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마굴2021년 01월 12일 15시 23분 2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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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속국화된 나라, 신도 틸아젤.
속국이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방임하고 있다. 금전의 요구도 없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다만 마물의 나라의 존재를 숨겼다는 것만 전해져서, 나날이 감시의 눈을 받으면서도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런 틸아젤의 신전에, 파발이 도착했다. 그것도 두 마리나.
하나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의 사자. 또 하나는 왕국에서의 사자. 어느 쪽도 신도에게는 좋은 이야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듣지 않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양국의 사자의 말을 제대로 듣기로 했다.
"카론님께서, 신도에서 사람을 파견해 달라고 하신다. 물론 거부권은 없다."
"신도에 불온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 그 진위를 확인하러 왕립기사단이 7일 후에 방문한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어느 쪽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였다.
회견의 장에서, 신도의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왕국의 사자가 떠나간 장소를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중얼거린 자는, 높은 위치에 있는 아제라이의 무녀. 교황 에이라・크란・아젤은 무엇부터 착수해야 좋을까 하는 곤경에 빠져 있었다.
"먼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연락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에이라의 옆에 서 있는 자는, 신관이었다.
그 원로원이 펼쳐왔던 압정에 반항해온 자는 거의 없었지만, 존재하고는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원로원에도 뒤지지 않는 연로한 남자. 굽은 허리와 해골을 연상시키는 야윈 얼굴을 한 신관장 노레드・아이만이었다.
노레드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에이라의 정면으로 이동하면서 진언하였다.
"이건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오. 정치에 대해선 관여하지 말라고 말했었지만, 왕국이 움직인다면 그들에게도 형편이 좋지 않을 것이오."
"그, 런가요. 그 사람들은 저희들을 버려도 상관없을 텐데요. 신도에 의존하고 있는 건 왕국과 공국. 저희들이 뭘 한다 해도, 그 사람들에게 피해는 하나도 없잖아요?"
"......그건."
"노레드의 기분도 알겠어요. 이렇게 된 책임은 그들에게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을 원했던 건 우리들입니다. 설령 원치 않은 형태가 되었다 해도, 현재가 있는 건 그 분들이 덕분이에요. 어쨌든, 먼저 시민에 걸려진 예속의 주문 말인데요."
"그럼, 그쪽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길."
두 사람의 대화에 끼여든 것은, 엘프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참가하고 있던 오르페아였다.
노레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오르페아를 바라보았다. 뭔가 불쾌한 일을 했었나 생각한 오르페아였지만, 노레드가 내놓은 말은 다른 것이었다.
"은폐는 포기하는 편이 좋아. 섣불리 숨겼다는 게 알려졌을 때를 생각하면 두렵구려."
"그, 그럼 어떻게 하라는."
"이대로 놔두는 게 어떻겠소."
방치한다. 그렇게 말한 노레드에게 의혹의 시선이 쏠렸지만,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왕국에게 어느 정도의 정보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소. 다만 엘프의 취급은 소문 정도로 알려진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 노인들은 신자의 마음을 제대로 파고들었지만, 평범한 행상인의 입에 족쇄를 채울 정도로 신경을 쓰진 못한 모양이니."
"그건, 보고도 보지 않은 척을 하였다, 라는......"
"그렇소. 신도에 이의를 제기하던 자도, 나라도 없어진 것이 현재 상황이오. 아니, 있었군. 하지만 지금은 다르오. 이 아제라이교의 총본산, 그 정권에서 노인이 사라지고, 그 대신 학대받던 엘프가 대두되었다고 한다면 주위가 우릴 적으로 보지 않겠소. 그 소문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혹시."
지금 무렵,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그대로 였을 것이다. 은혜가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어도, 그런 마음은 있다. 동시에 관여당하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전할 필요는 있었고, 지휘를 받을 필요도 있었다.
"다시 한번 그 나라의 사자를 불러서 왕에게 전하도록 해야겠구만. 계책은 제 안에 있소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예속의 주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닌 건가요?"
"아니오, 제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겁니다."
그것이 본제라고 생각한 에이라는 목을 귀엽게 갸웃하였다.
"주문은 저의 복안으로 어떻게든 해보이겠소. 문제는ㅡㅡ신성기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오."
그렇다. 이 나라에 많이 존재하고 있던 신성기사가 근절되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이건 몰래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도 내부를 보면 일목요연하다. 지금은 엘프가 경비를 서고 있지만, 그곳은 본래 신성기사가 있어야 할 장소. 나라의 입구에 들어온 시점에서 이상하게 생각되고 만다.
"시민에게 예속의 주문을 써서 신성기사로 분장시키는 건......"
"오르페아 공. 그건 안될 말이오. 그 노인과 같은 짓을 하는 것이오."
문득 떠오른 방안은 통렬한 반론에 싹 사라졌다.
"인원을 모으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제가 가호를 부여해준다고 해도, 임시변통에 불과할 것이고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 부르는 건 어떨까요? 마물이라 해도 가호를 내려주면 신성기사가 되는 건 가능할 것입니다."
"저로서도 그걸 원하지만, 그런 요청을 하면 우리들 쪽이 윗사람인 것처럼 비춰질 것이오. 협력을 구한다고 해도, 우리 형편에 저쪽이 맞춰줄지 확증이 없소."
"그런가요. 확실히, 주문보다도 어려운 문제네요."
"역시 마물의 나라에 기대야 하는 걸까요. 뭔가 복안이 떠오를까 하여 여쭤보았습니다만."
"우리들은 뭘 하려 해도 인력과 협력자가 없는 형편이오. 이것이 아제라이교의 총본산이라니 웃을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없는 걸 한탄해봤자 나오는 답은 변하지 않겠지요....."
"부디 교섭이 가능하다면 좋겠네요. 왕국 방문의 건을 전달함과 동시에 여쭤보겠습니다."
자기가 가겠다고, 노레드는 넌지시 알렸다.
엘프는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에 그다지 손을 대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신관에게 맡기기에는 막중한 책임이다. 적임은 노레드밖에 없다.
죄송함 때문에 에이라의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졌다. 상냥한 무녀를 바라보며, 늙은 신관은 눈꼬리에 주름을 내며 흰 수염을 몇 번 매만졌다.
"그럼, 왕국에 대한 대응은 맡기겠습니다. 다음은 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의 요청인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서면으로 확인해 두었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의 역사에 밝고 약학의 지식을 가진 자에 대한 일같소만."
"그렇게 되면, 역시 신관 분에게 맡기게 되는 걸까요."
"그렇소."
"저기, 저희들로는 안될까요."
또다시 오르페아가 대화에 끼여들었지만, 느릿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걸 보고 또 의미없는 진언을 하였다며 어깨를 떨구었다.
지금은 에이라와 노레드가 신도의 내정을 돌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에이라의 어머니나 시에레와는 다르게 머리보다 몸을 움직이는 편이 장기인 오르페아에겐 약간 어려운 모양이다.
고개를 풀썩 숙이고 만 오르페아를 나중에 달래야겠다며 에이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던 때에, 노레드는 한 신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그 요청은 몇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인질, 연구재료, 순수한 강사 역할. 그 전쟁의 광경을 떠올리면 전자의 두 경우가 유력해 보이는데, 노레드는 솔직하게 그 요청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요청하지 않고, 당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사람을 빌려달라고 청해왔다. 전자 두 가지의 이유라면 좀 더 빠른 단계에서ㅡㅡ다시 말해 신성기사를 붙잡는 걸로 해결되었을 터.
그럼, 후자라면 어떤가. 설명은 된다. 붙잡은 인간을 쓰는 것보다 다루기 쉬울 것이다. 정중하게 사자까지 보내며 알려왔으니까.
이미지가 좋으니, 그런 생각을 해도 무리가 아니다. 상대가 마물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맞았다고 해도, 선택된 자는 나쁜 방향으로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노레드도 아직 최악의 가능성을 떨쳐내지 못했으니까.
"......기사단의 방문을 생각하면, 노레드를 그대로 보낼 수는 없어요. 누가, 요청을 받아주실 분은 없나요?"
신관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가 없을까 하고 확인한다. 조용히, 한 남자가 손을 올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 남자는 흰 사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다. 머리를 전부 뒤로 넘겼으며, 신관 치고는 듬직한 인상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든다. 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비웃는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결단을 비웃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타이라 씨......."
에이라도 그 남자의 평판은 들었다. 신관 중에서 제일 젊고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장래가 기대되는 사람이라고.
"저, 전 친척이 왕국에 있고 처자식과 애인도 없습니다. 제가 가야 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이후의 신도의 귀중한 인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를 이형의 땅으로 보내도 좋은 것일까. 하지만 말을 바꿔보면 중요한 인재이니 보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결단을 내리는 건 노레드가 아니다. 어리지만 교황의 자리에 앉은 그녀가 책무를 짊어져야 할 일이었다.
"교황님. 저도 처음엔 동반할 것이니 심려치 마시길."
"예. 예, 그렇네요. 타이라 씨,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맡겨만, 주세요."
아직 갈등이 있는 모양이다. 말에 힘이 없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죄는 짊어지자. 천천히 눈을 감은 에이라는, 조용히 숭배하는 신과 그의 왕에게 기도했다.
부디 이 신도에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기를.
◆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성. 그 중앙의 탑의 밑에는 몇몇 층계가 있다. 그 중에서도 정무관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가 제 4층에 존재한다.
도서관. 다른 이름으로ㅡㅡ망령의 관.
이 별명은 많은 바로니아 병사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카론의 의도는 아니다. 뭐 원인은 분명 카론에게 있지만, 그렇게까지 두려워하게 만들 셈은 없었다.
이 장소를 관리하는 자들은 제 9 단. 전선부대와 다르게, 비상시에 후위로서 전쟁에 참가하는 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망령와 관이라 불리는 대로, 배치된 자들은 모두 사령과 악령같이 육체를 갖지 않은 존재들. 결코 다가가고 싶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때려서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이곳에 올 필요가 있었다. 조사해야 둘 것이 산더미같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지식. 나라의 역사. 모르는 서적도 있는가 등등.
성에 은둔해있는 것 만으로는 모르는 일도 많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고 싶어."
혼자 중얼거린 카론의 말은, 시중인으로 선택된 루슈카와 쿠치나시히메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카론님, 조심하세요."
카론이 약간 다리를 멈춘 것 만으로, 선두에 서서 랜턴으로 발치를 비추던 루슈카가 돌아보았다. 카론이 조금 다리를 헛디딘 것이 아닐까 하고 신경쓰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괜찮다."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려보는 카론에게 루슈카는 미소지으며 끄덕였지만, 그 시선이 카론의 등 뒤로 이동하자 점점 날카로운 얼굴이 되었다.
"쿠치나시, 카론님이 상처를 입는다면 그냥 두지 않겠다."
"오오, 무섭네 무서워. 저기 말야 루슈카. 넌 날 뭐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이 나선계단을 굴러 떨어져서 목뼈가 부러지는 정도라면 신경쓰지 않겠지만, 카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도와줄 것이니라."
파직파직하고, 어두운 도서관 안에 청백색 불꽃이 보인 느낌이 든다.
카론이 떨고 있던 것은, 이 두 사람의 나쁜 사이도 원인이었다.
카론의 안에서 초기 멤버들은 사이가 좋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격 때문에 약간의 불화는 있어도, 게임 안의 시간으로 100년 이상이나 같이 지냈으니까 동고동락의 관계를 구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추측은 크게 빗나갔다.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카론의 방에 기뻐하며 나타난 두 명은 그 순간부터 과격한 적의를 내보였던 것이다.
'젠장, 100년의 역사는 뭐였냐고.'
공교롭게도, 마물에게 있어서 100년이란 보잘것 없는 세월이었고, 그 정도로 간단히 바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카론이 그 근본적인 이유였기 때문에 변할 리도 없었다.
울적한 분위기를 비추는 카론의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을 노려보는 걸 바로 그만두었다.
역시 그녀들도 바보는 아니다. 무슨 원인으로 카론이 어두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지 예상이 되었다.
'분명 쿠치나시가 성가셔서 그렇겠지.'
'분명 루슈카가 지겨워진 게 분명하구나.'
정확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최심부에 도착한 무렵에는, 계속 지켜보고 있던 흰 그림자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중심에 옅은 녹색 빛을 내는 것이 놓여진 커다란 원탁이다.
원탁의 앞까지 도착하자, 랜턴을 원탁 위에 놓은 루슈카가 부랴부랴 준비를 시작한다. 어둠을 개의치 않고 흐트러짐 없는 발걸음으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점등된 양초의 양을 늘려나갔다.
점점 밝아져 가는 도서관 밑. 겨우 세 명 밖에 없는 장소일 터인데, 쓸데없는 발소리가 카론의 귀에 들렸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소리는 틀림없이 루슈카였지만, 점점 다가오는 소리는 그 사이에 들리고 있다. 기분 탓이라고 머리를 흔들어보아도 그 소리가 사라질 일은 없었다. 천천히, 천천히, 루슈카의 세 걸음 안에 이해할 수 없는 한 걸음이 들려온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를 낸다. 어둠 안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소리가 드디어 빛이 있는 곳까지 다가오자, 의식이 가볍게 날아갈 것 같았다.
"어머, 카론님. 왜 그러시나요?"
카론에게 있어서는 혼돈이었던 곳에서 나타난 것은, 등불에 금색 머리카락을 빛내는 류미엘이었다.
"아, 핫, 노, 놀래키지 마......"
숨이 멈출 것 같았던 것을 눈치채고 무리하게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런 카론의 모습에, 류미엘은 죄송하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후후후, 카론도 인간이구나.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무서운 것이냐."
소리의 정체를 눈치챘던 쿠치나시히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카론을 보고 작게 웃었다.
"알고 있었다면 알려줘."
"미안. 카론이 진짜 인간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졌지 뭔가."
"정말, 뭐냐고 너는. 사람을 놀리기만 할 뿐이고."
"이것도 사랑이란다 카론."
"망상이 지나쳐서 분별도 못할 정도로 뇌가 썩어버린 여우년 따윈 내버려도 괜찮아요 카론님. 조만간 병들어 죽을 테니까요."
이제야 등불을 다 밝힌 루슈카가 쿠치나시히메를 노려보며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전의 반격을 할 셈으로 신랄한 대사를 던지자, 한순간 쿠치나시히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좀 하는걸. 그렇게 말하는 루슈카도 머릿속이 꽃밭인 탓에 카론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았었나? 멋대로 행동해서 쓸데없이 심려를 끼치는 건 신하로서 과연 어떠할지. 어차피 피어있는 건 피안화일 터인데." (역주: 피안화의 대표적인 꽃말은 죽음)
"후, 후후. 본래의 모습도 드러낼 수 없는 추한 여우가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변화 따윌 쓰지 않으면 카론님을 만날 수도 없다니, 얼마나 더러운 몸인지 말해주는 것 같잖아. 그리고 카론님을 낮춰 부르지 마 망할 여우."
"하하하, 머리만 아니라 가랑이도 가벼운 여자 주제에 나한테 의견을 내다니. 그 정도의 매력으로 왕을 모시려 하다니 수치를 모르는 게 아닐까? 어차피 상대도 해주지 않았겠지? 카론을 카론이라고 부르는 건 나에게만 허락된 것이니라. 부외자는 입다무는 게 어떠한가."
"네가 할 말이 아닌데 창년."
"찢어 죽여줄까 모순년."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태. 예쁜 미녀가 서로의 멱살을 쥐며 노려보는 광경은 매우 강렬한 것이었지만, 슬쩍 팔을 만지는 감촉에 제정신을 되찾았다.
"어이, 알았으니 내버려 둬."
대뜸 류미엘이라고 생각해서 팔에 댄 손으로 눈을 향하자, 이상하게 가느다란 것을 눈치챘다. 그 가늘기는 보통이 아니다. 확실히 말하자면 뼈라고 밖에 안 보인다.
"........."
시선을 들다, 류미엘은 아직 정면에 있었다.
다시 한번 시선을 떨궈보니, 역시 뼈가 카론의 팔을 감싸고 있다. 그것도 잘 보니 두 개나 있다.
이상해.
천천히. 천천히. 그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뒤로 돌려나간다.
약간 밝아진 도서관의 안. 뿌옇게 떠오른 청백색의 모습.
머리가 두 개 , 하나는 해골. 하나는 소녀.
다 떨어진 검은 망토에는 반짝거리는 커다란 보석이 박혀있다.
드러난 하반신에는, 무수히 많은 늑골과 꼬리같은 기다란 척수밖에 없다.
망토의 옆에서 튀어나온 팔은, 관절이 두 개 정도 많았다.
"나나나나나의 사랑스런 왕이여! 잘도 여여기기기까까까까지 오셨습니다! 화화화화환영합니니니다다다다다다!!"
부서진 듯한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해골이 내는 외침에, 고막이 찢어질 듯한 절규를 지른 카론의 의식은 뚝 끊겼다.
원탁에 펼쳐놓은 루슈카의 상의 위에서 자고 있던 카론이 의식을 되찾아서 상체를 일으키자, 네 마물이 정좌하고 있었다.
루슈카와 쿠치나시히메는 카론을 내버려두고 자기들의 일에 열중해버린 것을 후회했다. 류미엘은 카론의 옆에 나타난 사령을 말하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저기, 죄송했습니니니니다다다다."
망가진 CD같은 목소리로 사과하는 그녀? 인지 그인지 모를 유령의 모습.
해골과 소녀의 얼굴을 가진, 검은 망토. 5인분은 될 긴 팔과, 이상하게 많은 늑골과 이상하게 긴 척추.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았는지,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고 눈물까지 짓고 있었다. 그 어조가 떨리는 건지 아닌지는 카론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바하랄카, 구나."
"예, 옛! 그래요그,래래래요요요그래요! 오호, 제 이름을 왕이 불러주주주주시다니 멋지이이이이이인 날입니다."
"아, 미안. 잠깐 조용히 해줘."
말할 때마다 해골이 덜덜 떨리는 모습은 너무 무서다. 소녀 쪽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목소리만큼은 귀여웠지만, 텐션이 너무 올라간 해골에게 방해받고 있는지 격한 잡음이 섞여들어서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이런 캐릭터였구나. 오랜만에 본 느낌이 드네.'
카론이 도서관에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녀? 를 보는 것도 스테이터스 화면으로 봤던 이래였다.
'이터니티 커스' 라고 불리는 랭크 10의 사령종. 태고에 영원의 저주를 받아버린 두 소녀의 몰골이다. 라는 설정으로, 수없는 죽음을 당하여 이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죄송했습니다. 저도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버려서요."
"아니, 신경쓰지 마. 류미엘 탓이 아니다."
카론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 깜박 잊어버린 자신도 나빴다고 말했다. 예상할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별개로 쳐도, 류미엘의 탓은 아니다.
"미안 카론. 이 여자한테 붙잡히고 말았구나."
"죄송했습니다. 바보같은 여우를 조용히 하는데 몰두하고 말아서요."
"......"
이 두 사람은 용서해야 할지 약간 망설여졌지만, 계속 으르렁대도 곤란했기 때문에 조금 사이좋아지는 걸 조건으로 용서했다.
"그래서, 바하랄카.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카론의 질문에, 바하랄카는 기다란 팔을 휘두르며 뭔가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아, 말해도 좋다. 다만 조금 진정하고 나서."
"예. 저기, 바로 나오,오,오려고 생각했습니다만,만,만만, 루슈카, 일행이 무서, 무서워, 져서."
"아. 알았다. 알았으니 이제 됐다."
또 말더듬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기 전에 제지하자, 바로 조용해져서 다시 미안하다는 듯이 카론을 올려다 보았다. 귀여운 보라색 머리의 소녀 쪽은 좋았지만, 뻥 뚫린 눈에 구멍이 뚫린 해골이 입을 벌리며 올려다보는 건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렸다.
딱히 바하랄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니 화내진 않았다. 꼴사납게 비명을 지른 건 약간 껄끄러웠지만, 루슈카 일행은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건들지 않기로 하였다.
"뭐, 다음에 신경쓴다면 됐다. 그리고 그렇군, 나의 조사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물, 론입니다 나의 사랑스런 왕이여! 당신을 위해, 뭐뭐뭐뭐뭐든지 말씀해해해, 주시시시시시."
"알았으니까, 부탁한다."
다시 손으로 바하랄카를 제지하고, 원탁에서 내려와서 루슈카의 상의를 되돌려준 후 사령을 데리고 이동한다.
그 등을 보면서, 루슈카 일행은 다시금 카론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나 카론님이네요. 그녀를 보고 놀랐는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대응하시다니."
류미엘의 말에 쿠치나시히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강한 존경의 시선을 등으로 받으면서, 카론은 기쁜 듯이 떠있는 바하랄카를 바라보면서 아련한 눈을 하였다.
'익숙함이란, 무섭구나.'
안타깝게도, 카론은 바하랄카에게서 나오는 냄새와 저주를 알지 못했다. 라고는 하지만, 그녀에 한하지 않고 마물 대부분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좀 이상하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시중드는 마물들의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카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최선의 행동을 지금도 계속 무의식적으로 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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