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 준동
    2021년 01월 15일 23시 09분 5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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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36/





     "........늦어."


     카론이 미라 일행을 만난 후로,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하늘에는 달과 별이 떠올라서 활기찬 낮이 끝나고 소란스러운 밤이 찾아왔다.

     주점은 낮과 다르게 많은 어른들로 몹시 혼잡하였고, 술냄새가 충만하여 여기저기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피하려는 듯 입구의 오른쪽 안, 약간 어두운 자리에서 진을 친 세 명이었지만, 다른 멤버의 합류가 너무나 늦어지자 약간 초조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너무 늦다고 그 녀석들. 하인 주제에 언제까지 이 날 기다리게 할 셈인가!"


     정정한다. 매우 화가 나 있다.

     리발도 차근차근 달래는 걸 그만두고, 미라와 조금 다른 걱정의 표정을 하였다.


     "저기, 무슨 일이 있던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다. 솔직히 우리들은 잠입임무를 하러 온 주제에 너무 눈에 띄니까."

     "그럼 찾으러 갈 필요가."

     "안돼.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스스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일이 도우러 가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너무 늦습니다."

     "그럼 뭐야, 그를 데리고 밤의 거리에 나가서 찾으러 돌아다니자고 하는 건가? 안됐지만 무리다. 갈 거라면 혼자서 가."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 화를 내고 있는데도, 미라는 조소하듯이 내뱉었다.

     리발도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동료다. 다른 멤버에 대한 폭언과 태도에 반론하려는 걸 참고, '제 방으로 가겠습니다.' 만을 남긴 리발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점 바깥으로 나가고 말았다. 

     미라는 임무를 방치한다고 투덜거렸지만, 그것도 질린 모양인지 다시 주점의 입구를 바라보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자는 카론과 미라 뿐.

     답답한 공기를 얼버무리려는 듯, 카론은 맥주잔을 들었다.


     "미안하다 카론 공. 껄끄럽겠지."

     "예,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원래는 내 탓일 테니까."


     갑작스레 말을 걸자, 들고 있던 컵을 떨어트리려 하면서도 대답을 하였다.

     옆에 앉은 미라를 곁눈질로 보자, 그 표정엔 어딘가 우울함이 보였다.

     흐르는 듯한 은색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길게 째진 눈은 주점의 입구를 노려보는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걱정하고 있나?"

     "......글쎄, 어떨까."


     애매한 대답.

     말할 것 따윈 없다고 하는 듯한 대응에, 카론도 구태여 물을 것도 아닌가 하며 과일주스를 마시며 기분을 다스린다.

     술을 다 들이킨 미라는 큰 소리로 점원에게 추가 주문을 하였고, 여기서 처음으로 카론에게 눈을 주었다.

     눈앞에 널려있는 요리는 모두 손을 댄 흔적이 있지만, 녹색 고기나 달달한 향이 나는 고기같이 이세계의 향취가 느껴지는 것 뿐이어서 카론은 손을 일절 대지 않았다.

     공복을 달래려고 주스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 배에서 약간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

     "......풋. 크크큭, 배가 고프다면 먹으면 될 텐데."


     자신보다도 연상일 남자의 멍청한 모습에 무심코 웃고 마는 미라에, 카론은 부끄러워 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미라가 정중히 요리를 소반에 담아서 카론의 앞에 놓았다.


     "자, 먹어도 좋아. 아니면 싫어하는 것 뿐이어서 그런가?"

     "아니, 전부 모르는 음식 뿐이라....."

     "어이어이, 무슨 집안에서 잘랐길래 이런 철부지 도련님이 되는 거야. 나도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이상한 사람이군, 카론 공은."


     필요 없이 관심을 줄 정도로 미라는 상냥하지 않다.

     사실 이렇게 카론과 같이 있지만, 용건이 있을 때 이외엔 말을 걸지 않았고, 시선을 주는 일도 없었다. 그냥 보호하는 것 뿐. 그것 뿐이었다.


     "하아....... 당신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난 하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인, 인가."


     요리의 설명을 해주니 이제야 겨우 쭈뼛쭈뼛하며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카론을 보고,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며 작게 웃은 미라는, 약간 진정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 중에는, 공들여 키우는 녀석이 있다. 그놈은 정말 실력이 좋아. 이대로 간다면 내 밑 정도로 강해지겠지. 한번 보고 바로 알았다."

     "호오."

     "다른 녀석들도 재능이 있어. 죽어도 눈앞에서 칭찬해주지는 않을 거지만, 언젠가는 왕국의 요직을 오를 거다."

     "그걸 나한테 말하면 어떻게 하나."

     "글쎄. 그냥 왠지 모르게. 카론 공은 말하기 쉬운 사람 같으니까."


     약간 욱한 카론의 표정을 보고, 킥킥대며 어설프게 웃는다.

     그녀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있는 자는 기사단에도, 집안 사람 중에도 없다.

     기사단 중에서 모두가 자신보다 아래라고 보고 있으니까, 강자인 자신이 약한 표정을 지을 생각은 없다.

     집안 사람이라고 한다면 귀족. 욕구만이 돋보이는 녀석들과 대등하기는 해도 친해질 생각은 없다.

     벨트로이라 해도, 그녀에게 뭔가를 투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카론은 외부의 인간이고, 상당히 부유한 귀족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독특한 나쁜 느낌이 전혀 없다. 정말로 그냥 있는 그대로 여기에 있고, 강한 욕구에 눈이 멀지도 않았고 미인이라고 자타공인로 인정받는 미라에 대해서 성적인 시선도 향하지 않는다.

     미라가 타국에도 널리 알려진 '기사의 명예' 라는 걸 알게 되면 카론의 태도도 변하는 것일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일이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스스로도 놀라운걸."

     "뭐가 말이지?"

     "이쪽의 이야기. 그래서? 카론 공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여기서 내가.......부하는 괜찮은가?"

     "리발은 내게 비밀로 하고서 구하러 갔겠지.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정도는 알아. 그래서, 어떻게 히먄 그런 욕심없는 도련님으로 자랄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물어봐도 말이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모르니까 모르는 것 뿐이다. 하물며 이세계에 왔기 때문이라고 말해봤자 이해해줄 리도 없다.


     "모르는 건 모른다. 부자유 없이 살아왔고, 부자유 없이 지냈어도, 부자유가 없는 것이 곧 부자유다. 덕분에 계속 책임에 대가를 지불하고 있고, 알아둬야 할 것도 모르는 채로 있다."

     "호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왕국의 귀족도 당신같은 자가 있었다면 조금은 나아졌을 텐데."

     "난 다른 귀족.....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나 심각한가?"

     "심한 정도가 아니다. 이놈도 저놈도 욕심 뿐이다. 돈, 권력, 여자, 설령 있어도 아직 부족하다며 비열한 얼굴이 드글드글하게 모이지. 그 중에는 제대로 된 놈도 있지만, 그건 그거대로 성가시다."

     

     불성실한 귀족은 미라에게 여자와 권력을 원하고, 진지한 귀족은 '기사의 명예' 를 원한다.

     그녀의 아이덴티티는 환경이 만들어온 것 뿐이다. 높은 지위의 귀족이면서, 고명한 기사의 가계. 그 가문에 외동딸로서 태어난다면, 추구되는 것은 상응하는 삶의 방식.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되라고 기대하고, 그렇게 있으라며 원한다.

     왕국에 있어도 바깥으로 나가도, 그녀의 등에는 언제나 긍지가 따라다녔고, 그녀 자신에게서 미모가 벗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어느 쪽에도 눈을 두지 않는 남자가 나타났다.

     흘린 말로 보면 높은 권한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세를 떨치려는 태도도 원하는 생각도 없다.

     처음으로 만나는, 미라를 미라로서 보는 남자였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군. 이런 미인과 같이 있는데 욕정이 안 드는가? 저것 봐, 다른 녀석들은 멀리서도 날 노리고 있다고?"


     놀리는 듯한 어투로 말하면서 주변을 보니, 반짝반짝하는 수컷이 카론을 노려보며, 미라에게 혀를 차고 있었다.


     "미라.......양도, 어엿한 귀족인 것 치고는 상스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귀족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그래서, 어떻지?"


     일부러 외투의 밑에 숨겨둔 기사단의 옷을 풀어헤치고, 흰 계곡을 만든다.

     카론은 흘끗 눈을 향한 후, 무심코 집어삼킬 듯 보게 되었는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풋! 뭐, 어, 어어어없는 건 아니라고! 다만, 그러면 좋은 이미지를 못 주니 의식하지 않는 것 뿐이다!"

     "하핫, 그 나이에 설마 미경험인가."

     "도, 도도도동정 아니라고! 그런 넌 어떠냐!"

     "난 부자유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럴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가능하지."

     

     그렇게 하다 결혼을 못하는 거야, 라고는 말하지 않도록 한다.

     아직 어색했는지, 소리내어 웃는 미라를 따라 카론도 웃는다.

     문득, 이런 시간은 얼마 만인가 하는 희미한 그리움을 느끼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미안하다. 싫어졌는가?"

     "아니. 그게 아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약간 본성을 드러냈구나 하고 생각해서."

     "꽤 큰일이구나 당신도. 그렇게 말하는 나도 처음으로 본래의 자신이 된 느낌이 드는구만."

     "부하와 있을 때도 충분히 본심이었다. 안심하라고."

     "꽤 치는데 카론 공."

     "카론이면 됐다. 공손한 건......좋아하지 않아."


     무심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말하는 도중에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이 본심이다. 마음 어딘가에서,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원했었다.

     구치나시히메도 약간은 편하지만, 미라처럼 인간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자신을 왕으로서, 특별한 눈으로 봐주지 않는 인간 친구가.


     "만나서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적극적이구나. 손이 빨라."

     "바보같은 말 마."

     "그럼 나도 미라면 돼. 실은 나도 딱딱한 게 싫어."

     "후후, 바보같은 말 마."

     

     미라도 마찬가지로, 카론을 원하고 말았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올 거라고 알고 있어도, 지금 만은 친구로서, 마음을 터 놓은 사람으로서 대할 수 있다면.


     

     이룰 수 없어도, 원하고 말았다.



     다시 변변찮은 대화라도 해볼까 하는 참에, 갑자기 미라가 허리에 찼던 검을 손에 들었다.

     주점의 소란은 변함없다. 그녀만이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고, 찌릿찌릿하게 살갗을 찌르는 살기를 내보였다.


     "어, 어이. 왜 그래."

     "조용히 있어. 뭔가가 온다."


     그 기압에 눌려 조용히 한다.

     가만히 쳐다보는 주점의 입구. 옅은 호흡을 반복하며 경계하는 미라의 눈매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검은 천으로 전신을 숨긴 수상한 인물이 들어온다.

     그 찰나, 무서운 탁기가 가게 안에 충만하였다.

     공기가 색을 띄었다고 착각할 정도의 마물의 기척. 순식간에, 소란은 밤바람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라졌고 호흡하는 소리만 들렸다.


     "어이, 너 뭐하는 놈이냐 임마."


     아직 이 분위기로도 술기운이 사그라들지 않았는지,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한이 무언가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상대에게 닿는 일 없이 투둑, 하는 소리를 내었고, 거한도 몸 안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지면에 쓰러졌다.


     죽었다. 정말 간단히.


     그런데도 공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힘에 속박된 듯 누구 하나 움직이는 게 허용되지 않았고, 검은 천이 걷는 모습에 눈도 돌리지 못하며 떨리는 몸으로 의식을 유지하는 게 겨우였다.


     "저 녀석......"


     천의 틈새로 슬쩍 보인, 흰 야수의 손.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아무리 보아도 구치나시히메다.

     카론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는, 미라에게는 섣불리 달려들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저게 카론을 노리던 녀석인가."

     ".......뭐?"

     "이 주변의 잡것과는 차원이 트리군. 젠장, 이런 때에 그 녀석들이 없을 줄이야. 아니, 그걸 노렸던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ㅡㅡ"


     검은 천을 몸에 두른 구치나시히메는 주위를 둘러보고, 카론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왔다.

     그에 맞추어 미라도 카론을 등에 숨기듯이 일어서며 상대했다.

     정정할 틈을 주지도 않아서, 최악이라며 머리를 감싼다.


     "찾았다, 카론."

     

     평소와 같은 기색으로, 평소와 같은 분위기의 구치나시히메가 맞이하러 왔다고 말하려는 듯 천천히 손을 뻗는다.

     카론은 딱히 아무 것도 느끼지 않았지만, 미라로서는 카론을 데려가려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마물의 탁기를 내뿜는 수상한 녀석이 카론과 면식이 있고, 카론이 이 탁기에 익숙하다, 라고 상상할 수 있는 자가 있을 턱이 없다.


     "내가 시간을 벌겠다. 그 틈에 도망쳐. 알겠지?"

     

     알겠지, 라고 말해도 곤란하다.

     머리를 부여잡고 떠는 카론을 향해 작게 속삭이고, 쑤욱 앞으로 나서며 명백한 적의를 드러냈다.

     막아선 방해물에 천 안의 구치나시히메의 눈이 가늘어진다.


     "방해다, 계집."

     "미안하지만 그를 넘겨줄 수는 없어서 말이다. 네놈들 공국 마음대로 하게 둘 수 없다!"

     "공국......? 아아, 그런....... 뭐 그래도 상관없어. 우리들에겐 그 분이 필요해. 이제부터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러니ㅡㅡ방해된다, 인간."


     슈욱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린다.

     미라는 발도의 자세에서 무리하게 검자루를 자신의 얼굴 옆에 기대어 덮쳐온 커다란 손톱을 막아냈지만, 예상 이상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가볍게 날아가서, 주점의 벽에 등을 강하게 부딪혔다.

     지면에 떨어져서 괴로운 듯 기침을 하면서,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위라고 인식한다.

     공격에 힘을 들인 기색은 거의 없다. 다만 진짜로, 방해되니 떨쳐낸 것 뿐에 불과하였고, 그걸 이해하고 만 것 만으로 멀어지는 승산을 다시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천천히 카론에게 다가가는 이형의 손. 도망치라고 말해두면서 도망칠 틈도 만들지 못한 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아픔을 참으면서 엎드린 자세에서 무리하게 달렸다.


     "하게 놔둘까 보냐아아아아!"


     오른손에 쥔 검을 내리치면서, 왼손으로 오른쪽에 찬 검을 뽑아서, 막으려고 하다 생기는 틈을 노리고 몸통을 후려치려고 한다.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구치나시히메의 머리 위에서 양측이 서로 부딪혔고, 미라는 발도를 쓰기 직전의 자세에서 미처 못 쓰고 무너졌다.

     역시,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인지, 그냥 검을 막은 것 뿐인 구치나시히메의 힘에, 베어버리려던 미라의 힘이 버티지 못한다.

     바로 오른손에서 검을 놓고, 상체를 끌어내리며 뽑았던 검을 양손으로 휘두른다.

     느낌은, 있었다.


     "오, 꽤 하네."


     구치나시히메가 카론의 앞에서 물러나서, 등 뒤에 있던 인간을 휘말리게 하며 피했다.

     밀쳐진 인간은 그 때문에 이제서야 자유를 되찾았는지, 굴러가면서 주점에서 나갔다. 공포의 여파는 전염되었고, 주점에는 세 명 만이 남게 되었다.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는 그 녀석들 이외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확실히 얕볼 수 없겠구나."


     희미하게 붉은 선이 떠오른 복부를 바라보며, 흥미깊은 듯 중얼거렸다.


       어빌리티・기사의 명예

     어빌리티・마물사냥꾼

     어빌리티・수호의 검

     어빌리티・신속

     어빌리티・영웅의 피

     어빌리티・용자의 계보

     스킬・당죽쪼개기

     스킬・거합베기


     지금의 일격 동안 발동된, 카론의 로그에 남은 미라의 능력이다.

     원래의 레벨 차라면 구치나시히메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용자의 적성이 있는 것 만으로도 약간 들어간다.

     구치나시히메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안되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카론의 눈에는, 용자와 영웅의 힘이 위협적이라고 파악했다.


     "도망쳐! 빨리ㅡㅡ"


     아연실색하여 바라보는 카론에게, 미라가 소리를 지르며 재촉한다.

     그 도중에, 카론의 시야에서 두 사람이 사라졌다.

     두개골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한 힘에 붙잡혀서, 카운터에 기세좋게 패대기쳐진다. 튼튼하고 두꺼운 판을 끼고, 지면에 후두부가 박힌 그녀의 입에서 공기와 함께 피를 토해내었다.

     성대하게 날아간 유리가 어두운 오렌지 색으로 빛을 내면서, 천천히 낙하한다. 난반사하는 빛의 안에서, 왕인 자신을 보았다.


     "그, 그만둬! 미라에게 손대지 마!"


     충동적으로 외친 카론의 말에, 숨통을 끊으려고 들어올린 팔이 정지한다.

     이 자리에서 미라를 죽이는 건 문제있다. 수지타산은 나중에 떠올렸지만, 지금은 잃어버릴 것 같은 친구의 몸을 생각하여 외쳤다.


     "네가 원한다면 그러지. 미안하게 되었구나 카론. 이렇게까지 할 셈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상처를 입어서 흥분해버렸지 뭐냐."

     "알았으니, 빨리 해."


     미안미안, 하고 사과하는 구치나시히메에게 재촉당하여, 주점을 뒤로 하였다.

     카운터 부근에 서서 미라를 보니, 충격으로 몇 군데나 상처입은 것일까. 위를 향해 쓰러진 얼굴은 빨간 피에 젖었고, 움푹 패인 바닥도 검게 번지고 있었다.

     자신이 일으킨 일이다. 변명 따윈 없다.

     해줄 말도 찾지 못하고, 등을 돌려 구치나시히메의 뒤를 쫓았다.


     "카, 카론.....가지, 마........지금, 도와,,,,,,주......"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는 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모습을 등 너머로 바라본다.

     그 손을 잡으려 하는 마음을 눌러담고, 다만 한 마디.


     "미안하다."


     그 말 만을 남기고 카론은 떠나갔다.

     이제부터 자기가 하는 일은, 그런 친절함에 기대도 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끝난다면 다음엔 그 손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분명 거머쥘 자격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많은 목숨을 빼앗을 인간이 자신을 구하려는 손을 쥐려고 하다니, 용서받을 일이 아닌 것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밤길을 걷는 카론을 보며, 구치나시히메는 옆에 서서 미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저, 저기 카론. 정말로 미안하구나. 그런 짓을 할 셈은 정말로 없었고, 저기, 미, 미안하게 되었다....."

     "상관없어. 내 책임이다. 넌 네가 해야 할 일은 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이젠 신경쓰지 마."

     "하지만, 사이좋게, 되지 않았느냐? 네 얼굴을 보고서야 알아챘지 뭐냐."


     울 것 같은, 천을 벗어버린 구치나시히메의 얼굴을 보고, 과연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나온 대답은,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나도, 저 녀석도, 전부 다."


     왕좌에 속박되어버린 남자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미소만이,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미라와 헤어진 벨트로이, 포울, 마리안느, 필미리아 네 명은 마을에서 탐문조사를 한 후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벨트로이는 신관 중에 친구가 있다. 몇 년이나 만나지 못했지만 예전엔 자주 놀았던 사이로, 지금도 그 우정은 계속되고 있을 터였다.

     꾀죄죄한 외투를 입은 네 명은 돌바닥을 묵묵히 걸어나갔다.


     "미리아, 괜찮니? 지치진 않았고?"

     "괜찮아요. 여러분의 방해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씩씩하게도 미소로 대답해줬지만,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고, 원래도 하얀 피부에서 더욱 핏기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마물이어도 인간과 다르게 매우 강하다, 라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아침부터 계속 걸었잖아. 어이 벨, 어디선가 쉴래?"

     "그래, 저곳에서 쉬어. 난 먼저 간다."


     가리킨 곳은 우람하게 뻗어있는 나무의 밑에 설치된 벤치. 벨트로이는 세 명을 그곳에 남겨두고 혼자 신전으로 달렸다.

     뒤에서 거는 말을 무시하고, 다 떨어질 것 같은 외투를 바람에 나부끼면서 단번에 뛰어오른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제치면서, 혼자서 장엄한 신전 앞에서 멈춰섰다.

     숨을 천천히 고르면서 생각한 것은, 그리운 친구의 모습.

     신전의 이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일 신경쓰였던 일이다. 만일 휘말렸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기사단은 누구도 없다. 아마 모두 신전 안으로 안내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통행이 많은 길에서 멀어져서 신전의 옆으로 돌아, 주변에 신경쓰면서 마침 걷고 있던 신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예? 무슨 용무이십니까? ......아아, 배식은 하고 있지 않지만, 신전 안에 와주신다면 식사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만."

     "아니요, 구걸이 아니라..... 여기에, 아르포타이라는 없습니까?"

     "오, 타이라의 지인 분? 오늘은 있을까요, 요즘 출장 때문에 없을 때가 많은 분이라서요. 잠깐 기다려 주실래요?"


     신관은 그렇게 말하고 신전 쪽으로 약간 달려갔다. 그 등을 보면서, 친구의 무사에 안도함과 동시에 의문을 품었다.

     신관의 출장이라니, 도대체 어디로?

     잔디밭에 몸을 눕히면서 신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찾아온 것은 예전보다 어른스러워진 친구의 모습.


     "어이! 여기다! 오랜만이야 타이라!"

     "뭐? 벨? 어째서 이런 곳에!"


     그리운 재회에 기뻐한다. 그런 마음과 반대로, 타이라는 진지한 얼굴로 다가왔다.


     "빨리 신전에서 나가. 여긴 전장이 될 거라고."

     "어, 어이 뭐야 갑자기."

     "뭐긴 뭐야. 네가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다음에 하라고. 오늘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아. 왕국도 신도도 공국도 기대지 말고 재빨리 이 부근에서 도망치는 편이 좋아."

     "자, 잠깐. 어이, 잡아끌지 말라니까!"


     벨트로이의 손을 끌고 뒷문 쪽으로 걸어간다. 눈에 띄게 초조해하고 있다. 그것도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전부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강제로 이끄는 손을 떨쳐내고, 진정하자 약간 거칠게 말했다.


     "난 지금 기사단에 소속되었어. 내 용건은, 네가 알고 있는 일을 말하게 하는 거라고."


     품을 열어보니, 안에 보이는 건 왕국기사의 제복.

     타이라에게 있어, 피하고 싶었던 사태였다.


     "아아.......너도 휘말려버리는 건가......"

     "조금이라도 좋아. 말해주지 않을래. 뭐가 일어나려고 하는 거냐."


     사람의 눈이 신경쓰이는지 주변을 둘러본 후, 타이라는 손짓을 하고 벨트로이를 신전 안으로 안내한다.

     순순히 따라서 뒤를 쫓자,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통로로 나아갔다.

     그대로 가보니, 자그마한 어두운 방의 앞으로 안내해준다.


     "여긴, 우리들 신관이 쓰는 방이다. 사람은 오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안내한다.

     자그마한 창이 달린 어두운 방. 의자도 탁자도 없이, 그냥 흰 벽과 바닥만 있는, 마치 감옥같은 방이었다.

     벨트로이가 뭔가를 물어보는 것보다 빨리, 타이라가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알겠어. 이제부터 말하는 건 비밀이다. 네 마음속에만 담아둬."

     "그, 그래. 그래서, 지금의 신도는 어떻게 된 거냐."


     벨트로이의 어깨를 놓은 타이라는, 천천히 벽가에 앉았다.


     "지금의 신도는 엘프와 신관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럼 원로원은....."

     "옛날에 폐지되었다. 외부의 도움을 얻어서."

     "외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 부근까지는 이미 신관들 모두가 말해도 말하고 있지. 외부의 손을 빌려서 겨우 제대로 되었지만, 너도 알고 있는 대로 공국이 움직였다."


     이해가 안되는 점은 있지만.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모두 삼파전 혹은, 신도 & 공국 VS 왕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틀려. 그보다도 압도적인 나라의 원 사이드 게임이 된다. 그들은 공국 만을 적으로 한정 짓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왕국도 짓밟히게 된다고."

     ".......여러가지로 신경쓰이지만, 그 외부라는 건 뭐야. 이 부근에 나라 따윈 없다고. 어딘가의 귀족이 붙었다고 해도, 바로 알것이고....."

     "벨,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도 아직 믿을 수 없지만, 현재 중앙대륙의 정세는 다시 칠해졌어. 그리고 오늘 그게 일어난다. 계기 하나로 성대하게 말이지."

     "그 외부란 게 뭐냐고."

     "......말할 수 없어. 그것만은 말할 수 없다고. 나도 입은 은혜가 있어. 그래서 이 이상은 말할 수 없어. 다만, 만일 알고 싶다면 디에르코르테 언덕으로 가. 그렇게 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직접적인 표현은 전부 피해졌다. 다만 알 수 있었던 것은, 오늘 곧장이라도 전쟁이 시작될만한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것. 외부에서 강력한 간섭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전쟁이 짜여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강한 어조로 말을 끝낸 타이라는, 천천히 일어나서 정면을 보던 얼굴을 숙였다.


     "미안. 너도 뭔가의 임무로 왔을 텐데, 이런 것밖에 알려줄 수 없어서."

     "아니, 됐어. 고마워."

     "그래. 그런데, 넌 동료와 같이 오지 않았어?"

     "그래, 도중에 두고 왔어. 나무 그늘에서 쉬게 하고 있지."

     "그런가......"


     그렇게 말하고, 타이라는 천천히 문에 손을 대고 바깥으로 나갔다.

     타이라가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뒤늦게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철컥


     

     갑자기 눈앞의 문이 닫혀버렸다.


     "어, 어이 타이라, 이건 무슨 농담이냐."


     열려고 힘을 더해도 꿈쩍도 안 한다. 강력한 방호마술이 걸려있는 모양인지, 희미하게 녹색 마법진이 떠올랐다.


     "속인 건 아냐. 구금할 셈도 없어. 시간이 되면 열어줄게. 다만, 지금은 거기서 있어.....밤에는 반드시 꺼내줄 테니까."


     친구라고 해서 방심하였다.

     허리에 숨긴 검을 뽑아 들고, 나무문을 향해 몇 번이나 휘둘렀지만 흠집이 날 기색이 없다.


     "속인 거냐, 지금 말한 거 전부!"

     "거짓말이 아냐! 네게 가르쳐 준 것도, 널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도 모두 거짓이 아냐. 알아줘, 널 위해서야....."


     문 너머로 들리는 비통한 목소리에, 그 이상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어졌다.

     타이라가 일하는 이곳에 큰 변혁이 일어났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걸 읽지 못했던 자신에게도 원인은 있다.


     "네 동료도 여기에 들어오게 될 거다. 하지만, 밤에는 반드시 내보내 줄게. 약속하지."


     문의 저편에서,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문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걸어간 타이라는, 통로 중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눈앞에 선, 등을 편 노인의 앞에서.


     "음음, 잘 했다. 이걸로 카론님의 계획도 무난하게 진행되겠지. 이런이런, 네 친구가 계획의 핵심이었다니 정말 안성맞춤이로군. 이러저러해도 용자의 자손, 내버려두기는 약간 불안했었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노인 알버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기, 정말로 그 녀석에게 손은 안대는 거지요......?"


     타이라는 떨면서 각오를 다지고 물어보았다. 지금은 이 마물이 그의 상사이기 때문에,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된다.

     그 실험장에서 봤던, 광란의 동료가 되고 싶지 않다.

     진홍색 눈동자가 가만히 타이라를 들여다보니, 이를 딱딱거리면서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알버트는 너털웃음을 하고서, 안심하라고 말을 걸었다.


     "그 남자들은, 그냥 밤까지 조용히 있어주면 된다. 그 다음은 몰라. 전투 중에 죽어도 책임은 안 져. 핫하, 그 동료라는 자들도 그녀가 적당히 발을 묶어줄 것이고, 카론님 쪽은 그 분이 계시는 한 움직이지 않아. 이걸로 만사가 제대로 진행된다고."


     이제부터 일어날 참극을 매우 유쾌하다며 웃고는, 빨리 오지 않는가 하며 기다리기 힘든지 손가락으로 지팡이의 해골 손잡이를 몇 번이나 두드린다.


     "자, 모두 모여 머리를 숙여라. 거기비켜 거기비켜 마물이 지나간다고? 아아 기대된다. 무참하게 비참하게 죽으면 되는 것. 그 끝에 왕의 자비로운 구제가 있는 것이니. 죽음에 미쳐서 살아가면 좋은 것이다."


     감정 그대로 몸을 맡긴 것에 만족하였는지, 알버트는 가자는 말을 하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바깥으로 향했다.

     스승인 노레드는 이렇게 말했었다. 인간의 왕을 따르면, 반드시 그 앞에 행복이 있다, 고.

     눈앞의 광기를 보는 한,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다.

     다만, 친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은 그것 만을 믿고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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