
원탁의 위에 서서 카론을 들쳐 메고, 도착한 단장들에게 등을 돌린 모습은 공주를 납치하는 나쁜 기사같았다.
핫핫하 하며 너털웃음을 남기고 고도의 전이마술을 발동시켜서 자취를 감춘 쿠치나시히메를 쫓는 것처럼, 다시 루슈카 일행이 시끄럽게 도서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정숙함과 책을 모으면서 눈물을 그렁거리는 바하랄카.
뒷날, 그녀들이 류미엘에게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의 설교를 받은 것은 여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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