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기대2021년 01월 13일 17시 33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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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의 장이 정식으로 사용된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군단장을 모은 것은 단순한 변덕. 리레와 얼굴을 맞대던 곳은 옥좌의 방. 정식으로 내빈을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날, 처음으로 본래의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어두운 실내에 금과 무지개 색이 비추어진다. 부드러운 진홍색 카페트. 눈을 부릅뜰 정도의 고가의 도구. 그리고, 황금의 옥좌.
희뿌옇게 드러나는 옥좌에 앉은 왕의 모습에, 오늘 도착한 노레드와 타이라 두 명은 깊게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뵙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전, 신도 틸아젤의 신관장을 맡고 있는 노레드・아이만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소이다."
발을 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턱을 괴고 있는 왕에게 의연한 태도로 대사를 자아낸다. 얼굴은 만든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내심에선 회견의 장의 화려함에 놀라고 있었다.
"얼굴을 들라."
조용하게, 왕의 옆에 선 로이엔타레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자리에 소집된 것은 로이엔타리 뿐이다. 다른 자들은 모두 이제부터 필요한 준비를 하러 갔으며, 단순한 신관의 상대라면 그녀 혼자서도 괜찮다고, 카론이 노레드 일행의 스테이터스를 본 후 판단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여유를 갖고 얼굴을 든 노레드의 시야 한 켠에, 피부를 찌르를 위압감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타이라가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 자는 신전에서의 생활밖에 모르는 자여서, 이 방의 화려한 분위기에 압도된 모양.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로이엔타레도 왕도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럼, 요건을 들어볼까. 듣자 하니 왕구에서 사자가 온 모양이구나."
무언을 관철하는 왕의 대신 로이엔타레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조명이 적었기 때문에 어떤 인물인지도 판별할 수 없어서, 노레드는 먼저 화제에 응하기로 하였다.
"예. 본래라면 그들을 환영하고, 흐지부지 시켜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신도를 방위하던 신성기사가 모두 사망하였소이다."
"우리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만을 말하러 온 겁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소이다. 그들의 행동은 꼴사나운 것이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나."
"매우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대로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시민을 병사로 끌어들인 것 만으로는 훈련된 기사라고 부르기에 너무나 연약합니다. 참으로 민폐를 끼치게 되는 일이란 건 거듭 알고 있지만, 손을 빌리고 싶소이다."
그렇게 말하며 노레드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카페트가 닿을 정도로 깊게, 제멋대로의 부탁에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
로이엔타레가 왕의 대변을 하기에는 짐이 무거운 문제였는지, 조용히 왕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아무 말없이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흐름을 보고 있던 왕 카론은, 천천히 다리를 풀고 몸을 일으켜서 노레드를 내려다 보았다.
".......우리들은, 신도를 구하지 않아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은 것이 사라진다고도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엎드린 채로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다만, 에이라에게서 들었던 이미지보다도 젊은 목소리로 느껴졌다.
로이엔타레가 보내는 찌릿찌릿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반해 왕의 분위기는 정말 옅다. 그것이 더욱 기분 나쁘게 생각되었다.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들이 얻을 이익은 없을 것이오. 성지이긴 해도 지금은 주변에서 적대시되는 나라. 이득을 논하려 해도 현재로선 무엇 하나 제시할 수 없소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탁을 하러 왔소. 이렇게 저희들이 생을 구가하고 있는 것도 전부 에스텔드 바로니아 왕의 덕분. 그 상냥한 마음씨에 매달리게 되다니, 정말 부끄러울 뿐이오."
찬사를 술술 늘어놓는 노레드의 모습에, 로이엔타레는 왕의 위광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며 만족스러워 한다.
지금까지 외부 사람이 왕을 찬양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신선함에 취해서는 음음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그런가......우리는 우리의 이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시대와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을 한 왕이 손 위에 갑자기 빛을 만들어냈고, 거기에서 한 자루의 흑검을 꺼내 들었다. 왕의 손 위에서 검 끝을 아래로 향하자, 그대로 소리 없이 바닥에 깊숙이 꽂혔다.
마술을 쓴 모습도 흔적도 없다. 마술을 즐길 정도로 배웠던 노레드로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조금 드러낸 마물의 왕의 힘의 일부에 할 말을 잊었다.
"그냥 싸우는 것으로 통용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시대다. 수없이 되풀이하며,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질렸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검을 빛으로 되돌려서 손 안에서 거머쥔다. 찬란한 빛의 입자가 덧없이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짐이 신도에게 손을 빌려준다면, 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무엇, 이옵니까."
"왕국과의 우호관계다."
생각치도 못한 소원에, 노레드는 튀어오르는 듯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 일을 짐이 원하는 걸 이상하다고 비웃는 자도 있을지도 모른다. 동포 중에 반감을 품은 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짐은 새로운 시대에 살고 싶은 것이다."
진심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원하고 있는 거다. 이 이매망량을 다스리는 왕은.
"어떤가. 신도는 이 부탁을 이루기 위해 손을 빌려줄 수 있겠는가?"
신도의 요청에, 왕은 부탁을 대가로 하였다. 그건 서로의 이득을 위함이었으며, 동시에 마물과 공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의 제 1보이기도 했다.
'마물의 왕? 이게? 다른 왕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마물을 통치하는 수완만 장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나 심금을 울릴 줄이야.'
괴물을 상상하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져서, 그걸 숨기려는 듯 다시금 엎드렸다.
"맡겨주십시오. 늙은 몸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실현시켜 보이겠소이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굴복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흐름은 정말 평범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얼마나 마물을 빌려주는가, 어떻게 변명을 할 것인가, 공국에 움직임은 있는가 등등.
일단 대화를 끝내고 타이라를 로이엔타레에게 맡긴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간 왕은, 왕의 가면을 버리고 단순한 카론으로 돌아왔다.
"후우."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긴장의 정도도 약했고, 약간 피곤함을 느끼는 정도로 끝났다. 점점 이 생활에 익숙해진 모양이어서,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뒤에서 소리를 내며 닫혀진 문에 눈도 안 돌리고 소파로 향하여, 상스럽게도 엉덩이부터 착지하며 상체도 등도 등받이에 맡겼다.
"우리에 대한 신도의 인식은 미묘하구나. 말하면 하긴 하겠지만 우호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운가."
카론이 노레드와의 대화에서 주의깊게 조사하고 있던 것은, 이 에스텔드 바로니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여부였다.
"왕국과 어떻게 접촉해야 좋을지 생각해야겠어. 그 신관장에게 맡겨도 된다면 좋겠지만, 이쪽은 마물이니까. 어떻게 해야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왕국과의 우호는 정말 원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왕국에 적의를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애니메이션처럼 쉽게 안되나아ㅡㅡ웃!"
다리를 부들부들 떨다가, 쿵 하고 정강이를 테이블에 부딪혀 버려서 기절할 듯이 아프다. 약간 눈물을 지으며 다리를 부여잡고 아파하는 참에 문득 방법이 떠 올랐다.
애니메이션처럼, 이라고 말했었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애니메이션같은 일이다. 왕국의 정의로 놓고 공국을 악으로 놓고, 신도를 붙잡힌 공주라고 치자.
왕국이 신도를 되찾기 위해 공국과 싸운다. 정말 정석같은 이야기였는데, 더욱 정석같은 것도 있다. 힘든 싸움에 아군이 가세한다는 전개가.
이때의 아군은 계속 함께 해온 친구이거나, 몇 번이나 싸우는 새 사이가 좋아진 적인데, 타이밍을 봐서 멋지게 등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군."
다시 말해, 그런 포지션에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들어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역시 이미지를 좋게 하는 게 최우선이다. 여기서 애니메이션같은 전개의 등장이다.
신도에서 공국의 자들이 암약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신도를 손에 넣으면 왕국과의 전투를 우위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공격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암약하는 녀석들을 전부 처리해 왔었지만, 그걸 방치하고 신도의 안에서 조금 날뛰게 하는 것도 좋지는 않을까. 그걸 신성기사(마물) 과 엘프로 쓰러트린다. 그리고 침공해온 공국 측의 녀석을 왕국과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쓰러트린다.
"안되겠어."
말해놓고 보니 좀 심하다. 손에 넣은 정보로 추측해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태였지만, 실행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보고 있기에는 약간 아까운 전개일 것이다. 여기서 평판을 조금이라도 벌어 둔다면 이 대륙에서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기반이 된다.
진부하지만, 해봐도 손해는 없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부탁해볼까."
신도의 원정군과는 별개로 정찰부대가 편성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인원을 조사해보니 나라에도 영향력이 있을 법한 유력귀족이 두 명 포함되어 있었다.
먀르코가 지휘하는 냥코 정찰대의 정보수집력에 의문은 없다. 소리는 안 들려도 맵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추가적인 증거를 얻는 일은 쉽다.
그 유력 귀족들에게, 마물은 아군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미스테리어스 레이디의 등장?"
그렇군, 가능하다.
남자가 세 명 있다. 거기에 앵겨들면서 "저, 마물이에요." "하지만 좋은 마물이에요." "그런 마물이 많이 있는 나라가 있어요." 라고 속삭인다.
카론이 필사적으로 0부터 외교를 진행하는 것보다도 나아질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작전이었지만, 닥치는 대로 짓밟아 뭉개는 전쟁만 경험해온 카론이 생각해 낸 모처럼의 전략. 이쪽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고, 담배를 문 채로 공중에서 손을 휘저어서 단장들의 스테이터스를 띄웠다.
모든 단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상황에 걸맞는 자를 찾는다. 꽤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흔한 병사에게 시키는 건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편애이기는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고 싶었다.
휙휙 스크롤을 내리다가, 도중에 멈춘다. 그곳에 표시된 것은 어린 이목구비와 짙은 보라색을 한 고딕로리타의 드레스를 입은 음마의 여왕.
성격을 보면 내키지 않는다. 한 사람을 더 시킬까 생각했지만 그 외엔 모습이 너무 사람과 동떨어져 있어서 힘들 것 같다.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리듬을 내며 생각한다. 중요한 임무가 되겠지만 반드시 필요하진 않다. 성공한다면 카론의 부담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정도다.
신음소리를 내며 생각하던 차에, 노크 소리가 난다.
"실례하겠습니다. 신도로 파견했던 마물이 리스트를 갖고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할드로기아가 더욱 깊게 고개를 숙이면서 카론 쪽으로 이동한다.
"할드로기아, 제 6 단 단장을 옥좌의 방으로 불러왔으면 한다."
가슴에 품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놓는 동작은 뚝 멈추고, 둔한 움직임으로 카론에게 얼굴을 향한다
"저기, 움직이실 건가요."
"그래. 다른 자들만 우대할 수도 없지. 그보다 꽤 불평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드로기아가 놓은 서류를 흘끗 보니, 눈에 띄게 팝업되는 편지가 섞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 이전의 일 때문에 단장이 보낸 편지인데, 빨리 면회하고 싶다고 하는 요지를 대단히 부풀려서 꽤 음란한 어투로 호소하는 내용이 쓰여져 있다.
조금 바쁘다며 미루고 있었지만, 슬슬 그녀도 움직여야 할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군의 기능을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이번 일은 좋은 기회일 것이다.
진지한 표정의 카론에게 할드로기아는 조금 껄끄러운 분위기를 내보이고 있었지만, 지시를 받고서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껄끄러웠던 이유는 카론의 명령이 아니라 그 단장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왜냐하면 쿠치나시히메에 지지 않는 육식녀였기 때문이다. 걱정된다.
신도에 이어서 이번 문제에서도 크나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예감에 가슴이 뛰었음에도, 점점 늘어나는 라이벌에 혀를 차는 할드로기아였다.
◆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군은 현재, 그 대부분이 원래의 기능을 정지하였다.
토지를 확보하였기 때문에 순회와 경비에 인력을 할애하고 있지만, 영토가 이전보다도 훨씬 좁아진 탓에 절반 이상이 한가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놀게 놔둘 수도 없다.
각지의 정보가 모일 때마다, 어떻게 진행되어도 군의 역할은 반드시 생긴다. 그게 어느 때인지 모른다고 해서 실력을 무디게 하는 건 군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 하물며 왕국과 공국의 전쟁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전선을 담당하는 군은 전투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았던 나머지,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었다.
라는 보고를 받은 것이 어제의 일.
백성과 주변 지역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찼던 카론이 그걸 들었을 때, 정말 후회하였다.
루슈카가 군에게 인내를 강요하도록 대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욕구불만이 쌓여서 폭주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 저 나라 쳐부수러 갈까." 와 같이 가벼운 텐션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카론이 생각낸 것은 게임의 시스템에선 할 수 없었던 하나의 도전이었다.
"가라고 임마!!! 죽여죽여죽여어어!"
나라의 북쪽에 펼쳐진 초원에, 추한 욕설이 난무하였다.
지금은 전쟁이 예정에 들어있지 않았는데도, 범상치 않은 살기를 띄운 마물들이 외쳐댄다.
지면을 부수면서 질주하는 오니와 늑대인간이 노리는 적은,
"가라~! 날려버려~!"
"전부 죽여버려!"
고양이와 여우의 수인과, 오니였다.
카론이 제안한 것은, 모의전이었다.
훈련이라는 건 원래 존재하고 있었지만, 군단끼리 전투훈련을 하지 못해서, 매번 적당한 상대를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성공한다면 일석삼조 정도는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모의전은 이름 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열의를 보이는 마물들을 보면 꽤 불안감이 든다.
"그러면, 전군 전투준비!"
그 양군에게서 떨어진 위치에, 감시역이 마술로 성량을 높여서 명령을 내린다.
그 지도역으로 발탁된 자는 루슈카였다.
'주가를 올릴 찬스라는 말씀. 후후훗, 다음의 같이 잘 권리는 내가 가져간다!'
뭐 내심으로는 중요한 일을 맡았다며 꽤 들떠하고 있었지만, 루슈카도 이 훈련방식이 커다란 의미를 낳는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전군, 전투를 개시하라!"
그래서 이 모의전에 발탁된 그라도라가 이끄는 제 2단 1개중대와, 에레미야와 효우에의 혼합부대에게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잘 알아듣도록 말해 놓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다.
루슈카의 신호로 기세좋게 외친 외친 동서 양군은, 책략도 뭐도 없이 솔직하게 직진하였다.
일단은 모의전이기 때문에 제각각 전략을 짜두도록 말해뒀었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책략이 없는 것 같다.
"먹어 치워라!"
"할퀴어버려!"
"베어버려라!"
삼자삼색의 외침으로 병사들을 질타하면서, 쓰러지면 안되는 군단장이 최전선에서 달려나갔다.
손에 든 것은 평소의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그걸 모방한 쇳덩이. 병사들도 익숙한 무기와 비슷한 모조품을 쥐고 있어서 되도록 안전하도록 하였지만.....근접한 순간, 양군에서 화려한 선혈이 비산하였다.
"ㅡㅡ.....우오오오오오이!"
루슈카가 무심코 경악의 소리를 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들고 있던 모조품으론 결판이 안 난다고 생각한 녀석들이 무기를 버리고 맨손으로 때리고, 문답무용으로 스킬을 써버렸으니까.
덕분에 휘말린 자들은 중상자가 다수.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돌격하는 바보들에게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안돼. 아 이건 안된다. 어이어이잠깐잠깐잠깐! 그만둬! 그만둬 네놈들!"
필사적으로 고함을 쳐보아도 눈앞의 광경은 수습이라는 단어를 몰랐고, 그 뿐인가 희생이 나온 탓에 머리에 피가 오른 모양.
계속 지면에 쓰러지는 자들이 늘어갔고, 서로를 근절시킬 때까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멈춰! 멈추라고! 멈, 멈추라고 했지이이이이!!"
드디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루슈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슬쩍 흑금색 유탄포를 꺼내들어 지면에 놓고, 조준을 하늘로 맞춰서 즉시 발사했다.
은색 빛의 포물선을 남기면서 구름 저편으로 사라진 포탄은 다음 순간 거대한 마법진을 생성하여 벼락으로 바뀌었고, 과격한 공방을 자아내는 중앙에 떨어졌다.
[퍼니셔 블래스트] 라고 불리는 광역포격스킬을 눈치채고 서둘러 방어태세에 옮겼지만 이미 늦었고, 무자비하게 떨어진 신의 번개는 아군인 것도 관계없이 봐주지 않고 꿰뚫어 버렸다.
"냐아아아아아!"
충격으로 에레미야가 하늘을 날았다. 다른 병사들도 날아가 버렸다. 나중에 남은 것은 빈사상태의 병사와, 떨고 있는 그라도라와 효우에였다.
모의전 결과, 양군이 얻은 경험치는 매우 적다는 결과로 끝났다. 그들에게 레벨의 개념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은 잘 이해하였다.
부상자 147명이라는 숫자가 나오자, 신도공략전 이상의 피해를 만들어 냈다는 일의 중대성도 동시에 제대로 이해하였다. 사망자가 안 나온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네놈들, 이 나에게 수치를 안겨줄 셈이냐! 적당히 하면서 상대에게 큰 부상을 입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죄송해요.....하지만 그, 루슈카의 기술 때문에 부상자 엄청 늘어난 느낌이."
"앙?"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 죄송합니다."
3군이 구조활동 겸 치료에 가담하여 토양 정비를 하고 있는 사이, 떨어진 상조에서 그라도라 일행은 루슈카의 앞에서 정좌를 하고 있었다.
일단 화를 풀자 나름대로 진정되었는지, 이번엔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자가 몇 명인지 파악하고 있나?"
"아~, 우리는 근위가 전부 쓰러졌다."
"내 쪽은 유격대가 제대로 부딪혀 버렸으니 거기서부터려나~"
"본인 쪽은 소조, 미자크라, 텐젠 외 등등일까."
"너희 중대장이 전부 포함됐잖아......"
루슈카는 면밀하게 주의를 줬지만, 그 말은 '절대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하도록' 이라는 카론의 요청보다 가벼운 내용이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그렇게나 말했었지. 이건 진짜 전투와는 다르다고!"
"아니 글치만, 진짜 전투라고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입 다물어 효우에. 이 진짜 호모녀석. 카론님이 명하신 것은 실전에 가까운 형태의 훈련이다. 훈련때문에 중상자를 내는 녀석이 있겠냐!"
"하, 하지만, 그렇게 봐주면 모두 당해버려도 태연히 일어날 거라 생각하는데요? 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때려눕히지 않으면."
"보통 연습할 때 그렇게까지 때려눕혀?"
"그런 짓 안 해요~. 하지만 승패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상태는 되잖아요? 1:1이니까요."
그렇게 듣고 보니 그런 느낌도 든다. 전체의 승패는 단장의 패배로 판가름할 수 있지만, 모두가 연습 때처럼 1:1의 상황에서 싸웠던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병사의 전투불능을 판단해야 할까 정해두지 않았던 것은 루슈카의, 카론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알았다. 카론님께는 그런 뜻으로 설명해두지. 어차피 처음 시험해본 거다. 약간 심하게 말했구나."
"아니, 우리들도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해. 미안했어."
"정말 그렇다."
"반성의 기색이 사라졌다고."
"어쨌든! 그냥 이대로 카론님께 보고할 수도 없다. 우리들 쪽에서도 뭔가 생각해보자."
평소였다면 곧바로 카론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렸을 루슈카의 발언에, 효우에와 그라도라가 얼굴을 마주 보았고, 에레미야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뭐냐 너희들."
"아니, 루슈카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말야."
"응응."
효우에의 의견에 동감한다고 끄덕이고, 예상 밖이라고 말하는듯이 허리에 손을 대며 눈을 치켜올렸다.
"왕은 지금 바쁘시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새로운 질서를, 관념을 주입하려 하신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까지와 달라지지 않으면 실례가 아닌가. 적어도 거들고 싶은 거다."
그 생각에 그라도라도 동조한다. 고독한 인간의 왕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을 한다니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이상했지만, 가능한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도와줄게. 내 병사는 아직 쌩쌩하니까. 저 녀석들도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의욕이 날 거라고?"
"그건 오니들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무사, 왕을 위함이라고 안다면 기쁘게 목을 내어줄 것이다."
"......정말 고맙지만, 그 기세의 결과가 이거라는 걸 잊지 말라고."
루슈카는 세 명을 일으켜 세우고, 문제점을 밝혀내기 위해 여러 제안을 하였다.
드물게 다투는 일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세 명을 한걸음 떨어진 장소에서 바라보고 있던 에레미야는,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펼쳐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점점 햇살이 강해져가는 걸 느끼면서, 예전과 다르지 않은 하늘색에 문득 웃었다.
"우리들도 변하는 걸까나, 마물인데도......"
"어이 에레미야, 너도 참가해."
"혼합물, 빨리 와. 바보 같은 너라 해도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지."
"시끄러 정말, 엉망이야 엉망~"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변하는 게 당연하다.
변했기 때문에, 이렇게 현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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